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모미] 그저 너와 나누고 싶어서
나기 구장스 약 스포
24.09.29 작성. 나기 구장스 약 스포.
"여보세요, 주임. 나인데, 아, 나야나 사기가 아니라 하치노야 나기,입니다."
풋 웃음이 나왔다. 이제는 익숙해진 동료의 목소리도 전화기 너머로 들으니 조금 색다르게 느껴졌다. 평소보다 조금 낮게 들려온다고 해야할까, 그래도 듣고 있으면 침착해지는 특유의 분위기가 있어 발신자가 발신자인지라 갑작스러운 전화에 생겨났던 불안이 녹아내리는 듯했다. "응, 안녕 나기 군. 무슨 일이야?" 자연스레 웃음기가 서린 목소리에 작게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온다.
"식사는 잘 했어?"
"--응. 요리가 전혀 다른 걸로 바뀌어나오거나 음료를 미네모리 씨에게 쏟거나 하는 일 없이 잘 끝났어. 갑자기 정전이 되거나 전등이 떨어져서 아드님을 곤란하게 만드는 일도 없었고." 일어나지 않은 일이었지만 이어진 불길한 가정들을 들으면 조금 쓴웃음이 나왔다. 이야기한 것보다 더 많은 상상을 했겠지. 걱정이 너무 많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평생 체질에 휘둘리며 살아온 그다. "또, 같이 식사하자고 말해주셨어." "그렇구나, 잘 됐다. 나기 군, 기대했었잖아." 그동안 쌓였을 행복을 나누기 위해서 평소보다 많은 꽃을 받았다. 그래도 특별한 하루였던 만큼 소소한 트러블이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그저 그의 기쁨을 함께 하고 싶었다.
"고마워, 모두 주임 덕분이야."
"나는 꽃을 받았을 뿐인걸. 즐거웠다면 나기 군과 미네모리씨 덕분이지."
"꽃을 받아줬잖아. 그리고 주임이 꽃을 받아줄테니까 다녀와도 된다고 말해줬으니까. 언제나 고마워, 주임." 지인에게 기쁜 일이 있어 식사에 초대받았다고 말하던 나기가 떠올랐다. 좀처럼 자신의 바람을 이야기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그가, 폐를 끼치게 될지도 모르지만 가고싶다 말하는게 기뻤다. 준비가 필요하면 돕고, 꽃을 나눠줄 사람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받겠다는 일상적인 이야기. 모미지는 꽃과 행복을 함께 받았을 뿐이니 역시 자신이 아니라 용기낸 나기의 덕일테지만, 그 목소리에 서린 기쁨은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천만에요. 나야말로 늘 고마워, 나기 군. 나도 나기 군에게 받은 꽃 덕분에 기분 좋은 하루를 보낼 수 있었어." 선물받은 꽃은 생생한 빛깔을 뽐내며 다정한 향기로 아침의 나른함과 일이 끝난 뒤의 피로를 위로해주었다. 하늘은 맑았고, 오늘 본 영화는 무척 감동적이었다. 무엇보다, 나기가 기쁜 하루를 보냈으니까. 그래도 돌아와 얼굴을 보고 나눌 수 있는 이야기를 이렇게 전화로 들려주는 이유는 무엇일까. 즐거운 하루였기에 생긴 불안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뒤늦게 고개를 든다.
"나기 군, 혹시 꽃을 나눠주는 중이야? 나도 그쪽으로 갈까?"
"아……아니야, 주임. 돌아가는 길이었어."
짐작이 틀렸을까? 당황한 듯한 반응과 함께 잠깐 침묵이 이어졌다.
"그냥, 주임에게 이야기하고 싶어져서. 폐였을까?"
"아냐, 전화해줘서 기뻐. 헛스윙해버렸구나, 부끄럽네. 꽃은 오늘은 괜찮을 것 같아?"
"……오늘도 받아주면 감사합니다."
"응, 알았어."
조금 우물쭈물 이어진 말은 아직 무언가 고민하고 있는 듯했다. 왜그래, 하고 물어보아야할지 나기가 직접 말해주기를 기다려야할지를 고민하는 사이 침묵이 이어졌다. 바람에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섞여 훌륭한 가을의 음악이 이어진다. 조금은 걱정되던 침묵도 그걸 함께 듣는 사이에 편안해져 웃고 만다.
"멋진 밤이네."
