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은 다만 침묵하고

양치기에게 별은 길잡이다.

양을 몰며 그늘이 될 나무를 찾아 커르다스의 푸른 고원을 돌아다니다 보면 마을 밖으로 멀리 나오게 되는 일이 잦았다. 조금씩 작아지던 집들이 완전히 보이지 않을 정도가 된 후에도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면 어느샌가 동쪽과 서쪽, 북쪽과 남쪽이 모호해지는 순간이 꼭 찾아오고는 하는 것이다. 여기에다 해가 언덕 밑으로 넘어가 주변이 어두워지기까지 하면 멀리 내다볼 수가 없어 더욱 막막해진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리고, 정말 끔찍하게도, 지금이 바로 그 최악의 상황이다. 나무 그늘 아래에서 동생에게 풀피리를 불어주다 둘 다 잠들어버린 탓에 어느새 해가 떨어져버린 것이다.

“에스티니앙 형.”

나는 대답하지 않고 계속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재차 에스티니앙 형, 하고 부르며 보채는 목소리에 어쩔 수 없이 대꾸하자 볼멘소리가 따라왔다.

“형 때문이야. 형이 어제 무서운 용 이야기 들려줘서 잠을 하나도 못 잤단 말이야.”

“못 자기는, 나보다 잘 자던데.”

“그럼 형이 나보다 더 무서워했던 거네.”

아미냥이 내 앞을 막아섰다. 인정하지 않으면 길을 비켜주지 않겠다는 기세였다.

“뭐래, 하나도 안 무섭거든.”

“그럼 왜 나보다 늦게 잤어?”

“우리 이럴 시간 없어. 엄마가 우리 잠들 때쯤에는 성도에서 돌아오신다고 했단 말이야. 우리 없는 거 알면 아주 난리가 날 걸.”

그리고 나는 동생 몫까지 혼나겠지! 그런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미냥은 여전히 내 앞에서 비킬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못마땅한 눈치로 콧바람을 내며 고개를 돌렸다. 어린아이 특유의 집요한 시선이 따라붙는 느낌이 든다. 오늘도 엄마에게 한바탕 형으로서 해야 할 일에 대한 잔소리를 듣기 싫었다. 물론 그 내용 자체는 이해가 됐지만, 아무리 좋은 말일지언정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다 보면 귀찮아지는 법이다. 식사 전 할로네께 올리는 기도와도 같이!

해서, 나는 자존심과 귀찮음을 저울질해야만 했다.

“그래, 무서워서, 자꾸만 나쁜 생각이 들어서 못 잤다. 됐어?”

그제서야 아미냥이 입꼬리를 비실비실 올리며 옆으로 물러났다. 천진하게 울려퍼지는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나는 언덕을 올랐다. 언덕 끝에 발을 디딜 제, 지팡이를 들어올려 하늘의 어느 지점을 짚자 구태여 부르지 않아도 아미냥이 달려왔다. 아미냥은 아빠가 하늘을 올려다보며 길을 가늠할 때 덩달아 하늘을 올려다보곤 했다. 별들이 길을 알려주는 소리를 듣고 있다는 말에 아미냥은 저도 듣고 싶다며 발을 동동 굴렀다. 아빠는 그런 동생에게 더 크면 들을 수 있을 거라고 말해주었다.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던 녀석이지만, 내심 실망했을 터다. 나는 아미냥의 어깨를 두드렸다.

“위에, 보여? 저 유독 밝은 별.”

“어디?”

“저기, 저거 말이야.”

아미냥의 시선이 내가 들어올린 지팡이 끝을 그대로 따라간다. 문득 시선이 멈추더니, 곧 고개를 끄덕이는 양까지 보고서야 나는 말을 이었다.

“저걸 쳐다보면서 팔을 양옆으로 크게 벌려 봐.”

