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륜] 친애
*'회자정리會者定離' 합작 참여작
별이 촘촘히 꿰인 야공이 한없이 멀었다. 선연히 오염된 푸른 홍채 위로 옅은 반사광이 미끄러진다. 곁의 인기척은 그저 고요히, 지켜보듯 숨을 죽였다. 륜은, 죄인의 신분으로, 처음으로 그녀를 구속하는 자유를 느꼈다. 머리칼을 흐트러트리는 바람결이 새까매, 윤곽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그녀를 휩싼 모든 것이 그저 단절하는 채로 남았다.
밤이 길고 길었다.
끝없이 내리는 어둠이 낯설다. 경애하는 선대의, 아직은 엇맞는 손을 부여잡고 타들어 가는 지평선을 눈에 담았던 때가 있었다. 우상이 인식의 영역으로, 가능성의 영역으로 그녀를 이끈 순간. 그것은 시작이 아니다. 의무는 륜의 명명과 함께, 파란 피를 타고 흐르며 그녀가 지니고 난 것이다.
그러나 의무가 아닌 의사는, 감정은 어디에서 왔는가?
륜은 다만 짊어짐을 체화해내는 이였고, 잇따르는 노력은 그 일환임에 분명했다. 약속을 손에 쥐고, 선망을 눈에 담고, 적개를 이정표 삼으며, 륜은 걷는다. 그녀에게만은 이상이 결코 위선이 아니었으므로. 먼 과거의 현현을, 그녀의 가능성을 의심치 않는 오만함이 곧 륜의 영향력이었다. 그것이 그녀의 삶이었다.
그러므로 륜에게는 언제나, 의무는 곧 의사였고 분리해낼 수 없이 얽혀든 하나의 곧은 일그러짐이다.
천계를 내려다본다면, 어떤 예외도 없이 모두 속속들이 금안 아래에 놓인다. 그 하나하나가 각각의 명운이었고, 륜의 오롯한 과업이었고, 인연이 속한 터였다. 그녀에게 안배된 단 하나의 원칙.
륜은 그 책임이 사랑스러웠다.
오랜 약속의 순간은 어쩌면 첫눈의 매료와도 같았다. 세계가 그녀에게 운명을, 순리를 부여한 찰나.
스스로를, 그 존재를 변함없이 입증하고 붙들어 놓는 것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날 적부터 지닌, 그녀의 태생적인 불가결을.
흐름을 이끌어 애정을 얻어내고, 자신만의 이치를 충족시키며 변화의 주축에 선다. 결코 그녀를 밀어내지 않을, 륜만의 요소들. 륜을 륜으로서 구성해 성립시키는 그녀의 친애.
놓치지 않는다. 놓을 수 없었다.
얕은 반짝임이 그곳에 있었으니까. 륜과 세상을 끊을 수 없게 매어두는 마음이 분명, 사라지지 않았으니까.
차게 가라앉은 냉기가 륜의 뺨 위로 서린다. 가볍고 덧없는, 미물의 신체가 감각을 옥죈다. 옷자락이 턱 끝을 스치고, 들이마시는 숨이 세차다. 한없이 겪어낸 것들의 모서리가 더없이 날카로워 서툴다. 손끝이 낯과 함께, 단단히 여문다.
문득 륜은 깨닫는다. 지금 그녀가 딛고 선 이 땅이야말로, 진정 온전한 선택이라고. 앞으로의 매 순간순간이, 발걸음 하나하나가 그녀만의 임의로운 무게이고 의지일 것이라고. 외롭고, 무거우며, 불확실하고, 언제나 그랬어야 했듯이 마땅하게.
그를 또다시 사랑해낼까. 시간이, 사람이 또다시 그녀만의 의미가 될까.
무엇도 알지 못했다.
그리고 륜은, 의지를 곧추세운다. 언제나처럼.
따사로운 볕이 느슨히 내려앉았다. 완전히 끝맺음 지은 종잇장들과 거리를 벌리며, 6대 상제는 몸을 뻣뻣이 뒤로 기울였다. 가늘게 매달린 관의 구슬 줄도 따라 흔들리며 얼굴을 쓸었다. 경직시킨 몸을 이완하며, 륜은 등받이에 상체를 기댔다.
그래, 그녀는 그리 생각했던 때가 있었다. 모든 것이 모호하고, 낯설며, 허사로 되돌아간 듯했던 한 세기. 명확하게 안심시키듯 내뱉은 호언장담은 기실 륜, 그녀 자신을 위한 동기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같잖게도.
기어이 어떻게든 약속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이 기적적이었다. 변함없이, 주변에 한껏 손을 뻗으며 해낸 회귀.
진정 무한히 감사해도 턱없을 일이다. 작금의 얄팍한 평화를 포기하지 않은 까닭은, 순전히 그들이었으므로. 복귀 직후의 무수한 인사들을 차치하지 않더라도 그러했다.
천지해의 수많은 수장들. 더없이 소중한 피붙이들. 퇴색되지 않는 친우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약하고, 엷고, 번번이 그릇되었던 절대다수의 주민들.
그들이 가정으로나마 존재했기에, 흐릿한 기약의 실재를 무작정 믿을 수 있었으니까. 부러 순진했던 신의의 보은보다도, 그를 가질 수 있었다는 사실이 주요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외의 모든 것을 내버릴 이유란, 단일한 미래만을 붙들 이유란 사람 뿐이었으니까. 늘 그랬다.
그리고 믿음은 보답 받았으니 끝내 틀린 선택도 아닌 셈이었다. 륜에게는 그녀의 모든 것이 무탈하게 느껴졌다.
그러니 그녀의 앞으로의 향후는, 단지 되갚음으로 설명될 따름이었다. 은혜를, 신뢰를, 인연을 돌려주는 것. 륜은 몹시 오래오래, 역사가 허락하는 한 언제까지라도 그를 붙들고 살 요량이었다. 이제야 그녀가 운명대로, 뜻대로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륜은 간주한다.
어쩌면 이다음으로는, 무궁한 벗들에게 뛰어난 다과를 가져가는 것이 알맞을 테다. 륜은 하늘과 여우로, 여우노의 호오 따위를 머릿속으로 헤아리며 자리를 나선다. 망설임 없이 내딛는 발걸음이 다만 산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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