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

카게바야시/고우


전조

햇빛이 내리고 바람이 불던 시기, 어린시절의 나는 내 어머니의 아버지 되는 분을 찾아가는 날이 있었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할아버지라는 사람을 만났고, 어머니와 닮은 모습이 보이던 그 사람은 안정적이고 친숙한 느낌이 들었다. 친숙함 덕분에 잠깐의 경계는 할아버지의 말과 행동으로 사그라 들었고 나는 어느새 할아버지의 무릎을 베개삼아 잠들고 있었다. 마침 그날의 햇빛은 여름의 햇살이라기엔 뜨겁지 않았고, 바람 또한 잠들기 좋은 정도로 선선히 불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낮잠에 빠지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할아버지는 나를 토닥여주며 자장가를 불러주고 계셨으나 어느 순간부터 그 자장가가 들리지 않았다. 자장가가 듣기 좋았던 나는 그 소리가 멈춘 것이 아쉬워 완전히 잠에 들지 못한채 반쯤 눈을 뜨고 있었다. 어째서 더 불러주지 않으시는걸까, 하고 아쉬워하는 생각이 스쳐지나갈 무렵. 할아버지는 아주 작은 목소리로 나에게 속삭이셨다. 아마 내가 자고 있는 줄 알고 하시던 말씀 같았다.

" 피의 저주가 끝난 것이 아니라.... 너로 이어지다니.. 어째서... 이런 작은 아이에게.... "

당시에 나는 단어 하나하나가 굉장히 무섭다고 느껴져 그 자리에서 무슨 뜻인가요? 라고 물어보지 못했으나, 이제와서 생각해보면 그 문장은 하나의 슬픔이었고 자책에 가까운 것 이었다.

그것을 좀 더 일찍 깨우치지 못한 것을 난 아직도 후회한다.

내가 할아버지를 처음 만나고 2년 뒤. 할아버지는 돌연 돌아가셨다.

가뜩이나 할머니는 이미 오래전에 돌아가신 상태라 할아버지 혼자 살아가시다가 결국 가신 것이지만... 할아버지의 부고 소식에 어머니는 굉장히 눈물을 흘리셨다. 나는 다 큰 어른이 그렇게까지 눈물을 많이 흘리는 것을 처음 보았다. 그것도 다름아닌 나의 어머니였으니 더더욱...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장례에서 세상이 떠나가라 서럽게 울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를 달래주기 위해 계속 끌어안고 토닥이고 있었으나 어머니는 눈물을 멈추질 못했다. 나는 한 구석편에서 그런 아버지와 어머니를 바라보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어머니는 억울하고 서러운 목소리로 아버님을 데려왔어야 했다고 , 혼자 두어선 안됐다고 , 쓸쓸하셔서 결국 이렇게 되어버린것이라며 괴로움을 숨기지 못하셨다.

할아버지의 죽음은 그 흔한 병도 아니고 , 사고도 아닌 할아버지의 자살이었다. 매번 우유배달을 하던 배달원이 며칠째 우유가 쌓여있는 것을 보고 신고를 했으며... 할아버지는 집 안에서 목을 맨 채 죽어계셨다. 며칠이나 지난 후의 발견이라 시체의 상태는 좋지 못했다고 했다.

흔히들 말하는 노인의 고독사 , 자살 이라고 결론이 나왔지만 어머니는 그럴분이 아니시라며 부정하기도 하셨다. 하지만 장례식에 와선 결국 할아버지를 혼자 둔 자신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고통의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 물론 당시의 나는 어른들의 말을 듣고 그런 것이구나 , 그런 죽음이구나 , 하고 무서움과 슬픔을 느꼈지만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그것은 노인의 자살이 아니었다. 시체의 상태가 더 확실했다면 자살이 아님을 알 수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것을 확신하게 되는 계기는 내 그림자가 언제부턴가 지나칠정도로 길어보인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 이후였다.


