언더워터.0

휴닝카이 강태현

by 여래백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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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2.06 발행



 귓가에 물소리가 진득했다. 수영장의 락스향이 은은하게 코를 타고 올라왔다. 머리를 대충 수건으로 털어내던 카이가 저를 저주하는 물소리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동그랗고 작은 체구, 수영을 하는 몸 치고는 꽤나 얇은 몸. 그리고 단 한번도 저를 이기지 못해 열이 오를대로 오른 모습이었다.


아 저 재수없는 새끼,


 당연히 제게 들리라고 하는 소리일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그 문장에 대한 의미를 카이가 정확히 모를 것이라고 단정지어 생각하고 말했을 지도 모른다. 카이는 저를 저주하는 물소리를 향해 한껏 미소지어보였다. 자신을 노려보던 커다란 눈이 두 배는 더 커졌다. 울분을 삼키려는 듯, 입술을 꾹 짓이기더니 큰 소리로 락커 문을 닫고는 나간다. 와, 락커 부서지겠네, 그의 행동 하나하나가 마치 예민한 고양이 같았다. 저를 저주하고, 노려보다 큰 소리로 락커를 닫고 나간 자리를 바라보던 카이가 느닷없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매일, 아니 주말은 빼고. 카이는 저를 노려다 보는 커다란 두 눈을 평일 내내 마주하고 있었다. 그 두 눈은 어쩌면 까만 물안경 렌즈 만큼이나 크고, 뒷통수 또한 수영모를 쓴 것 만큼 동그랗다. 카이는 그 모든 것이 하나도 빠짐없이 마음에 쏙 들었다. 특히 그 둘 중에 고르자면 락커로 돌아올 때에 오롯이 저를 향해 있는 까만 큰 눈이 사랑스러워서 마음에 들었다. ‘분해 죽겠다’는 표정을 띈 두 눈. 내가  앞으로의 전국대회를 같이 준비하는 경쟁자라서, 잔뜩 미워하고, 저주하는 것일까? 하지만 그것이 물론 비단 전국대회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카이는 단 한번도 대회에서 1등을 놓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는 말은,


태현은 단 한번도 카이를 이겨본 적이 없다는 이야기기도 하였다.







언더워터 0.

여래






 체육 센터를 빠져나와 햇빛으로 잔뜩 열 받은 차량 뒷 좌석에 올라탔는데도 코 끝에 락스향이 남아있는 것 같았다. 오늘 좀 컨디션 어때? 운전석에 앉아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목소리가 물었다. 그냥 나쁘지 않아, 카이는 뒷좌석에 몸을 아무렇게나 뭉그러뜨리며 대답했다.


 창 너머로 태현이 버스를 타러 정류장으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평소에는 저런 옷을 입는구나, 버스타고 집 가는 걸까? 방향이 같으면 형한테 이야기해서 태워줄 수 있는데. 오늘 진짜 더운데. 잠깐 세우고 물어라도 볼까? 점점 차량에 태현이 가까워질수록, 카이의 머릿속은 혼잡해졌다. 물 속에 잠기는 게 더 나을 것 같았다. 눈을 감자 파란 물 냄새가 다시 코 끝을 맴돌았다. 분명 수영복 물도 제대로 빼고 가방도 다 닦고 나왔음에도 카이의 옆에는 계속 창 너머의 태현이 맴도는 것 같았다. 


