³ ■■ 헤이우드. 유년기…?


 "…이거 뭐야?"

 어이없다는 듯한 휴고의 목소리가 먼저 허공을 울렸다. 웬 연보라색 머리칼의 꼬마애는 휴고 헤이우드의 다리에 찰싹, 달라붙어 다리를 끌어안고 있는 채였다. 들쑥날쑥한 머리칼은 영락없는 카일라의 것이었고 입을 앙다문 낯은 휴고를 쏙 빼닮았지만, 아무튼 그 둘 중 누구의 어린 시절과도 미묘하게 달랐다. 그리고 무엇보다 결정적으로….

 "아빠."

 '아빠'라고 했다.

 휴고 헤이우드에게. 

 선명하게, 착각할 수 없는 '아빠'였다. 꼬마는 휴고를 빤히 올려다보고 있었다. 휴고가 어이없다는 듯 입을 떡 벌렸다. 무슨 소리야, 나 고작 스물 한 살이라고. 애 같은 거 낳은 적 없다고. 저거 못해도 다섯 살이잖아. 그럼 쟤 태어났을 때 난 최소한 열일곱이라고. 그리고 지금 애는 무슨 카일라 스트레인이랑 손도 못 잡아봤…!

 시발, 그래. 겸허히 인정하자. 손은 잡아봤다. 사실 잡은지 한참 됐다. 아마 일곱 살쯤이었을 것이다. 근데 시발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휴고, 네 애야?"

 맹한 낯으로 아이와 휴고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다가 저딴 질문이나 던지는 소꿉친구 쪽이 사실 조금 더 문제였을 것이다.

 눈앞이 캄캄했다. 이걸 어떻게 해명하지? 다른 건 모르겠고 입술을 꾹 눌러 안쪽으로 밀어넣고 다물고 있는 아이의 낯은 유년기 휴고 헤이우드를 그대로 찍어낸 듯 닮아 있었다. 암만 해명해봤자, 젖병 물고 있던 시절부터 친구였던 소꿉친구가 못 알아볼 리 없었다. 아니, 근데. 잠깐, 겠냐? 내 애겠냐고. 너는 진심으로 그걸 진지하게 고려해서 물어보는거야? 목끝까지 올라온 짜증 섞인 질문들이 엉망진창으로 뒤엉켰다. 아마 딱 하나만 아니었다면, 결국 따발총처럼 쏘아내듯 물었을 것이다.

 그래, 딱 하나만 아니었으면.

 "…엄마."

 카일라가 다가오자마자, 반짝 눈을 뜨고 총총총 팔을 쭉 뻗은 채 카일라를 향해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예의 '그 애'가 아니었다면. 그리고 그 애가 카일라를 뱉은 단어가 '엄마'가 아니었다면.

 …내가 아빠.

 그리고 쟤가 엄마.

 …그리고, 쟤가, 엄마?

 거기까지 생각한 휴고 헤이우드의 머리속이 완전히 새하얗게 물들었다. 과부하 온 컴퓨터도 이렇게까진 아니었을 것이다. 뭐라고 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표백된 머리를 붙잡은 채, 휴고는 입만 떡 벌렸다. 무어라 변명하거나 해명할 말도 더 이상 떠오르지 않았다. 아니, 해명이 뭐가 필요하지? 애초에 나도 모르겠고 정체 모를 애가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것 뿐인데? 진짜로?

 "…휴고."

 침착하게 아이를 안아든 소꿉친구가 휴고를 불렀다. 아이는 만족스러운 듯 한 번 더 카일라를 두고 '엄마'라고 부르며 품 안에 답싹 안겨들어 있었다. 사실 카일라가 아이를 안아든 폼은 제법 어정쩡하고 어색했지만, 휴고에게도 딱히 그런 것을 알아볼 눈은 없었다. 무엇보다 아이의 낯이 제법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그걸 살피던 휴고는 이윽고 바짝 긴장해 어깨를 굳혔다. 무슨 말을 하려고.

 카일라의 어조는 담담했다. 

 "…인간의 머리색으론 중간 유전이 되지 않아."

 "……."

 "우리 둘이 결혼한다고 연보라색 머리를 한 아이가 나오지는 않는다는 소리야."

 …바짝 긴장했던 어깨에 힘이 탁, 풀린다. 아니 씨발 근데 너는 지금 그게 중요하냐,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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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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