나에게는 내 비밀을 거의 모두 알려줄정도로 소중한 친구가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 친구에게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때는 중학교 졸업 이후. 원하던 고등학교에 가게 되어 기쁜 마음도 잠시. 나는 잠에 들 때마다 내 그림자가 내 목을 조르는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있었다. 이것을 흔히 망상이라고 할 수 있었으나 , 내 목에 남은 자국은 그것이 거짓이 아님을 알려주었다.

곧 있으면 고등학생이 되어 새로운 마음으로 출발하고 싶었는데 ... 이 기괴한 일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어디다가 상담을 하기에도 이상한 이야기였다. 어머니나 아버지에게 말할까 고민했으나 , 이런 헛된 이야기를 과연 믿어주실까 하는 걱정때문에 결국 하지 못했다. 그대신 차선책으로 그림자의 정체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하여 자는 나를 촬영하는 카메라를 설치했다.

혹시 카메라에 정체가 찍힌다면 그것을 증거로 도움을 요청할 수 있었으니까... 계획 자체는 괜찮았다.

하지만 결과는 그리 좋지 않았다. 카메라에 찍힌 것은 다름아닌 나였다.

내가 내 목을 조르고 있었다.

분명히 그 시각에는 내가 일어나지 않았음에도, 나는 마치 깨어있는 듯이 내 목을 조르고 키득거리면서 웃고 있었다. 웃다 못해 무언가 말을 하고 있었는데 나는 그것이 두려우면서도 들어야한다는 마음이 강했다. 내 목소리로 내가 무엇을 말하는가?

" 지금 이걸 보고 있으면 거울을 봐. "

악마에 빙의 당하던지 , 귀신에게 빙의 당하던지의 기괴한 목소리가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내 목소리로 내가 말한 적 없는 내용이 흘러나왔다. 나는 순간 놀라서 카메라를 던져버리고 방문과 창문 , 커튼을 치고 귀를 막았다.

이게 무엇이지? 왜 내가 이런 소리를 하고 있지? 왜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지?

그리고 거울? 마침 내 방에는 전신 거울이 하나 있었다. 이것을 말하는 것인가? .... 라는 생각을 하며 공포에 빠지고 있었다. 당장 소리를 질러서 부모님에게 살려달라고 하거나 혹은 가장 소중한 친구에게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전화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너무 공포에 빠지면 몸이 굳어버리듯 , 나는 완전히 찌그러진듯한 상태로 귀를 막은채 떨고 있었다.

거울 또한 무서웠으나 , 거울을 덮어버릴려면 일단 다가가야 한다는 점이 문제였다. 하지만 이대로 가만히 있을순 없는 노릇... 결국 나는 거울 앞으로 나아갔고 거울 앞에 비친 것은 평범한 나였다.

그래... 카게바야시 고우 이긴 했다.

거울의 비친 나와 눈이 마주치는 순간 , 나는 온몸이 결박된 듯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실로 내 몸을 묶어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거울 속의 내가 말했다.

" 이제야 나를 보는구나. 난 너의 안에 오래 있었어. "

거울 속의 나는 ... 나였다. 하지만 어째선지 인간이 아닌듯한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뒷면 , 그림자 , 보이지 않는 부분... 그런 것들이 모여 만들어낸 형상 같았다. 저것은 내가 아니었다.

" 넌 누구야? 왜 이러는거야? 왜?"

" 난 너야. 난 카게바야시 고우 라고. "

" 그럴리가 없어. 난 ... 난 너가 아니야. 이딴건 ㅁ,망상이야...! "

" 아니. 난 너가 맞아. 넌 그림자의 피를 받았고 아직도 깨우치지 못한거야. 내가 널 깨우쳐주기 위해 시선을 끈거야. "

" 아니야... 아니야...!!! 이런건 내가 아니야!!! "

나는 고개를 흔들려고 노력했다. 거울 안의 내가 나에게 말을 거는 일이라는게 세상에 존재할리 없었다. 피를 받은 것이라는 단어도 당장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누가 쉽게 이해할 수 있을까... 혹시 이것이 꿈일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거울안의 나는 냉정했다.