 이 센터를 다닌 지가 어연 세 달이 다 되어갔다. 초여름에 이곳으로 와서 지금껏 여러 대회를 준비해왔으니,  태현과도 벌써 몇 달이나 얼굴을 맞대고 지냈지만 카이는 다른 친구들과 달리 태현에게 말 한 마디 걸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카이는 태현에게 첫 눈에 반했다. 그 뿐이었다. 작은 체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얇은 몸이라던가, 크고 까만 눈이라던가. 그리고 항상 끝이 없는 것 처럼 열정을 다 하는 모습. 이미 여러 대회에서 금메달을 쓸어 모은 카이가 태현을 모를 리 없었다. 항상 같이 은메달을 받는 그 아이. 단순히 서로를 알고 지낸 기간은 일 년을 훌쩍 넘겼다. 카이는 내심 새로 옮겨온 센터에 태현이 있다는 것이 줄곧 반가웠지만, 태현은 그렇지 못했다. 태현에게는 카이가 분하고 재수 없는, 그런 존재였을테니 말이다. 가슴 아픈 짝사랑은 오로지 카이의 몫이였다. 카이는 태현과 눈이 마주칠 때면 입꼬리를 말아올려 미소를 지어보았다. 태현은 그런 카이의 미소를 잔뜩 짜증난 표정으로 답하였다. 레인도 항상 멀리 썼다. 제가 있는 자리에서 두 세칸은 먼 레인에서 태현은 연습했다. 그래도 다행히, 카이는 태현과 옆 락커를 사용하였다. 연습이 끝나고 락커를 정리할 때가 유일하게 태현과 가까워 질 수 있는 시간이었다.


 태현이 가까이 다가오면 파란 물 냄새가 훅 끼쳤다. 수영장 락스 향이라고 많이들 말하지만 카이는 그 향을 ‘강태현 향’이라 불렀다. 작은 바디워시에서는 날 수 없는 향이었다. 파란 비누와 파란 물 냄새가 겹친, 그것이 강태현 향이다. 몸을 덜 말린 채로 눈을 감고 앉으면 태현의 향이 맴돈다. 카이는 그 찰나를 좋아했다. 내 옆에는 태현이가 절대, 절대 앉아줄 리 없으니까. 


 눈을 살포시 감고 고민하던 차에, 사이드 미러로 태현이 멀어졌다. 역시, 나 오늘도 태현이한테 말 못 걸었어. 야 뭐 세워줄 걸 그랬냐? 사이드미러만 쳐다보던 카이에게 수빈이 말을 걸었다. 전국대회만 끝나면 밥 먹자고 할거야. 니가 퍽이나 말 걸겠다. 수빈이 작게 비아냥댔다. 입술을 삐죽이던 카이에게 눈치보던 수빈의 눈이 말을 건넸다.


“너 쟤 좋아하냐?”


“왜?”


“니가 저번에 쟤가 너 싫어하는거 같다며”


 카이는 말 없이 고개를 다리 사이에 파묻었다. 특이하네, 운전대를 잡은 손이 말했다. 뭐가 특이하냐 묻기도 지쳤다. 대놓고 제가 싫다는 분위기를 팍팍 풍기는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 말도 안 되게 느껴질 테니 말이다. 넌 자존심도 없어? 라던가, 그런 쪽이 취향이야? 라는 말처럼. 아마 제 짝사랑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저 태현의 모든 면이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좋아할 뿐이다. 첫 눈에 반한 이후로부터 계속. 하지만 어떤 유튜버가 말하지 않았던가, 내가 누군가를 이제 좋아한다는 사실이 그 사람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잖아요. 화면 너머의 까만 선글라스를 낀 그가 제 귓가에 속삭이는 것 같았다.


 태현이도, 내가 좋아하는 게 상처가 될까.

닿지 않을 목소리를 삼키며, 카이는 뒷 좌석에서 잠을 청했다.

“카이 혹시 어디 안 좋니?”


 평소보다 조금 느려진 것 같아서, 아… 죄송해요. 아냐, 컨디션 관리는 네가 하는거지, 안 그래? 열심히 하겠습니다, 하핫. 카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코치를 향해 멋쩍은 웃음을 지어보였다. 평소보다 딱 1초 느려졌다. 수면 위로 태현이 자신을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카이는 컨디션을 핑계로 잠시 벽을 기대 앉았다. 본래 옆 레인을 사용하지 않는 태현이 옆에 있다고 생각하니 잔뜩 긴장을 한 탓이었다.