별 생각도 안하고 붙인 ‘크게’라는 말에, 가슴을 크게 펴는 것으로도 모자라 까치발까지 들고서 힘껏 팔을 벌리는 양을 보니 나도 모르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아미냥이 빨리 다음을 알려 달라는 듯 발을 동동 굴렀다. 나도 덩달아 고개를 급하게 끄덕이고, 아미냥의 뒤에 서서 그의 양 손목을 잡았다.

“왼팔, 이게 서쪽. 오른팔이 동쪽, 내가 서 있는 곳이 남쪽이야.”

“언덕 아래에, 저 강 보이지?”

“응, 보여.”

“이름은 기억이 안 나는데, 아무튼 엄마랑 왔던 곳이야. 우리 마을은 저 강에서 남서쪽으로 가면 쭉 가면 나오더라고. 그러니까 우리는⋯⋯”

거기까지 말하니, 아미냥이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다본다.

“이쪽으로 가면 되는구나!”

우리는 남서쪽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양의 울음소리가 잠깐 멎고, 풀벌레 소리와 풀을 자박자박 밟는 두 명 분의 발소리만 오직 들려오던 중 하나의 발걸음이 별안간 멈춘다. 나도 덩달아 발걸음을 멈추었다. 따라오던 녀석을 향해 내가 고개를 돌리는 것보다, 뒤에서 내 손을 잡아끄는 것이 먼저였다.

“형, 잠시만, 별님에게 빌어야 해.”

황급한 목소리로 말하는 게 고작 저런 거라니, 예의 잔소리를 피하고 싶었던 탓에 그렇잖아도 마음이 급한 와중이었다. 다소 짜증 섞인 목소리가 튀어나갔다.

“별님은 무슨 별님이람. 별은 그냥 별이야.”

“별님이 방금 길을 알려줬잖아. 그리고 책에도 나와있었어. 다른 애들은 별님에게 소원을 빌기도 한대. 두 손 모아 간절히 빌면 그게 실제로 이루어진대.”

“넌 그런 걸 믿어? 책에 적혀있는 건 다 진짜가 아니야.”

“형은 책에 적혀있는 무서운 용 이야기를 믿어서 나보다도 늦게 잔 거고?”

나는 그만 말문이 막히고 말았다. 난처한 기색이 얼굴에 만연했던 모양인지 아미냥이 또다시 소리내어 웃고는, 두 손을 모으고 눈을 감았다. 고개를 숙이며 무어라 입엣말로 중얼거렸다. 무얼 빌었는지 캐묻는 대신, 나도 대충이나마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나름대로 간절함을 담아, 소리내어 빌었다.

“오늘 엄마한테 안 혼나게 해주세요.”


“애석하게도 집은 비어 있지 않았고, 나는 엄청나게 혼났지. 성도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모양이지만, 잠시나마 걱정했던 건 맞을 테니까.”

에스티니앙이 빈 잔을 채우며 키득거렸다.

아이메리크는 솔직히 말해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술이 들어간 에스티니앙은 평소와 달리 결코 말수가 적은 편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먼 과거의 이야기를 꺼내는 일은 이제까지 전무했기 때문이다. 아이메리크가 에스티니앙에게서 들을 수 있었던 사적인 이야기란 보통 알베리크 베일의 소탈하고 인간적인 면모에 불과했다.

그가 에스티니앙을 주점으로 데려가기 시작한 것은-물론 허심탄회하게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도 없지는 않았으나-그가 조금이라도 휴식을 취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기인한 바였고, 에스티니앙은 휴식을 모를 뿐 나름대로 평범한 인간임을 알 수 있었고, 아이메리크는 그 정도로 만족하고자 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에스티니앙이 창을 들기 전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지는 확실히 그랬다.

아이메리크는 술을 추가로 주문하고서는 물었다.

“지금이라면 무슨 소원을 빌고 싶나.”

“난 소원 안 빌어.”

“저때 믿음을 배신당한 기억 때문에?”

“소원을 빌 것도 없으니까.”

