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니 뽑는 케인 썰


알고 계셨나요?

  • 하트스틸 논씨피 + 개그성 캐해가 메인이 됩니다.

  • 날림글입니다. 이해하지 않고 읽는 게 좋습니다.

  • 급전개 급마무리 주의


케인과 아펠리오스가 대판 싸운 이유로 요네가 정문일침(頂門一鍼)을 소집했다. 

정문일침은 동료 간 사고나 싸움이 발생했을 경우 당사자들을 한곳에 모아놓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직접 말하는 시간이다. 멤버들이 워낙 사고를 많이 쳐서 매일 저녁 모여 혼나던 걸 아예 일간 세그먼트로 만든 것이다. 요네는 자기 잘못을 알고 뉘우치라는 취지라고 설명하긴 했는데······. 이제 와서는 '쟤가 나보다 잘못했음'을 고발하는 시간으로 변질되었으며, 창시자인 요네도 이 시끼들과 지내면서 목격해 온 온갖 충격적인 상황에 절로 역치가 높아져서는 웬만한 난장에도 놀라지 않게 되었으므로, 주범들이 생각 의자에 앉는 빈도도 이전에 비해 대폭 줄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건 거의 일상화되어 가는 수준이었기에 요네든 누구든 '너희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정도가 유독 심했다. 싸움이 일어나면 크산테나 세트가 물리적으로 떼어놓는 것으로 대개 해결이 되었는데, 어쩐지 그마저도 되지 않았고 결국 요네가 쌍칼을 들고 온 뒤에야 상황이 잠잠해졌다. 몸싸움이 있었거나 누가 다친 건 아니지만 양측 모두 입이 댓 발 나온 걸 보면 사이가 좁혀질 기미가 안 보였다. 다툼이나 의견차이야 물론 있을 수 있지만 동료 간 잦은 불화는 팀 전체에 악영향을 줄 것이 자명했기에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사실 요네만) 꽤나 골치 아팠다. 

하여간에 내막은 이만 차치하고, 위와 같은 어른스럽고 현실적인 사유로 최근에 와서 잘 열리지 않던 정문일침이 오늘에야 마련된 것이었다.

당연하지만 둘의 주장이 일치할 리 없었다. 케인은 아펠리오스가 일방적으로 신경질을 부린 것 외에 할 말이 없다며 자기가 피해자임을 피력했고 그걸 듣고 있던 아펠리오스(특징: 케인과 상극)는 어지간히 짜증 났는지 말 대신 손가락을 휘적이며 수신호로 입장을 표했다. 뒤집힌 채로 내리꽂혔다가 올라오는 손짓이 제법 강경했다. 

'케인. 화장실. 신음 소리. 나=정신적 충격.'

'일주일 됨.'

다들 갈피를 못 잡을 때 누군가의 책임감 없는 한마디가 방아쇠를 완전히 당겼다.

"너 화장실에서 X쳤어?"

"누가 그런 상스러운 소리를 해!!!!"

요네가 궁을 쓰는 바람에 발언자는 끝내 못 잡았지만 말로 하지 않았을 뿐 다들 비슷하게 생각했다. 케인은 순식간에 "大" 미친놈이 됐고 곧장 그렇다 할 반박을 하지 못하여 여론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그가 혼자서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는 알고 싶은 사람은 없지만 (그러니까, 그게 사실이라는 전제하에,) 알게 된 이상 추가적인 피해(?)가 나오지 않도록 조치가 마련될 필요는 있었다. 

그러면서 모두가 케인의 반론을 간절히 바랐다. 이딴 논쟁이야 빨리 끝내고 갖다 치우고 싶으나 당사자가 끝까지 침묵한다면 반대편 주장이 기정사실 되므로, 남은 사람들의 모를 권리가 처참히 훼손될 게 분명했다. 그러니까 상황이 종결되기 전에 존엄성을 지키려면 케인은 입을 열어야만 했다. 

"아, 씨······."

