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모미] 메리골드와 약속의 날
발주미스 펌프킨즈와 무관한 날조. 할로윈 이벤트에 스태프로 참여한 나기모미
24.10.23 작성. 진행중인 할로윈 이벤트(발주미스 펌프킨즈)와 무관한 날조. 할로윈 이벤트에 스태프로 참여한 나기모미. 이벤트 관련 묘사는 엉성합니다.
잭오랜턴의 인형탈을 벗는다. 곳곳을 장식한 메리골드가 노을 아래 흔들린다. 이벤트는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었다. 손에 과자와 꽃을 든 사람들이 웃으며 손을 흔들거나 사진을 찍는다. 친구의, 가족의, 아이의 손을 잡고, 때로는 모르는 사람들과 장난을 나누며. 밤이 내려도 어둠에 가려지지 않는 행복이, 따스함이 그곳에 있었다. 그 열기가 옮은 것인지 쌀쌀한 늦가을의 저녁 바람이 조금 덥게 느껴졌다. 나기가 준비한 꽃을, 나누어주는 꽃을 받으며 미소 짓는 아이들을 볼 때의 그 기분이란.
‘지원, 해서 다행이다.’ 탈을 끌어안은 손에 힘을 주고서 사람들을 살핀다. 이 충족감을, 감사를 전하고 싶었고, ‘주임, 분명 기뻐하고 있겠지.’ 따스함을 공유하고 싶었다. 스태프 대기소로 가볼까? 아니면 무대 뒤? 주임을 찾자, 그렇게 마음을 정하기도 전에 발이 움직이고 있었다.
부스에는 모미지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대기소에서 그를 맞아준 것은 텐이었다. 핸드폰을 보고 있었을 텐데도 먼저 나기를 발견한 텐이 언제나와 같은 태도로 가볍게 손을 흔든다. “수고했어, 나기. 쉬려고?” “텐 씨도 수고했어. 응, 조금.” 인사를 하며 살펴본 천막 안에는 기대했던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 않고 탈과 꽃만 텐과 함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찾는 사람이라도 있어? 조금 전까지 꽤 있었는데, 다들 열심히네~.”
“주임한테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지금은 일하는 중이다. “……꽃, 내일은 조금 더 가져오는 게 좋을지 확인하고 싶어.” 알고 있었는데도 어쩐지 가슴이 뜨끔해 꽃바구니를 보고 떠올린 용건을 원래 목적이었다는 듯이 말한다. “아―, 주임이라면 사장이랑 통화하러 갔어. 지금은 끝났을지도 모르겠네. 조각상 쪽으로 갔었는데, 가볼래?” 카프카와? 방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감사를 전하고 텐이 알려준 방향으로 걸었다. 내내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던 모미지다. 통화가 끝나고 또 다른 일을 찾아가지는 않았을까? 아직 통화중이라면 방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그 걱정의 소리는 금방 다른 마음의 소리에 밀려 자취를 감추었다. 통화 중이라면 기다리면 되고, 다른 곳으로 갔다면 다른 곳을 찾아보면 된다.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을지도 모르고, ……주임이라면 불쾌해하지 않을 테니까.
자리를 옮겼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달리 모미지는 금방 발견할 수 있었다. 반가움에 주임, 하고 부르려던 말을 삼킨다. 모미지의 통화는 끝난 모양이었지만, 그 곁에는 다른 사람이 서있었기 때문이다. 손님일까? 말을 걸어도 좋을지 고민하던 사이에 여자가 고개를 들었다. 아. 불시에 눈이 마주친 탓인지 조금 심장이 두근거렸다. “아, 나기 군! 마침 잘 됐다. 괜찮으면 조금 도와주지 않을래?” 여자의 손짓을 따라 돌아본 모미지가 조금 심각한 얼굴로 그를 부른다. “응, 주임. 무슨 일이야?” 그 목소리를 허락 삼아서 약간의 술렁임을 무시한 채 두 사람 곁으로 걸음을 옮겼다.
