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히카] 잠 못 드는 밤
트친님 리퀘스트
FF14 에스티니앙 BL 연인드림 연성입니다.
드림에 예민하신 분들은 뒤로가기 꾸욱!
트친(ㅊ)님 리퀘스트로 작업했습니다.
공백 미포함 2000자 정도 되는 짧은 글입니다.
잠들지 못하는 에스티니앙을 드림주가 안고 자장가로 재우는 일종의 일상물
잠 못 드는 밤
copyright by. Mer
유달리 그런 날이 있다. 몸은 피로하여 잠을 요구하는데 정신은 말짱해서 눈이 감겨도 잠이 오지 않는 그런 날. 오랜만에 샬레I의 집으로 온 에스티니앙에게는 오늘이 유독 그런 날에 속했다. 사룡의 그림자에 짓눌려서 잠이 오지 않던 시절과는 다른 느낌. 옆에서는 제 연인이자, 이제는 언약을 한 반려이기도 한 I이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깊게 잠들어 있었다. 평소라면 그의 숨소리나 온기를 느끼며 저도 잠에 들었을 터인데 오늘은 유독 잠이 오지 않는다. 잠자리가 낯설어서라고 하기에는 이곳은 두 사람이 함께 사는 두 신혼집 중 하나. 평소에는 라자한의 집에서 머문다고 해도 이곳에서도 비교적 꽤 머무는 편에 속했기에 낯설음과는 거리가 있었다. 불과 어제만 해도 이곳에서 잠을 잘만 자지 않았던가? 정말이지 알 수 없는 일이라며 바람이라도 쐴까 싶어 몸을 일으킨 그때였다.
“……에스티니앙?”
“이런, 깨웠냐. ……더 자라.”
“몇 시…….”
“아직 한밤중이야. 더 자라.”
깊게 자는 줄 알았던 I이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아무래도 그 지척에서 부스럭거리고 있으면 깰 수밖에 없나. 잠이 오지 않더라도 가만히 누워있을 걸 그랬다고, 괜히 후회하며 에스티니앙은 I의 두 눈을 손바닥으로 가렸다. 더 자래도. ……너는? 글쎄. 바람 좀 쐬다가 들어오려고 한다. 이 시간에? 아무래도 잠이 오질 않는 듯 해서 말이야. 잘 자던 사람에게 상대해 달라고 할 생각이 없으니 다시 잠이나 자라. 금방 올 거다. 머리를 톡톡 쓰다듬는 무심한 손길.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 올려 에스티니앙을 바라보던 I은 그대로 눈을 감고 도로 잠에 빠졌다. 그제야 에스티니앙은 안심한 눈치로 대충 겉옷을 챙겨 입고 집 밖을 나설 수 있었다.
*
“북해의 오밤중은 생각보다 춥군.”
이 야심한 시각에 나올 일이 흔해야 말이지. 자조하듯 웃으며 조용히 주택가를 벗어나와 에테라이트 광장을 지나친 그는, 이 시간에도 출입하는 인원과 물자를 관리하느라 불이 환하게 켜져 있는 항구로 향했다. 종말이 지나간 이후에도 여전히 일은 많은지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조달꾼들과 짐을 나르는 뱃사람들, 그리고 입국 절차를 밟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훑듯이 지켜보던 그는 기지개와 함께 왔던 길을 되짚어 집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정말 순수하게 잠이 오지 않아 바람을 쐬러 온 것은 맞았지만, 이런 활기를 눈에 담고 싶었던 것은 아니기에……. 나름 평화로움의 상징이라면 상징이겠지만 지금의 그에게 필요한 광경은 아니었다. 실상 밖에 나온 지는 십여 분이 채 지나지 않았을 터이지만 금방 돌아간다 했으니 들어가는 것이 맞겠지. 부디 I이 잠에서 더 깨지 않고 깊게 잠들어있기를 바라며 그는 바지런히 집으로 향하는 것이었다. 그러던 중 문득 눈에 담은 밤하늘은 제법 평화롭고 아름답다고, 너와 함께 봤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
에스티니앙이 다시금 집에 돌아왔을 때, 다행이도 I은 깨지 않고, 자신이 나가기 전의 모습 그대로 곤히 자고 있었다. 말없이 나갔다 돌아온 것도 아니고 잠깐 깨어났을 때 나갔다 온다고 했으니 그가 자리에 없어도 크게 당황하지 않았으리라고 생각하지만, 혹시 또 모르는 일이었다. 그는 I을 당황시킬 생각은 전혀 없었기에 안심한 눈치로 겉옷을 벗어 던지고 침대에 다시 누웠다. 이불을 들추고 몸을 뉘이면서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I이 다시금 눈을 뜬 모양이었다.
“……에스, 티니앙…….”
“잠귀가 그렇게 예민해서야……. 더 자라.”
“……너는 잠이, 안 온다며…….”
아까와는 다르게 이번에는 정신까지 깨어난 듯 제법 또랑한 눈동자를 하고 이쪽을 바라보는 시선에 에스티니앙은 이거 텄군. 완전히 깨워버렸나…….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침대 헤드보드에 반쯤 몸을 기댄 채 더 자라고 머리를 쓱쓱 쓰다듬으면, 하지 말라는 짜증 섞인 시선이 되돌아온다. 역시 잠에서 덜 깬 듯 싶은 얼굴에 가볍게 이마에 입을 맞추고 연신 자라고 도닥이면 이쪽으로 몸을 돌려 눕는 I이 눈에 들어온다.
“더 자래도?”
“네가 못 자는데, 내가 어떻게 더 자.”
“사룡 때문은 아니야. 걱정할 것은 없다.”
“알아.”
내가 그 정도도 구분 못하는 줄 알아? 이리 와, 바보. 이쪽으로 뻗어지는 팔에 얌전히 품에 안겨졌다. 토닥토닥 느릿하게 등을 두드리는 손길에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자신이 어린애냐고 한소리를 하려던 그때였다.
“─♪♬”
“…….”
희미하게 멜로디가 I의 입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해, 에스티니앙은 입을 꾹 다물었다. 에스티니앙도 익히 알고 있는 노랫자락이었다. 커르다스에서 구전으로 내려오는 자장가. 어머니가 잠투정하는 어린아이를 상대로 부를 법한 그 노랫소리를 제 반쪽에게서 듣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지만, 어째서인지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정말로 이상한 것은 조금 전까지 전혀 올 것 같지 않았던 잠이 이제는 쏟아지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저는 이런 거로 잠에 드는 어린애가 아닌데, 라는 생각을 하며 에스티니앙은 I의 품 안에서 눈을 감았다.
* * *
“……정말로 바보네.”
잠이 오지 않을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여기에 있는데, 굳이 멀리 밖에서 바람을 쐬고 오겠다는 소리나 하던 제 파트너의 잠든 모습을 가만히 내려다보던 I도 이내 품안의 에스티니앙을 고쳐 안은 채 눈을 감았다. 조용하고 평온한 밤은 그렇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다음날 눈을 뜬 에스티니앙이 저는 그렇게까지 어린애가 아니라는 둥의 소리를 하기는 했지만 그 이후에도 종종 잠이 오지 않을 때면 I에게 찾아와 자장가를 들으며 잠에 들곤 했다는 사실은 어디까지나 I만이 아는 일일 것이다….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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