"그렇네. 가을이라는 느낌. 하늘도 평소보다 별이 잘 보이는 것 같아. 주임도 보고 있어?"
"음~ 방에서는 역시 잘 안 보이네. 나기 군이 보고 있는 풍경을 알려줄래?"
실내복 위에 가디건을 걸치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내가?" "응. 부탁해도 될까?" "……낙엽이 떨어져있어. 삼색 고양이 인형 주변으로 쓸어져 있어서 고양이가 낙엽위에서 장난치는 것 같아." 삼색고양이 인형이라면 새로 생긴 펫 용품샵일까. 거리가 가까워 오고가면서 정이 든 사람들이 각자의 애칭으로 그 고양이를 부르게 되었다. "아직 파릇파릇한 잎사귀가 많지만 곧 예쁜 빨간색으로 물들겠지. 은행나무가 있는 쪽은 벌써 은행이 떨어지기 시작한 모양이야. 비가 왔어서 그럴까." 근처였구나. 조곤조곤한 목소리를 들으며 테라스로 향한다. "솔방울이랑 도토리도 철을 맞았나봐. 가을 리스를 사갔던 꼬마 손님이 산에서 모양이 특이하게 생긴걸 주웠다고 솔방울을 선물로 줬었어. 아, 사진 있는데, 주임도 볼래?" "보고싶어!" "지금 보낼게." 알람을 열고 들어가면 꼭 새우튀김처럼 생긴 솔방울이 보인다. "아하하, 새우튀김 같다~." 느낀 감상을 솔직하게 전하고 "그렇지? 시범용 리스로 같이 장식중." 뿌듯해하는 나기의 표정을 상상한다.
"계속 하늘을 봤더니 처음보다 별이 반짝거리는 것, 앗."
"나기 군, 괜찮아?!"
쿵, 하는 소리가 들려와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다고 보이는 것도 아닌데 허둥지둥 테라스로 나가 아래를 내려다본다. 역시나 나기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모미지를 반겨주는 것은 쌀쌀한 바람과 가을의 공기. "괜찮아, 핸드폰은 무사해." "핸드폰이 아니라 나기 군은?" "나도, 괜찮아. 전봇대에 부딪혔을 뿐이니까. 다치지 않았어." "다치지 않았다면 다행이지만, 미안해. 설명같은 걸 부탁해서." 안심해 난간을 붙잡은 채 한숨을 내쉰다. 서늘한 감촉이 놀란 마음과 같이 느껴진다. 다치지 않았다니 다행이지만 조마조마하고 두근거리는 감각이 사라지지 않았다. "주임 탓이 아니야. 오히려 이정도 트러블은 있는 편이 안심되고." "나기 군~." "미안, 하늘이 아름다워서 들떴나봐. 지금부터는 똑바로 앞을 보고 걸을게." "응, 그게 좋겠다. 조심해서 와, 기다릴테니까." 걱정되는 마음에 나오려는 잔소리를 누르고 나기의 마음을 사로잡았다는 하늘을 눈에 담는다. 구름 한점 없이 맑게 개인 하늘에 토끼까지 보일듯이 밝은 달이 보였다.
그 뒤로도 자잘한 사고가 이어졌다. 모습을 볼 수 없으니 동료로서는 실례일테지만 아이를 강가에 내놓은 기분이 되어 하늘보다는 길을 보게 되었다. 가로등 밝혀진 모퉁이에서 나기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며, 그 모습이 너덜너덜해져 있지 않기를 빈다. 괜찮다는 말을 신뢰했지만, 응, 나기 군의 자기진단은 기준이 좀더 느슨하니까……. 그래도 그 목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놓이니 신기한 일이다. 서로의 하루를 묻고 답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에 모미지에게도 나기같은 사람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켜진 하마하우스를 보면 왠지 걸음이 가벼워져. 주임, 지금도 창 밖을 보고 있어? 나도 보일까."
"음~ 내 방에서는 무리려나, 위치가 위치고."
"역시 그렇구나. ……그럼, 도착하면 바로 꽃을 들고 주임의 방으로 가도 될까?"
"물론이야. 그 전에 나기 군, 위에 봐줄래?"
"위?"
이끌려 고개를 든 나기에게 손을 흔든다. "어서와, 나기 군!" 놀랐는지 한참을 굳어있던 나기가 조심조심 손을 들었다가 힘차게 마주 흔드는 모습을 본다. "다녀왔어, 주임." 같은 표정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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