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MA 탑 공략 전문팀 - BABEL
"-그래서, 아예 본부에서 '탑' 공략 전문팀을 꾸리겠다고 결론을 내린 모양이에요."
ISMA 미국 지부의 대회의실. 레온타인이 말을 마치자 회의실 내부는 앓는 소리로 가득찼다.
"결국 또 사람 빼가겠다는 말 아니야."
"지금까지는 확실하지도 않은 거 하지 말라고 말렸는데, 아예 본부에서 공략팀까지 만들어 버리면... 댈 핑계도 없다고."
ISMA의 미국 지부는 여러 사건으로 특히 인력이 부족한 곳이었다. 중장년층의 비율이 극도로 적고, 그나마 젊은 피를 마구 굴려 균열 처리나 간신히 하는 수준.
그런 미국 지부는 최근 한 달 간, 전에 없는 대위기를 맞았다. 한 달 전 중립국에 등장한 '탑' 때문이었다. 마치 100년 전 첫 균열이 나타나던 날을 연상 시키던 혼돈 속에서 솟아난 탑은 그 자체로 학자들과 헌터들의 이목을 끌었다. 창과 각성자와 '법칙'이 존재하는 법칙의 시대, 이 시대에 갑자기 생긴 '정체불명의 탑'은 두려움보다 큰 매력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 '탑'이 새로운 것들을 가득 품고 있는, '공략 가능'한 대상일 경우에는 더더욱.
특히나 끓어오르는 젊은 피가 가득한 미국 지부에서 '탑'에 관심 가지는 헌터의 수가 적을리 없었다. 저도 '탑'을 공략하고 한몫 챙기러 가겠다며 나가려는 공무원들을 붙들어 놓느라 얼마나 진땀 뺐는지. 지금까지는 무엇 하나 확실한 것 없는 곳이다, 혼자 가면 위험하다, 괜히 기업들 싸움에 말려든다는 핑계로 말려왔지만, 이제는 ISMA 본부에서 나서 버렸다. 아주 번듯한 명분과 뒷배가 생겨 버리는 것이다.
"...캠페인이라도 준비할까? 나라에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이런 거?"
지부장까지 드물게 힘이 빠진 목소리로 헛웃음을 지었다. 왜 거기엔 '탑' 같은 게 나와가지고 우리 지부를 또 이렇게 괴롭게 하나. 이러다가 공무원 헌터 과로사 1위 국가 타이틀을 거머쥘 것 같다는 위기감이 들었다.
"하하, 좋은데요. 저희 팀장님 앞세워서 선전이라도 하시죠."
"그래, 그래, 이럴 때 나서야지, S팀장님."
"아, 코르니스씨, 믿습니다. 부탁합니다."
"아르마씨가 미국의 희망이다."
평소라면 개소리라며 넘겼을 지부장의 말에, 퀭한 눈을 한 레온타인과 팀장들이 영혼 없이 한 마디씩 덧붙였다. 아르마가 얼굴 팔리는 일을 싫어한다는 것도 알고, 지금 선전을 해봤자 탑 공략팀이라는 이슈에 묻힐 게 뻔하지만.
"헛소리하지 말고 일할 생각이나 하십시오."
그걸 모르지 않는 아르마는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이런 한담을 나누고 있는 사이에도 일은 쌓여 가고 있었다. 전보다 더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래... 더 보고할 사항 없지?"
"네. 끝이에요."
"해산하자. 가서 일해, 일."
결국 지부장도 비서의 눈총을 견디지 못하고 회의 종료를 선언했다. 각자 할 일이 태산처럼 쌓인 팀장들도 군말 없이 일어설 수밖에 없었다. 나름 각성자라는 사람들과 비각성자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좀비처럼 비척대며 회의실을 나서는 꼴이 장관이었다.
아르마와 레온타인도 예외는 없었다. 두 사람도 좀비 행렬의 좀비로서, 평소보다 퀭한 안색과 무거운 발걸음으로 회의실을 나섰다. 그리고 복도로 나서자 마자 그들의 좀비 바이러스 같은 존재를 맞닥뜨려야 했다.
"벌써 모집 공고 싹 다 돌렸나 보네요. 정말 쓰잘데기 없이 빠르기도 하지..."
"확실히 '탑'에 뭐가 많긴 한가 보지. 본부에서 저렇게 기를 쓰고 기업들이나 타국을 막는 걸 보면."
"뭐, 한동안 길드들도 기싸움 장난 아니긴 했죠. 하도 기밀이 많아서 저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복도에는 벌써부터 '탑' 공략팀 모집 공고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역시나 사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모습이 보였다. 저 사람들이 빠져나가면 안 그래도 과중한 업무가 더욱 과중해진다. 그때가 되면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
위기감에 휩싸인 팀장들이 좀비같이 다가가 사람들을 쫓아버리고 있었다. 역시나 좀비 같은 꼴의 팀원들은 좀비처럼 울부짖으며 돌아갔다. '탑'에 의한 탈주자라는 좀비 바이러스가 만들어 낸 좀비들의 향연이었다.