 파란 수면 밑으로 태현이 호흡한다. 턱을 괴고 그 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잠깐 고개를 들어 한 템포 쉬는 태현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태현은 다시 수면 밑으로 사라졌다. 카이는 그 모습을 눈으로 계속 쫓아갔다. 물 밑의 태현은 아름답다. 문득 인어공주가 떠올랐다. 인어공주를 쓴 한스 안데르센은 양성애자였다. 그는 자신이 짝사랑하던 남자의 결혼 소식을 듣고 상실감에 빠져, 인어공주를 집필하였다고 한다. 그렇다면 나는 그가 쓴 인어공주일까, 남들과 다른 마음을 고백하지 못하고, 태현을 피하기 위해 수면 밑으로 몸을 숨기기에 바빴다. 고작 2m 남짓한 수영장에 뛰어들어 이리저리 휩쓸리는 인어였다. 더는 연습을 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아아, 한심하고 나약해빠진 정카이. 의욕없는 몸뚱아리를 일으켜 레인 앞으로 다가갔다. 유독 물이 깊어보였다. 새파란 빛을 띄기보단 새까만 색을 띄는 것 같아보이기도 하였다. 손을 뻗으면 저 심해같은 밑바닥까지 나를 끌어당기기라도 할 것 처럼. 

 물을 응시하고 있자니 옆 쪽 레일에서 파란 파도가 일었다. 정신이 퍼뜩 들었다. 고개를 돌려보니 태현이었다. 파란 물냄새가 훅, 다가오는 것 같았다.

 부표에 몸을 기댄 태현이 카이를 향해 몇 차례, 더 물을 튀겼다. 카이에게는 태현이 이렇게 먼저 다가오는 것이 처음이었다. 아니, 태현과 무언가 교류한 적은 있던가.


“정신 안 차리냐?”


“아…”


“혼자 앉아서 궁상떨면 뭐가 나아지나?”


“오늘 컨디션이,“


“난 항상 최선을 다 했어, 너보다 잘하려고”


 수면 위로 태현의 눈이 섬뜩히 일렁였다. 그 섬뜩한 눈빛에 홀린 듯, 카이는 다시 물 속으로 몸을 던졌다. 파동에 몸이 잠시 휩쓸렸다. 태현이 빙긋 웃더니 수면 밑으로 사라졌다. 카이는 태현을 따라 수면 밑으로 들어갔다. 물 밑은 고요했다. 중력이 지워진 몸이 물 안에서 떠올랐다. 태현은 대단한 사람이었다. 정말 왕자님이 존재한다면, 태현일 것이라고 카이는 생각했다. 하지만 인어공주의 끝은 새드엔딩이었다. 명실상부 새드엔딩 동화의 대표 작품 아니던가. 물거품으로 용해되어 흩어지는 인어공주. 아니, 나는 그래도 인어공주처럼 되지는 않을 것이다. 목소리를 빼앗기지도 않았고 땅을 딛는 아픔도 갖고 있지 않다. 태현과 함께 미래를 그리고 싶다. 예를 들면 음, 함께 메달을 따고 국가대표가 된다는 것처럼. 이번 전국대회는 카이와 태현이 국가대표로서의 자질이 있는지 평가하기 위해 출전하는 마지막 대회가 된다. 이 대회의 결과가 곧 새로운 국가대표 유망주의 탄생을 축복할 것이다. 늘 그래왔듯이, 최선을 다하는 태현과 모든 일이 잘 풀리기를 바라며 카이는 다시 터치패드에 무게를 가했다. 


 하루종일 늦던 1초가 회복되었다.


