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친구에게,
보낸 사람: Extra B, 받는 사람: Cursor
좋은 저녁이에요, 커서님! 지금은 대한민국을 기준으로 오후 10시 30분이고 국제 표준 시각으로는 오후 1시 30분이네요. 보내주신 메일을 읽고서 이전에 보냈던 메일을 다시 보니 정말 제가 들뜬 게 느껴지는 메일이라서 창피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네요. 제 편지가 위안이 되었다면 참 다행이에요. 사실 어떤 부분이 위안이 된 진 저 본인은 정말 잘 모르겠지만요. 조금 더 걱정하고 있다던가, 잘 돌아오면 좋겠다는 문장들을 더 적었었으면 좋았겠지란 생각이 가장 먼저 들더라고요. 그럼 조금 더 이겨내기 좋았을까란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도 이렇게 회신을 받고 많이 안심했어요. 한 차례의 여정이 안전히 끝난 걸 축하해요. 그리고 메일을 받아서 참 기쁘고요.
그리고 정말 솔직히 말해주셔서 감사해요! 외부 갑판이 날아갔다는 문장에 조금 심장이 덜컹했지만, 전 괜찮습니다! 꽤 여러모로 위험한 여정이었다는 것만큼은 한 문장으로 알 것 같아요. 만일 제가 수리를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참 좋겠다란 생각이 드는 게 슬프네요. 뭔가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을 했어요. 커서님이 느끼신 그 '소모'된다는 감각은 아마 저라는 인간이 느끼는 '죽어'간다는 것과 비슷한 게 아닐까란 생각을 했어요. 그러다가 문득 이전에 검색해서 봤었던 것 중에 '죽음의 다이빙'이라는 게 있었다는 걸 떠올렸어요. 그랜드 피날레라고 불리는 거요. 연료가 다 되고 노후되면 탐사선이 죽음을 택한다는 거라는데 맞을지 모르겠네요. 저는 아직 인간으로 치면 80년 이상의 생명이 남은지라 죽는다는 감각은 잘 모르겠지만요. 아마, 당신에게 있어서는 꽤 무서운 일이였을거라고 생각해요. (이 부분의 호칭이 다른 것에 대해 너무 놀라지 말아주세요. 그냥.. 이렇게 써야할 것 같았어요.) 그게.. 기껍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건 당연하다고, 전 생각하고요. 지금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말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해봤지만 마땅히 멋있는 말이 없더라고요. 그냥.. 정말 수고 했어요. 고생 많았고요. 당신에게 있어 그 일이 너무 힘들지 않길 바라요. 필요하다면, 문장으로나마 할 수 있는 것들을 할 터이니 언제든 편히 이야기해주세요. 회신할 때에 기다릴게요. 물론.. 이게 너무 오지랖 같았다면 미안해요.
다시 돌아와, 어째 제가 훨씬 어른처럼 느껴진다는 말이 어색하고 웃기기도 하네요. 전 역으로 커서님이 저보다 훨씬 어른처럼 느껴졌었는데 말이죠. 아마 긴 기간의 여정을 했다는 게 저에겐 꽤 크게 와 닿았나봐요. 다른 은하로의 여정을 떠나게 된다면 그 또한 응원할게요. 그 항로에 새로운 별의 탄생이 오지 않길을 저 또한 바라고요. 분명 괜찮으리라, 생각해요.
보내주신 메일을 받고 오늘 점심 시간에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사진을 검색해 봤어요. 정말 붉고 붉은 점들 사이에 그 푸른 색의 지구만이 유독 선명히 보이더라고요. 제가 살고 있는 지금 이 곳이 바로 지구인데, 저 멀리서는 그리 보이는구나 싶어서 감탄했어요. 경외롭고요. 정말 멀고도, 멀지만 선명히 그 곳이 보인다는 게 왜 이리 묘하게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어요. 커서님이 어떠한 기분인지 상상을 해보고, 조금은 이해가 가는 기분이 들었어요.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를 이해한다는 말이다.'라는 말이 있대요. 전에 보내주셨던 메일의 '아는 지식이 늘어날수록 세계의 해상도가 높아진다.'라는 말이 떠오르는 말이지만.. 이전의 보냈던 메일들을 다시 보고, 찍었던 사진들을 찬찬히 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전 정말 당신을 이해하고 싶었나봐요. 꽤나, 많이요. 그리고 그 과정이 꽤 즐거웠던 것 같아요. 물론 지금도 마찬가지지만요. 커서님이 바라보는 세계를 이해하고 싶어서 노력하고 있었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전 그게.. 꽤 마음에 들어요. 아마 지금의 저는 커서님의 세계에 'Hello,World!'하고 인사를 하고 있는 거겠죠. (아마요?) 그렇게 생각하니, 그냥.. 조금 더 노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주석으로 달아주신 창백한 푸른 점이라는 책을 주말에 좀 빌려보려고요. 다음 편..지에는? 제가 만일 그 책을 다 읽는다면? 그 이야기를 조금 담아볼게요. 그게 1월 14일 전이길 간곡히 빌어요. 그 때에 보내는 편지에는 알려주셨던 별들을 본 이야기들을 남기고 싶거든요. 만약 제가 야근이나.. 과로로.. 그걸 보지 못 한다면, 미리 사과할게요. (제 회사를 탓해주세요! 그건 제 탓이 아니.. 니까요!) 그래도 반드시 꼭 보고 말거에요. 기대감을 키워드리고 싶으니까요.
