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치탈출 넘버원

가제인데정말제목생각안난다누가좋은거추천좀요

그날 새벽. 두터운 구름에 별과 달도 잠이 든 새벽. 늦은 시간까지 깨어있던 마르코는 부엌에서 느껴지는 두 기척에 의아함을 느꼈다. 아마 한 놈은 삿치일거고, 다른 놈은 누군겨? 단순한 궁금증은 기척이 겹쳐짐과 동시에 하나가 사그라들자 경악과 다급함으로 바뀌었다.

서둘러 달려가자 시야 끝에 티치의 뒷모습이 잡혔다. 범인인지, 그냥 우연히 지나친 것인지. 본능은 당장 가서 잡으라고 외쳤지만, 당장이라도 사그라들 것 같은 기척을 이성이 계속 인지시켰다.

부엌에는 예상대로 삿치가 있었다. 등을 꿰뚫려 피를 잔뜩 쏟아내는 삿치의 손끝이 푸르랬다. 예상보다 상처가 커서,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이 상태면 당장 수술을 해도 장담할 수 없었다. 출혈량이 많아 제대로 수술 과정을 버틸 수 없을 것이 확실했다. 왜 내 능력은 이럴 때는 쓸모가 없는지! 그 잘난 재생능력은 어째서, 고작해야 제 몸 하나만 회복시키고 그치고 마는지!

이를 으득 갈며 마르코가 지혈이라도 하고자 삿치의 등과 옆구리를 눌렀지만, 의미 없는 손짓이었다. 푸른 불을 피워올렸다. 내 손을 타고 가서 재생하기라도 바라며. 제발,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어야 목숨줄을 잡을 수 있다. 간절함과 염원을 담아 불을 피워올렸다.

그 모습이 갸륵했는지, 마르코는 이 순간에 열매의 능력을 '각성'했다. 푸른 불은 새로운 능력을 얻었다. 하지만 지금은 소용이 없었다. 각성한 능력은 상대의 체력을 매개로 회복력을 높이는 것인데, 삿치는 그럴 체력이 남지 않았다. 각성을 해도 왜 하필...! 이를 악다물던 마르코는 문득 생각했다.

그럼 내 체력으로 회복시킬 수는 없는 것인가.

고민할 시간이 없었다. 마르코는 새로이 불을 피워올렸다. 삿치의 상처 위에 손을 대고 불을 밀어 넣었다. 조금씩 상처가 아물고 시체같이 창백했던 피부에 혈색이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마르코는 아낌없이 청염을 퍼부었다. 퍼붓는 만큼 제 체력이 갑절로 빠져나갔다. 아무리 기초체력이 좋다 하더라도, 쉴 새 없이 쭉쭉 빠져나가는 체력에 식은땀이 턱을 타고 뚝뚝 떨어졌다. 한참을 부여잡고 있자니 눈앞도 가물거리기 시작했다. 슬슬 제 체력도 한계였다. 시퍼랬던 삿치의 입술에 혈색이 돌아오고 상처가 아무는 것이 보였다. 아직, 조금만 더, 확실하게, 조금 더, 마르코는 계속해서 자신의 체력을 태워 삿치를 회복시켰고, 불침번을 선 형제가 피 냄새를 맡고 식당으로 들어왔을 때는 거의 기절 상태였다.

쓰러진 삿치와 그 옆에 피범벅이 된 마르코, 상처를 헤집는 손, 과하게 타오르는 푸른 불길.

불침번이었던 대원, 제이크는 믿을 수 없었다. 마르코 대장이 삿치 대장을 공격하다니, 심지어 이미 쓰러진 사람인데 아직도! 제가 제압하지 못할 것을 알지만 그저 시간이라도 벌려고 마르코의 뒤를 쳤고, 마르코는 그대로 쓰러졌다. 너무 쉽게 제압된 것에 얼떨떨하게 보았지만 아마 삿치대장이 반격하느라 힘이 다 빠졌었나, 나는 운이 좋았나보다, 그리 생각했다.

제이크는 곧바로 비스타에게 가 사실을 알렸고, 비스타는 피투성이가 된 삿치와 피범벅이 된 마르코를 보고 침음했다. 제이크는 마르코 대장이 삿치 대장을 공격했고, 삿치 대장은 반격했으나 치명상을 입었으며, 마르코 대장 역시 반격당해 빈사 상태여서 제가 제압할 수 있었노라 얘기했다. 정황만 가지고 추측한 것이었지만 이것 외에 설명될 상황이 아니었기에, 제이크는 이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비스타는 우선 의료부대를 깨워 삿치를 의무실로 데리고 가고, 마르코는 다친 곳이 없는 것을 확인해 해루석을 채워 지하에 감금하였다. 소란스러움에 일어난 흰 수염이게 보고하고 내일 다시 상황을 파악하기로 하며 돌아왔다. 비스타는 한숨을 쉬었다. 길디긴 새벽이 될 것만 같았다.

