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아 윈필드는 움직이지 않는다

7학년 기간 중 역극 로그

좀 들어봐,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말하기 곤란한 사정이 있어.

그러시겠죠. 잘 알았어요. 사정을 모르는 사람의 조언 같은 건 이제 신경쓰지 마세요.

진짜야, 네 말을 무시하는 게 아니고, 그러니까……

이제 가봐도 되나요? 전 과제가 있어서.

화내지 말고 좀 들어봐.

화 안 났어요.

났잖아.

안 났으니까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요.

.

.

.



마음의 기능은 생명을 온전하게 하는 것이다.

‘푸른 창잡이’들이 전사로서 아이들에게 가장 먼저 가르치는 것은 분노와 두려움을, 호감과 증오를 올바른 자리에 놓는 법이었다. 분노해야 할 일에 겁을 먹는 자는 빼앗기고 농락당한다. 도망쳐야 할 장소와 시점에서 분노에 사로잡혀 덤벼드는 자는 때이른 죽음을 당할 것이다. 무익한 증오에 정신을 낭비하는 자는 생을 소진하게 될 것이며, 잘못된 상대와 친교했다가는 패가망신하고 남음이 있으니. 무술과 마법과 음악은 마음을 흐르게 하는 기예라는 결에서 서로 통했다.

훨씬 더 복잡하고 섬약할지언정, 인간의 마음도 다르지는 않았다. 외로움은 동료를 찾아 더듬거리는 손길, 그리움은 재회를 촉구하는 부름. 그리고 슬픔은 잃어버린 것의 자리를 메우는 마음짓이다. 서로를 부둥켜안고 울면서 사람들은 상처와 속살을 드러냈고 그런 식으로만 가능한 방법으로 처치했다. 그렇게 끊임없이 빈 자리를 채우고 부서진 곳을 메는 것은 파손되지 않고 살아가기에는 너무 여린 존재들이 제 임약함을 감당하는 방식이었다.

레아 윈필드는 울지 않았다. 내밀한 두려움과 터부에 닿는 유상에 대해 고백할 때조차 그의 표정은 담담하고 건조했다. 목을 가눌 줄 모르는 갓난아이가 지나치게 부드러운 베개에 질식하듯이, 약함과 약함을 이어 고통과 기쁨을 공명하는 법을 배우지 못했던 핀갈 모레이가 낯모르는 세계의 잔약함에 치를 떨고 있었을 적에 그 무감함은 그에게 어떤 익숙한 위안을 주었다. 인간성이라 말해지는 것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하고 심지어 한심스러워하는, 어떤 인간이라도 당혹스럽고 불쾌하게 만들 그의 무지도 레아와 함께 있으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심지어 레아는 그것을 가지고도 섞여 살아갈 수 있는 법을 그에게 알려주기까지 했다. 허물 없이 햇볕 아래 자라나는 생물들은 타고난 감관으로 자연히 아는, 구태여 말하고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그 자체가 진정성의 요체인 문장, 몸짓, 표정들. 위로하고 염려하고 지지하고 격려하는, 규격화된 다정의 형태들. 레아 윈필드는 그것을 교과서의 단락들처럼 단순정연하게 잘라 그에게 먹여주었고 과정을 생략하고 빠르게 정답만을 외운 덕분에 그는 수많은 엇갈림과 충돌들을 미연에 피해갈 수 있었으니, 그가 그렇게 편법적인 학습을 통해 외견상의 적응이나마 신속하게 해내지 못했더라면 인간의 마음을 가지지 못한 냉혹무비한 이물이라는 비난은 훨씬 더 전에 나왔을지도 몰랐다.

아가미도 물갈퀴도 달리지 않은, 가늘고 연한 몸의 틀림없는 인간인데도 레아는 어딘가가 그와 같았다. 그와 같았고, 그보다 능숙했고, 그보다 현명했다. 그러니까 아마도, 그러려니 하고 내버려두었더라도 언젠가는 그가 스스로 신뢰를 의탁하고, 자신의 무지가 어디에서 연원했는지 먼저 말을 꺼냈을 수도 있겠으나.

어째서인지 그는 레아가 표정 없는 얼굴로 돌아서는 그 순간에, 어떻게든 하지 않으면 레아는 영원히 그에게 화가 나 있으리라고 느꼈다. 설명할 수 없는 직감이었다― 적어도 그 시점에서는. 흉내에 지나지 않던 것들을 조금씩 진실로 이해하게 되고, 또한 레아 윈필드라는 인간에 대해서 보다 깊이 생각해본 후일에서야 그는 자신이 무엇을 감지했는지, 그것에 어떻게 감응했는지를 조금 더 뚜렷하게 정리해볼 수 있었다.