 두 달 정도 되었을까, 얼마 만에 보는 태현은 어딘가 수척해보였다. 전국대회가 당장 코 앞에 다가왔는데 수영장에 계속해서 나오지 않는 태현을 다들 이상하게 생각했다. 심지어 다시 나타난 태현이 얼굴과 몸에 멍을 잔뜩 달고 등장했으니, 남들 입방아에 오르기 딱이었다. 아무도 태현에게 괜찮냐는 한 마디를 건네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연습하는 울긋불긋한 인영을, 흘깃 쳐다만 볼 뿐이었다. 그래도 최근에 거의 카이 따라 잡은 줄 알았는데, 지금은 메달권도 힘들겠네. 어차피 카이한테 이긴 적도 없잖아? 쟤. 카이가 금메달 따겠지 이번에도. 이번에도 카이가,


 카이는 태현의 시야를 피해 도망치고 싶었다. 저 멀리, 터진 볼로 호흡을 하는 태현을 피해 물 밑으로 몸을 숨겼다. 함께 메달을 따고 웃고 싶다는 카이의 소망과 달리, 세상은 태현에게 냉혹했다. 자신과 태현을 둘러싼 목소리가 들리지 않을 때까지, 물 밑에 눈을 감고 누워있었다. 2m밖에 되지 않는 수심 밑에 몸을 숨기면 몸이 숨겨지기나 할까 싶었다. 카이에게 태현은 왕자님이고 구원자였다. 홀로 수영만 바라보고 살았던 카이의 작은 바다였다. 태현이 제게 일어낸 작은 파도만으로도 조금은 가까워졌다고 믿고 싶었다. 미움받고 싶지 않고,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만 물 밑으로 카이를 끌어당겼다. 물기 스민 목이 점차 잠기는 느낌이었다. 이대로 물 밑에서 잠들고 싶었다. 몸이 점차 무거워졌다.

  카이의 귓가에 점점 물이 차올랐다. 고요하게 물 흐르는 소리가 귀를 가득 메워갈 때였다.


“미쳤어?”


 물 밑에 있던 자신을 수면 위로 끌어 올린 것은 태현이었다. 저를 붙잡는 것 조차 힘들어 보이는 몸으로 카이를 붙잡고 숨을 토해냈다. 카이는 천천히 눈을 떴다. 어느덧 수영장에는 태현과 카이, 두 사람만이 남아있었다. 


“몇 시야?”


“태연하게 그런 소리가 나와?”


 아니, 그런게 아닌데. 이 늦은 시간까지 성치도 않은 몸으로 연습을 하고, 나를 물 밑에서 끌어 올려준 네가 걱정되서 그러는건데. 목 끝까지 태현을 먼저 걱정하는 말이 밀려 올라왔다. 눈 앞에서 보는 태현은 푸르고 붉고, 보랏빛을 띄었다. 새하얀 도화지에 꽃을 피워낸 것처럼 울긋불긋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 속에서 마주한 태현은 아름답다. 카이는 이 감정을 무어라 느껴야 하는 지를 몰랐다. 그저, 평소와는 다른 눈으로 자신을 보는 태현을 마주 바라보는 것 밖에는 할 수 없었다. 시선을 느낀 태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나 이번 대회 못 나가”


 카이의 눈이 커졌다. 잘만 준비하던 전국대회를 무슨 연유로,


“나 부산으로 이사 가거든. 이제 얼굴 보긴 힘들겠네”


“수영은… 그만두는거야?”


응, 그렇지 뭐. 태현의 눈엔 아쉬움 하나 없었다. 


“너 한번 이겨보겠다고 별 지랄을 다 했는데...”


 태현이 작게 헛웃음을 뱉아냈다. 작별 인사야. 꼭 금메달 따, 너 잘 따던거잖아. 대회 보러 와. 물기 머금은 카이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나중에 부산 한 번 오던가. 태현은 그저 어깨를 툭툭 치고는 수영장을 빠져나갔다. 울긋불긋한 몸에는 물 밑에 있을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였다. 예를 들면,


 발목 아랫 쪽에 자리 잡힌 흉터라던가.

대충 손을 흔들고 락커로 가는 태현의 모습이 카이가 기억하는 마지막 모습이었다.