***

다음 날, 대장들은 모여 회의를 했다. 상황을 봤다는 제이크를 불러 다시 한번 정황을 파악하는데, 비스타는 미간을 슬쩍 좁혔다. 어제 나한테 말했을 때보다 더, 장황한데? 어제는 너무 놀라 제대로 생각이 안 났다가 곱씹으니 선명해진 건가. 비스타는 그렇게 넘겼다.

하루타는, 평소라면 의심부터 하고 앞뒤가 다른 말에 신뢰를 주지 않고 제대로 정황이 나올 때까지 윽박지르다 어르고 달래다 협박하면서 그렇게 진실된 조각만 모았을 테지만 이번엔 그럴 수 없었다. 1번대 대장의, 암묵적 부선장의, 마르코의 배신은 몹시 충격적이었기에 저리 흥분하는 것도 이해가 갔기 때문에. 그 충격을 먼저 목격한 형제에게 따질 수 없었다. 정확히는, 그럴 수 없었다. 마르코의 배신을 목전에서 주시하는 것은 하루타에게도 큰 고통이었다.

마르코가 삿치를 공격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공격한 것이 확실한데다가 목격자도 있고, 피해를 받은 삿치는 혼수상태였다. 다행히 삿치가 공격을 피했었던 건지 상처가 깊진 않았지만, 깨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아직 삿치가 일어나지 않았으니 깨어난 뒤에 처분을 정하자는 형제와 모든 정황이 그를 가리킨다고 지금 정하자는 형제의 목소리가 오갔다. 그렇게 의견이 대립하였다.

"조용."

흰수염이 입을 열자 순식간에 장내가 조용해졌다. 아들들만큼, 아마 그보다 더 혼란스럽고 어지러웠지만 흰수염은 아버지면서 선장이었다. 이 사태를 정리해야만 하는 위치에 있는 자였다.

"마르코와 대화는 해보았느냐."

"아직. 삿치의 반격이 유효했는지, 마르코도 기절해있소."

비스타가 딱딱한 표정으로 말하자 흰수염이 침음했다. 제 첫 번째 아들이라도, 가장 아낀다고 하여도 삿치 역시 제 아들이고 아끼는 자식이다. 흰수염은 처분을 결정했다. 해루석을 채우고 무인도에 하선시키는 즉시 제명되는 것으로. 항해사들은 기존에 한 번도 가지 않았던 새로운 경로와 무인도를 찾았다. 믿고 싶지 않고 믿기지 않아 느적지근한 움직임이었지만, 며칠이 걸리는 그 과정에서 마르코도 삿치도 깨어나지 않았다. 결국 새로운 항로에서 누구의 영토도 아닌 무인도가 발견되었다. 

모비딕은 선장의 명에 따라 머리를 돌렸다.

무인도에 도착한 흰수염해적단은 침울한 분위기를 고스란히 드러냈다. 모두가 눈치를 보며 입을 다물었다. 믿고 싶지 않다는 충격을 노골적으로 드러냈지만, 모비딕은 천천히 섬의 근처에 정박했다.

며칠 내내 기절해있던 마르코는 우악스러운 손길에 억지로 깨어났다. 정신을 차리지 못해 초점이 잡히지 않는 눈을 찌푸리며 불편하게 잡힌 어깨를 뒤척이려니 갑판 한 가운데 무릎이 꿇렸다.

"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아느냐."

흰수염은 부러 단호한 목소리를 냈다. 제발 뭐라도 말하길 바라면서. 무슨 일이었는지 조금의 꼬투리라도 잡히면 그게 해결될 때까지 다시 가두어서라도 억지로라도 데리고 있고자. 흰수염만의 염원은 아니었던지라 모비딕의 모두가 마르코만 바라보았지만, 마르코는 답이 없었다. 눈이 부신 건지 힘이 부친건지 가늘게 뜬 눈을 느리게 깜빡였지만 목소리는 내지 않았다. 죠즈와 블렌하임이 어깨를 잡고 눌러 꿇려있는 상태가 불편한지 바르작거리기만 했다.

"말하라."

흰수염이 명했지만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흐린 눈으로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 상황 파악도 하지 못 한 것으로 보였다. 어깨를 부여잡은 억세고 커다란 두 명을 올려보고 주변을 빙 두른 많은 사람들을 둘러보다 눈을 휘둥그레 뜨는 것이 천진한 아이마냥도 보였다.

