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고 버릴 것
페 마하 x 사미다레 소하야
Scene 1, 모든 파티원이 전멸하고 둘만이 남았다. 왜 하필 의뢰인은 쉬운 임무라며 보수를 그것 밖에 쥐여주지 않았는지, 왜 둘 빼고는 모두 의뢰인이 충당한 6명이였는지, 지금 생각하면 그 목적은 뻔했으나 이제와서 탓하기엔 늦었다. 눈 앞의 거대한 마물은 다음 태세를 취한다. 방금의 공격으로 저 멀리 나가떨어진 소하야, 마하에게 리미트 브레이크라도 써서 사람 좀 살려보라고 외친다. 그러나 가득 찬 3단 리미트 브레이크는 사용될 기미 보이지 않는다. 다음 페이즈로 넘어가기 전 까지 3초, 저 멀리 나가떨어진 사미다레 소하야에게 페 마하가 다가간다. 2초, 헐떡이는 숨을 고른 그는 자신의 환술봉을 소하야의 목 언저리에 갖다대고, 이렇게 말 했다.
당신을…. 아니,
자네를 살려야 하는 이유를 하나라도 말 해봐.
Scene 2, 신성한 축복의 장막 아래로 사미다레 소하야의 얼빠진 얼굴 클로즈업. (이 때 소하야는 “힐러니까 당연하지” 라고 생각한다.)
쓰고 버릴 것
페 마하 x 사미다레 소하야
본디 암흑기사란 혼자 사는 족속들인지라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주는 경우가 드물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의지도 있겠지만, 동시에 소울 크리스탈을 건네준 이의 전언 탓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페 마하도 분명히 그것을 알고 있다. 세상의 어떤 바보가 자신은 더 맞아도 된다는 이유로 당장에 죽을 것 같은 사람에게 흑야를 붙이겠는가? 그래, 어떤 바보가…. 첫번째 시도는 딜러들의 딜 부족으로 장렬하게 끝났다.
왜 그러셨어요?
…뭐가.
지금 백마도사는 저잖아요, 제가 어차피 다 살려낼 건데 당신이 그거 줘서 뭐 해.
소하야는 페 마하의 눈을 피하기로 한다. 사실상 받는 피해량 증가가 7번 쯤 되면 바보라도 안다. 어차피 저 사람은 살려줘봤자 다시 죽는다. 그럴 거면 차라리 죽고 다시 살아나는게 빠르다. 그것이 용병 업무 도중 일어난 일이라면 더더욱. 이것이 페 마하가 생각한 가장 효율적인 MP를 아끼는 방법이였다. 아무리 백마도사가 가장 힐 효율이 좋다지만, 죽은 사람이 세 명 이상 쌓이면 어떠한 힐러라도 MP가 부족할 수 밖에 없다. 그냥 한 번 죽이고 살려내는 게 이런 업무에선 가장 효율적인 거 아시잖아. 페 마하가 투정하듯 말한다. 그럼에도 소하야는 저것이 가벼운 투정이 아니라 진심이였음을 안다. 결국 잡 체인지를 하고 들어간다. 각자가 자신 있는 것을 든다. 소하야는 사무라이, 페 마하는 전사. 결과는 힐 부족으로 인한 전멸. 다시 잡 체인지를 한다. 이번엔 소하야가 백마도사, 페 마하도 백마도사를 든다. 결과는 탱커 둘의 전멸로 인한… ….
이 정도 보수만 받고 이렇게까지 하는 건 역시 안 돼요. 저는 포기하겠어요.
그래도 돈을 받았잖아, 힘 닿는 데 까진 해 봐야지.
… …
페 마하는 자신이 가장 소하야를 정확히 바라보고 있으리라고 확신했다. 이 얼간이들은 이 판이 좆되던 말던 아무런 관심도 없다. 왜 하필 의뢰인은 쉬운 임무라며 보수를 그것 밖에 쥐여주지 않았는지, 둘 빼고는 모두 의뢰인이 충당한 6명이였는지, 분명히 얼마 전 페 마하가 잠깐 손 댔던 ‘뒷처리’ 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말 하지 않기로 한다. 그러므로 그는 당장에라도 소하야의 얼굴을 낚아채 “저 얼간이들의 얼굴을 좀 보세요!” 라고 소리지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른다. 마치 골드 소서의 대금이 필요해 페 마하에게 찾아온 이들 처럼… 골드 소서 근처, 특히 작패유희장 근처에 대기 중인 초코보들은 대부분 비쩍 말라 있다는 말이 있다. 그는 그 말을 무척 좋아했으나, 지금은 아니였다.