용을 죽이는 데에 필요한 건 기도 따위가 아니라 창술이지, 하고 덧붙이는 말에, 아이메리크는 더는 술잔을 기울이지 못했다. 그저 에스티니앙이 재차 술잔을 채우는 양을 망연히 지켜보다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그때도 생각한 거지만, 에스티니앙, 너는 도무지 목숨을 아낄 줄을 모르는군.”

에스티니앙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아이메리크는 그 변화를 눈치챈 것에 더해 그의 심기가 나빠졌다는 사실까지도 간파할 만큼 섬세했으나, 지금 하려는 말을 상대의 기세에 눌려 삼키고 싶지는 않았다. 그를 처음 봤을 적부터 항상 하고 싶었으나 상황이 따라주지 못해 속으로 품기만 했던 말이었다. 아이메리크는 방금 들은 이야기처럼 에스티니앙이 평범하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몰랐다.

“그런 용기는 만용으로 보이기도 해. 목숨을 귀중히 여겨야지.”

에스티니앙은 코웃음을 치며 잔을 비웠다.


어린아이에게 별은 소망이었다.

눈꺼풀 위로 내려앉은 무거운 졸음이 채 가시지 않았다. 자꾸만 눈이 감기는 동안에도 꾸역꾸역 집어넣은 빵조각이 명치 언저리에 아직 걸려있는 것만 같다. 이는 졸음을 조금이나마 쫓아내기 위해 손등으로 눈을 비벼가며 양을 몰러 나간 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마을 방향에서 들리는 사나운 포효가 몸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활자로 읽었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이 무시무시한 소리에 도저히 발걸음을 뗄 수 없었지만 어떻게든 땅을 박차고 내달렸다. 거슬리는 신발을 벗어던지고 무거운 지팡이를 내버렸다.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결코 멈춰설 수 없었다. 문득 고개를 쳐들고 앙다문 잇새로 호흡 내뱉은 순간, 어스름 옅어져가는 하늘에 희미해져가는 별들이 동공에 비쳤던가.

매캐한 연기가 눈을 맵게 하고, 목초 타들어가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제까지의 나를 이루고 있던 모든 것이 겁화에 불탄다. 어쩌면 비단 나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마을 사람들도, 아빠도, 엄마도, 그리고 동생까지도 그들을 구성하던 모든 것들이 새까맣게 재가 되어가고 있다. 나는 오롯 목숨만을 손에 움켜쥐고서 고개를 쳐들었다. 별들은 이제까지 우리가 바친 기도를 외면한 채 새벽 여명 뒤에 모조리 숨었다. 그렇게 겁쟁이처럼 숨어서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제 너희가 알려주는 길을 따라가지 않을 거야. 겁쟁이들의 길안내는 더는 필요없어. 이제 길은 오직 하나뿐이니까. 사룡을 죽이겠어.


아이메리크의 낯빛이 다소 어두워졌다. 거나하게 취한 에스티니앙은 타인의 기색을 살필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래서 나는 그것들을 모조리 죽여야 해.”

아이메리크는 에스티니앙을 처음 봤을 때부터 줄곧 생각해왔던 바를 새삼 상기한다. 대부분의 이슈가르드인들에게 용 사냥은 출세를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 하지만 에스티니앙은 달랐다. 그는 오로지 용을 잡기 위해 태어난 인간 같았다. 그런 에스티니앙을 지켜보다 못해, 왠지 그가 천년전쟁을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막연한 추앙심마저 품게 되었던 아이메리크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런 그에게도 지금의 에스티니앙은-풀려 늘어진 머리칼을 흐트러뜨린 채 고개를 숙인 양이-꼭 가족을 그리워할 뿐인, 지극히 평범한 소년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그 소년의 앞에 선 이는 검은 머리의 귀족 소년이다.