여자는 아이를 찾아왔다고 했다. 통화를 끝내고 돌아가려던 모미지가 다급하게 뛰어오던 그를 발견해 사정을 듣기 시작하던 차였다고. 아이와 함께 오기로 했었는데 일이 있어 늦었다며 미안한 듯 웃는 얼굴이 온화했다. “친구들이랑 먼저 공연을 보고 있을거라고 생각해요. 괜히 오해하게 만들어서 미안해요.” “그런 거였군요. 저야말로 죄송해요. 미아 문제라고 착각해버려서. 나기 군도, 미안.” “아니에요. 내가 오해하게 말했는걸요, 아이를 찾고 있다고 했으니까. 스태프분도 죄송해요.” 끝나고 만날 장소를 정해두었다고 했으니, 어머니를 찾고 있는 아이는 없을 터였다. 그 즐거운 사람들 속에 미아가 있는 게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하며 마음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던 사이, 두 사람의 이야기는 행사장의 장식에서, 들려오는 노래로, 노래에서 안내로 흘러갔다.
“괜찮으시면 안내해드려도 될까요? 다양한 체험 부스를 준비 중이랍니다. 공연을 보고싶으시면 공연장 쪽으로 안내해 드릴게요.”
“…….” 여자는 잠시 침묵하며 모미지와 나기를 번갈아 보았다. 무언가 고민하는 듯 보였던 그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으시면 부스 안내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저, 나중에 이런 부스가 있었다고 아이랑 이야기하고 싶어서.” 긴장한 듯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나기도 모미지도 흔쾌히 수락했기 때문에 세 사람은 자연스럽게 함께 행사장을 돌기 시작했다. 호박 사탕을 만들 수 있는 부스, 잭오랜턴을 만드는 부스……동료들은 반갑게 이 늦은 손님을 맞이했고 손님, 하치 씨도 즐겁게 구경하고 있는 듯 보였다. 간식을 먹고, 체험을 도와주며 돌아다니는 시간은 즐거웠다. 옆에서 모미지가 이야기하는 부스의 취지나 행사와 관련된 정보들을 듣고 있으면 그도 관광객이 된 것 같았다.
“즐겨주시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나기가 아이디어를 냈던 할로윈의 리스를 만드는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며 모미지가 작게 속삭였다. “응. 모두 열심히 준비했었으니까.” 다들 아이디어를 내고, 시간이 맞는 사람들은 스태프로 참여해 일을 거들었다. 의상을 만들거나 프로그램을 고안하던 동료들의 모습이나 협력해준 가게의 직원들을 떠올리면, 이렇게 즐겨주는 건 역시 기쁜 일이었다.
“나기 군 덕분이야.” “……나?” “응. 나기 군을 보고 안심하신 것 같았거든. 왠지 하치 씨와 나기 군의, 음, 분위기가 비슷해서일까?” 그래도 그 말은 와닿지 않았다. 그가 보기에는 하치는 모미지의 이야기를 듣는 게 즐거워 보였으니까. 분위기가 닮았다니 하치에게 실례가 아닐까. 고민하는 사이 모미지의 말이 이어졌다. “아니면 역시 나기 군 곁이 안심이 되는 걸지도. 고마워, 나기 군. 그리고 미안해. 쉬는 중이었을 텐데.” 분명 기쁨과 감사를 전하기 위해 모미지를 찾고 있었는데 계획과 달리 감사를 듣고 있다는 사실이 조금 얼떨떨하고……동시에 함께, 손님을 대접하는 그 기쁨을 공유하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이 멋진 경험을 만드는데 주임과 함께하고 있다는 게 기뻤다. “나야말로, 고마워.” 가고 싶은 곳으로 가도 된다고, 포기하지 않아도 된다고 언제나 부드럽게 등을 밀어주는 말과 약속에 언젠가는 보답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꽃’도 제안해줘서 고마워, 주임.”
“천만에요. 나기 군의 꽃은 멋지니까 좋은 선물이 될거라고 생각했거든. 오늘은 나눠드린 꽃으로 충분할 것 같아?”
“……조금, 부족할 것 같아. 행사가 끝나면 주임에게 꽃을 선물해도 될까? 아, 하지만 그러면 들고 돌아갈 때 곤란할까.”
