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문(미완성)

임신튀 고유

당신을 사랑했던 그 순간부터 초안

사담을 하자면, 저 시리즈를 쓰고 수정하는데만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ㅠㅠ

쓰다보니 뭔가 아닌 거 같아서 새로 다시 썼기 때문😭 플롯도 대거 뜯어고쳤던… 애증의 작품입니다

사실 쓰고 나면 저도 가끔씩 제 글을 읽는데요, 유일하게 아직도 한번도 안 읽은 글이에요ㅋㅋㅋ

어쨌든 초안은, 유지가 아이를 갖게된 것을 알고 고죠에게서 도망치며 이런저런 일을 당하는 게 조금 길게 들어가 있습니다

유지를 잃은 고죠가 날카롭고 무섭고 싸한… 느낌도 있었어요.

아이의 이름도 원래 이타도리 유즈루였습니다.

일본어로 용서하다가 許す(ゆるす)인데, 고유가 서로를 용서하며 끝나는 글이였으면해서 す와 る의 자리를 바꾸고 탁음을 넣어서… 유즈루라는 이름을 만들었는데 설명하다가 노잼될 것 같아서(지금도 노잼이죠? 참아주십쇼)ㅠㅠ

사토루와 유우지의 이름을 섞어 유우토가 됐답니다!(따단) 이러나 저러나 유추하기 쉬운 이름이 낫다고 생각했더요,,

제 애 이름 짓기도 어려운데(결혼한 거 아닙니다) 고유 애 이름 진지하게 고민하는 제가 웃겼단 이야기ㅋㅋㅠㅠ


이타도리는 그 자리서 주저앉았다. 세면대에서는 물이 콸콸 쏟아지고 있었다. 숨통이 끊길 것처럼 목이 옥죄어왔다. 바닥을 짚고 일어날 수 조차 없었다. 손이 세차게 떨렸다. 초점 없는 두 눈에 빈 상자곽들이 비쳤다. 반쯤은 처잠하게 뜯겨 있었고, 반은 아직도 뜯지 않은 것들이었다.

몇 개인지도 모를 테스트기가 바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녔다. 전부 두 줄이었다. 선명한 두 줄. 이타도리는 멍하니, 몇 번이고 중얼거렸다. 

거짓말이라고 해줘. 거짓말이야. 다 거짓말이야. 이게 아니야. 

이타도리 유지는 그렇게 무너져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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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가진 것을 안 그날부터 이타도리는 도망자가 됐다. 유일한 재산이었던 할아버지의 생가를 정리하고 나가노로 몸을 숨겼다. 그러나 이타도리도 사람이었다. 이를 악 물고 혼자 헤쳐나가기엔 세상은 험준한 산과 같았다. 그럼에도 뱃속의 생명은 이타도리를 일으켰다.

후시구로는 묵묵히 그런 이타도리를 도왔다. 유일한 조력자였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나가노 행을 갑작스럽게 결정했을 때도 후시구로는 이타도리의 모든 짐을 도맡아 옮겼다. 시간이 나면 쉬는 것보다 이타도리의 은신처로 향했다. 그러나 끝끝내 누구의 아이냐고는 묻지 않았다. 후시구로 메구미는 그런 사람이었다.

달마다 2-3번씩 오던 후시구로가 돌연 발걸음을 끊었다. 이타도리에게는 모르는 메일 주소로 한통의 소식이 도착했다.

그 사람이 눈치 챘어.

그 짧은 문장은 이타도리의 심장을 바닥까지 추락시켰다. 후시구로의 새로운 메일 주소를 제외하고 모든 연락처를 지웠다. 말하지 않아도 그가 이타도리를 위해 비상용으로 급히 만든 것임을 알았다. 그간 나눴던 연락 역시 한순간에 재가 됐다.

이타도리는 부른 배를 안고 몇 번이고 거주지를 옮겼다. 그 사람은 일본이고 해외고 발을 뻗지 않은 곳이 없었다. 덕분에 이타도리는 교토나 나고야 등 일본 일주를 해야만 했다. 이타도리에게는 따뜻한 잠자리도, 발을 뻗고 쉴 수 있는 영원한 안식처도 없었다. 몇 번의 이사가 몸에 무리가 될지언정, 어쩌면 의미없는 짓일지언정, 이타도리는 한곳에 안주할 수 없었다. 그래야만 겨우 잠들 수 있었다. 적어도 오늘은 발각되지 않을 거란 희망아래 겨우 눈을 감을 수 있었던 것이다.