"혹시 저희 좀비 영화 보고 있는 건가요, 팀장님?"
"그런가 본데."
또 다른 좀비 두 명은 그 광경을 영혼 없이 바라보았다. 아르마는 평소라면 받아주지 않았을 말까지 받아주며 다시 힘 없는 발걸음을 옮겼다. 차라리 좀비가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은 요근래 처음 해봤다.
그리고 방금 좀비 무리가 해산한 곳에 다다랐을 때, 아르마와 레온타인도 자연스럽게 그 공고를 볼 수 밖에 없었다.
"이름이 뭐 이렇대요?"
"바벨?"
"바벨?"
"거긴 탑 무너뜨리는 게 목표냐?"
배은하가 별 해괴한 작명 솜씨를 들었다는 듯 빈정거렸다. 그야 '탑'하면 '바벨 탑'이긴 하지만, '탑' 안에 들어갈 놈들이 이미 무너진 탑 이름을 갖다 쓰는 건 심적으로 좀, 그렇지 않나.
"심지어 그건 인간들이 무너뜨린 것도 아니잖아요."
이녹두도 드물게 배은하의 말에 동의를 표하며 덧붙였다. 영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무너진 탑 이름 좀 붙인다고 다 무너지지야 않겠지만, 한국인으로서 이름에 갖는 미신이 어느 정도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심지어 이 '탑'은 갑자기 솟아난 탑 아닌가. 갑자기 솟아난 만큼 또 갑자기 무너질 수도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때처럼, 또 커다란 재앙을 가지고.
"거기 대장이 지었다고 하던데. 한국인이래."
신시아가 어깨를 으쓱이며 대꾸했다. 유감스럽게도 떨떠름한 작명의 주인공은 한국인이었다. 같은 한국인으로서 세 사람은 잠시 유감의 묵념 시간을 가졌다.
"'탑' 공략에 한국인이면... 역시 걘가? 선울?"
"네, 선울. 전부터 탑 공략 집착광공 또라이라는 별명이 있었다던데요."
"그런 면이 없잖아 있지. 걔는 공무원일 때부터 좀 또라이 기질이 있었어."
'탑'에 대한 내용은 아직까지도 기밀로 다뤄지고 있었다. 각국의 길드와 기업에서 손 대려는 시도는 여러 번 했지만 번번이 ISMA 본부에게 가로 막혔다고. 그나마 ISMA와 우호적인 관계인 배진 길드에서도 파악할 수 있는 정보가 없다시피 했다. 그만큼 본부는 '탑'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
물론 그런 와중에도 새어나오는 정보들은 있기 마련이라, '탑'이 공략 가능하다든지, 새로운 물질들이 발견되었다든지, '탑' 공략에 미친듯이 공을 세우고 있는 헌터가 하나 있다든지 하는 내용은 이미 공공연한 비밀이 되어 있긴 했다. '탑'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지고 있음은 당연한 일이었다. '탑' 공략팀에 대한 관심도 하늘을 찌를 듯 높을 것이다.
"아는 사이셨나 봐요?"
"엥, 공무원이었다고요?"
"ISMA 한국 지부 공무원 헌터였어. 균열 현장에서 종종 봤지. 그때부터 하나에 꽂히면 끝까지 가야 하는 성격이긴 했는데... '탑'이 생기자 마자 거기에 꽂혔는지, 아예 회까닥 돌아가지고 바로 국적부터 버렸다더라."
배은하가 떠올리는 것도 질린다는 듯 작게 인상을 썼다. 이녹두와 신시아는 저 돌은 인간이 '돌았다'고 표현하는 인간이 존재한다는 사실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국적부터 버렸다는 대목에서 범상치 않은 인물같지는 했다. 중립국이 '탑'의 기밀 유지에 지대한 노력을 쏟고 있고, 그러니 타국인의 신분으로 '탑'에 접근하기 힘들다는 건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바이지만, '굳이 그렇게까지?'라는 생각을 거두긴 어려웠다.
"이사님이 그렇게 질색하는 사람은 처음 보는 것 같은데요."
"너희도 만나보면 알걸?"
"그런 사람 굳이 만나보고 싶진 않은데요."
배은하의 질색하는 얼굴로 이미 충분하다며, 이녹두와 신시아가 온몸으로 거부했다.
"...나쁜 애는 아닌데 말이야."
"세상에 착한 또라이는 없어요, 이사님."
"맞아요, 이사님부터가..."
"잘리고 싶냐?"
"못 자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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