“전혀 곤란하지 않아. 응, 오늘만이 아니라 언제든지, 모두 받을 테니까.”
“늘, 고마워, 주임.”
“나야말로 항상 고마워, 나기 군. 후후, 이번에는 반대네. 하지만 역시 매번 받기만 하는 건 미안한걸. 아, 오늘의 꽃다발은 내가 사도 될까? 이벤트 성공을 기념해서.”
“그건…….”
바로 답하지 못하고 말문이 막힌 채 모미지를 본다. 언제나처럼 다정하고 곧은 시선이다. 그저 자신을 배려한 말임을 알면서도 그 말에 마음이 술렁여 당혹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침묵한다. 이렇게 동요하고 마는 것은, 야지로베에의 꽃이라서일까? 그렇게까지 폐를 끼치는 게 미안해서?
“나기 군?” 대답할 말을 고르기 전에 다른 손님이 모미지에게 말을 걸어왔다. “실례합니다. 혹시 분실물은 어디로 가면 찾을 수 있을까요?” 부탁한다 말하며 손님과 함께 스태프 부스로 향하는 뒷모습을 보며 작게 한숨을 내쉰다. 그런 나기에게 하치의 시선이 잠시 닿았다 떨어졌다.
“기다려주셔서 고마워요. 저, 모미지 씨는……?” 하치가 완성한 리스를 들고왔을 때에는 공연도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주임은 잠깐 업무 때문에 자리를 비워서, 괜찮으시다면 제가 마저 안내해 드려도 될까요.” 나기의 말을 들은 하치가 잠시 그를 빤히 바라보다가 빙긋 미소 지었다. “구경도 즐거웠지만 그렇네요. 잠깐 쉬지 않을래요?”
공연이 보고싶다면 더 가까이 가도 좋을 텐데. 하치가 자리를 잡은 곳은 객석으로부터도 한참 떨어진 장소였다. 말없이 걷던 그는 무대를 바라보며 조용히 물었다.
“나기 군, 과한 참견이라면 미안해요. 혹시 모미지 씨와 무슨 일 있으셨나요? 나기 군, 분위기가 조금 이상했던 것 같아서.”
“아뇨, 주임은 아무것도……. 그냥, 조금, 생각할 게 있어서.”
“그렇군요. 안내해준 보답이라기엔 부족하지만 괜찮다면 나한테 말해보면 어때요?”
“하치 씨에게요?”
“네. 다른 사람에게 말하면 답이 보이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그 빙긋 미소 짓는 얼굴이나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낯선 사람인데도 편하게 느껴졌다. “저는 플라워 런드리라는 꽃집 겸 세탁소를 하고 있는데…….” 더듬더듬 이야기를 이어가는 동안 하치는 고개를 끄덕이거나 맞장구를 치며 가만히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야지로베에 이론에 대해서는 이야기할 수 없으니 꽃을 선물하고 있는데 모미지가 받아주어서 기쁘다던가, 꽃을 사주는 것은 기쁜 일인데도 이번 꽃다발을 사고싶다고 이야기했을 때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는, 애매모호한 이야기였을 뿐이다. 폐가 되니까, 미안해서, 그런 이유도 분명 있겠지. 하지만 하치에게 말하며 돌아본 마음은 그것보다 어린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그저 꽃을 받아주겠다는 약속이 이미 나기의 일상이 되어 그 배려에 쓸쓸해진 것뿐이다. 모미지에게 꽃을 선물할 수 있는 ‘특별’한 약속을 거래로 바꾸고 싶지 않았다. ‘서운했던……걸까.’ 이야기를 들은 하치는 그저 말없이 나기를 보았다. 그 회색 눈동자가 무척 다정하게 반짝여 부끄러운 기분이 든다. ‘하치 씨는 주임을 닮았구나.’ 전혀 다른 생김새의 두사람에게 비슷한 결을 찾아내 익숙한 조각은 이거였다며 감탄하는 사이, 곡은 클라이막스를 달려가고 있었다.
“멋진 조언을 주지 못해 미안해요.”