이쪽도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처음 황당해 죽겠다는 얼굴을 하더니 이젠 착잡한 표정이었다. 말 못 할 사연이야 있겠지만 가오 하나 지키겠다고 끝까지 입을 다물다간 오늘부로 하트스틸은 5인 체제가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울그락불그락해져서는 앞니를 갈던 케인은 끝끝내 입을 열었다. 말 그대로 입을 크게 벌렸을 뿐이다. 백 마디 변명보단 직접 보여주는 게 나았다.


저들은 모르겠지만 전지적 입장에 선 우리는 슬슬 내막을 알 때가 되었다. 그러려면 아펠리오스가 거론한 '일주일'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금 이 지경을 만든 보다 근본적인 요인은 그보다 더 전에 있기 때문에 약간의 과거를 파고들어야 하겠다.

대략 2주하고도 며칠 전이었다. 그때부터 케인은 어금니 뒤쪽 잇몸에서 불쾌한 통증과 이물감을 슬금슬금 느끼기 시작했다. 동시에 맞닿은 어금니도 저릿하니 아픈듯했다. 거울로 들여다보니 잇몸이 벌겋게 부어있었는데 케인은 본능적으로 충치나 그 비스름한 것을 직감했다. 하지만 치과 치료로 가는 첫 단계는 통증을 애써 부정하며 알아서 낫길 바라는 것이라, 단순히 피로 누적으로 인한 구강병 정도로 믿으며 며칠을 보냈다. 

밤낮이 몇 번 바뀌고 통증이 잦아드는 듯했으나 어느 날 아침을 기점으로 통증이 무시할 수 없는 수준만큼 심해졌다. 잇몸 주변뿐 아니라 뺨을 거치는 점막이 붉게 헐었고 턱을 움직이는 것조차 힘이 들었다. 그보다 더 심각한 건 잇몸 중간에 삐죽 돋아난 치아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없었던 것이 오늘은 떡하니 박혀있었다. 이건 빼도 박도 못한 사랑니였고 그간 단순히 자연 치유될 구내염이라 믿던 희망이 완전히 무너졌다.

충치였으면 차라리 나았을 것을. 케인이 사랑니의 존재를 부정한 이유는 그다지 특별한 게 아니다. 정말로 단순히, 치과 가기 무서우니까. 치과에 좋은 추억이 있는 사람은 없다지만 케인은 유독 심했다. 언젠가 마지막으로 갔던 치과의 냄새와 소리, 혀 뒤쪽과 목구멍에서 느껴지는 치과의 맛(?)을 떠올리면 치가 떨렸다. 내색은 안 하지만 그가 유독 고통에 취약했던 이유도 한몫했다. 케인은 유약한 속내를 숨기기 위해 겉으로 강한 척하는 인간상의 전형이었으므로 이 사실을 누가 알아서 좋을 게 하나도 없었다. 

게다가, 유흥주의적 트릭스터이자 badass 래퍼인 내가 치과를 무서워하다니! 심지어 머리도 핑크색인데. 도저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어떻게 해서든 혼자 해결해야 했다. 그럼 당연히 치과에 가면 해결 됐겠지만 케인 같은 경우는 가오와 공포감의 싸움에서 아무도 승리하지 않았다. 다르게 말하면 자신과의 싸움에서 누구도 지지 않은 셈이다. 그런 사유로 사랑니가 알아서 들어갈 때까지(...) 혼자 앓는 길을 택한 것이다. 참나. 

이가 난 위치는 본인 기준 오른쪽 어금니 뒤, 평범한 아랫사랑니였다. 입안의 절반이 헌 상태에서 주둥이로 헤엄쳐 다니는 케인이 정상적인 일상을 영위할 리 없었다. 한시라도 말을 안 하면 죽는 사람이었으니 구강질환으로 인한 입놀림 제한은 정말 지옥과도 같았는데, 아프면 어쩔 수 없이 말을 적게 하면 될 것을 얘는 오히려 말을 더 했다. 아파서 열을 받으니 흥분해서 말이 많아졌는데 그것 때문에 통증이 커져 짜증이 더 심해졌다. 