귀족 소년이 모든 걸 내던지고 군대의 밑바닥부터 구르기를 택한 이유가, 진정 변혁을 이루어야 한다는 소망 하나뿐이었던가? 그냥 아버지의 얼굴이 보고 싶었을 뿐인 소년이 아니었던가. 소년은 다만 아버지와 얼굴 맞대고 앉아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어머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하게 어린 시절의 자신을 품에 안은 적이 있기는 할까? 소년은 노부부의 각별한 보살핌을 받으면서도 결코 마르지 않는 갈증을 느끼고 있었다. 그것이 저 자신이 쉽사리 이해할 수 없었던, 양치기 소년의 용 사냥에 대한 갈증과 꼭 닮아 있음을 이제서야 깨닫는다.

“죽이지 못한다면 더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

소년은, 아이메리크는 그제서야 상념에서 깨어나 현실을 상기한다.

“내 목숨은 의미가 없다고.”

아이메리크가 무어라 반문하는 것보다 에스티니앙이 말을 잇는 것이 더 빨랐다.

“-그러니 너도 내가 다른 생각을 품게 만들지 마.”

침통하게 가라앉아있던 어조가 어느샌가 무섭게 위협하는 소리로 바뀐 채였다. 아이메리크는 그 위협에서 무언가를 분명히 포착할 수 있었다. 에스티니앙은 잔을 소리나게 내려놓았다. 잠깐만, 하고 붙잡는 소리를 들은 척도 않고서 뒤돌아 섰다. 그렇게 뒤도는 도중에 시선이 허공에서 찰나 부딪혔다. 아이메리크가 스스로가 본 것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된 그 찰나는 에스티니앙에게도 아주 의미가 없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아이메리크가 당황하여 저를 붙잡는 것이 아니라 제 논리에 전혀 수긍하지 않았음을 확신한 모양인지 황급히 자리를 떠나려 들었다.

그 순간 아이메리크가 에스티니앙의 손목을 잡아챘다. 뿌리칠 수도 없게 단단히 붙들고서는 에스티니앙의 몸을 억지로 잡아끌었다. 손을 쥐고 흔드는 것에도 아랑곳 않고 아래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딛는다. 테라스에 이르러서야 아이메리크의 발걸음은 멈추었다. 손목을 붙들고 있던 손아귀힘이 느슨해지는 것을 느끼자마자 에스티니앙은 곧장 손을 뿌리쳤다. 한껏 일그러뜨린 낯짝으로 따지려던 차, 사제의 기도와도 같이 고요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에스티니앙, 보이는가?”

아이메리크는 어느샌가 고개를 치켜든 채 위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에스티니앙은 허공을 떠도는 그의 시선을 따라갔다.

하늘에 별이 이토록 총총해.”

그 말대로, 구름 한 점 없이 쾌청한 커르다스의 밤하늘에 별이 무수히 떠 있었다. 더욱이 성도의 하층은 안개가 끼기 일쑤였으므로 이런 밤하늘을 보기란 참으로 드문 일이었다. 에스티니앙은 아이메리크의 기세에 휘말리면 안 된다는 사실을 여러 번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상태였지만, 그것을 재차 상기한다고 해서 이미 까먹은 말을 쉬이 떠올릴 수 있지는 않았다. 결국 따지려던 것을 포기하고 만다. 깊은 한숨소리에 아이메리크는 여상히 눈꼬리를 휘었다.

“별은 이토록 무수하지만, 여느 동화처럼 소원을 들어주기는 커녕 말을 걸어주지도 않아. 오직 내려다보고만 있는 것이, 그야말로 매정하기 짝이 없지.”

아이메리크는 에스티니앙을 돌아보았다. 에스티니앙은 잠자코 고개를 숙인 채였다. 그러나 아이메리크는 그가 결코 제 말을 흘려듣지 않고 있음을 알았다.

“하지만 에스티니앙, 별이 길을 알려주지 않아도 괜찮아. 아침만 되면 죄 도망가버리는 것이 어찌 우리가 나아갈 길을 가늠하여 알려줄 수 있겠나?”

