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는 이들을 위한 레퀴엠
2022.03.04 로나드라
낮의 아이는 더 이상 사무소에 없다. 길드 또한 모르는 사람들로만 가득 찼다. 신 요코하마에서 흡혈귀를 제외한, 익숙한 얼굴들을 못 만난지 꽤 오랜 세월이 지났다. 텅 빈 사무소의 소파에 가만히 앉아 아무것도 없는 책상을 보며, 존을 쓰다듬으며, 다시 짧아진 머리를 하고, 드라루크는 생각했다.
신 요코하마를 떠날 때가 왔다고.
흠, 좋아. 이 정도면 되려나. 차곡차곡 정리 된 짐을 본 드라루크가 옅게 한숨을 내쉬었다. 혼자서 짐을 싸는 것도 오랜만이라 제법 힘이 들었다. 하여간, 그 고릴라는 꼭 필요할 때 없다니까. 전등만이 홀로 깜박이는 사무실에 멍하니 서 있던 드라루크가 존을 안아들었다. 존. 누? 인사하러 갈 시간이야. 아무래도, 오랜 시간동안 여기에 오지 못 할테니. 누...
천천히 거리를 걷는다. 네온사인이 번쩍이는 여느 때와 같은 신 요코하마는 여전히 시끄럽다. 이 거리가 그리워질 날이 오려나. 지금으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150년을 넘게 봐 온 거리다. 지금에서야 지긋하기만 한 거리지만, 그래. 나중에 가서는 또 어떨지 모르는 일이다. 흡혈귀의 생은 한 치 앞도 모르는 법이니. 익숙한 헌터 길드의 문 앞에 멈춰선 드라루크가 고개를 들어 간판을 쳐다본다. 신 요코하마 하이볼. 낡지만 잘 관리된 깨끗한 간판이 반짝이며 빛을 낸다. 그 빛을 가만히 바라보던 드라루크가 다시 걸음을 옮긴다.
그렇게 드라루크는 신 요코하마를 쭉 돌아다녔다. 흡혈귀 대책과 건물, 어텀 서점, 놀이터,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의 성이 있었던 곳. 건물의 잔해밖에 남지 않은 곳을 조심히 돌아다닌다. 이것 봐 존, 여기에서 우리가 게임을 하고 놀았지. 누! 여기에선 요리했었고. 오, 이건... 커튼 조각이군. 지금까지 남아있다니, 의외야. 작게 웃은 드라루크가 건물의 잔해에 걸터앉는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얼굴을 간지럽힌다. 작게 펄럭이는 망토 뒤에서 존이 고개를 내민다. 누누누누 누. 누눈 누누누누? 흠, 그냥. 성이 무너졌을 때 고소하면 어땠을까, 하고. 키득거리며 웃은 드라루크가 존을 쓰다듬는다. 하지만 역시, 나는 로널드 군이 좋았으니까. 아마 아버지가 고소한다고 해도 말리는 입장이었겠지. 뭐, 그 얼굴이 놀라는 건 꽤 볼만했겠다만은. 느리게 눈을 감고, 기억을 되짚어간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대부분의 기억엔 로널드가 빠짐없이 등장하고 있어, 절로 웃음이 나왔다.
웃기는 일이야. 100년도 안 되는 삶을 사는 인간이 300년을 넘게 산 흡혈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갔으니.
눈을 뜬 드라루크가 하늘을 바라본다. 여명이 얼마 남지 않은 시각이었다. 돌아갈까, 존? 눈!