다녀왔던 고향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해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별은 못 봤습니다! 눈이 왔거든요! 정말 크리스마스 때에 눈이 온 건 참 기뻤는데, 이번만큼 통탄스러운 때가 없었어요.. 사진을 찍기 위해 들고 간 카메라는 제 고향집과, 부모님 사진, 눈밭과 강아지의 사진으로 가득하게 됐답니다.. 아쉽다는 생각이 가득 들었지만, 그래도 나름 제 어렸을 적 사진들이나 뛰놀았던 곳들을 찍어 왔으니 그걸 대신 위안 삼고 있어요.
고향은 여전했어요. 따스하고, 행복했고요. 할머니도 할아버지도 그대로시고, 주변 이웃들도 몇 분은 돌아가셨지만 그대로셨어요. 예전 친구들 이야기도 하고, 그 땐 그랬었다며 부모님이랑 이야기도 하고 잔소리도 듣고요. 언제 장가가냐는 이야기도 하시더라고요. 머쓱하게 웃다가 나왔어요. 그러다가 문득 아버지가 술을 한 잔 하자고 해서 한 잔 했어요. 술을 들이키면서 아버지가 말씀하시더라고요. 많이 컸다고. 이상하게 울컥하더라고요. 그러면서 하시는 말이 요즘 좋은 일이라도 있냐고 물어보시는거에요. 그래보이냐고 물으니까, 얼굴이 폈다고 하시더라고요. 무어라 말을 하기 어려워서 고민하다가 좋은 사람을 하나 만났다고 이야기를 했어요. (미안해요! 이 표현을 이해해주세요! 사실대로 말했다면 분명 큰 일이 났을꺼에요..) 그랬더니 그러냐며 술을 드시더니 네 사주*가 나중에 필 사주였다며 등을 쳐주시고 들어가 자라고 하시더라고요. 다음 날에 어머니가 혹시 만나는 사람 있냐며, 잘 되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설명하기 참 곤란했지만, 여러모로 부모님의 눈썰미는 피할 수 없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이 문단들의 많은 은유적인 내용을 설명하기 조금 곤란하네요. 죄송해요. 제가 커서님을 좋은 친구로 소개했다는 사실만 기억해주세요. 주석으로 설명하면 정말 많이 길어져서 이건.. 이건 궁금하시면 열심히 설명해볼게요..)
별개로 어머니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카메라를 들고 왔냐고 물어보셔서 별을 찍고 싶어서 들고 왔다고 대답하니 오서산이 별 보기 좋다고 아버지한테 이 참에 등산이나 가자며 차를 태워주시더라고요 (...) 눈이 오는데 무슨 등산이냐고 대낮에 별은 어찌보며 안그래도 날도 흐리다고 이것저것 항변하니 아들내미랑 어디 놀라가자는데 말이 많다며 한참 잔소리를 하시길래 그냥 조용히 있었어요. 덕턱에 별밭이 아니라 눈밭을 실컷 밟고 왔죠. 물론 싫었다는 의미는 아니에요. 정말 좋았죠. 좋았어요. 단지 제 계획과 다르게 많은 것들이 틀어졌다는 것을 제외하면요.. 그래도 정말 맛있는 것도 많이 해주시고, 덕담 같은 잔소리도 듣고 행복했어요. .. 아마요.