재밌는 건 아프나 마나 성미가 까탈스러운 건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주변에서 눈치를 못 챘다는 점이다. 식사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지긴 했지만 그나마도 설거지를 떠넘길 건덕지가 되어서 남들에겐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케인 입장에서도 괜히 아픈 티를 내어서 강제로 치과에 보내지거나 가오가 수직 하락하는 수치를 겪을 이유는 없었다.

진짜 위기는 양치할 때 찾아왔다. 식사야 음식물을 한쪽으로 넘겨 씹으면 상관없지만 양치는 필연적으로 취약한 부위를 건드려야 했다. 빡빡한 칫솔모가 점막이나 잇몸에 닿을 때면 정말이지 칼로 살을 째는 고통이었는데 이건 도저히 참기가 힘들었다. 양치 도중 비명을 지른 건 케인도 살면서 처음이었다.

"누가 이렇게 소리를 질러?"

"케인이지 누구야."

하지만 숙소에서 발생하는 소음공해의 약 90%는 '케인이지 누구야.' 한마디로 정리가 되었기에 이조차도 의심받을 여지가 없었다. 케인은 양치질 내내 비명을 지르다가 헹굴 때가 되면 반쯤 울었다. 숙소에 귀신 나온다는 소문이 돌지 않은 게 신기할 수준이었다. 평소 행실이 나쁜 덕에 (덕인지 탓인지) 케인의 웬만한 기행은 관심 조차 못받았다. 대신 케인과 쌍으로 예민한 동시에 개인 방이 화장실과 가장 가까운 아펠리오스만이 민감한 청력으로 그의 앓는 소리를 전부 들었다. 이 날이 아펠리오스가 말한 '일주일' 전의 그날이었으며 추잡한 오해도 함께 생겼다.

당연한 소리지만 사랑니는 들어갈 기미가 안 보였다. 오히려 전보다 더 드러난 것 같았다. 손가락을 집어넣고 돌출된 이를 꾹꾹 누르며 억지로 넣어도 봤는데 괜히 비명 스택만 더 쌓았다. 그가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들려오는 비명과 고통에 찬 앓이에 아펠리오스는 그의 폭력적인 성적 취향을 진심으로 걱정하기도 했다.

저 소리를 한 주 내내 듣던 아펠리오스가 참다못해 화장실 문을 두드린 것이 바로 오늘이다. 약해진 내벽에 피까지 쏟던 케인이 통증을 추스르고 간신히 문을 열었다. 한 놈은 아파서 제정신이 아니고 다른 한 놈은 감정적으로 흥분했으니 대화가 제대로 될 리가 만무하며, 애초에 둘은 제정신일 때에도 말이 안 통했다. 이미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진 이들의 대화는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다.

"뭐야, 왜 그러는데."

'방에 가서. 네 방에서 해.'

"뭔 소리야, 갑자기?"

'밖에 다 들려. 시끄러워.'

서로 말을 이해 못 했다. 두 사람은 각자의 이유로 답답해 죽으려 했고 결국 말싸움으로 번졌다. 말을 많이 하는 쪽이 불리한 싸움 특성상 케인은 아펠리오스의 무지개 반사 하나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으며 어른이 출동하기 전까지 분쟁을 끝낼 수 없었다. 


다시 현재로 돌아오자. 나머지 넷도 케인이 거울로 들여다본 것과 똑같은 걸 보고 있다. 안 그래도 염증이 생겨 약해진 부분을 억지로 칫솔질해 한쪽 점막이 죄다 까졌다. 신음의 출처는 이것이었냐며 다들 이해하는 눈치인 와중에 아펠리오스는 뒷목을 잡으며 말없이 방으로 들어간다. 고통과 쾌감은 의외로 구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치과 안 가고 뭐 했어?"

"내가 그렇게 한가한 줄 알아? 원래 아파도 티 안 내는 게 프로인······."