 터치패드에 마지막 무게를 실었다. 수면 위로 올라온 카이는 자신의 금메달을 확신했다. 새로운 국가대표 유망주의 탄생을 알리는 시끌시끌한 장 내에서 카이는 혹여나 태현이 왔을까 주위를 둘러보았다. 눈 앞이 물로 흐려 잘 보이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카이는 고개를 들어 태현을 찾았다. 태현은 지금 부산으로 갔을까. 다시 만난다면 태현의 향은 파란 물 냄새일까, 아니면 파란 바다 냄새가 날까. 금메달의 주인공은 어딘가 슬퍼보였다. 


 태현이 떠난 뒤, 카이는 ‘꼭 금메달 따’라는 문장에 꽂혀 무조건 금메달을 따겠노라 연습을 했다. 수영코치는 카이에게 더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었느냐 감탄을 하였다. 모두의 목소리가 모여 카이를 칭송했다. 카이는 금메달을 땄다. 목표로 하던 국가대표에 한 걸음, 가까워진 셈이다. 비록 좋아하는 사람은 곁에 없지만. 언젠가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서 메달을 딴다면, 태현이에게 닿지 않을까? 

 내가 네 인생에 단 한 줄이라도 기억 될까.


“야 내가 열심히 너 픽업해준거 덕분이야~”


 대학교 휴학하고 내내 차로 카이를 데려다 준 수빈이 카이의 어머니에게 붙었다. 이모, 저 픽업 정산 제대로 해주셔야 해요? 귀찮다는 듯이 알았어 알았어! 라고 말하면서도, 그녀의 입은 미소를 숨기지 못했다. 5만원짜리 지폐를 몇 장 지갑에 구겨 넣은 수빈이 카이에게 바짝 붙었다.


“뭐 먹고 싶은 거 있냐? 대회도 끝났는데”


“딱히?”


“그럼 어디 가고 싶은 곳은?”


가고 싶은 곳. 매일 체육 센터와 학교, 집만 왔다갔다하던 카이에게 조금 생소한 단어였다. 어딘가를 가보고 싶다고 생각해본 적이 있던가, 문득 한 곳이 떠올랐다. 


“부산”


“엥? 웬 부산이야”


 그냥, 나 부산 한 번도 안 가봤어. 뭐 해운대? 아니 그냥 부산. 해운대가 부산이야 임마. 수빈이 인터넷을 열어 검색창에 부산을 두들겼다. 부산 가볼 만한 곳, 부산 맛집, 부산 1박2일…


“태종대? 뭔 마을도 있고 그러네“


“난 그냥 부산이면 된다니까…”


 부산 존나 큰데 어딜 가자고 이래, 수빈이 휴대폰 전원을 켜며 짜증을 토로했다. 하지만, 태현이 있는 곳을 알지 못하니 그저 ‘부산’이라는 말 밖에는 할 수 없었다. 만약 연락처라도 받아 두었다면 태현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있었을까. 부산 가 볼 만한 곳을 검색하던 수빈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냥 영도 가보자, 광안리도 가까워 보이고 남포동?도 가깝네. 제멋대로 결론을 내버린 수빈이 숙소까지 일사천리로 예약을 마쳤다. 이모 저희 여행 다녀와도 되죠? 입가에 웃음이 끊기지 않는 그녀가 답했다.

 어, 너네 마음대로 해. 엄마가 돈은 좀 줄테니까.


 카이의 19살이 끝나가고 있었다. 새로운 시작일지도 모르는 그 12월, 카이는 20대의 시작을 ‘태현을 다시 한 번 만나는 것’에 걸었다. '영도 가 볼 만한 곳' 이라 떠오른 핸드폰 화면 너머, 바닷가가 맞닿은 예쁜 마을의 사진이 보였다. 태현이 너는 저런 곳은 가보았을까, 너는 부산의 어디에 머무르고 있을까. 카이에게 부산의 바다는 어느새 태현의 향으로 물들었다. 만약 영도에 태현이 없어도, 태현이 머무르는 부산을 찾고 싶었다. 그게 부산 어디가 되었든, 역시 태현을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었다. 네가 금메달 꼭 따라는 말에, 나는 금메달을 따내보였노라고. 휴대폰 액정 너머의 아름다운 바다가 카이의 마음을 끌어당겼다.

