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백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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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검은 때때로 악몽을 꾼다. 기억나지 않는 세계의, 기억 속에 없는 풍경에,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 그 꿈 속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 서 있다. 그 사람들의 얼굴도, 표정도 기억나지는 않지만 최소한 호의적이진 않다는 건 알 수 있다.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 그렇지만 도망치고 싶지는 않아. 무엇인가 소리치며 앞으로 달려가려고 하면 그런 나
저물지 않는 태양의 노란빛 사이로 붉은 색조가 짙던 하늘이 있었다. 이 곳과 분명 닮았지만 절대 같아질 수는 없는 풍경이 있었다. 그 세계에는 너도 있었고, 나도 있었다. 흘러가지 않는 시간과 변하지 않는 풍경이 있었고, 화려하게 장식된 궁전도 엄숙한 분위기의 성당도 있었다. 강가는 노을빛으로 아름답게 반짝였고 마을은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상점가의 활기로
꿈을 꾸었다. 누군지 모를 한 아이가 나를 올려다 보고 있었다. 말을 걸어봐도 대답하지 않고 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만 있는 그 눈이 나는 왠지 익숙했다. “…정신이 들어?” 컴컴한 어둠뿐이였던 이 세상에 한줄기 소리가 들어찬다. “미…” 그 소리는 서늘한 형태를 가진 것이라서, 순식간의 나의 세계를 흐트러 놓았다. “……!” 감고 있지 않았던 눈을 뜨
그날 먹은 케이크에서는 씁쓰름한 맛이 났다. 디저트의 달콤함은 누구를 위해 만들어진 것일까? 우울함을 달래기 위해? A는 그 이유를 딱히 궁금해했던 적은 없었지만, 오늘은 왠지 그런 것들만 머릿속을 맴돌았다. 두 사람 분의 케이크, 그리고 먹고 있는 사람은 단 한명 뿐. K라고 고의는 아니였을 것이다. 아니, 애초에 인간사라는게 원래 이런 법이다. 그
이제 내일이면 모든 것이 끝난다. K는 국내의 모 유명 극단에 연구생으로 들어가기로 했다. N은 배우분의 소개로 해외 연수를 떠날 것이다. 이별이 그리 길지는 않을 것이다. 언젠가 이 곳에서 다같이 만나기로 약속했고. 또 각자의 꿈을 위해서 노력하는 시간은 분명 즐겁고 빠르게 흘러갈 테니까. 그런데도. ‘좋아해, K.’ 끝까지 전하지 못한 이 한마디
K는 가능성을 기억한다. 기억이 완벽하지는 않다. 선명하게 기억나는 것은 인과율을 비틀기로 결심하게 만든 그 이유뿐. 그러니까 아마 스물 즈음이였을 것이다. 소꿉친구가 죽고 1년여 정도 지난 어느 날 K는 그 세계선을 포기했다. 가능성을 끊어낸다는 것은 이 세계에서 그동안 쌓아온 그 모든 인연을, 추억을, 기억을 없던 일로 만든다는 것. 그리고 그 기억
네 눈동자에 비친 내 모습을 볼 때마다 나는 생각한다. 아, 친구가 될 수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M." "에, 뭐. 뭐라고 했어?" "아까부터 빤히 생각에 잠겨 있길래." 별 생각 없이 걸어오는 친구들의 말 하나하나에도 나는 웃을 수 없다. "나... 나는 괜찮으니까!" "응?" 너를 만난 이후로 나는 꿈을 꾸고 있었다.
H는 때때로 바다에 마음을 뺏긴 사람처럼 굴었다. 바다 아래에 두고 온 과거를 떠올리는걸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는 걸까. 하얀 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파도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그 표정이 왠지 슬퍼 보인다고 M은 생각했다. 물이 넘쳐흐르기 전 이 곳에는 학교가 있었다고 한다. 바다에 잠겨버리지 않았다면 아마 H와 M은 같이 저 고등학교를 다녔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