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진실

라오루 AU - 호즈란

엔란 by 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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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 끝이 상대를 꿰뚫으면, 귀를 찢는 비명소리가 들려온다. 이엔은 무심코 손으로 귀를 막을 뻔했다. 그러지 않은 것은 두 손에 아직 검이 쥐어져 있기 때문이었다. 상대는 한 차례 빛을 발하더니, 곧 한 장의 페이지로 흩어지기 시작한다. 그의 이야기는 그 자리에 있는 사서들에게 낭독된다. 흔한 이야기. 고칠 수 없는 불치병으로 병원에 입원한 동생과, 그런 동생을 아끼는 형. 그는 불치병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적힌 의료서를 찾아 도서관으로 온다. 그러나 의료서를 가져가는 대신 그 자신이 책장을 채우게 되리라.

란이 떨어지는 책을 한 손으로 받아냈다. 그의 표정에는 일 하나가 끝난 때의 개운함이 서려 있다. 그에 비해 팔을 축 늘어트린 이엔은 우울해보였다.

"이엔. 기분이 안 좋아?"

적당한 자리에 책을 꽂아넣으며 란이 다정하게 물었다. 이엔은 잠시 대답이 없었다. 걸어오는 걸음에는 힘이 없다. 란은 그에게로 다가간다. 손으로 뺨을 쓸어주면 그의 눈가가 붉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또 슬퍼했구나... 속삭이는 말에 이엔은 다시 고개를 떨군다. 도서관의 사서들은 초대장을 받아 이곳에 온 손님들을 접대해야 한다. 그것은 곧 누군가의 앞으로의 생을 빼앗는 것을 의미했다. 상냥한 이엔은 그럴 때마다 누구보다도 슬퍼하곤 했다.

"란 씨는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란, 너는 훌륭한 연구자지만 평생 내가 하는 연구를 이해할 수는 없을거야.

문득 오래된 기억이 떠올랐다. 이 단언을 들었던 날, 란은 뭐라고 대꾸했던가. 아마 그런가... 같이 밍밍한 대답을 내어놓고는 하던 연구를 이어갔을 것이다. 란은 에너지를 추출하고 가공하는 일련의 기술들을 연구하는 데 있어서는 핵심적인 인물이었다. 현상을 해석하고, 예측하고, 계산해서 결과를 만들어나가는 데 있어서 그는 가히 천부적이었다. 그에게 주어진 연구들이란 대개 그런 것들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의 연구는 달랐다. 결과가 나오는 일도 없었고, 종종 데이터를 계산해주기는 해도 핵심적인 내용이 란에게 보여지는 일은 없었다. 인간의 미덕을, 란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선배님! 하고 부르며 웃는 후배가 들어온 건 연구가 상당히 많이 진척된 중이었다. 서로 연구하는 프로젝트는 달랐지만, 저를 볼 때마다 반짝이는 금색 눈동자를 좋아했다. 그 다음으로는 저를 부르는 활기찬 목소리가 좋았고, 그 다음으로는 제 팔을 붙드는 따뜻한 손이 좋았다. 누군가의 슬픔을 나눠갖는 상냥함이 좋았다. 기쁠 때면 어김없이 활짝 웃음짓는 모습이 좋았다. 그때쯤에 란은 인간의 미덕이라는 것을 여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누군가를 향한 열렬한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연구는 실패했다. 연구소는 무너졌고, 피와 비명으로 아수라장이 되어가는 것은 잠깐이었다. 란은 평소처럼 해석했고, 계산했고, 예측했지만 제 품 속의 사람이 눈을 뜨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 외의 것을 낼 수 없었다. 그 때 그는 처음으로 눈물을 흘렸다.

"아무렇지도 않아..."

다시 눈을 떴을 때는 네모난 상자 속이었다. 죽어가는 직원들을 바라보며 환상체를 관리했다. 이엔은 이번에도 직원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였다. 이제는 금색 눈동자도, 따뜻한 손도 보이지 않았지만 란은 여전히 그가 좋았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영문모를 도서관을 관리하는 사서였다. 인간의 몸을 되찾았지만, 매여있는 것은 다르지 않았다. 이 일련의 변화들을 보통이라면 잊어버려야 했으나, 그는 단 하나도 잊지 않는다.

"나는 내게 소중한 것을 잃지 않기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거든..."

그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연구하던 시절의 그로부터 지금까지. 아무리 모습을 바꾸어도 그의 기억은 보존되어 이어진다.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는 일은 없다. 그저 흘러가고, 연구해선 안 될 것에도 개의치 않으며, 더 나은 자가 될 수 있을 리 없고, 이대로 끝내도 좋을 삶과, 그저 혼자뿐인 존재와, 지키지 못한 이와, 누구에게도 전하지 못한 신뢰를 손에 쥔 채. 공포에서 눈을 돌려 그저 과거만을 바라보고 있는. 타고난 연구자였던 그는 이 현상을 이렇게 이해했다. 단 한 사람을 향한 집착이고, 동시에 사랑이라고.

그는 두 팔로 이엔을 가만히 안아주었다. 그 사랑만은 완벽한 진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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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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