"그냥 가기 싫다고 해······."

한 대 쥐어박으니 생각보다 순순히 꼬리를 내린다. 자존심 못 세울 만큼 어지간히도 아팠나 보다. 긍지란 이토록 쉽게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사랑니가 돌출되면서 주변에 염증이 생긴 모양인데 충혈된 정도를 보니 당장 병원에 가는 게 맞다. 안 가겠다고 버틸 거면 차라리 끝까지 버티지, 왜 아플 거 다 아픈 뒤에야 가는지 기가 찰 노릇이다. 누군가 아파서 이 사달이 난 적은 없기 때문에 요네는 제법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듯 했으나 나머지는 마냥 웃긴다. 가만히 바라보던 크산테가 껄껄 웃으며 케인의 머리를 헤집어 둔다.

"머리도 핑-크색이면서 치과 따위를 무서워해서 되나, 응? 케인."

"그거랑 아무 상관 없거든."

"이래서야 귀는 어떻게 뚫었대. 타투는 어떻게 하고?"

케인은 피어싱과 타투 건도 아파서 울었다는 말을 차마 할 수 없다. 치부가 온전히 드러나는 느낌이다. 아직도 쌍칼을 쥐고 있는 요네가 한숨을 푹 쉰다.

"됐고, 케인. 내일 당장 치과 가. 아펠리오스랑 화해 하고."

"아니, 걔가 그런 건 내 잘못이 아닌···, 당장 내일 가라고?"

"알아서 몸 관리하는 것도 프로야."

케인이 질색한다. 가오는 이미 상했으니 마음 놓고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요네가 어떻게 할 수 없어?"

"뭘 어떻게?"

궁을 맞고 메다 꽂혀 바닥에 뒤집혀있던 이즈리얼이 운을 띄운다.

"하나로 뽑고 다른 하나로 봉합하면 되는······."

케인은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이즈리얼을 발로 밀어 소파 밑으로 넣어버린다. 가구 아래에서 킥킥 웃는 소리가 난다. 환장할 노릇이다. 그를 딱히 꺼내줄 생각 없는 크산테가 웃으며 세트를 툭툭 친다.

"아니, 그보다 세트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빨 전문가가 여기 계시잖아."

"아~, 근데 난 옥수수 전공이거든. 무슨 뜻인지 알지?"

그래? 그럼 내가 해 봐도 좋고. 크산테와 세트가 앞에 와서 서니 케인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생긴다. 현실을 자각한 케인이 사색이 된 채로 있으니 둘이 달랜다.

"너무 걱정하지 마, 별거 아니거든. 어릴 때 유치 뽑던 거랑 비슷할걸."

"그래, 그냥 손으로 잡고 쓱 빼면 돼."

크산테가 고목만치 굵은 손가락을 보여준다. 저게 입 안으로 들어왔다간 잇몸째로 뜯길 게 분명하다.

"손으로 잡고 빼겠다고? 사랑니를?"

"어."

"잇몸 속에 파묻혀 있는걸?"

"그럼."

"쌩으로?"

"당연하지."

해탈 직전이다. 얘네는 잇몸 속까지 전부 근육이라 사랑니 날 걱정은 없겠다. 저주라고 한 말인데 어째 두 사람에겐 덕담처럼 들린다.

사실상 케인에겐 선택지가 대폭 늘었다. 요네를 믿든지, 크산테(or 세트)를 믿든지, 아니면 병원에 가든지. 사람이 공포에 질리면 비이성적으로 된다고들 하지만 케인은 원래부터 돌아있었기 때문에 극한의 공포에 내몰려서야 180도 돌아 이성적인 사고를 할 수 있었다. 때문에 거진 '죽기vs죽기vs살기'인 선택지에서 굳이 죽는 길을 택할 까닭은 없다. 다른 이들이야 병원 가길 종용하기 위해 부러 극단적인 의견을 내놓은 것이지만 그보다도 놀리는 맛이 쏠쏠했다.

