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of Your World
7학년 중 역극 로그
따뜻한 남쪽 바다의 세이렌들은 아름다운 인간의 외형을 닮아서, 노래가 아닌 외모만으로도 인간의 눈을 끌 수 있다고 한다. 두 다리를 달고 목소리를 잃어도 인간의 운율에 유려하게 춤추며 인간의 남녀에게 귀애받는 인어란 필히 이이들의 이야기일지니, 그러한 존재라면 혹여 영롱하고 연약한 인간이라는 족속의 영혼과 영원을 나누어가질 수 있을런지도 모른다.
너의 고향에서 만났으면 좋았을까. 무슨 죄라도 지은 사람처럼 제 앞에서 어쩔 줄 모르고 필사적으로 시선을 돌려주는 에스마일을 보며 핀갈 모이레는 생각한다. 그러면 세번째에는 네가 나를 건져줄 수 있었을까.
아직 그가 무엇인지가 만천하에 탄로나기 전의 어느 겨울, 친숙한 곡조에 몸을 담그고 제 존재의 온전을 채우고 있던 핀갈 모이레는 먼 과거 어느날 기억 속에 남아있던 체취가 물 속으로 옅게 번져가는 것을 맡았고 그 순간에 비로소 생애 최초로 마주했던 연약의 얼굴을 기억해냈다. 두 번째로 보는 얼굴을 물가에 밀어올리며 그는 바닷말Mermish로 날카롭게 독설을 지껄였다. 비늘처럼 반들거리는 살결에 노란 안광을 빛내며 온갖 생명체들이 득실거리는 야밤의 호수에서 막 튀어나온 존재가 물을 뚝뚝 흘리며 알아들을 수 없는 괴성과 함께 다가올 때 대부분의 인간들이 어떤 반응을 할지 정확하게 알고 고른 대응이었다. 불량배들은 혼비백산해서 도망쳤다. (질이 나쁘다곤 해도 정도가 있지, 학생 신분으로 호그와트에서 같은 학생을 상대로 살인을 저지르려고 하다니 제정신인가? 아즈카반에 가고 싶은 게 아니라면 라이네케는 빌붙을 녀석들을 좀더 잘 고르는 것이 좋을 듯했다.)
물 속에서는 풀려나간 제 머리쓰개마냥 한들한들 힘없이 가라앉던 에스마일은 건져두고 나면 금세 물을 뱉어내며 정신을 차렸다. 핀갈은 집요정에게 옷가지와 소지품과 함께 두 배의 수건을 주문하고 머리카락을 쓸어넘겨 물을 털면서 에스마일을 내려다보았다.
“넌 물에 빠지면 좀 헤엄을 쳐라. 목숨에 별로 미련이 없나?”
“하지만 물 속이 어두운걸요.”
에스마일은 콜록거리며 대답했다. 그의 어조에서 핀갈은 그도 알았다는 것을 알았다. 정작 하려는 말은 모르겠지만.
“헤엄을 눈으로 치는 것도 아닌데 상관없잖아. 마음에 안 들면 눈을 감든가.”
에스마일은 좀 황당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집요정들이 보낸 어마어마한 목욕수건을 에스마일의 머리 위에 천막처럼 던져 씌우면서 생각했다. 인간들이란 본디가 좀 생겨먹기를 성가신 생물이 맞다. 하지만 에스마일 시프라는 개체는 평균적인 인간이 그런 것보다 특별하게 더 성가신 생물이었다. 모쪼록 ¿▲†들에게 그가 저 정도로까지 보이는 건 아니기만 바랄 뿐이었다.
저의 경우에는…… 조금 달라요. 온 몸과 마음을 다한 뒤에도, 무엇이 승리인지, 패배인지, 가늠하기 아주 어려운 세계에서 자랐거든요. 이곳에서는 언제나 해결되지 않은 것이 남아 있어서, 그냥 다음의 할 일을 하는 수밖에는 없어요. …… 시시포스의 굴레입니다. 돌을 굴리고 나면 바로 다시 굴러내려가요…… 그리고 그것에 절망하기가 너무 쉽습니다. 싸워봤자 질 것이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단지 싸움이 너무 지쳐서요. 길이 뻔히 보이는데도 그 위를 걸어갈 힘이 나지 않는다는 건 힘든 일이거든요.
어쩌면, 핀갈 모이레는 생각한다. 당신들은 여기에서 줄곧 헤엄치고 있었던 걸까. 인간이 두 발로 땅을 걷는 데에는 쉬지 않는 발버둥 같은 건 필요없는데. 살게 해주지도, 죽게 해주지도 않는 세계에서 어떻게든 가라앉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다하는 데 너무 지쳐서, 뭍에서 밀려났을 때에는 더 이상 애쓸 힘이 없었던 걸까. 그렇다면, 팔레스타인의 에스마일, 이 세상에서 가장 약하다는 너의 일족이야말로 인간 중에서 가장 강인한 자들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제게 투쟁은, 그것이 무엇이든 투쟁할 가치가 있었다고, 지금도 있다고 믿는 그 자체입니다. 살려고 한다면 나는 살겠다 선언하는 것이고, 권리를 위해 싸운다면 나는 권리를 갖겠다고 요구하는 것이며, 설령 다른 모든 사람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더라도. 그렇게 말해줄 단 한 사람을 만날 때까지는 죽기를 거부하는 거에요. 저희의 모든 삶이 승리가 되는 겁니다. 그것이 저에게는 투쟁이에요.
권리라든가, 선언이라든가…… 믿음이라든가. 가치라든가. 안개 낀 밤 멀리 보이는 별빛처럼 희미하고 아스라한 말들, 마법으로 피운 불씨처럼 품 안에서 타는 온기와 열을 내는 말들. 그 말들이 핀갈에게 펼쳐내는 것은 하나의 심상이다. 풀 한 포기 남지 않은 황막한 폐허에, 언제나 소중하게 쓰고 다니는 하얀 수건을 나풀나풀 옆얼굴에 드리운 채, 허리를 굽히고 반짝이는 무언가를 심고 있는 에스마일이 있다. 눈을 들어보면 온 사방에 그를 닮은 사람들이 그와 같은 자세로 무언가를 심고 있다. 마른 자갈 사이에 돋아난 여린 싹이 노래와도 같은 가늘고 맑은 소리를 멀리, 멀리 울려퍼지게 한다. 그것은 너무 청연하고 희게 밝아서, 마치 숨쉬는 환희의 은빛을 불러일으키는 듯하다.
시선에 담을 빛을, 입술에 부를 선율을. 숨쉴 때마다 소망을 심어, 죽지 않는 것을 만드는 투쟁. 약함에 약함이 얽힌 질곡을 약함으로 넘어가는 인간의 방식. 소중하게 감싼 연약한 마음이 자라나 세계를 덮을 때까지.
물거품이 되어서라도 잡아보고 싶을 만한 꿈이 아니던가.
그는 눈이 시큰거려 얼굴을 돌린다.
아, 하지만 그는 농부의 인내와 개척자의 포부를 결코 닮지 못할 사냥꾼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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