" 시노비가미의 굴레에 너도 결국 얽힌거야. 카게바야시 고우. "

" 시노비가미라니 ? 그게 무슨소리야? 아무도 그런 말은 알려주지 않았어!! 이상한 말 하지 말고 사라져...!! "

" 받아들여. "

" 그럴 수 없어. 아니야..아니야..! 사라져 사라져 사라져...!!! "

분명히 그는 거울안에 있는데도 나에게 기어오는 것처럼 느껴졌다.

" 넌 인간도 , 요마도 죽일 수 있는 힘이 있어. 나는 언제나 너의 안에 있었으니까. "

" 아니야.. 아니야...!!!! "

" 거부하지마. 넌 그런 운명이니까.... "

" 시끄러워!!! "

거울 안에 있는 내가 사람을 죽일 수 있는 힘이 있으니 받아들이라고 할때 정말로 받아들인다는건 영화나 책에서나 나올 소리였다. 난 평범한 학생이고 , 곧 고등학생이 되는 이제 졸업한 중학생일 뿐이며... 친구와 평범하게 살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마음이 나를 움직였을까?

끝끝내 결박되어있는듯한 내 몸을 억지로 움직이는데 성공하여 나는 거울을 주먹으로 내리치고 잡아 던지며 부숴버렸다. 전신 거울은 끔찍한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나며 방 전부로 퍼졌고 , 나는 그 시점에서 내 모든 기력을 소진한듯 까무룩 잠에 빠져버렸다.

두 조각

정신을 차렸을 무렵에 나는 병원에 있었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잠에서 깨어난 나를 보고 안도의 한숨과 동시에 눈물을 흘리셨다. 두분의 말씀을 들어보니 갑자기 방안에서 유리 깨지는 소리가 났고 , 그 이후 무슨 일인가 방안에 들어왔더니 내가 손에서 피를 철철 흘리며 쓰러져있었다는 결과를 듣게 되었다.

나는 거기서 평소와 같이 걱정해줘서 고맙다는 이야기와 죄송하단 말을 할려 했으나 , 어째선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내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을 네. 정도의 단순한 단어 뿐이었다. 감정이 깊게 이어지지 않고 어딘가 뚝 끊긴 듯한 기분이 들었다. 심지어 이 기분 또한 매우 금방 사라졌다.

내 안에서 무언가 뜯겨져나간 느낌이 들었다. 평소였으면 서러웠을 일인데도 눈물 한방울 나지 않았고 , 심지어 그렇게 서럽지도 않았다. 표정을 바꿀 가치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딘가 모르게 공허한 감정이 들었으나 결국 이런 문제점마저 말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하는 것은 그저 부모님을 바라보는 일 밖에 없었다.

거울 안의 나와 마주하게 되는건 그로부터 며칠 뒤 였다.

찢어진 손은 다행히도 큰 흉터없이 치료가 되었으나 나는 부모님도 눈치챌정도로 말이 적어졌다. 말을 할 이유를 찾을 수가 없으니 말을 하지 않는 것 뿐이지만 , 내 마음 한쪽에서는 내가 무언가 부족하게 되어서 그렇다 라는 것을 알수 있었다.

그리고 부족한 것은 거울 안의 내가 가지고 있었다. 병원 화장실 거울에서 만난 그는 처음 봤을때 처럼 웃고 있었다. 무언가 고민을 하는 듯 팔짱을 낀 상태로 나를 빤히 보고 있었으나 , 나는 굳이 말을 걸지 않았다. 딱히 모르는 사람이 지나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애초에 거울에다 대고 말하는 사람은 이상해보였으니까.

" 너가 너무 싫어하길래 우리 역할분담을 하기로 했어. "

가증스럽게 말하는 그가 전처럼 거울속의 이질감 같이 느껴지지 않았다. 나는 말 없이 그의 이야기를 들었다.