순식간에 늙은 요네는 피곤한 낯으로 얼굴을 쓸어내린다. 됐고, 해 뜨면 치과에 가라는 게 결론이었다. 케인은 치과에 가서 치료받을 것. 나머지는 멤버한테 관심 좀 가질 것. 그리고 아펠리오스는······, 방 위치 바꾸는 걸 고려해 볼 것. 정문일침이 폐회한다. 


락스타도 치과에 가야 했다면 죽음을 기원하지 않아도 알아서 죽었을 것이다. 다른 환자들 사이에 섞여 대기석에 앉아있는 꼴이 강냉이가 털리고 온 깡패인지 아티스트인지 분간이 안 된다. 직원도 비주얼을 보고 약간 놀란 것 같던데 세트를 17대1이라고 부르며 놀렸던 업보가 그대로 돌아온다. 

의사는 구강 엑스레이 사진을 보여주며 현재 상태를 설명한다. 아랫사랑니가 양쪽에 하나씩 있는데 지금 문제가 되는 건 오른쪽이며 두 개 모두 누워서 났다. 이가 나오면서 어금니 뿌리를 건드는 상황이라 발치해야 하는데 염증이 심해서 오늘은 힘들단다.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모르겠다. 1시간 동안 손톱만 뜯으며 기다리다가 아무런 소득 없이 치과를 나온다. 남은 건 엑스레이 사진과 폐에 가득 찬 치과 냄새다.

"이도 진짜 말 안 듣게 생겼네."

"실제로도 안 들었고."

산송장이 될 줄 알았던 케인이 멀쩡하게 돌아오자 다들 실망한 눈치다. 오늘 잇몸을 쨌다간 피바다를 면치 못하므로 어쩔 수 없는 결정이다. 대신 찍어온 사진을 보여주니 다들 신나서 한마디씩 거든다.  

"얘가 문제인 거지, 지금."

"바짝 누워있네. 빼기 힘들겠는데."

"이런 경우는 여기서 여기까지 들어낸 다음에······."

"여기도 살을 좀 파야지."

"이쪽은 좀 깨부숴야 될 걸."

이 말 대로 수술했다면 케인은 지금 사랑니는커녕 턱뼈째로 사라졌다. 전부 자길 놀리기 위한 헛소리라 최대한 듣지 않으려 하면서도 정말 그런 고문을 당해야 하는지 궁금한 건 어쩔 수 없다. 고민 끝에 진짜? 물으면 모르고 가는 게 좋을걸? 하고 대답이 돌아온다. 울고 싶은 기분이다.

"벌써 겁먹지 마, 야. 안 아픈 사람도 많다잖아."

"근데 그건 이가 똑바로 났을 때 얘기,"

"좀 조용히 해 봐."

이놈들 말을 듣다간 정신이 완전히 나갈 것만 같아서 케인은 구글링의 힘을 빌렸는데, 검색창에 사랑니를 입력하자마자 '사랑니 사망'이 자동완성 되길래 도중에 관뒀다. 그냥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죽음의 5단계라고 있는데 케인은 지금 마지막인 수용의 단계에 있는 것이다.

그간 정신이 없었던 탓에 정확한 정보는 아니지만 발치는 그로부터 이틀 후였다. 치료를 받으니 염증이 놀랍도록 빠르게 가라앉아 예상보다 수술까지 금방이었다. 허탈할 정도로 회복이 빨라서 건강 앞에서는 간살간죽도 의미 없나 싶었다. 케인 딴에는 인생의 큰 깨달음이었다. 누구나 과오를 계기로 성장하는 것이다.

의자에 앉자마자 마취했다. 주삿바늘로 하는 평범한 마취처럼 보였는데 그건······. 그건 그냥 바늘이 아니었다. 얼굴에 천을 덮어두어 보이지는 않았지만 체감상으로, 세트가 뜨개질한다고 가져왔던 대바늘 같은 게 아니었을까 추측한다. 이게 한도 끝도 없이 들어와서 거의 턱이 뚫릴 지경이라 절로 비명이 나왔다.