아이메리크가 에스티니앙의 손을 붙잡았다. 그제서야 에스티니앙은 숙이고 있던 고개를 들어올려 상대를 마주보았다. 재차 시선이 맞닿게 되었다. 에스티니앙의 표정은 영 미묘했으나 그 스스로도 저가 무슨 표정을 짓고 있는지 모를 터였다. 오직 아이메리크만이 그 동공에 스치는 빛을 보고 그가 느끼는 감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이메리크는 그 사실에 취기까지 더해져 더없이 즐거워졌으나, 내색하는 대신 침착하게 말을 이었다.

“나는 네가 스스로 길을 찾을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때가 되면 별은 더는 숨지도, 등을 돌리지도 않고 자네를 우러러보고 있을 것이네. 그리고⋯ 나도 기꺼이 그 발걸음을 같이하고 싶어.”

아이메리크는 허락해주겠노라는 대답을 바라는 눈치다. 그 모습이 흡사 청혼하는 이처럼 비장하지만 에스티니앙은 구태여 지적하지 않기로 한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아이메리크가 화답하듯 몸을 붙여왔다. 에스티니앙이 뒤로 몸을 물리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서는 고개를 기울였다. 입술에 입을 조심스레 맞추었다가 천천히 떼어낸다.

더없이 맞붙은 거리에도 어느 하나 물러나는 이가 없으니 더운 숨결이 자꾸만 서로의 피부를 간지럽힌다. 에스티니앙은 제 얼굴이 화끈거리는 이유가 그 숨결 탓인지 입맞춤 탓인지 분간할 수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분간할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미치고서야 뒷걸음질을 쳤다. 뒤돌아 섰는데도 따라붙는 시선을 느꼈는지 답지 않게도 어깨를 다소 움츠린다.

“잠깐만, 에스티니앙.”

그러나 또 저 목소리를 도저히 외면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에스티니앙은 정말로 힘겹게 고개를 돌려 상대를 보았다. 모종의 압박을 느낀 아이메리크가 급하게 언사를 내어놓는다.

“우리 둘 다 취했으니⋯ 상층으로 가는 계단을 무리하게 올랐다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큰일이야. 이대로 내 집으로 돌아가는 것보다는 근처에서 묵고 싶어. 주점 안에 여관이 있거든.”

“⋯⋯.”

“거기서, 자는 게⋯⋯ 어떻겠나.”

아이메리크의 목소리가 점차 작아지다 못해, 끝에는 거의 기어들어가는 목소리였다. 에스티니앙과 마찬가지로 답지 않은 행태였다. 아이메리크는 에스티니앙의 낯이 달아오른 연유가 감정보다는 취기 탓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에스티니앙은 아이메리크의 손을 뿌리쳤다. 아이메리크의 손이 허공에서 멈춘 채 갈 길을 잃었다.

“마음대로 해.”

아이메리크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제서야 손을 거두고서는 직전까지와 다르게 확연히 상기된 목소리로 물어온다.

“정말인가? 에스티니앙, 진심이야?”

에스티니앙은 그런 아이메리크를 뒤로한 채 재차 주점의 계단을 오르고, 아이메리크는 기꺼이 그 뒤를 따른다. 그러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았다. 언젠가 소년의 길잡이였으며 소망이었던 별은 여전히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메리크는 다만 천진한 소년처럼 묻고 싶었다. 자신과 에스티니앙이 택한 길이 과연 옳은지 묻고 또한 확인하여, 그 모든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을 털어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면서도 별이 답을 돌려줄 일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알고 있는 그는 소년이었으나 동시에 소년이 아니었다. 당장에 확실한 것은 온기가 서로에게 닿을 제 그들은 위로받는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결코 서글프지는 않았다. 그 사소한 사실 하나에 그들은 별을 올려다보며 기꺼이 웃을 수 있었다.

2023.09

별은 다만 침묵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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