뱃속의 아이는 곧 세상을 맞이하려고 있었다. 이타도리는 매일 밤 기도했다. 일평생 신의 존재 같은 건 생각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었다. 누군가에게 기대 빌어야 한다는 행위가 이해하지 못했었다. 운명같은 건 스스로 개척해나가는 길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나 이타도리는 공손히 두 손을 모아 별 빛이 수놓아진 하늘에 간절한 마음을 전했다.

제발 제 아이에게, 그 남자의 푸른 눈이 나타지 않게 해주세요.

아이는 그 누구의 축복도 없이 태어났다. 이타도리의 배를 가르고 태어났지만, 산모를 대신에 받아줄 아빠는 없었다. 아이는 눈부신 백발을 갖고 태어났다. 태어날 적부터 오똑한 코와 보기 좋게 도톰한 입술 덕에 신생아들 사이에서 유독 눈에 띄었다. 이타도리는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아이의 용태를 살폈다. 그리고 절망했다.

아이가 힘겹게 눈꺼풀을 밀어 올렸다. 촘촘히 돋은 하얀 빛 속눈썹 밑으로 보이는 옅은 갈색빛의 눈동자는 명백히 엄마의 것이었다. 신은 이타도리의 편이었다.

이타도리가 제 발로 걸어다닐 수 있게 됐을 때쯤 후시구로가 찾아왔다. 아이를 보고도 별다른 말 없이 이타도리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리고 아이와 함께 이타도리가 미리 싸둔 짐이 실려 있는 차에 몸을 실었다. 아이는 그렇게 제대로 된 이름을 받기도 전에 쫓기듯 다른 곳으로 도망가야 했다.

후시구로의 차 안은 정적만이 맴돌았다. 길이 밀리기 시작하자 후시구로는 정성스럽게 포장된 상자를 내밀었다. 상자 속에는 빨갛고 작은 아이용 신발이 들어있었다. 이타도리는 숨죽여 울었다. 아이에게 태어나줘서 고맙다는 말조차 하지 못한 자신이 사무치게 미웠다. 칭얼거림 없이 고요히 잠만 자는 아이의 이마 위로 눈물 젖은 입술을 겨우 내릴 수 있었다.

"…고마워, 후시구로."

"다음에 병원 갈 땐 같이 갈게."

"아냐, 무리하지 마."

"무리하는 거 아니니까……그리고… 너도 어렴풋이 알겠지만, 그 사람은 가문에서도 몇 백년 만에 육안을 달고 태어난 규격 외야. 육안은 격세유전 같은 거니까…"

후시구로가 한참을 망설였다. 말을 고르고 고르는 듯했다.

"……평범하게 태어나서 다행이야."

"응. 고마워."

만일 그 사람과 같은 눈과 술식을 부여 받은 채 태어났다면, 고죠 가(家)에서 가만히 있지 않았을 거란 말을 구태여 덧붙이지 않았다. 어찌됐든 아이는 무사히 태어났다. 아직은 평범한 아이일 뿐이다. 후시구로는 분위기를 깨고 싶지 않았다.

후시구로가 어정쩡하게 아이를 받아 안았다. 이타도리는 그제야 웃었다. 아이는 얼마 안 가 울음을 터뜨렸다. 이타도리가 아이를 다시 받으며 살살 달랬다. 그리고 새로운 아파트 앞에서 둘만의 조촐한 사진을 찍었다. 핸드폰으로 대강 찍은 사진이었다. 둘만의 작은 추억의 시작점이었다.

이타도리 유즈루. 이타도리가 홀몸으로 낳은 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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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전수전 다 겪어본 이타도리라고 해서 아이를 낳고 길러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아이는 작고 예민한 존재였다. 어릴 적에 왕왕 키우던 강아지 같은 소동물과는 차원이 달랐다.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스스로 헤쳐나가야 한다는 점에서 이타도리는 더욱 서툴 수밖에 없었다. 

아이는 이따금 크게 아프기도 했다. 이유 모를 열에 들떠 종일 울다 지쳐 쓰러지기도 했다. 추운 겨울에 아이만 꽁꽁 싸매고 병원을 향했다가 되려 자신이 심한 감기에 걸린 적도 있었다. 아이에게 옮을까 마스크를 두겹이나 쓰고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데도 아이를 돌봐야 했다.