"아아아아악!!!!"

"다 됐어요~"

발치 과정은 마취 주사를 빼면 아플 게 없다고들 했는데 왜냐하면 나눠서 아플 걸 주사로 한 번에 다 아프기 때문이다. 마취가 들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면 미친 과학자가 쓸 법한 도구들이 준비됐다. 그 후 의사가 와 입을 벌릴 때까지는 아주 찰나였다.

몇 주를 버틴 게 웃길 정도로 수술은 전혀 아프지 않았다. 대신 치과에서 나면 안 되는 소리가 났는데 공사장에서 듣던 소리와 약간 비슷했다. 사랑니 발치는 사실상 의사의 악력과 치아의 깡다구 싸움이었다. 수술 부위가 잘 보이도록 고개를 돌려두었는데 잡아당기는 힘에 목이 자동으로 돌아갔다. 언뜻 주마등이 지나가는 시간이었다. 세트나 크산테가 환자로 오면 의자가 박살나지 않을까? 걔네는 잇몸에도 힘을 줄 수 있을까?

쓸데없는 생각은 곧 아직 살만하단 의미였으며 결국 힘든 건 의사뿐이었다. 전쟁같던 발치가 빠르게 봉합하고 의자를 세워준다. 몸을 일으키고 옆을 보니 낭자한 피 위에 조각난 치아 쪼가리와 채 떨어지지 않은 살점(추정)이 가득했다. 그걸 보니 수술부위에서 피가 울컥 터지는 기분이었다. 의사가 자기 모르는 사이에 어떤 사투를 벌였을 지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케인은 살면서 처음으로 마취를 상용화한 현대 의술에 감사했다. 진심으로.

그러니까, 생각보다 너무 별거 아니었다. 이제 와서는 뭐가 그렇게 무서웠는지 기억나지 않을 지경이다. 유난 떠는 대목은 한바닥인데 막상 치료는 단문인 게 그 실증이다. 본의 아니게 아펠리오스만 최대 피해자가 됐지만 원래 공동생활이 그런 것 아니겠는가. 케인은 쌩쌩한 채로 돌아왔다. 나갈 땐 시체였는데 새사람이 되어 왔다. 동료들은 어이가 없었지만 팀 내 트러블메이커가 있어야 삶이 재밌으므로 그의 회복을 환영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마취가 풀리면서부터는 정말 지옥이었다. 날붙이에 갈리고 안을 채우던 게 빠져나가 너덜너덜해진 잇몸에 지혈용 거즈가 엉겨 붙어 새것으로 교체할 때면 점막이 같이 뜯겨나가는 고통이었다. 출혈이 멈출 때까지 거즈를 물고 있으라고 했는데 멈출 기미가 없었다. 입을 닫고 있으면 수술받은 표면적이 눌려 괴로웠고 열고 있으면 근육이 당기고 지혈이 안 됐다. 다른 치과 치료가 단순히 뼈와 연결된 고통이라면 발치는 치아 뿌리부터 점막조직에서 나온 통증이 턱뼈를 지나 뇌까지 올라오는 고통이었다. 추상적으로 말하면 '어쩔 줄 모르겠는' 고통이다. '통증에 못 이겨 창문을 깨고 사람 뺨을 칠 것 같은 통증'인 셈이었다. 뺨이 눈에 띄게 붓고 열이 났지만 얼음팩은 도움이 안 되었다.

참지 못한 케인이 옷장에 머리를 쾅쾅 박았다. 그걸 보던 이즈리얼이 원래 사람은 고통받으면 폭력성이 나오는지 물었는데, 옆에서 지켜보던 세트와 크산테가 그 말에 지들끼리 어떤 감명을 받은 듯하다. 이즈리얼이 순간적으로 파악한 건데, 그건 운동에 미친 사람들 눈이었다.

