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칙'의 시대

균열 공략 100주년 기념행사 - 完

11월 30일, 100년 전까지는 평범하다면 평범했던 그 날짜는 이제 그 어느 날보다 특별한 날이 되었다. 첫 균열이 생긴 날, ‘법칙’이 생긴 날, 첫 각성자가 생긴 날. 세상이 격변한 날이었다.

사람들에게 공포로 각인될 것이라 여겼던 그 날은 일주일 후, 첫 균열이 공략되면서 새로운 세상이 열린 날로 기억되었다. 인류에게 새로운 발판이 생긴 날, 안전하지는 않아도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열어준 날, 신인류가 탄생한 날.

새로운 세상이 열린 후로 100년, 모든 사람이 이 날도 평화롭고 즐거운 축복의 날이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여기, 부상자! 프리메딕! 힐 스킬 남는 사람 없어? 중상이다! 최소 B등급은 필요해! 저 한 번 남았습니다! 엄호! 거기 조심! 늦었습니다, 못 막습니다! 뒤에. 뒤쪽에 그 아르마 팀장님 있습니다. 저흰 앞쪽 막는 게 낫습니다! 떠들 시간 없… 시발! 배은하! 오지 마세요! 그쪽 답 없어, 빠져! 야, 빠지래. 빠지라고, 이 멍청이들아! 아오, 썅. 번역 스킬 없어? 개빡치네! ‘법칙’이고 뭐고 걍 다 뒤져, 제발!

    말과 괴성, 고성, 부서지고 무너지는 소리, 살이 찢기고 피가 터지는 소리, 스킬이 터지는 빛과 어둠. 온갖 소리가 뒤섞였다.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비로소 100년. 반파된 땅 위에 세운 새로운 문명은 다시금 괴물의 발에 짓밟히고, 새로운 힘을 얻은 사람들이 무참히 찢겨나갔다.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갈수록 괴물의 시체가 쌓였지만, 그만큼 사람의 시체도 쌓여갔다.

버티지 못하면 죽었다. 헌터들만이 아니었다. 그들이 버티지 못하면, 모든 사람이 죽었다. 이 자리에서 그들은 더이상 ‘헌터’일 수 없었다. 사냥감은 그들이 되었다. 서서히, 진득한 절망이 사람들의 발치에 들러붙었다.


  

이 세상의 ‘법칙’은 한 번 뒤집어졌다. 100년 전, 제1세계와 제2세계가 뒤섞이면서 사람들은 알 수 없는 변화를 겪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변화에 적응했고, 또 다시 나름의 ‘법칙’을 정립했다. 10년의 기반, 20년의 재건, 다시 10년의 적응. 그 이후 50년은 평화였다. 

평화. 다시 단단하게 인간의 발 밑을 지지하던 새로운 상식, 지식, 규칙, 그리고 ‘법칙’. 그 모든 것은 거짓이었을까? 내부형도 외부형도 아닌 균열, 지금까지와 다른 패턴을 보이는 균열의 괴물, 가끔은 아예 처음보는 형태의 괴물들.

지금까지 인간의 100년을 떠받치던 모든 것이 단 하나의 균열로 산산조각났다. 모든 것을 깨달았다고 자만하던 인간을 비웃듯이. 마치 이곳, 중립국의 모습처럼.

그럼에도 인류는, 다시 한 번.


삽시간에 주위에 고요가 찾아왔다. 균열이 변했다. 남아있던 괴물이 괴성과 함께 사라졌다. 괴물이 흘린 피와 남긴 시체까지도 먼지처럼 부스러지고 있었다. 헌터들은 간신히 숨을 고르면서도 긴장을 놓지 못했다. 균열이 불안한 형태로 일렁거렸다. 숨 죽인 고요가 남은 공간.

급작스럽게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진동의 중심은, 볼 것도 없이 균열이었다. 줄곧 균열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던 헌터들이 빠르게 물러나기 시작했다. 드드득. 일반인은 버티고 서있지도 못할 진동이 한 차례 지나가고, 헌터들은, 전 세계의 모든 사람은 고개를 들었다.

눈 앞에 뜬 푸른 창. 만져지지도 않는 무심한 창. 인류 재건의 밑바탕이었으며, 항상 그 자리에 바뀌지 않고 존재했으나, 항상 변화의 중심이었던 그것. 100주년, 인류는 다시 한 번 대격변을 맞이했다.

< $%#!!& 건설 완료. >

사상 초유의 균열이 있던 자리, 그곳에는 생전 처음 보는 ‘탑’이 솟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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