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키모미] 얼음의 성
구장스 스포 있음. 모미지가 어린 유키카제와 만나는 꿈을 꿉니다. 멘스 아침조 공연 성공 이후 시점즈음. 기력이 딸려서 대충 마무리하느라 급전개.
24.06.23 직성.
발을 헤치고 나아가듯 오로라 사이를 걸었다. 발이 푹푹 빠지는 설원에도 별다른 장비가 없어도 원하는대로 걸을 수 있다. 끝없이 펼쳐진 설원, 저 너머의 얼어붙은 호수와 반짝이는 성채.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아이스링크. 나는 이곳이 어디인지 이미 알고 있다. 언젠가 유키오빠가 보여주겠다고 한, 유키 오빠의 꿈의 장소. 하지만 정작 에스코트를 약속한 유키 오빠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유키 오빠~! 어디 있어~?" 어린 시절처럼 큰 목소리로 유키 오빠를 부르자 돌림노래처럼 내 목소리가 메아리가 되어 들려왔다. 아, 이곳에 있는 건 나랑 유키 오빠 뿐이구나. 그런 확신을 느끼며 한참을 걸었다. 성도, 호수도 금방 도착할 것 같았는데 좀처럼 가까워지지 않았지만 초조한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야 유키 오빠는 늘 환영해주었으니까. 그리고 얼마나 걸었을까. 얼음 호수의 끝자락이 보였을 무렵에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모미지?" 작은 몸, 작은 손, 스케이트를 신고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올려다보는⋯⋯ "유, ⋯⋯키 오빠?"
"진짜 모미지구나." 초등학생즈음일까? 나는 불현듯 이게 꿈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내 모습이 낯설어서인지, 진짜 모미지구나, 하고 중얼거린 뒤에도 조금 머뭇거리는 듯 보였다. 무릎을 구부리며 시선을 맞춘다. 그 시절의 오빠는 내 게 뭐든 할 수 있고, 다정하고 친절한 '오빠'였지만 아직 어렸다는 걸 새삼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어린 아이가 어린 애를 돌보고 있었구나, 조금 쓴웃음이 나왔다. 나에겐 모두 좋은 추억이었지만 유키 오빠는 외롭지 않았을까.
"응, 모미지야. 커다란 동생은 싫어?" 그렇게 물으면 작은 오빠는 고개를 젓고 나를 끌어안았다. "으응⋯⋯." 내가 더 커져버려서, 마주 안으면 안겼다기보단 안았다는 느낌이 컸다. "⋯⋯모미지의 냄새." "아하하, 모미지니까~." 이 시기의 오빠는 허그하는 걸 좋아했었지. 음, 어쩌면 그건 지금도일지도. 우리 집도 스킨십을 자주 하는 편이었는데 작은아버지는 끌어안는 걸 조금 낯간지럽게 생각하는 듯한, 그런 어른이었다. 아버지가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하고 끌어안으면, 형은 낯간지럽게 무슨 포옹이냐고 하시면서도 마주 안아주셨으니 싫어하는 건 아닐테지만. ⋯⋯어쩌면 유키 오빠가 포옹을 좋아하는 건 작은아버지를 닮은 걸까?
"⋯⋯햇님과 우유와 슈마이의 증기같은, 포근한 냄새가 나." "으음~ 자기 전에 슈마이를 먹어서일지도?" 오늘의 슈마이는 오빠와 네타로 군의 합작품이었지. 독특한 색이었지만 맛은 제대로 슈마이여서 모두 웃는 얼굴로 먹는 것을 유키 오빠가 기쁜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는데⋯⋯. 응? "왜그래, 유키 오빠?" 빤히 바라보는 눈동자가 조금 충격받은 것처럼 느껴지는 건 기분탓일까. "⋯⋯." 말없이 뭔가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듯한 눈동자에 "유키 오빠도 슈마이, 좋아하지? 다음에 같이 만들까?" 조심조심 물으면 손을 꼭, 잡은 오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뒤엔 호수 위에 올라갈 수 없는 날 위해 손을 잡고 나란히 앉아 함께 오로라를 구경했다. 방금 전까지 유키 오빠는 스케이트 연습을 하고 있었던 듯 했다. 잘 돌 수 없어서 아버지가 실망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는, 어린 내가 들을 수 없었던 오빠의 이야기. 나는 힘들다는 이야기를 듣고싶었던 걸까? 내게 의지해줬으면 했을까? 아니면. 유키 오빠의 이야기를 듣고 힘들었겠다고 생각해버려서 멋대로 이렇게 상상해버린 걸까. 그 시절의 오빠는 어떻게 생각했을지. 스케이트를 타는 건 즐거웠어? 힘들지는 않아? 스케이트를 보여 달라고 조르던 내가 귀찮지는 않았어?
"유키 오빠, 스케이트 타는 건 즐거워?"
무심코 나온 질문에 유키 오빠가 눈을 깜빡였다. "지금은⋯⋯, 더 잘하고 싶어. 모미지가--." 뭐라고? 미안, 오빠, 목소리가 잘 안 들려. "⋯⋯유키 오빠?"
"⋯⋯주임, 일어났구나." 귓가에 들려온 목소리에 눈을 깜빡인다. 조금은 낮은, 익숙한 목소리. 유키 오빠가 덮어준 걸까? 읽고 있던 책은 테이블 위에 놓여있고 그 대신 담요가 내 무릎을 덮고 있었다. 얼마나 잠들었던 걸까? 담요 고마워, 유키오빠. 깨워주지 그랬어. 어깨 아프지는 않아? 그런, 사과와 감사의 말을 떠올렸을 텐데, "⋯⋯유키 오빠, 스케이트는 즐거워?" 잠에 취한 목소리로 맥없이 중얼거린다. 조금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던 오빠가 부드럽게 미소 짓는다. "아아, 즐거워." 관객들이 기뻐해주는 것도,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그리고 네가⋯⋯. 그 미소에 마음이 놓여, 나는 다시 한 번 밀려오는 졸음에 잠겨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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