 첫 눈이 내리고 있었다. 카이의 패딩에 눈이 녹아 젖어들었다. 형, 부산에도 눈 와? 아니, 부산은 눈 잘 안 온대. 막 10년에 한 번? 올 걸. 

  태현이는 그럼 첫 눈 못 보겠구나. 만약 부산에 눈이 온다면, 너와 함께 맞이하고 싶다. 네 소원이 같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눈을 털어낸 카이가 차량 뒷 좌석에 올라탔다.

 스무살이 된 지 벌써 한 달이나 되었다. 여행을 떠나기로 약속했던 부산을 수빈의 차를 타고 가게 되었다. 휴학하고 내내 돈을 열심히 끌어모으던 수빈은 중고차를 하나 장만하였다. 은색 광이나는 차 트렁크에 캐리어를 싣고 조수석에 타자 정말 부산으로 출발하는 것이 새삼 실감 났다. 부산의 태현도 아마 스무살이 되었으리라. 술은 마셔보았을지, 어떤 대학을 갔을지, 수영은 다시 하고 있을지. 카이는 태현이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했다. 태현을 만날 수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데, 카이의 마음은 벌써 태현의 옆에 가 있는 듯 했다. 1월 말임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좋았다. 아, 부산은 롱패딩 입으면 안 되는데, 수빈이 카이의 롱패딩을 툭툭 치며 말했다. 왜? 부산은 남쪽이라 더워. 서울이랑 많이 차이 나? 거긴 영상일걸? 가다가 감기 걸리는거 아냐? 감기가 왜 걸려. 환절기 알레르기 같은거 걸릴 수도 있잖아. 수빈과 카이의 시덥잖은 대화가 시작되었다. 두 시간이 지났을까, 결국 카이와의 대화에 질린 수빈이 네비게이션 화면을 툭툭 치며 음악이나 틀라 지시했다. 수빈의 플레이리스트는 지독하게도 신나는 음악이 하나 없었다. 셔플 재생으로 아무거나 틀었더니 허밍하는 듯한 음악이 재생되었다.


“무슨 노래 제목이 임종이야?”


“야 이게 얼마나 좋은 노래인데”


 드라이브 하기엔 안 어울리는 노래 같은데, 카이는 고개를 갸웃하며 노래 가사에 집중했다. 오래 깨어있지도 말고 누우러 가지도 말라는 여자의 목소리가 반복되었다. 커피를 내려줄테니, 그것이 잠을 깨우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여자가 말해주었다. 남자는 그런 여자에게 죽고 싶지 않다 말해주고 있다. 그는 그녀와의 미래를 퍽이나 꿈 꾼 모양이다. 침울한 가사 속에 수빈은 여자의 목소리를 따라 허밍을 했다. 어느새 창 밖으로 바다가 보였다. 하얀 햇빛이 바다 위로 부서져 눈이 부셨다. 체육 센터에서 보던 파란 락스향의 물과는 차원이 달랐다. 카이는 바다를 처음 보는 것은 아니지만 부산은 처음이었다. 항구에는 크고 작은 배들이 줄 지어 있었다. 아, 차 안 막혀서 금방 왔네. 형이 세자릿수로 밟아대는데 늦는게 이상하지. 날씨가 좋으니까 바다가 아주 그냥 절경이다, 절경이야. 수빈은 차창 밖의 바다를 바라보며 감탄하였다. 휴게소도 들르지 않고 밟은 목적지는 정말 날씨가 맑아 아름다웠다. 형은 부산 와봤어? 와봤지, 친구들이랑. 어디? 해운대? 아니 광안리. 여름에 친구들과 부산을 놀러왔었다던 수빈은 부산에서 지금 연인을 만났다고 한다. 어쩐지, 카이는 수빈의 핸드폰 너머로 어딘가 어색한 사투리를 기억해냈다. 차량은 어느덧 부산대교로 진입했다. 이 다리를 건너면 영도에 도착한다. 창 밖만 뚫어져라 구경하는 카이에게 수빈이 물었다. 