무엇보다도 묘하게 들떠보이는 소하야가 싫었다. 정작 흑야를 자신에겐 쓰지 못 하는 그 헌신적인, 그래. 그러고보니 헌신도 마구 붙여댔지. 자기는 철벽 방어로만 버틴다는 게 말이 되나? 그런 페 마하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건지, 소하야는 슬쩍 눈치를 살핀다. 화났어? 아니요. 짤막한 대사 오고 간 후의 침묵은 길다. 잡생각이 들 때 즈음 모두가 원점으로 돌아온다. 페 마하는 이 일이 끝나면 꼭 닌자로 잡 체인지 후 의뢰인을 찾아가겠다고 마음 먹는다. 지금은… 켕기는 구석이 있으니 말고.
그 큰 대검이 허공을 가르고, 마물보다 훨씬 작은 몸집이 겁없이 뛰어드는 순간. 그것이 전투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이므로 모든 시선은 사미다레 소하야에게 집중된다. 첫 번째는 무난히 막아낸다. 물론 소하야의 흑야와 헌신으로 몇 명이 죽을 고비를 넘긴다. 두 번째는 소하야에게만 오는 공격, 흑야는 아직 쓸 수 없을 터. 그러나 페 마하는 신성한 축복이나 물의 장막을 주지 않았다. 네 흑야가 얼마나 중요한 것이였는지 깨달으라는 의미로. 프레이가 아무리 말 해 봤자 소하야는 영영 듣지 않겠지, 그래서 그는 소하야를 반죽음으로 만드는 것을 택한다. 세 번째 공격, 전체 공격이므로 힐러의 역할이 중요할 때였다. 어차피 두 명 외엔 아무것도 하지 않을 테니 페 마하는 단 한 사람을 위한 기도를 올리기로 한다.
절제. 허나 무엇을 절제하나? 종소리가 울리면 심판할 준비를 한다. 그렇지만 인간이 인간을 심판하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사정이다. 펼쳐진 성소를 본다. 이렇게 불경한 장소에서 성소의 존재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부정적인 생각에 침잠하는 것은 한 순간, 황홀경은 저 생각 없는 것들이나 빠질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기도했다. 손에 감긴 흰 붕대는 이미 피로 얼룩져 너덜했다. 정말로, 마지막이라고 생각이 든 순간에. 페 마하는 자신을 집어삼키는 검은 것을 본다. …그렇지만 어디에서? 옆을 본다. 사미다레 소하야에게는 흑야가 둘러져 있지 않았다.
미안해. 힘든 일을 시켰네.
딱 한 번의 기술이 부족해서 생긴 상황이였다. 모든 파티원이 전멸하고 둘만 남았다. 왜 하필 의뢰인은 쉬운 임무라며 보수를 그것 밖에 쥐여주지 않았는지, 왜 둘 빼고는 모두 의뢰인이 충당한 6명이였는지, 그러나 이제와서 탓하기엔 늦었다. 눈 앞의 거대한 마물은 다음 태세를 취한다. 방금의 공격으로 저 멀리 나가떨어진 소하야, 다음 페이즈로 넘어가기 전 까지 3초, 저 멀리 나가떨어진 사미다레 소하야에게 페 마하가 다가간다. 2초, 헐떡이는 숨을 고른 그는 자신의 환술봉을 소하야의 목 언저리에 갖다대고, 이렇게 말 할 것이다.
쓰고 버릴 것들에게 정을 주지 마세요.
그것이 내가 당신을 살릴 이유가 될 테니까.
…
내가 당신에게 쏟아 부었던 절반 만큼이라도 날 생각해 줘.
페 마하의 유언 엇비슷한 말이 흩어지면, 어두운 밤이 빛에 가려진다.
…
이젠 누구의 피인지도 모를 것들이 한데 뒤섞여 웅덩이를 만든다. 갑주가 절그럭 거리는 소리는 썩 경쾌하지 못하다. 여전히 힘이 남아있는 발자국이 하나, 그 옆으로 나란히 질질 끌리는 핏자국이 이어진다. 지금의 상태로는 이 사람을 살릴 수 없다. 선물한 목걸이가 깨진 것이 그 증거다. 힘든 일 할 땐 절대로 하지 않을 거라고 말 했잖아, 이렇게 깨질 때 까지 당신은 무슨 생각을 했어? 대답 대신에 전보다 고른 숨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면 그제서야 소하야는 두 사람 몫의 한숨을 낼 수 있었다.
사미다레 소하야가 처음으로 하나만 챙겨 나온 업무였다. 개중엔 살아있는 것이 하나, 버릴 것은 여섯, 한 동안은 쓰지 못 할 것이 하나…. 의뢰인 입장에선 꽤나 남는 장사일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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