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매헤의지랄일기

어사 시절 날조

“ 그래서 찾던 자는 찾았나? ”

“ 예. 어제 이적행위, 명령불복종으로 처형장으로 끌려가던 걸 제가 중간에서 인계했습니다. ”

전부 장군님 덕입니다. 매드헤스턴은 눈까지 접어가며 웃다가 반듯하게 허리를 곧추 세웠다. 이 곳은 대위의 방 안이었다. 전장 병사들 대부분이 제대로 구조된 방이나 건물보다는 천막이나 다름없는 막사를 썼기 때문에, 양털 깔개와 가죽 소파 등이 메우고 있는 대위의 방은 다소 사치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제네바 본가를 생각하면 약소하기 그지없는 방이었는데도 말이다. 전쟁 같은 특수 상황은 그게 설령 귀족 대위라 해도 사람을 쉬이 가난히 만들고는 했다. 매드헤스턴은 방의 주인된 자로서도 불구하고 중앙 소파를 퀸텟 장군에게 양보하고 그 옆 기다란 소파 쪽에 무릎을 모으고 앉아 있었다. 장군이 방을 찾아온 것은 저녁 8시, 그러니까 식사를 마치고 곧장이었다. 갑작스런 방문이 당혹스럽긴 했으나 매드헤스턴은 식사 대신 고급 위스키를 대접할 만큼의 여유는 있었고 그렇게 시작된 방문은 새벽 1시가 조금 넘은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중이었다. 어째서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장군은 매드헤스턴을 제법 총애했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존중하고 애정해주는 건 아니었어도 적어도 막대한 자금을 그의 취미로서 허비하게끔은 쏴주는 편이었다. 똘똘하고 싹싹한 하관은 부리기에 편한 지점들이 많았고 매드헤스턴의 생각에 퀸텟 장군이 절 좋아하는 것도 당연하진 않더라도 이상하기까지 한 일은 아니었다. 장군 직급의 인간에게 예쁨 받는 건 달가운 일이다. 그렇다고 그가 저를 너무 편히 봐준 나머지 실험이나 지원 사항과는 전혀 무관한 사담으로 사람을 꼭두새벽까지 잡아두고 있는 현 상황까지 달갑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매드헤스턴은 티 나지 않게 손바닥 안에 손톱을 찔러 넣거나 모은 허벅지 사이 뼈를 아프게 눌러가며 졸음을 참아냈다. 총애에는 마땅히 충애로 응답하고 싶었으나 젠장맞게 졸렸다. 실험할 때는 4시가 넘도록 말똥했던 눈은 이미 살짝 힘이 풀려 아래로 처져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장군이 캘시 소위 이야기를 꺼낸 것은 그에게 행운이었다. 장군의 영웅담보단 훨씬 끌리는 소재였으니 말이다.

“ 그래. 어떻던가? 같이 실험하겠다고 하던가? ”

“ 생각보다는 고루한 자였습니다. 겁도 많아 보였구요. 목이 날아가기 바로 직전에 건졌으니 긴장하는 것도 당연하겠다 싶어서 우선은 막사로 돌아가라고 지시해 두었습니다. 오늘 날이 밝는대로 다시 찾아가볼 생각입니다. ”

“ 아직 설득을 못했다는 이야기군, 대위. 생각보다 성과가 더딘데 논문 저자만 찾으면 곧바로 실험에 들어간다고 하지 않았나? ”

“ … 예. 그렇지만 설득할 자신 있으니 걱정하진 않으셔도 됩니다. ”

저는 신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_ 진중한 태도로 입을 열던 소위가 떠올라 매드헤스턴은 저도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설마 여기서 신을 논할 줄은 몰랐는데. 반감과 함께 심지어는 배신감까지도 올라오던 만남이고 대화였으나 이에 대해 크게 절망하지는 않았다. 유신론자들 대부분이 고루하다는 편견은 매드헤스턴에게 있어선 과학만큼이나 확실한 논리였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외는 있기 마련이었다. 눈 앞의 퀸텟 장군은 따분하지 그지없는 신앙인인 것과 동시에 죽을 병에 걸린 노인의 아들이었다.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신앙과 신성모독을 널띄름 하는 존재기 때문에 신을 갈구하는 만큼 그 존재에 무한한 의구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장군을 처음 만난 날 매드헤스턴은 성서를 째로 외워 갔었다. 무신론자로 보일지언정 신성모독자로 보여서는 안 됐다. 성서에 반론을 펼칠지언정 펼쳐보지도 않은 치로 보여서는 곤란했다. 대위는 신을 믿지 않는군. 장군은 불쾌감을 숨기지 않은 채로 말했다. 조금만 더 뜸을 들이거나 어눌하게 굴면 장군의 넓적한 손이 그대로 제 뺨을 가격할 것을 그 날의 매드헤스턴은 알고 있었다. 장군님께서는 신자이십니까, 아니면 인간이십니까? 똘똘한 척 군 대가로 주먹이 아니라 총구가 제 관자놀이로 다가온 게 반전이라면 또 반전이었지만. 어쨌든 매드헤스턴은 살아 있었다. 총에 머리가 꿰뚫리는 대신 고지식한 상관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고 대단한 지원비 역시도 얻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무신론자 대위에 분노한 소위가 바깥으로 나가 이 모독적인 대화를 떠벌리기 전에, 그는 제 편이 될 것이었다. 여전히 저를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장군에게 매드헤스턴은 위스키나 한 잔 새로 따라주었다.

