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판단

(OC) 아델 라루스 & 클로이 오즈



"마법사님이 없는 세상에선, 제가 살아 있을까요?"

애석한 질문이다. 안타깝게도 클로이 오즈는 그 답을 알고 있었다. 그가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 건 아니다. 다만 날 때부터 약한 몸이었던 그에게, 성인이 되고 나서의 삶이란 늘 굴곡의 연속이었고 정착지라 생각했던 땅은 물렁하기 그지없었다. 정에 약했던 사람이 악한 이에게 잡힌다는 건, 스스로의 정원을 마다하고 상대에게 맞춰 절벽으로 걸어가는 것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뿌리가 깊이 자리 잡을 수 없는 환경은 결국 나무를 죽게 만든다. 아무리 나무가 단단하고 크게 자랄 기미가 보이더라도, 견딜 수 없는 환경은 뿌리를 썩게 만들 뿐이다. 뿌리가 자리 잡기도 전에 발목이 먼저 들어가는 갯벌의 땅, 발치에 피어오르는 유약한 싹만이 클로이를 증명하는 수단이 된 환경에서 그는 얼마나 버틸 수 있었을까.


"알면서 묻는 겁니까?"

"들켰나요?"

그의 재능은 거목이었으나 남편에겐 그러지 못했다. 그 재능을 쏟는데도 부족한 몸은 안보다 밖으로 나가는 시간이, 깨어 있는 시간이 늘어나며 더욱 더 악화했다. 이혼 서류를 준비하기도 전에 떠나간 제 반려에 슬픈 감정을 느끼지 않았던 건, 이럴 줄 알았다는 체념과 더불어 저 또한 길지 않게 끝맺음을 낼 거란 믿음이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사실 오늘 꿈을 꿨거든요." 

아닌가, 그게 아닌가? 슬퍼했나. 글쎄, 그조차도 감정을 갈무리하진 못했으나 빨리 죽고 싶은 건 아니었다. 네 번째 손가락의 반지가 더 이상 제구실을 하지 못해 서랍 속에 자리 잡더라도, 싸구려 반지를 끼고 다닌 통에 흉처럼 남은 자국을 보더라도 그를 따라가고 싶다는 마음이 든 적은 없었다. 사랑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안타깝게도 클로이는 그리 용기 있는 사람이 아니었으니.

다만 경험이 이어지며 습관이 생겼을 뿐이다. 현실도 성향도 어찌 할 수 없는 것에 가까워 그 편이 편했다. 정을 준 사람들에게 잘해주고 싶다는 미련, 냉정하게 볼 수 밖에 없는 스스로에 대한 판단. 그는 타인보다 본인에게 객관적인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이 시간에 찾아온 겁니까?"

"아뇨, 그냥... 보고 싶어서?"

"...이상한 소리 하지 말고요."

작업대에서 빼곡한 글자를 읽고 있는 아델을 보던 눈동자가 가볍게 굴러간다. 이른 오전부터 학문에 열중하는 아델이 답다고 생각하면서도, 그가 자고 있지 않음에 안도했다. 느긋하게 보이지만 심장은 요동치던 차다. 일어나자마자 간단하기 그지없는 식사를 챙겨 집에 찾아온 것도, 5분 거리의 거리를 뛰듯 걸었으나 문 앞에 서서야 숨을 고른 것도 전부 그 때문이었다.

"전 원래 제멋대로 잖아요."

그렇다고 그 꿈이 특별했냐, 라고 물어보면 그것도 아니다. 담담하게 이어졌던 하나의 꿈은 결국 낮게 내려온 달이 클로버를 보지 않았던 날이었다. 우연이 없었다면 이루어지지 않았을 만남을 넘겨버린 뒤, 친가에 보낼 항목들을 정리하며 창문 너머를 바라보는 꿈. 파동조차 없는 고요한 분위기, 잔잔한 공기. 이색적인 것도, 특별할 것도 없는 그 하루. 그게 끝이었다.

그런데도 클로이는 깨자마자 그를 찾고 말았다. 꼭 다시는 그날로 돌아가지 못할 사람처럼, 그건 죽음이란 단어를 삭제한 불멸자가 된 주제에 필멸 자가 된 꿈을 꿔서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외로움을 알아버린 탓인지 알 수 없었다. 이유를 맺지 못한 감정은 그 평온한 얼굴을 보고 난 뒤에야 급속도로 가라앉았다. 변명도 하지 못해 그가 앉은 의자 밑으로 무릎 꿇는다. 품에 안기기엔 그런 관계도 아니거니와 고동이 멎지 않았으므로, 스스로의 관계를 낮춘 거나 다름없었다. 여전히 종이에서 눈을 떼지 않는 아델의 허벅지에 머리를 기대면, 잠시 멈추는 기색이 보였다가도 빈 한 손이 머리에 내려앉는다. 처음 이랬을 땐 부끄러워 어쩔 줄 몰라 했으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머리카락을 흩트리는 행동이 꽤 자연스러워졌다.


"얼굴이 빨간데요."

"아닙니다." 

뭐, 아직도 서툴지만.

느린 웃음이 번진다. 그까짓 꿈이 뭐라고 이러는 건지, 왜 이러는 건지 자신도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건 지금 이 상황이 만족스럽다는 거다. 이 사람에게 저는 결국 장애물이 될 테지만, 깨닫기 전까진 이리 머물러도 되지 않겠는 가. 그때와 지금을 선택할 수 있다면, 클로이는 객관적으로 아델에게 나은 것이 뭔지 알지만 또 그를 선택하리라. 이는 그가 처음으로 선택한 이기적인 행동이다.

"마법사님, 저는 저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이거든요."

조명에 샛노랗게 변한 눈동자가 다시금 풀을 닮아가고,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이 멈추면 눈꺼풀에 사라진다. 감은 눈을 다시 뜬다 한들 당신은 사라지지 않을 걸 알기에, 어리광 부리듯 볼을 비비다 고개를 들었다. 언젠가 그 꿈대로 행동해야만 하는 시간이 있겠지만, 미래가 있겠지만. 

단단한 땅에 발을 디디게 되니 갯벌로 돌아가기가 어렵다. 모든 세상이 그대로인데 당신이 없다는 그 하나만으로도 이리도 흔들린다. 클로이는 알고 있다. 저는 아델에게 생각 이상으로 기대고 있다는 걸. 객관적인 사실은 이미 도출한 지 오래다. 현실에도, 꿈에도, 어쩌면 꿈을 그려야 할 미래에도 저는...

"그러니 그때까지만 참아주세요."


이제 당신이 없으면 안 되겠지, 하고.


 written by. dalicho


주제는 꿈이었고...

꿈이라는 단어 보자마자 생각나서 낼롱 썼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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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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