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은란] 속내
가늘고 고요한, 두 사람분의 호흡만이 방안을 채웠다. 그 엷고도 명백한 생명의 증거를 놓치지 않으려 애쓰며, 은란은 노을을 내려다 보았다.
평온하디 평온한 얼굴로, 그는 끊임없는 잠에 빠져들어 있었다. 한 자락의 숨결조차 깃든 적 없다는 듯 미동 없이. 침구에 반듯이 뉘어있는 신체에는 꿈의 흔적조차 나타나지 않았다. 꺼져가는 운명과 좀먹혀가는 삶을 벗어날 생각도 않은 채⋯. 독한 작약향에 후각도 익숙해진 지 오래였다.
여름이 지나기 전에 그가 눈을 뜰까? 그들의 첫 계절처럼, 나무 그림자 아래에서 춤추는 모습을 볼 수 있을까?
꿈을, 하물며 지독한 악몽이라도 꾸어서 노을이 표정을 바꿔준다면 안심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은란은 소맷자락을 손가락 안으로 단단히 말아 넣었다. 이 따위 이기적이고 몰염치한 소망을, 그가 들어줄 날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설사 정말로 부탁한다 하더라도, 그건 노을이 다룰 수 있는 영역이 아니었으니까.
노을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남겨진 이의 원망과 치기란, 은란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것이어서.
노을이 언제까지나, 어떻게라도 살아갔으면 한다. 어떠한 때에는 울음을, 다른 때에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서 내보이며. 생동하고 변화하며, 모든 것을 붙잡으려 드는, 평범하디 평범한 사람의 삶을.
노을의 일그러진 낯을 목도하고자 하는 욕망은, 은란의 친애와 같이 오래된 것이었다. 완벽하고 흠 없는 조각상이 아니라, 엉망진창이고 만신창이인 노을을 원했다.
손뼉에 닿은 뺨은 무르고 미온했다. 노을의 얼굴이, 더없이 사랑스럽고 연약해서. 은란은 통제감이라는 이름의 착각에 휩싸인다. 기이한 충동이 목덜미에 스며들었다. 감각이 날 서고 무뎌졌다. 숨을 멈추지 않아도, 시간이 맥없이 느려진다.
꼭 동화 속 저주를 깨우는 구원자 행세를 하듯, 은란은 상체를 끌어내렸다. 눈동자가 마지막으로 노을의 속눈썹을 담고, 끝내 암전한다.
작은 접촉의 소리가 났다.
부드럽게 떠밀리는 살결은 공상을 깨우는 송곳 같았다.
아.
최악이다. 손등이 거세게 입술을 내리눌렀다. 몽롱한 도취는 끝났다. 남은 것은, 남은 것은 비참과 죄악감 뿐이다.
최악이다.
노을이 눈을 떴을 때에는, 차마 그럴 용기도 내지 못하면서. 그가 반응할 수 없이 잠겨있는 때에만 알량한 욕심을 내세워서….
노을은 그저, 계속해서 수면에 취해 있었다. 그것에 안도하는 자신이, 은란은 끔찍하게 느껴졌다.
정말로 노을이 그녀에게 실망해 깨어난다면 감당할 자신도 없는 주제에. 홧홧한 낯이 적잖게 질려있을 것이 확실했다.
은란은, 다만, 도망치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닿았던 흔적을 지우려는 듯 마구 입술을 문질렀다.
이 순간 그녀가 바라는 것은, 오직 이 날이 노을에게 영원히 미지로 남는 것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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