그 모습에 흰수염은 깊게 한숨을 뱉었다. 말하지 않으려고 하는 행위가 너무 명백했다. 이리되면 아들들의 뜻을 반하고 억지로라도 잡고 있을 수가 없다. 허투루 행동할 아들이 아님을 알고 아직도 믿고 있건만, 말을 하지 않으면 감싸줄 수가 없다.

빙 둘러싼 흰수염 해적단 사이 웅성임에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왜 말을 안 하지, 진짜 뭔가 있던 걸까, 그치만 직전까지도 삿치 대장과 잘 지냈는데, 그것마저 연기였던 건가, 불신과 추측이 모두의 속에서 넘실대기 시작했다.

이조가 위협적으로 사격을 했다. 형제들의 생각을 끊고 목소리를 멈추게 하면서 동시에 마르코에게 어서 입을 열라는 재촉이었다. 마르코는 갑자기 들린 큰 소리에 움찔거렸다가 꿇은 허벅지 옆에 패인 자국을 보려고 고개를 돌렸다. 그 행동이 탈출이라 판단한 조즈가 막으려고 강하게 억눌렀다. 윽, 위에서 찍어 내리는 힘에 방어하지 못하고 엎어진 마르코는 압박되는 가슴에 끙끙댔다.

에이스는 팔짱을 끼고 있었지만, 손가락이 팔을 너무 파고들어 끝이 하얗게 변색되어 있었다. 마르코를 보지 못하고 시선은 저 뒤 무인도만 태울 듯이 노려보았다.

"마지막 기회다. 무슨 짓을 했지?"

어쩐지 간절하게도 들리는 흰수염의 말에도 불편해 바르작거리던 마르코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무슨 짓?"

영문을 모르겠다는 어벙한 목소리에 흰수염은 침음했다. 조각배를 하나 꺼내라 명하는 비스타의 목소리에 흰수염은 눈을 감으며 몸을 돌렸다. 묶인 팔이 불편해 부스럭거리는 마르코를 킹듀와 블렌하임이 질질 끌고 조각배에 태웠다.

마르코를 태운 조각배에다 노를 저을 때마다 비명지르듯이 끽끽대는 소리를 내며 삐걱댔다. 무인도에 가는 동안 또다시 형제를 공격할 때를 대비해 나무르가 노를 잡았다. 공격하는 즉시 제압은 못하더라도 잠수해 몸을 피하고자 잔뜩 긴장한 나무르에 비해 마르코는 그저 졸린 듯이 눈을 느리게 꿈뻑일 뿐이었다.

"마르코, 왜 그런 거야?"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다 나무르가 조심히 물었다. 지금이라도. 단둘이라면 무언가 말해주지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품고 물었지만, 마르코는 한박자 늦게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끝까지 모른체하는 것에 나무르가 비통하게 입을 다물었다.

무인도의 해안에 도착하자마자, 나무르는 대충 배를 밀어 넣고 무언가를 던졌다. 모두의 암묵적 동의 하에 챙겼던 해루석 수갑의 열쇠였다. 마르코 쪽에는 시선도 주지 않고 몸을 돌린 나무르는 곧바로 잠수했다. 등 뒤를 당장이라도 돌아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빠르게 헤엄쳐 모비딕으로 돌아갔다.

조각배 안에 휑뎅그레 앉아있던 마르코는 팔목을 채운 수갑이 불편해 손을 이리저리 꺾어봤지만, 손목만 빨개질 뿐 빠지지 않았다. 인상을 쓰고 낑낑대며 손목을 돌리다가 문득 들리는 철썩, 파도 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거대한 흰고래의 뒤꽁무니가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지는 해를 향해 다가가는 흰고래가 불타는 주홍빛으로 물들고, 고래의 움직임에 바다가 잔잔한 물결을 내며 노을빛을 부쉈다. 그 모습을 멍하니 보던 마르코는 손을 들었다. 한 손만 들려고 했는데 양손이 들려 어정쩡하게 양손을 들고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안녕!"

어린아이마냥 순진무구한 목소리가 나왔다. 누군가가 보았다면 분명 이상함을 느꼈을 만치 천진난만하게 마르코는 흰 고래가 사라질 때까지 손을 붕붕 흔들었다.

이상을 뒤로 하고 모비딕은 그저 앞만 바라보며 지는 해를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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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창작
페어
#Non-CP

댓글 1


  • 상상하는 백조

    ㅠㅠ삿치야 일어나서 에이스 데려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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