화가 나는 것은 기대라든가, 신뢰라든가, 유대 같은 것이 깨어졌기 때문에. 그것을 이어붙이든지, 아니면 아예 치워버리려는 마음의 동작이다. 그런데 레아 윈필드는 그 중에서 어느 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예의 그 침착한 무표정으로, 깨진 것을 깨져 나뒹굴게 둔 채로, 서 있던 자리에 그냥 서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대로 둔 자리에는 회복된 것도, 새로운 것도 생겨나지 않는다. 깨진 것들이 깨진 채로 언제까지나 거기 흩어져 있을 뿐이다. 핀갈은 레아에게 핀갈 모레이가 발치에 널브러진 파편으로 남을까봐 두려웠다.

레아 윈필드는 울지 않았다. 내밀한 두려움과 터부에 닿는 유상에 대해 고백할 때조차 그의 표정은 담담하고 건조했다. 그것이 가슴속이 턱 막힐 정도로 핀갈 모이레를 막막하게 했다. 바람과 파도가 닿지 않는 곳에서 푸른 수평선을 내려다보면서도 그 너머에서 나타날 배만을 하릴없이 기다리는 당신이, 영영 오지 않는다는 소식을 전해받아도 여전히 거기에 서 있을 것만 같아서. 거기에 서서 돌아오지 않는 누군가를 언제까지고 기다릴 것만 같아서.

만물은 제각기 살 길을 찾아, 제각기의 갈 길을 간다. 언제까지, 어디까지 잘 되든지, 안 되든지 있는 힘껏 생명을 지키며 닿는 곳까지 간다. 레아 윈필드가 얼마나 외롭든, 얼마나 슬프든 그의 마음이 마찬가지로 움직이고 있었다면 핀갈 모이레는 그저 가벼운 친애와 감사로 그를 대하고, 또 작별할 수 있었을 것이다. 태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것에 걸맞는 때가 있는 세계에서, 섭리를 거스르지 않는 현인들이 그러하듯이. 하지만 레아 윈필드는 움직이지 않는다. 그의 마음 안에서는 모든 부서진 것들, 모든 잃어버린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응어리져 있다. 어디로도 가지 않으니 언제까지나 있을 것이다.

지나가지 않는 상실의 찰나. 슬픔만으로 빚어진 당신의 영원이 나의 발길을 돌려세운다.

당신이 나의 동족이 아니라도 좋다고, 핀갈 모이레는 생각한다. 그래서 언젠가 닫힌 문을 열면 당신이 울지 않은 모든 눈물이 한꺼번에 쏟아진다고 해도, 당신이 거기에 나를 씻어내고 모르는 시간으로 나아간대도. 그게 당신이 결국에 존재해야 할, 진작에 있었어야 할 제자리라고 해도 상관없다. 어긋난 시간이 지속되는 동안 그곳에서 당신의 곁에 있고 싶었다.


“계속 살고 싶어요? 이렇게라도.”

지금의 핀갈 모레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이렇게 죽는 것이었다. 그는 죽음이 예사로운 일상의 일부인 세계에서 자라났으나 그 자리는 언제나 더 많은 생명들이 가열차게 태어나 자람으로 메워졌고 죽고 사는 것이 그런 방식으로 동등하게 세상의 일부를 이루었다. 어느 세계에도 속하지 않고 무엇도 뒤따르지 않는 죽음은 그를 두렵게 했다. 돌아갈 곳이 없고 나아갈 이가 없는 죽음의 전망이 가까워질 때마다 그는 진정한 의미의 죽음을 처음 접한 사람처럼 무력하게 허물어져 벌벌 떨었다. 그 다음으로 두려워하는 것은 이렇게 사는 것이었다. 그것이 덜 두려운 이유는 단순히 이렇게 죽지 않을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벗어날 가망이 없는 연명은 죽음과 다를 바 없었다. 누군가 그에게 지금의 삶을 거둬가는 대신 세계에 귀의하는 죽음을 제시한다면 그는 수락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보다 더, 움직이지 않는 당신의 뒷모습이 두려워서.

핀갈 모이레는 손을 들어 고인 눈물을 닦는다. 최초와 같으면서도 다른, 쇠잔한 목소리가 체념하듯이 말했다.

“네가 원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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