이타도리는 항상 남들이 잘 모를 법한 작은 마을을 택해 돌아다녔다. 마을에 있는 작은 병원은 늘 붐비곤 했다. 그 병원에서 생전 겪어 보지 못한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유즈루를 달래가며 순서를 기다리던 이타도리에게 아이의 아버지는 어디 있느냐는 질문을 던진 노모 탓이었다. 이타도리가 우물쭈물거리며 말을 잇지 못하자 아버지도 없는 자식이면 태생이 어떨지 빤하다며 자신이 먼저 진료를 보고 싶단 말을 내뱉었다. 

자신이 먼저 왔음을 피력하자 되려 노모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타도리는 아무런 대거리도 하지 못했다. 노모의 폭언은 전부 아이 아버지에 대한 것이었다. 이타도리는 그저 아이를 꽉 껴안은 채 병원에서 도망치듯 나왔다. 옹알이도 겨우 하는 아이가 듣지 않았기를 간절히 바랐다.

아이가 아파도 이웃집 아주머니에게 맡기고 일을 나서야 할 정도로 생활이 팍팍했다. 이제 세상 밖 공기를 겨우 들이 마쉰 갓난아이에게 들어가는 돈은 이타도리를 생활고에 밀어 넣었다. 이타도리는 자신이 갖고 있던 금기를 하나 깼다. 주변에 손을 벌려야 했다.

혼자 있을 적엔 이사 비용이 아까워서 자신의 짐을 줄이면 그만이었다. 돈이 모자라면 이따금 굶으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이타도리는 이제 혼자가 아니었다. 집세가 밀려 주인 아주머니에게 양해를 구하는 건 이제 익숙했다. 유즈루를 최대한 따뜻한 곳에 눕히고 자신은 외풍이 드는 곳에 누워 잠드는 것도 익숙했다. 하지만 배가 곯아 우는 아이를 보자 이타도리에게 남은 선택지는 하나 뿐이었다.

후시구로는 왜 진즉에 말하지 않았냐며 다그쳤다. 한동안 후시구로는 갖은 무리를 해서라도 이타도리의 유목 생활에 같이 어울리려 애썼다. 피골이 상접한 이타도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후시구로는 입술을 짓씹었다. 이타도리와 달리 반듯한 얼굴로 잠든 아이가 밉기도 했다. 그러나 아이를 단단히 안고 있는 친우의 얼굴은 그 누구보다 강단 있었다. 

그러나 얼마가지 않아 이타도리와 유즈루는 다시 둘이 됐다. 요즘 시선이 따라다닌다는 후시구로의 말 때문이었다. 종종 돈이 든 봉투는 모자의 집 앞에 생필품과 함께 놓이곤 했다. 행여라도 기록이 남는 것을 방지하고자 후시구로가 택한 방법이었다.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해서 알아낼지도 모르니까. 후시구로의 단호한 말에 이타도리 역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유즈루가 3살이 되었을 무렵에 동네에 작은 어린이집을 찾았다. 덕분에 이타도리는 이전보다는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었다. 친구에게 손을 벌리고 싶지 않다는 아집은 여전했다. 부지런히 일해서 갚을 생각이었다. 그러나 팍팍했던 삶이 조금씩 여유를 되찾을 쯤엔 이타도리의 몸도 아파오기 시작했다. 유즈루를 낳고 곧바로 도망치느라 홀몸을 돌 볼 여력이 없었다. 수술의 후유증은 고스란히 고질병으로 남았다. 아이를 낳은 몸은 전처럼 활기를 되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이와 생활고에 시달렸던 그 시절은 이타도리에게 끔찍한 상처로 남았다. 다신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곧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니, 해주고 싶은 것들이 많았다. 삐걱거리는 팔다리는 매일같이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는 아이는 누군가를 판으로 찍어 누른 듯 닮아있었다. 가볍게 짓는 미소조차 그 사람의 것이었다. 이타도리는 종종 자는 아이에게 손을 대보곤 했다. 밀려나는 법은 없었다. 그러면 홀연히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일전에 같이 슈퍼에 나섰다가 아이를 좋아하는 직원이 유즈루를 만졌지만 별다른 방해없이 손이 닿았다. 유즈루의 앞머리를 단정히 쓸어주며 이타도리는 오늘도 잠에 들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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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즈루가 초등학교에 입학 하기 전, 이타도리는 다시 한 번 거처를 옮겼다. 이제는 몸에 밴 습관 같았다. 아이는 어느덧 자라 또래보다 머리 하나 이상 더 컸다. 유즈루의 손을 잡고 길거리에 나서면 초등학교 고학년 취급을 받았다. 아이는 눈치도 기민하고 머리 회전도 빨랐다. 이사의 이유를 묻지도 않고 묵묵히 자신의 짐을 차에 실었다.