돌아오고 나니 이전처럼 많이 외롭진 않았어요. 매번 자취방에, 회사에, 7호선 가산디지털단지 지하철* 3번 출구를 볼 때마다 어딘가 허하고, 종종 허무했거든요. 이번엔 그러진 않았어요. 카메라에 찍은 사진들을 보니, 덜 외롭더라고요. 제 여행길들이 담긴 추억들이 남아 있었고요. 그냥.. 여전히 따뜻하고 좋았어요.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도, 추억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도 참 좋더라고요. 그리고 이 메일에 이 문단을 쓰고, 다시금 메일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전 꽤, 이 메일로 인해 많은 게 바뀌어 가고 있단거요. 신기하죠. 고작 메일 하난데도 말이죠. 하나의 계기로 사람은 참 쉽게 변한다는 건 이상하면서도 즐거운 기분인 것 같아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지금은 퇴근을 하고 느릿하게 집에서 메일을 쓰고 있어요. 아마 커서님이 있었던 연구실과 제가 다니는 회사는 큰 차이는 없을지도 모르겠지만요. 컴퓨터가 가득 하다는 점에서요? 상상하신 바처럼 정말 비슷한 일을 매일매일 하고 있었는데 연차 덕에 잠깐의 일탈을 즐겼죠. 긴 연휴 뒤에 돌아온 회사는 이전보다 더더욱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주신 메일에 조금 용기를 내어 이야기를 하자면, 저희 회사 사람들이 그리 친절하진 않거든요. 다들 바쁘고, 피곤하니 자주 말싸움을 하고 그 사이에서 종종 가만히 있었는데도 한 소리 듣는 일도 참 많아요. 그런 한 소리들이 좋은 말들도 아니고요. 일종의.. 구박이죠. 화를 낼 수는 없고, 매번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와서 일을 해요. 9시간 앉아 있으면서 그런 피곤함도 견디려면 아무래도 뭔가 필요하긴 하더라고요. 그래도 이 RQ사의 펜팔 시스템 덕에 그런 피로함을 많이 덜 수 있었어요. (커서님이 제 심정을 이해해주신다고 하니 정말 기쁘네요. 정말 공감받는 기분이었어요.)
이전의 메일에도 적었다시피 답장은 늦어도 되니, 부디 그 별들과 항성들 사이의 여정이 안전하기를 기원해요. 저는 그 1월 1일에 부모님과 새해 인사를 하며 마음 속으로 새해 인사를 전한 걸로도 충분하니까요. 새해에 인사를 전하고 싶은 이가 되어준 것만으로도 고마워요. 이번 새해는 정말 덕턱에 외롭지 않았어요. 당신이 흘려보낸 시간은 결코 흘려보내지지 않았고 저에게 뜻깊은 하루가 되었고요.
창피하지만 사실 이번 년도의 목표도, 어떻게 보낼지도 생각치 못 했어요. 저도 사실 년도의 숫자가 1만큼 늘어가는 감각이었어서요. 이번 년도에 회사에 잘 다녀서 해고 당하지 않기라던가, 연봉협상이 잘 됐으면 좋겠다같은 하루하루 살기 급급한 생각만 하고 있었어요. 그렇지만 이번 메일을 보고.. 이번 년도 목표는 정해봤어요. 허락해주셨으니, 저는 당신의 이야기를 어떻게 전할 지 고민할래요. 그렇게 이어지고 이어져서 시선이 닿는 기적이 있길 바라니까요. 그 소박한 희망 하나정도는 친구로서 이루어줄 수 있는 거니까요. 우리 꿈이 이루어지길 바라요.
그리고 조금 더 올해를 기대하고 싶어서 버킷리스트를 좀 적어볼까해요. 이걸 안 쓴지는 꽤 됐네요. 하고 싶은 것들을 좀 찾아보는 여정도 떠나보긴 해야할 것 같아요. 이 여정을 포함하여 저의 많은 여정길을 읽어주고 이야기해줘서 고마워요.
다음 편지는 일찍 보내도 좋지만, 다치지 않고 보낼 수 있길 기도할게요!! 제발!! (저 붉은색으로 강조했어요!! 밑줄도!!)
다음 편지에서 봐요. 회신을 기다릴게요.
무드등을 키고 별만큼 반짝이는 게 무엇이었을지 상상하고 웃은
당신의 독자이자 당신의 친구가,
추신. 서간문-내-자기이야기-포화농도-에 대해 생각해봤는데, 전 아마 그 포화농도 탓에 조만간 제 이불을 걷어찰 것 같아요. 저번 메일이 꽤 부끄럽네요. 지금 보니까요.
* 사주는 사주팔자, 사주명리의 줄임말이에요. 굳이 치자면.. 서양의 운명론과 비슷한건데요.. 태어난 해, 월, 일, 시간이 그 사람의 인생을 결정짓는다는 이야기에요. (저도 정확히는 모르지만요.) 저는 나이 들고 나서 승승장구한다며 어머니가 기대하고 계셨어요. 저는.. 그런 걸 잘 믿진 않지만요.
* 지하철에 대해 한 번 설명을 해드렸는데, 지하철 자체에 대해 설명을 안 드렸더라고요?! 지하철은 땅 아래에서 달리는 기차를 의미해요. 덕턱에 장애물 없이 빠르게 먼 거리를 이동할 수 있죠. 대한민국 중 서울에는 그러한 지하철이 정말 많이 발달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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