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미지른 때때로 NCP

[텐모미] 아침이 온 자리에 남은 것은

가을 밤, 창문을 두드리는 것은 생존 IF의 후일담

책갈피 by 레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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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19작성

1. 가을 밤, 창문을 두드리는 것은 ( ) : 텐의 사망 혹은 유혈 소재(취향으로 선택가능)

2. 아침이 온 자리에 남은 것은 ( ) : ⬆의 생존IF 후일담 (현재 글)

3. 눈동자에 비치는 것은

(1~2) ( ) : ⬆ 이후 사귀지 않고 결혼한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하마사키 텐'이 된 텐과 모미지의..... IF입니다. 1도 이걸로 끝! 이라고 생각하면서 쓴 이야기고 2도 정규 후일담이라기보단 생존 IF 후일담이라서 취사선택해주시면 되어요. 멋진 썰을 나누어주신 M님 감사드려요!

지긋지긋할 정도로 잘 알고 있었다. 인생에 원하는 엔딩의 선택권은 없다는 것쯤은.

세상은 언제나 그의 의사와 무관하게 흘러갔다. 마지막 선택조차 그의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물먹은 솜처럼 무겁고 무딘 몸, 그를 배제한 채 흘러간 의사와 모미지의 대화. 운이 좋았니 어쩌니 하는 이야기를 듣는 모미지의 얼굴은 보이지 않았다. 다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네, 하고 대답하던 목소리는 무언가를 억눌러 참는 듯한 약한 떨림을 품고 있었다. 살아남아버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긋지긋했다. 눈을 뜨고 처음 보았던 풍경도, 그 뒷모습도.

"⋯⋯." 의사가 나가고도 모미지는 자리에 선 채로 말 없이 한참을 문을 바라보았다. 그 침묵 속에 텐은 굳이 입을 열지 않았다. 그것이 어떤 감정의 표현이든 그래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의사선생님 말씀, 다 들었지?" 돌아선 그는 그대로 익숙한 듯이 간병인 침대에 앉았다. "텐 군. 들었지?" 대답을 재촉하는 목소리가 딱딱하다. 그 견디는 듯한 뒷모습이 참아낸 것이 눈물이 아니라 분노였던 모양이지. 아무리 사람이 좋은 주임이라 해도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었어." "⋯⋯그럼 됐어." 아직도 이곳에 있는 걸 보면 여전히 정신은 덜 차린 모양이었지만.

"왜⋯⋯" 죽고싶어 한 행동이 아니었으나 잘못된 자리에 있는 듯이 답답하고 나른했다. 매달리고 밀어내며 애원의 말을 하던 목소리. 그 밤의 일이 환상같았다, 정말 환상이었더라면 텐도 그도 이 자리에 없었을 테지만. "왜, 그런 거야?" "글쎄." 그때의 기분은 이미 손 끝사이로 흩어져 무딘 손가락으로는 잡을 수 없었다. 잡고 싶지도 않았다, 결국 그것이 마지막 문장일 수 없었던 이상엔.

"진지하게 대답해, 텐 군."

"⋯⋯나, 피곤한데요."

"잠깐 이야기하는 정도는 괜찮다고 하셨어. 나한테 그정도는 물어볼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데." 

권리, 를 이야기하는 눈동자가 분노로 형형했다. 언젠가 청소년들을 감싸고 서서 그를 괴롭히던 불한당에게 맞서던 것처럼, 막아내야하는 악당이라도 있는 것처럼, 우스운 일이다. 처음부터 그런 눈으로 그를 밀어내었더라면 겪지 않았을 재난들인데. "문을 연 건 주임이었잖아." "그래서 내 탓이라는 거야?" "고양이나 개도 아니고, 남자를 함부로 방에 들이니까 그런 일이 생기는 거예요." '나도 텐 군이 아니었으면 안 했어.' 그렇게 말했지만 이 여자는 언제나 그런 사람이었다. 꽃을 든 청년도, 책과 노트를 품에 안은 청년도, 영화를 든 소년도, 그 자신조차도 방에 들여버리는. 그의 말대로 갑자기 연을 끊은 동료따위 잊어버렸다면 좋았을 것이다. 눈치채지 못하거나, 열어주지 않았다면 그대로 끝났을 일을, 최악의 선택지들만을 골라 만들어진 자리.

"――그럼 오지 말았어야지!" 검은 머리칼이 커튼처럼 얼굴을 가렸다. "⋯⋯."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침대 가장자리를 잡고 있는 손이 떨리는 것을 구경이라도 하는 듯이 바라보며 지금껏 맞이했던 끝들을 떠올린다. 상대가 돌아서거나, 내가 돌아서거나, 지나온 시간보다 많은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 그런 창 너머의 망령따위는 잊어버리게 될 터였다. 지금이라도 알았다면 나가면 돼, 서로 내딛었던 무책임한 걸음같은 건 잊어버리고, 떠안기에 무거운 것들은 버려버리고서. 그러나 여자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나가는 대신 텐의 손을 붙잡았다. 기도하듯 붙잡은 손 위로, 둥근 이마가 내려앉는다.

막 눈을 떴을 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손을 잡은 채 엎드려 잠들어있던 여자를 보았던 순간으로.

"왜, 도와달라고 하지 않았어?" 뜨거운 것이 손등을 적신다. 잔뜩 떨리는 목소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해 그에게 묻고 있었다. 도와줬으면 한 게 아니었으니까.

"왜, 필요 없다고 한 거야?" 정말로 필요없었거든.

"왜, 왜, 왜, 부르게 해주지 않은 거야⋯⋯." ⋯⋯방해받아버릴테니까. 죽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아슬아슬한 외줄 위에서 이번에야말로 떨어져버렸다는 것을 알았다. 누구도 찾지 못할 곳으로 가자. 이 마지막만큼은 나만의 것으로 하자고 정했을텐데. "⋯⋯차라리 도와달라고 말 해! 그렇게, 갑자기 사라져서, 갑자기 나타나더니, ⋯⋯죽어버리지 말아줘⋯⋯." 정신을 차려보남은 것은 앞으로도 살아가야할 지난한 삶과, "⋯⋯주임, 혹시 울어요? 성가시게⋯⋯." 환자를 두고 흐느끼는 성가신 사람.

몸은 무겁고, 얹어진 무게는 그가 짊어지기엔 버겁다. 잡힌 손의 감각은 무뎌서, 눈물의 감촉은 손을 타고 흘러내린다. "⋯⋯안 울었어." "고집쟁이 같으니." 눈물을 닦기 위해 손을 빼려하자 절대 놓지 않겠다는 것처럼 힘이 강해진다. "최악이네, 정말." 중얼거리며 손을 빼내는 것을 포기하고 마주잡는다.

분명 최악이었다, 당신도, 나도. 그럼에도 더는 잡힌 손을 뺄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럼 도와줘요. 책임 져요, 마지막까지." 다음 순간에는 이 말을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는데 머릿 속에는 그날 밤, 바닥에 깔린 붉은 낙엽이 떠올랐다. 커튼이 열리고 보였던 얼빠진 표정이, 밀어내고 애원하던 목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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