이타도리는 면허를 땄다. 후시구로가 개인적으로 몰던 차를 받아 몰기 시작했다. 덕분에 밥 먹듯 하던 이사도 한결 수월해졌다. 그러나 차의 명의는 아직 후시구로의 것이었다. 이타도리는 자신의 명의로 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 이미 반쯤 포기한지 오래였다.

아이가 말을 할 수 있게 되고 둘만의 생활이 익숙해지자 괴로움도, 외로움도 점차 잊혀져 갔다. 유즈루를 두고 무너질 수 없었다. 무너지고 싶을 때면 유즈루가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줬다.

"엄마 물 줄까?"

"으응… 좀 있다가!"

아직 초보 운전 딱지를 떼지 못한 이타도리가 사뭇 긴장한 티를 냈다. 아직 도로가 무서웠다. 유즈루가 와르르 웃으며 물 뚜껑을 닫았다. 엄마 무섭구나? 하고 놀리는 목소리가 장난스럽기 그지 없었다. 그 소리에 이타도리도 웃을 수밖에 없었다. 부쩍 웃음이 많아진 나날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삿짐을 전부 올려두자 하늘에는 별이 가득 떴다. 낡은 아파트에 작게 달린 베란다서 둘은 나란히 앉았다. 서로를 품에 껴안듯 바짝 붙어 앉아 도란도란 별을 봤다. 시덥잖은 대화를 하기도 했다. 이타도리는 옆구리를 데우는 따뜻한 체온에 입매가 스르륵 올라갔다. 하나뿐인 아들이었다. 하나뿐인 핏덩이였다.

절망과 저주만이 가득했던 이타도리의 짧은 인생에서 유일한 빛이었다. 그러나 아이의 눈이 밤하늘의 별처럼 반짝일 때마다 이타도리의 심장은 종종 부서졌다. 후시구로가 가끔 모자를 보러 올 적마다 새로이 느껴지는 것이 있을까봐 두려웠다. 그러나 후시구로는 말이 없었다. 이타도리는 그것이 자신을 위한 배려일까, 차마 먼저 묻지 못했다.

"유즈루,"

"응?"

"있지, 엄마랑 한 약속 기억해?"

"괴물 같은 게 보이면 말하기로 한 거?"

"응."

"반드시 엄마한테 먼저 말할 것! 그리고 보이면 바로 도망칠 것! 맞지?"

"응. 착하네."

이타도리는 유즈루를 재차 바짝 껴안았다. 새끼 손가락을 단단히 걸고 약속했다. 무심코 하늘을 향해 기도했다. 유즈루와 보는 밤하늘이 영원히 반짝이기를.

-

이타도리는 이사를 망설이고 있었다. 유즈루가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친구들을 곧잘 사귀어왔다. 어린 시절의 친구는 더없이 소중하고 중요한 존재였다. 멋대로 이사를 결정하기엔 그의 하나뿐인 아들에게 퍽 미안한 것이었다. 유즈루도 연례 행사처럼 다니던 이사 소식이 없자 넌지시 묻곤 했다. 그러나 그의 두 눈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이타도리는 섣불리 이사를 결정할 수 없었다.

역시 유즈루와 길게 대화해보는 것이 나으려나. 이타도리가 골몰하며 장 본 것을 냉장고에 정리해 넣었다. 곧 아이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분주히 쌀부터 씻으며 현관문이 당차게 열리는 것을 기다렸다.

아이가 좋아하는 햄버그가 노릇하게 익어도 문은 좀처럼 열리질 않았다. 이타도리는 흘끗,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가 다급히 핸드폰을 들었다. 아무래도 불안함이 가시질 않았다. 친구들과 놀고 있는 거라고 믿고 싶었다. 신발을 대충 꿰어 신고 집 근처 놀이터로 향했다.

