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몰도시

H는 때때로 바다에 마음을 뺏긴 사람처럼 굴었다. 

바다 아래에 두고 온 과거를 떠올리는걸까, 아니면 다른 누군가를 생각하는 걸까. 하얀 거품이 되어 사라지는 파도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그 표정이 왠지 슬퍼 보인다고 M은 생각했다. 물이 넘쳐흐르기 전 이 곳에는 학교가 있었다고 한다. 바다에 잠겨버리지 않았다면 아마 H와 M은 같이 저 고등학교를 다녔을 것이다. 전 국민이 알아주는 아이돌이였던 H는 어느 날 연예계에서 종적을 감췄다. 그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멤버들 간의 갈등이나 소속사와의 분쟁 등 추측은 무수했지만 그 누구도 진실을 아는 사람은 없었고 M도 그런 사람들 중 하나였다, TV 속 우상(偶像)에게 마음을 빼앗겨 버린 한 소녀. H가 다시 M 앞에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둘은 아이돌과 팬 사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였다.

M은 가끔씩 여름이 자신의 소원을 이루어준 건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혼자만의 여름에 빠져버린 H를 데리고 나올 수 있도록 자신을 이 곳으로 보내주었다고. 그리고 소원이 이루어진 건 아마 H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여름이 끝나지 않는 세계는 현실이라기엔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니까. 부둣가를 걸으며 바라보는 파도는 짙은 푸른색이였다. 저 파도가 이 곳까지 몰려와 이 세상을 모두 푸른색으로 덧칠해갈 때 H는 오랜 꿈에서 깨어날 것이다. H가 그런 결말을 원하지 않을 거라해도, 무대 위에서의 H를 다시 볼 수만 있다면 M은 그것으로 족했다.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보면 어느새 발목까지 물이 차올라 있었다.

누군가의 소원으로 만들어진 끝나지 않는 여름에서, 푸른 빛을 띠고 있지 않은 건 M 혼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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