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모미] 꽃 한송이를, 친애하는 당신에게
함께한지 시간이 n년 정도 지난 어느 날의 파티.
24.06.23 작성.
여름이 저물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낮에는 여름이 끝나지 않았다 주장하듯 아직 무덥게 느껴졌지만 밤이 되자 밤바람이 제법 시원하게 느껴졌다. 바깥을 달리면 더 시원하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옆에서 들려오는 떠들썩한 소리가 좋아 장의자에 앉아 눈을 감는다. 웃음소리, 화내는 소리, 노랫소리,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 지글거리며 고기가 익는 소리, 유리컵으로 띵동띵동 실로폰을 치고, 인터뷰 흉내를 내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술을 마시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텐데 분위기는 이미 유쾌한 주정뱅이들의 파티다. 작게 웃음을 흘리던 그의 볼에 시원한 감촉이 느껴졌다.
"――주임?" 술기운탓일까? 생각을 말로 다듬어 꺼내는 게 아니라 바람이 흘러나온 것 같았다. 틀렸다면 실례라는 생각에 반박자 늦게 허둥지둥 눈을 뜨면 마음 속으로 떠올린 그 사람이, 그보다 반짝이며 서 있었다. 양손에 캔을 들고서. "후후, 정답. 어떻게 알았어, 나기군?" 아까까지 모두와 술을 마시고 있었던 탓에 모미지의 볼은 엷은 장미빛으로 물들어 있었다. 저 하늘의 수많은 등불이 그를 위해 켜진 것 같았다. 아니, 시선에서 별빛이 그렇게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온화하하다는 건 이런 감각이겠지. 콩콩, 하고싶은 말들이 샘솟 듯이 심장이 뛴다. "⋯⋯여름이 쓰다듬고간 것 같아." 캔을 받아들며 중얼거린 그는 뒤늦게 고맙다는 말을 잊었단 걸 떠올렸다.
"고마워, 주임."
"별말씀을요. 옆자리에 앉아도 될까?"
"얼마든지."
"고마워~."
"별말씀을요." 풋, 시선을 마주친 그가 웃음을 터뜨렸다. 일상적인 말로 이루어진 대화조차 함께일 때면 즐거웠다. "꽃, 고마워 나기 군. 아까도 이야기했었지만 한 번 더 말하고 싶어서." 이 사람의 목소리는 언제나 참 맑게 울리는구나. 소란에 묻히지 않고, 그림자에 가리지 않고 똑바로 전해진다. 그 이면을 재어보며 걱정하는 것 없이 기쁨이 톡톡 꽃망울을 터뜨린다.
"나야말로 늘 고마워, 주임. ⋯⋯꽃, 더 받아줄래? 사실 아직 더 남아있어." 언젠가 마법같다고 기뻐해주었던 날과 같은 표정으로 모미지가 미소짓는다. 그 순간이 그에겐 더 마법처럼 느껴졌다. "언제나 고마워. ⋯⋯왠지 처음 꽃을 받았을 때가 생각나네. 나기 군, 행복해지는 힘이 있다고 장미를 줬었잖아."
응, 고개를 끄덕이며 꽃 줄기를 만지작거리는 손가락을, 다정한 옆얼굴을 본다. 그 때는 이렇게 긴 인연이 되리라고는 상상하지 못 했다. 그저 언제나처럼 자신을 위해 꽃송이를 건넸을 뿐.
"그때 나, 꽃을 받고 기뻤었지만⋯⋯진짜 첫 번째 꽃은 나기 군이 건네준 도움, 이었던 것 같아. 휘말리면 위험해질지도 모르는데 처음보는 사람을 위해 말려줬잖아. 일하는 중이었는데도 뒷자리에 태워줬었지. 그 때, 손 내밀어줘서 고마워, 나기 군." 아니야, 도, 고마워도, 모두 다른 듯한 기분이 들었다. 고마워는 이 기분을 담기엔 부족했고, 아니야, 는 부정하고 싶은게 아니었으니까. 그저 네게 받은 것들이 더 크디는 걸, 지금 이 순간조차도 충만히 채워준다는걸, 어떻게 전해야 좋을까. "그리고, 자. 손, 빌려줄래?" 그리 재촉받아 얼떨결에 내민 손바닥 위에는 종이꽃이 내려앉는다. '렌가 군이 접는 방법을 알려줘서', 하고 쑥스러운 듯 웃는 얼굴을 본다.
"나기 군과 만나서 다행이야, 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어. 이건 고마워요, 의 장미. 나기군에게 받은 행복만큼, 나기군이 행복하기를. ...하하, 나기 군 같은 효험은 없겠지만, 받아줄래?" "⋯⋯아냐, 주임. 이것도 행복의 꽃. ⋯⋯정말 고마워."
――그게 첫 번째 꽃이었다면, 그는 이미 몇 번이고 꽃을 받아왔었다. 이 종이 꽃의 전에, 그 옛날의 네잎클로버의 전에, 몇 번이고, 몇 번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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