땅거미가 내려 앉은 놀이터에는 아무도 없었다. 이타도리는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에 구역질이 몰려왔다. 유즈루의 담임 선생님의 연락으로는, 유즈루는 오늘 바로 집으로 갔다고 했다. 이타도리는 아이가 곧잘 놀던 모든 장소를 모두 꿰고 있었다. 그러나 아이는 없었다. 옷은 온통 땀으로 축축했고, 하늘은 이제 어둠이 가득했다.

마지막으로 뛰어간 곳은 학교였다. 유즈루는 곧잘 물건을 학교에 두고 와 다시 학교로 되돌아가는 일이 잦았다. 벅찬 숨을 갈무리하지도 못하고 학교가 서서히 보이는 지점에서 멈추어 섰다. 가슴이 섬찟했다. 장막이 펼쳐져있었다. 주력이 텅 빈 몸이지만 선명히 볼 수 있었다. 스쿠나라는 저주가 남긴 잔흔이었다. 이타도리는 벌벌 떨리는 손으로 다급히 후시구로의 번호를 눌렀다. 

멀리서 보이는 차에서 내린 사람은 이지치였다. 이타도리는 올라오는 구토감을 억누르며 몸을 수그려 거칠게 호흡했다. 온몸이 삐걱거렸따. 눈물이 날 것 같았다.

학교에 있는 거 아니지, 유즈루. 주령이 보이면 엄마한테 이야기 하기로 했잖아. 바로 도망치기로 했잖아.

[…이타도리?]

"…후, 후시구로 큰일났어. 유즈루가 집에 돌아오질 않아서… 찾으러 나왔는데,"

[이타도리 진정해.]

"학교에 장막이 쳐져있어."

수화기 너머로 정적만이 맴돌았다. 이타도리는 코를 훌쩍이며 말을 이었다.

"이지치 씨를 봤어."

[이타도리, 지금 갈게.]

"아니지? 아니라고 해줘."

[그것도 지금 알아볼게. 40분만 기다려줘.]

"아닐거야… 아니라고…"

머리를 싸맨 이타도리가 다시 한 번 신에게 간절히 빌었다. 제발 그가 나타나지 않게 해주세요.

-

"내가 왜 이런 시골 마을까지 와서 잔업을 해야 해? 고전으로 돌아가는 거 아니었어?"

"근처에 있는 게 고죠 씨 뿐이라… 하필 갇힌 게 어린 학생들인 모양입니다."

"망할 꼬맹이들. 집에 일찍 갈 것이지."

고죠가 혀를 찼다. 한 손으로 턱을 괴며 신경질을 부렸다. 이지치가 분주히 고죠의 눈치를 살피다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갇힌 건 초등학생 5명입니다. 주령 자체는 급이 높지 않지만…"

"다 살려서 데려 나오라는 거 아냐? 누가 보모인 줄 아나."

"…부탁드립니다."

이지치의 차가 학교 앞에 멈춰섰다. 고죠가 긴 다리를 휘적거리며 학교의 입구에 섰다. 이지치가 장막을 치는 동안 건물을 빤히 바라봤다. 이런 류의 잔업이 제일 싫었다. 전부 다 박살 내는 거면 몰라도 아이까지 무사히 구출시키고 주령까지 제령해야 했다.

학교 같은 곳에 깃든 주령은 간사하고 기민했다. 아이들의 두려움을 먹고 사는 존재답게 질이 나빴다. 찾기 귀찮게 이상한 곳에 숨기도 했따. 고죠가 건물의 잔예를 보다 미간을 거세게 구겼다. 뒤로 물러나려는 이지치에게 재차 물었다.

"…5명이라 했지?"

"네."

"흠, 5분이면 되니까."

고죠가 손을 흔들며 학교 안으로 사라졌다. 자신과 이지치를 제외한 기척은 4명의 것이었다. 그저 덤덤히 생각할 뿐이었다. 

이미 1명쯤 죽었으려나. 성급하게 죽여버리기나 하고. 급이 많이 나쁘네. 어린 아이를 삼켜서 뭐가 좋은지 모르겠지만.

고죠는 곧장 과학실로 향했다. 아이들이 무서워할 법한 해부도 같은 것들이 널려 있으니 부정적인 감정이 쌓이기 딱 좋았다. 이런 인적 드문 곳의 작은 학교일수록 교내에 떠도는 괴담은 해가 넘어갈수록 자세해지고 괴랄해졌을 것이다. 그로 기인한 아이들에게 두려움은 커질 것이고 주령은 몸집을 점차 불려왔을 터였다.