“아니에요. 들어주신 덕분에 답이 보인 것 같아요.”
“다행이네요. 그럼 그걸 모미지 씨한테 이야기하러 가면 되겠구나.”
“네?”
“정말 즐거웠어, 지금까지 안내해 줘서 고마워. 소중한 사람일수록 빨리 전해야 해. 오늘이라는 멋진 날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까.”
“하지만 안내를”
“충분해. 나는 먼저 약속장소로 가서 기다리면 되니까. 자, 어서.”
머뭇거리는 사이 등을 미는 손길에 떠밀려 걸음을 내딛는다. 그 한 걸음이 다시 어디로든 갈 수 있는 용기를 나기에게 돌려주었다. “후후.” 그걸 꿰뚫어 본 듯이 하치가 미소 짓는다. “모미지 씨에게도 감사하다고 전해주세요.”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하마 나이스 트립.”
“하마 나이스 트립!”
하치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를. 아이와 함께 하던 가족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자신의 아이를 만난 그를 상상한다. 미소는 떠오르는데 아이의 모습은 잘 상상이 되지 않았다. 하치를 닮았을까. 마음은 모미지를 향해 달려가면서도 괜히 머뭇거리게 되는 걸음을 눈치챈 것처럼 등 뒤에서 질문이 들려왔다.
“나기, 지금 행복하니?” 그는 다정히 웃고 있었다.
“……네, 무척.” 갑자기 불어온 바람에 반사적으로 눈을 감았다. “다행이야.” 깜빡임 사이, 다정한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을 때는 하치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어쩐지 신비한 사람이었어.’ 인상이 옅은 사람은 아니었는데 헤어지고 나니 떠오르는 건 다정한 미소나 상냥함 같은 어렴풋한 것들 뿐이었다. 하치라는 것은 성이었겠지. 그리고보니 함께 찍었던 사진도 주지 못했다는 게 떠올랐다. “…….” 방송을 부탁해봐야할지 고민하며 열어본 파일은 하치와 함께 찍은 것들만 흔들리고 깨져 제대로 알 수 없었다. 분명 찍을 때는 제대로 찍었을텐데. 방금 전까지 시원하게 느껴졌던 바람이 퍽 서늘했다. 알 수 없는 한기에 나기가 팔을 감싸안았을 때, 톡톡 누군가 어깨를 두드렸다. "나기 군, 하치 씨는?"
“…….!!” 화들짝 놀라 돌아본 곳에는 마찬가지로 깜짝 놀란 표정의 모미지가 꽃을 들고 서있었다.
“주……임?”
“미, 미안. 놀랐어? 나기 군이 혼자 서있는 게 보여서.”
“아니, 괜찮아. 하치 씨는 돌아가셨어.”
“그렇구나. 꽃, 받아가셨으면 좋았을텐데. 오늘, 즐겨주셨을까.” 오렌지색의 메리골드를 들고 중얼거리는 모미지가 정말 아쉬워보였다. 그 모습을 보자 한기와 두근거림은 잦아들고 다정하던 그의 미소가 떠오른다. “……응, 분명. 주임한테도 고맙다고 전해달라고 하셨어.” 어쩌면 깨진 사진이 오늘의 불행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비록 형태로 남기지는 못했더라도 함께 기억할 사람이 있으니 괜찮으리라.
“정말? 다행이야. 자, 그럼 자리로 돌아갈까? 곧 공연도 곧 끝날테니까.” 앞서 걷는 등을 쫓아 걸음을 내딛는다. 붙잡은 손의 온기가 어쩐지 무척 뜨겁게 느껴졌다.
“주임, 오늘의 꽃, 말이지만.”
“응?”
“주임이 꽃이 필요할 때 플라워 란드리를 찾아준다면 기쁠 거야. 하지만 주임에게 줄 야지로베에의 꽃은, 내가 선물하게 해줄래?”
주임에게 꽃을 선물하고 싶다. 만약 야지로베에의 꽃이 충분하더라도. 동그래진 눈으로 나기를 보던 모미지가 곧 꽃이 피어나듯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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