" 시노비가미의 관련해서는 내가 움직일게. 대신 너의 몸을 사용하는거지. 물론 너가 겪을 정신적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위해 내가 특별히 너의 감정적인 부분을 조각냈어. "

" ...... "

" 사실 조각 냈다고 해도 결국 난 너고 , 너도 나니까 붙을 수 있다면 붙겠지만? "

그는 스트레스를 줄여주기 위해 라는 부분에 강조를 하듯 강한 악센트로 말했지만 별 의미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놀리기 위한 행동에 가까웠다. 나는 답하기도 싫었지만 일단 끄덕였다. 정말로 조각을 냈던 것은 거짓이 아니라는듯, 내가 평소에 느끼던 정신적 스트레스는 매우 줄었으니... 아니... 이것은 줄은 것이 아니라 없는 것에 가까웠다. 그냥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 피 , 에 관해서 눈치챘겠지만 우리의 능력은 혈통을 통해서 내려오는 비술 -에 가깝지. "

" .... 비술.. "

" 응. 비술. 뭐 간단히 말해서 닌자의 혈통을 지녔다 이거지. 격세유전으로 내려온거야. "

단어 하나하나가 일상과 너무 거리 있다보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굳이 다시 묻진 않았다.

" ... 내가 해야 할 일이 뭐야? "

" 이제 좀 협력할 마음이 들었구나? 아주 좋은 자세야. 뭐 협력이라고 해봤자 결국 몸만 빌려쓰는거니 걱정하지 말고. "

" ...... "

거울 속의 나는 잠시 아무 말이 없었으나 이내 크게 웃으면서 나에게 다시 말을 걸었다. 내 생각을 자연스럽게 읽은 듯한 내용이었다.

" 격세 유전에서 눈치챘구나? 맞아. 이제 기억나지? 할아버지가 했던 말. 우리는 이런 운명을 지니게 된거야. "

" ..... 할아버지는... "

" 할아버지는 살해당한거지. "

살해... 나와는 까마득하게 먼 단어처럼 들렸으나 이제는 너무나도 가까운 단어처럼 들렸다. 어째서일까? 피는 두려웠고 무서우며 상상조차 하지 싫은 것이었는데. 이제는 내 손이 피칠갑이 되어있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이 지나갔다. 할아버지도 이런 운명을 지녔기에 결국에 죽어버린 것일까. 누군가에게 원수가 되었던 것일까. 누군가에게 살해당할 만큼 할아버지도 많은 피를 묻혔던 것일까...

" 그것까진 알 방법은 없지. 하지만 이제 그 길을 우리도 함께 하게 되었어."

거울속의 나는 딱히 관심없는 주제라는듯 어깨를 으쓱였다. 사람이 죽는 일을 가볍게 말하는 것이 꼭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아이처럼 느껴졌다.

" 하지만 나는 사람을 죽이지 않겠어.... "

" 그래. 너는 사람을 죽이지 않겠지. 하지만 나는 죽이겠지만? 흠, 헷갈리니까 내가 카게바야시를 맡을게. 너가 고우로 하자. "

" 나는 죽이지 않아... "

카게바야시는 내가 하는 소리를 신경도 쓰지 않는듯 또 다시 큰소리를 내며 웃었다. 무엇이 웃긴건지 알수 없었으나 그는 매우 즐거운 듯 보였다. 왠지 이렇게 보니 거울 안에 있는 카게바야시는 내가 아닌 것 같았다. 나는 저렇게 웃지 않고 이런 일을 즐거워 하지도 않으니까.

역시 거울 속의 그는 내가 아닌 것 같았다.

" 그렇게 생각하는게 편하다면 그렇게 하도록 해. "

" ...... "

" 뭐, 그래봤자 결국 우린 하나야. 한쪽만 있으면 카게바야시 고우가 될 수 없으니까. "

그 말을 끝으로 거울 속의 그는 사라졌다. 남은 것은 거울에 비치는건 "고우" 인 나 였다.

그는 역시 내가 아님이 분명했다. 나는 원래 이렇게 웃지도 않고 표정 또한 없는 사람이었으니까. 지금 거울에 비치고 있는 것이 진정한 나 였다.

.....내가 정말 웃지 않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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