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바로

매드헤스턴은 언제나 성공보단 실패에 대해 생각했다.

퀸텟 장군을 만나기 전까진 그를 설득하지 못하고 자금 얻기에 실패할 가능성을 생각했고 캘시를 만나고나서는 그가 지지부진한 실험에 지쳐 고성을 떠날 미래를 상상했다. 원대한 꿈을 품고 살아가는 인간 치고는 소극적인 태도라 할지도 모르겠지만 이건 실패에 대비하는 좋은 자세이기도 했다. 잇따르는 실험 실패와 답이 보이지 않는 공식들 사이에서 매 순간 절망하고 실망하느니 실패에 의연해질 수 있도록 조금은 기 죽어 사는 편이 효과적인 것이었다. 매드헤스턴이 성공만을, 오직 확신만을 생각하며 움직였던 때는 단 한 번 잘린 친구의 머리를 생명창조 기계에 욱여넣은 천둥번개가 휘몰아치던 어느 밤 외에는 없었다. 그 날은 정말 자신감에 차 있었다기보단 실패는 있어선 안 된다는 일종의 불안과 자학성 다짐으로 온 몸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혹시라도 떨어진 눈물이 잘린 목의 단면을 오염시키지 않도록 눈이 충혈되게끔 부릅뜨고 발발 떨리는 손으로 접합을 이어가며 매드헤스턴은 성공을, 그저 성공을 부르짖었더랬다.

됐어, 이쯤 실패했으면 이번에는 아니야. 내가 누군데. 나 매드헤스턴이야. 내가 살릴 거야. 할 수 있어.

최면조의 고함은 기계가 돌아가는 굉음 사이로 묻혔다. 이후의 일은 아마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성공을 소망했던 그 날 매드헤스턴은 돌이킬 수 없는 실패를 겪었다. 그날 한 실험 뿐 아니라 매드헤스턴의 인생을 송두리째 말아먹을 굉장한 실패를. 그리고 현재 그는 실패의 산물을 옆자리에 앉혀둔 채 제네바행 여객선에 몸을 싣고 있었다.

괴물은 자꾸만 창문을 힐끔거리다가 머지않아 아예 바깥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앉았다. 보이는 건 설원에 가까운 풍경들 뿐 별다른 건 없는데도, 발가락이 부르트도록 걸어오면서 이미 다 봐온 길들인데도 불구하고. 어쩌면 옆자리 동승자와의 불편한 정적을 무시하기 위해 딴청을 부리고 있는 것일지도 몰랐다. 여하튼 스턴은 매드헤스턴에게 말을 걸거나 전전 날 그랬듯 총을 들고 대치하는 대신 침묵을 고수했다. 보드카 따위를 나눠 마시며 즐거운 수다를 나누고 있는 다른 칸 승객들과는 대비되는 모습이었다. 둘은 그렇게 제네바로 향했다.


배는 2달동안 쉬지 않고 제네바로 흘렀다. 가끔 가다 승대에 부딪치거나 얼음 조각들에 몸이 묶이는 일을 빼고서는 나름대로 원만한 운항이었다. 선객들은 저마다 부대시설에서 시간을 보내든 레스토랑을 오가든 긴 뱃여행 동안 무료를 풀기 위해 객실보단 바깥에서 활동했지만 매드헤스턴은 객실 안에서만 시간을 보냈다. 북극 이후 급속도로 안 좋아진 몸을 회복하기 위해서기도 했고 늑대인지 개인지 모를 무언가에게 물어 뜯겼던 다리가 욱신거려서이기도 했다. 스턴도 바깥에서 활동하는 편은 아니었다. 이따금씩 선원들에게 지금 어디쯤 온 것인지 물어보거나 객실에 틀어박혀 있는 매드헤스턴을 위해 식당 음식 몇 가지를 챙기러 나다니긴 했지만 누군가 그에게 말을 붙이거나 관심을 보이면 그 날은 곧장 선실로 돌아와 꼼짝 않고 있었다.

매드헤스턴과 스턴은 같은 선실을 쓰고 식사를 함께 하면서도 대화는 최소한으로, 시선은 정반대에 두고는, 우연히 같은 칸을 쓰게 된 타인들처럼 생활했다. 음식 갖고 왔어요. 거기다 놔. 다리는 계속 그래요? 응. 짤막한 대화 토막만이 4마디를 넘지 않는 선에서 오갔고 빈 시간동안 매드헤스턴은 자신이 수없이 상상해온 실패의 가능성들 중 ‘ 실패한 피조물과 나란히 실패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오는 ’ 미래도 있었는지 생각해봤다. 반 불구의 몸이 되어, 수많은 후원자들이 있던, 추억들이 있던 내 고향 제네바로…….

내가 조금만 더 용감했으면 제네바에 도착하기 전에 뛰어 내렸을 건데.

어느날 잠들기 전에 매드헤스턴은 그렇게 말했고 그날 밤 그는 선실을 나갔었다. 당황한 피조물 역시 뒤따라 선박으로 나왔지만 큰 사고는 벌어지지 않았다. 둘은 2달 이후 제네바에 예정대로 도착했다.


“ 여긴……. ”

“ 당분간은 여기서 지낼 거야. 새로운 집을 구할 때까지. ”

두 사람이 배에서 내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여관이었다. 작고 낡았지만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았으며 조용히 며칠간 묵기엔 제격이었다. 어쨌든 철침대와 망가진 생명창조 기계가 있는 고성으로 돌아가는 것보다야 무엇이든 나은 선택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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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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