드라루크. 오, 한다 군 아닌가. 무슨 일이지? 받아라. 일언반구 없이 내민 쇼핑백 안에는 여러가지 것들이 들어있었다. 다같이 모아서 산 거다. 이제 신 요코하마를 떠나면, 이전만큼 자주 보지는 못할테니. 그런가. 쇼핑백 사이에서 AV를 발견한 드라루크가 그것을 빼내어 버리려다가, 다시 집어넣었다. 이제 별로 보지도 못 할텐데. 하나쯤은 괜찮겠지. 쇼핑백을 갈무리 한 드라루크가 한다를 바라봤다. 입을 꾹 닫고 있는 한다는 불만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왜 그런 표정인가. 굳이 떠나야 하나? ...굳이라고 한다면, 그래. 떠날 이유는 없겠지. 하지만... 드라루크가 주위를 둘러본다. ...저기는 로널드 군과 함께 장을 봤었지. 뭐? 그리고... 저 옥상에서는 사교우 군이 저격을 하다 졸아버려 로널드 군이 총에 맞을 뻔 했고. 그래서 히나이치 군과 형님에게 호되게 혼났었구나. 드라루크. 이 전봇대 아래에서 로널드 군이 내게 고백을 했었어. 고백을 받아 준 이후로 단체로 달려나와 로널드 군을 때리던 그 장면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 하네. ...
한다 군.
나는, 더 이상 이 외로움을 견딜 자신이 없어.
툭 치면 스러질 듯 드라루크가 웃었다. 곳곳에 남은 로널드의 흔적이, 그리고 모두의 흔적이, 드라루크를 끊임없이 괴롭혔다. 지금이라도 눈을 뜨면 로널드 군이 마감을 하고 있을 거 같아. 파스를 들고와 이거를 좀 붙여달라고 할 거 같지. 야식을 만들어 달라며 날 죽일 거 같고. 난 아직도 밥을 만들 때면 존이 다 먹을 수 없는 양을 만들어 버리고, 장을 볼 때면 지나치게 많이 사 결국 배달을 이용하고는 해. 한다가 어물거리다 입을 꾹 다물었다. 그러니 한다 군. 너무 원망하지는 말게. 겁쟁이라 욕해도 좋아. 그렇게 드라루크는 그저 웃기만 했다. 그런 드라루크를 보며, 한 동안 말이 없던 한다는. ...건강해라. 단 한마디만을 남기고 드라루크에게 작별을 고했다. 한다 군도. 다른 동포들에게도 고맙다고 전해주게.
...이런, 지금 떠나는거냐고 불평하는 건가? 여기에 150년도 넘게 있었어. 건물이 무너지지않은게 용하지. 인간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은 즐거워. 하지만 이전보단 못해. 결국엔 나 또한 향락주의자이니, 재미없어지면 떠나는게 당연한거야. 그래도 조금은 아쉬워. 이젠 자네마저 떠나게 되지 않았나. 내가 아는 신 요코하마가 완전히 사라지겠군, 이제. ...내가 떠나는 것이 아니냐고? 말은 똑바로 해야지. 자네가 여기에 남아있을 이유가 될 만한 자들은 이미 다 떠났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네가 여기에 있다는 것은 뻔하지 않겠나? 무어, 깨달은 듯 하니 더이상 말은 하지 않겠네. 슬슬 출발 시간이군. 비행기를 놓치면 안 되니까, 늦지 않으려면 출발해야지. 이 사무실도 많이 정들었는데 안 됐어.
그럼, 잘 가게 로널드 군. 다음에 또 보지.
응, 잘 가, 드라 공.
사무실의 불빛이 꺼진다. 그는 깜깜한 어둠속에 혼자서 서 있다. 문을 지나 밖으로 나와 신 요코하마를 천천히 둘러본다. 그리운 헌터 길드, 익숙한 나사 하나 빠진 흡혈귀들, 사이코 연구소장이 없는 VRC, 형과 친우들이 없는 흡혈귀 대책과. 그리고 다시 사무실로 돌아온다. 갑판이 떼어진 벽을 매만지다 웃는다. 정말로 떠날 시간이야.
안녕, 신 요코하마.
안녕, 나의 집.
...안녕, 모두들.
하하!! 드라루크!!!! 크악, 또 자네들인가!! 일본에서 루마니아까지 거리도 있는데 왜 1년마다 꼬박꼬박 오는 건가!!!! 그야 당연히 네가 외롭기 때문이다! 안 외로워!!! 오늘은 전라늄과 별난 동물이 함께 왔다. 흡혈귀가 말을 하면 좀 들, 야호, 드라루크씨~! 제가 드린 AV는 잘 보고 계신가요? 오랜만이군 동포여, 잘 지냈나! 오랜만에 만남 기념으로 씨앗을, 시끄러워, 전부 다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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