고통을 분산시키거나 뭔가에 몰입해서라도 고통을 줄여야 한다면 그들이 내놓을 답은 스파링이다. 자해하는 케인을 끌어다 놓고 머리 박기 대신 주먹질을 시키니 평소엔 관심도 없어 하던 걸 잘만 했다. 케인은 되는 대로 주먹을 휘둘렀으며 세트와 크산테가 양쪽에 서서 그걸 받아줬는데 제삼자가 보기에는 케인이 일방적으로 괴롭힘 당하는 것 같았다. 

"그 자세다, 케인!! 죽일 기세로 덤벼!!"

"무게 중심을 잡아, 주먹 말고 팔 전체를 쓰는 거야!"

와중에 케인이 주먹을 내지르며 뭐라고 말했는데 아무도 알아듣지 못했다. 아마 살려달라는 뜻 아니었을까. 조종당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저들은 자신들의 세계에 너무나 심취해 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던 이즈리얼은 마치 사회적 메시지를 전하는 표현주의 영화의 한 장면 같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세상의 어두운 이면 같기도······. 잠시간 턱을 긁던 이즈리얼은 그들을 두고 방으로 조용히 들어갔다. 방에서 나올 때쯤이면 케인은 록키 마르시아노처럼 되어있을 것이다.

얼마 안 되어 케인은 뻗었다. 상체를 쓰느라 머리로 피가 몰려 상태가 더 나빠졌다. 바닥에 누운 케인을 보며 두 사람은 케인의 빈약한 기초체력을 논의하며 워크아웃 루틴을 고민했다. 그러니까 같이 운동하자 했을 때 왔어야지. 사람을 쓰러뜨린 뒤의 처사로서는 상당히 사악했다. 케인은 욕할 기력마저 주먹에 담았기 때문에 처량하게 저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올려다본 전등에서 내려온 빛줄기가 마치 자길 데리러 온 천사 같았다. 

'사랑니 뽑고 죽었다는 게 이런 의미였나······.'

케인은 끝을 직감했다. 그렇다고 안 아픈 건 아니었다. 궁상떨기가 박차를 가할 즈음 헬스로 마비시켰던 고통이 다시 돌아왔다. 이젠 일어날 힘도 없어 누운 채로 방바닥을 빙글빙글 돌며 바닥을 닦고 다녔는데 완전히 본인 모토처럼 되어가고 있었다. (*케인의 모토: 늘 배고프게 늘 건방지게 / 현재 상태: 밥 못 먹어서 배고프고 아파서 건방짐) 

마침 외출했다가 돌아온 요네가 집에 들어오자마자 온통 걸레질하고 다니는 케인을 목격했다. 이건 또 어떤 종류의 염병인가 싶다가 오늘이 치과 갔다 온 날이라는 사실을 깨닫고는 얘도 지 혼자서 어떤 감명을 받았다. 요네는 어린 인재를 발견한 재산 천억 달러 후원자처럼 케인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로봇청소기마냥 바닥을 쓸고 다니던 케인이 요네의 발치에 멈췄을 때 요네가 나지막이 말했다.

"춤춰라······, 케인."

"춤을 춰, 케인!! 고통을 예술의 혼으로 승화시키는 거다!!"

이 정도가 되어야 한 팀을 책임지는 프로듀서라 할 수 있는가······. 숨죽이고 지켜보던 크산테와 세트가 박수를 쳤다. 요네의 갈(喝)에 정말로 예술혼을 해방한 건지 아니면 드디어 미친 건지는 모르겠지만 케인의 바닥 닦기는 천재적인 브레이킹으로 진화했고 이곳엔 열광의 물결이 흘렀으며 방에 들어간 이즈리얼은 관심이 없었고 아직도 출혈은 안 멈췄다. 사랑니 따위 다들 잊은 지 오래다.

자기 방에 있던 아펠리오스는 드물게 케인의 상태가 궁금하여 밖으로 나오다가 마침 저 상황을 보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조용히 종이 한 장과 펜을 꺼냈는데 내일이 되면 하트스틸은 다섯 명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후 케인의 이가 어떻게 되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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