⁴ 민예화. 유년기.
"오, 여기가 병실?"
휘적휘적 걸어온 주은이 허리를 한 차례 굽히고 커튼이 쳐진 병실 침대 너머로 쑥, 얼굴을 들이밀었다. 나직하게 휘파람을 불며 손끝을 주머니에 쑤셔넣는 꼴이 유유자적했다. 느리게 백색소음에 가까운 진동소리를 내며 공기중으로 흰 수증기를 뿜어내는 가습기, 살짝 열어둔 창밖으로 불어들어온 바람 덕에 살랑이는 커튼과 같은 것들이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다. 그것을 가만히 둘러보며 숨을 삼키던 차세오가, 주은의 발을 꾹 밟았다.
"아야, 쎄오. 너무하다?"
"병실이잖습니까. 조용히 좀 하세요."
병실 침대에 가만히 누운 소녀는 눈을 감고 있었다. 잠든 걸까. 규칙적으로 가슴팍이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한다. 영 앙상한 손목과, 뻣뻣한 재질의 병원복과 같은 것들을 차세오는 빤히 바라본다.
이 정도로 아팠던 걸까.
이것이 민예화가 기를 쓰고 숨기려고 들었던 영역이었나?
한눈에 보기에도 창백한 소녀는 병색이 완연했다. 앳된 얼굴의 이목구비는 지금과 크게 다를 바는 없었지만, 확실하게 더 어리다. 베개 위로 흐트러진 붉은 머리칼을 바라보던 차세오는 결국 기어이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그것을 빤히 관찰하며 들여다보는 것 자체가, 어떤 실례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인간은 누구든 간에 타인에게 숨기고 싶은 영역이 있는 법이고, 아마도 그것이 민예화의 경우에는 분명….
"진짜 툭 치면 부러지겠는데?"
그러나 물론 그런 것쯤은 전혀 개의치 않는 인성의 소유자들도 세상에는 있는 법이다. 이를테면 두 사람의 뒤를 따라 느긋하게 침대 커튼을 걷고 들어오는 저 인간.
"에이, 그러지 마. 아픈 어린애를 치면 쓰나."
그렇게 말하는 주제에 즐겁다는 듯 웃으며 말을 보태는 저 인간.
"…아픈 애 앞에서 좋은 말씀들 하십니다."
기어이 차세오는 한 번 더 주은의 발을 꾹 밟고 하와의 옷소매를 쭈우욱, 끌어내리며 이를 악물고 그렇게 속삭이고 만다. 태연자약하게 웃은 하와가 키득거리며 한 발짝 발을 뒤로 뺐다.
"그치?"
꼭 두 번 말해서 매를 버는 종류의 인간이었다. 손을 들어올릴 사람이 없다는 것이 지금 이 공간의 비극이었을 뿐. 정확히는 한소리 할 사람이 저기, 어린애의 몸으로 침대에 누워 있다는 것이 가장….
"다 봤으면 나가죠. 좋은 구경거리도 아니잖습니까."
결국 한숨을 뱉으며 차세오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숨기고 싶은 영역이라면, 본의아니게 봤을지언정 모른척 외면하고 나가는 것이 인간 사이에 존재하는 일반적인 예의가 아니겠나. 그리고 그 말을 하는 순간 확실히 봤다. 주은과 하와의 낯에 순간적으로 스쳐 지나가듯 교차하는 '아쉬움'과 '재밌음'을.
"에이, 쎄오. 너도 궁금하지 않았어?"
"참고로 난 궁금했다? 우리 예화 어릴 적에 어땠는지. 저렇게까지 앙상할 줄은 몰랐네."
…죽 더럽게 잘 맞네. 확실히 인성에 하자 있는 사람들이다.
헤실헤실 웃는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차세오가 탄식했다. 그래, 내보내자. 일단 내보내고 생각하는 거다. 차세오가 가만히 눈을 질끈 감으며, 침대 커튼을 다시 걷어올리고 주은과 하와의 등을 밖으로 떠밀었다.
"애 잡니다. 조용히 하고 나가세요."
빙글빙글 웃으며 순순히 떠밀려 나가는 주은의 뒤로, 하와가 작게 투덜거린다.
"이잉, 재미없게. 너무해…."
"너무한 게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각박하네 정말!"
…그리고 그렇게 쫑알거리며 나가는 세 사람의 등 뒤로, 가만히 눈을 감고 가지런히 누워있던 소녀는 느리게 눈꺼풀을 들어올린다. 아쉽게 타이밍 좋게 나가버린 탓에 뱉지 못하고 입 안에 남은 말을 가만히 구릴 뿐이다. 씨발 왜 아픈 사람 있는데 쳐들어와서 잠 깨울 정도로 떠들고 지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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