“호텔에 짐을 먼저 풀까?”


“아니, 나 마을 구경 먼저 하고 싶어”


“그러자, 어차피 차에 짐 다 있는데”


 부산대교를 빠져나온 차는 한 바퀴 돌아 바다가 보이는 도로를 달렸다. 어느덧 플레이리스트는 여러 노래들을 지나 다시 맨 처음의 음악을 재생하고 있었다. 나 이 노래가 제일 안 신나는거 같아. 왜? 난 좋은데. 형은 노래 취향이 좀 별로인거 같아. 니가 틀고 싶은거 틀면 이상한 노래 틀거잖아. 뭐가 이상한데? 시덥잖은 대화의 2차전 시작이었다. 가장 처음 구경하기로 했던 마을이 가까워졌다. 주차장에 차를 주차한 두 성인 남성이 길가에 나란히 섰다. 마을의 앞 쪽엔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날씨도 맑아 실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카이가 바다를 구경하는 동안, 수빈은 핸드폰을 들어 빠르게 맛집과 카페를 검색했다. 장정 4시간 가략을 쉬지않고 운전만 하였으니, 배고플 법도 했다. 그냥 저 쪽 프랜차이즈 카페 들어가자. 야 너는 무슨 이런 데까지 와서 프랜차이즈 타령이야? 열정적으로 카페를 검색하는 수빈에 카이가 입을 다물었다. 드디어 가고싶은 카페를 찾은 수빈이 차를 열어 시동을 껐다. 괜시리 마지막에 들은 가사가 카이의 머릿속을 스쳤다. 천국에 갈 수 있기를, 그래서 너를 한 번 더 볼 수 있기를. 수빈이 재차 노래 듣다보니까 좋지? 라고 물었다. 

 그래, 인정 할 수 밖에 없었다. 휴대폰을 들고 카페로 가는 길을 따라가던 수빈만 보고 따라간 탓일까, 길을 건너던 카이의 몸이 순간 공중으로 떠올랐다. 몸에서 중력이 흐려졌다. 수빈이 무어라 외치는 것 같았지만 잘 들리지 않았다. 흐르는 듯한 이명만이 머릿 속을 가득 채웠다. 

 붉은 물 냄새가 났다. 비릿한 향이 은은하게 코를 타고 올라왔다. 눈 앞에는 티 없이 맑고 파란 하늘이 펼쳐진 데에 비해 코 끝에는 붉은 물 냄새가 진동을 했다. 머리가 너무 아팠다. 부산은 따뜻하다고 했는데 왜일까, 롱패딩을 입은 나는 얼어 죽을 정도로 시렸다. 태현아, 나는 네 인생에 단 한 줄이라도 기억 되었을까. 너와 친해지고 싶어서 눈 마주치고 웃어 보이던 노력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져갔다. 부산에 도착하면 한 순간 스쳐 지나가더라도 너를 만나고 싶었다. 사람이 이렇게 많은데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눈 앞이 붉어지는 것 같아 눈을 감았다. 주마등이라고 하던가, 네가 나를 수심 밑에서 끌어 올리던 날이 눈 앞에 그려졌다. 너를 만난 마지막 날이기도 했다. 역시, 다시 한번 너를 만나고 싶다. 단 한번도 네가 환하게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서, 네가 웃는 것을 보고싶다. 

몸이 다시 뜨는 느낌이 들었다. 만약, 천국이 있다면 천국에 갈 수 있기를, 그래서 너를 한 번 더 볼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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