“ 소위 역시도 신자보다야 인간입니다. ”


“ 도련님은 정말 인간도 아니세요. ”

장군이 떠난 건 새벽 3시 무렵이었다. 대위는 지쳐서 소파에 눕듯이 하고 있다가는 곧 저보다도 더 지친 중위를 불러 탁자를 정리하고 오늘 새로 구한 논문 더미들을 가져올 것을 요청했다. 이제 그만 주무시라구요. 그렇게 밤을 새시다가는 분명 요절하실 겁니다. 천재들은 대개 요절을 해. 천재라서가 아니라도 난 무병장수 할 상은 아니고 말이야. 그 전에 물론! 내 손으로 죽음을 정복할 거지만! 도련님 때문에 저부터가 요절을 하게 생겼습니다요. 중위는 툴툴거리면서도 시키는대로 탁자를 정리하고 논문을 저자 별로 정리해 매드헤스턴 앞에 놓아 주었다. 매드헤스턴은 논문을 전부 읽지는 않았다. 대부분 목차나 앞 페이지만을 훑고 쓰레기다 판가름한 뒤 옆으로 치워 낙서장으로 쓰고는 했다. 완독하는 논문들, 그중에서 참고를 하거나 필사까지 하는 논문들은 극소수였다. 재미없게 점잔 빠는 얼굴로 저를 튕겨내기만 하는 소위를 붙잡고 있는 것은 이런 배경을 생각해봤을 때 하는 수 없는 일이었다. 인간 사체 재활용 논문은 그가 10번이나 완독하고 5번이나 필사한 논문이었으니까. 9번째 완독부터는 이미 논문 내용을 죄 암기해버리는 바람에 페이지 수만 불러도 거기에 어떤 내용이 나오는지 줄줄 읊을 정도였다.

“ 생각보다 순진한 청년이던데요, 그 소위. ”

“ 바보같이 생기긴 했었지. 난 좀 더 똘망하니 귀여운 상을 원했네. ”

“ 바보가 아니고 순진하다고 전 분명 말했습니다. 제가 동조한 걸로 몰아가지 마시고…… 여튼 실험도 같이 안 할 것 같던데. ”

“ 응? 그건 왜? ”

신을 부정하지도 않았고 오히려 대위님 논리를 부정했으니까요. 소파에 파묻힌 채로 논문을 읽고 있던 대위는 그 말에 픽 바람 빠지는 소리를 냈다. 모르면 말을 마, 중위. 그 순진한 청년은 이미 나한테 코 꿰였어. 그렇다는 걸 눈앞에서 보여주지. 대위가 쇄골 부까지 단정치 못하게 풀어져 있던 와이셔츠를 다시 똑바로 채우고 대위 재킷을 걸쳤기 때문에 소파에 마주 누워 있던 중위도 불안하게 일어섰다. 요컨대 이 새벽에 소위 막사를 찾아가겠다는 소리였다.


막사 밖에서 기다리면 찾는 이를 불러다 주겠다는 보초병의 말을 무시하고 매드헤스턴은 혼자서 큼직한 보폭으로 천막 안으로 들어섰다. 소위 막사는 대부분 여에서 일곱 정도 함께 써서 너저분한 모양새였다. 다친 곳을 대충 동여메둔 흉에서 나는 비릿한 혈향과 땀내가 은은하게 천막 안쪽 천에 베어 있었고 쌓아 놓듯이 둔 층침대에 누운 사내 몇은 더위에 못 이겨 웃통을 깐 채로 누워 있었다. 체통을 지킬 처지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매드헤스턴은 그것에 눈살을 찌푸리기보단 그저 몸 좋네- 정도의 식상한 반응과 함께 침대 요리조리를 살폈다. 안쪽이 얼마나 엉망이든 그건 잠시 머물다 갈 대위에겐 별 상관 없는 부분이었지만 어둠 때문에 누가 누구인지도 잘 식별이 안 간다는 건 다소 짜증스러웠다. 그냥 불러오라 할 걸 그랬나 싶었으나 또 이 김에 초병들 관리 안 하면 언제 하나 싶어서 매드헤스턴은 깨 있는 몇몇 병사들에게 짧게 경례를 붙이고 다가갔다.

“ 아, 깜짝아! 씨, 너 누구야? ”

“ 캘시 소위 좀 불러주게. ”

“ 어두워서 안 보인다고. 너 누구냐고, 새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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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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