과학실로 갈수록 기척이 강해졌다. 이따금 쿵쿵, 하고 부딪치는 소리도 났다. 고죠가 입을 벌려 하품을 하며 문을 잡아 열었다. 주령이 건 결계가 순식간에 부서졌다.

"어라?"

고죠의 예상과 달리 아이는 5명이었다. 모두 살아있었다. 팔이 하나 없는 해부도가 쿵쿵거리며 아이들에게 접근하고 있었다. 아까부터 들리던 거슬리는 소리가 이것이었다. 아이들은 모두 겁을 지레 먹고 뭉쳐있었다. 울고 있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나 그런 아이들 앞을 당차게 막고 있는 한 아이에게 공연히 시선이 갔다. 아이는 벌벌 떨고 있었지만 명백히 눈을 치뜨고 있었다. 주먹을 꼭 말아쥔 채였다.

해부도는 몇 번이고 몸을 부딪쳤지만 아이들에게 위협만 될 뿐, 다가갈수록 멀어지고 있었다. 고죠가 느릿하게 안대를 내렸다. 주령은 고죠에게 흥미조차 갖지 않았다.

"하하…"

느릿하게 웃은 고죠가 해부도의 머리를 쥐었다. 순식간에 해부도는 부서져 내렸다.

"착한 아이들은 모두 집에 갔을 시간인데. 여기서 뭐하니?"

고죠의 한마디에 아이들은 일제히 울음을 터뜨렸다. 울리려던 게 아니였단 뜻으로 고죠는 양손을 들어 항복의 제스처를 취했다. 이렇게 굿 룩킹 가이인데 운다고? 농담을 던져봐도 아이들은 목 놓아라 울 뿐이었다. 고죠가 난감한 듯 웃었다. 의젓하게 우는 아이들을 달래는 아이를 보고 미소를 감췄다.

울음을 멈춘 아이들이 거친 숨을 헐떡이며 각자 하고 싶던 말을 쏟아냈다. 말의 순서가 엉망이라 애를 먹을 지경이었다.

"학, 학교에서 늦게까지 히끅, 놀다가…"

"괴담을, 힉, 확인 해보려다가요…"

"저게 막! 무섭게 움직였어요! 막…, 이렇게"

"그치만 유즈루 군 뒤에 있으면 쟤가 못 와서…"

"아하,"

고죠가 가벼이 주먹으로 손바닥을 쳤다. 이제 됐단 의미였다. 고죠가 살짝 몸을 수그려 아이들과 시선을 맞췄다.

"너는 무섭지 않았니?"

"무섭…, 무서웠지만…"

"응."

"지키고 싶어서…"

고죠가 일순 눈을 크게 떴다. 어쩐지 웃음이 났다. 과거의 자신의 애제자가 겹쳐보였다. 고죠는 아이의 머리칼을 부드러이 쓰다듬었다. 나머지 아이들의 미간을 툭 건드려 정신을 잃게 했다. 짐짝처럼 대강 아이들을 든 고죠가 가벼이 손짓했다. 따라오라는 뜻이었다.

유즈루는 고죠의 하얀 머리칼을 빤히 응시했다. 고죠 사토루는 즐겁다는 듯이 콧노래를 불렀다.

"찼았다."

고죠가 무심코 중얼거린 말을, 유즈루는 듣지 못했다.

-

"이타도리!"

"후시구로? 우리 유즈루가, 유즈루가…!! 일단 안에, 안에 들어가자."

"진정해 지금 들어갈 거야."

"안에 지금 누가,"

"…일단 가자."

후시구로가 도착하자마자 이타도리는 구원의 밧줄을 붙잡은 양 후시구로에게 달려갔다. 후시구로의 안색이 어두웠다. 이타도리는 눈앞이 깜깜해졌다. 

장막 안으로 몸을 들인 후시구로가 이타도리에게 손을 뻗었다. 이타도리의 손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림자에서 튀어나온 옥견이 이타도리의 옆에 붙었다. 안에 기척이 여럿 느껴지니 걱정할 필요 없다며 이곳에서 기다리라는 말을 전했다. 이타도리의 표정은 이미 반쯤 무너져 있었다.

후시구로가 발을 떼자마자 누군가 앞을 가로 막았다.

"갈 필요 없어, 메구미."

"……고죠 선생님."

"유즈루!!"

익숙한 목소리에 이타도리의 다리가 휘청거렸다. 온몸이 벌벌 떨렸다. 심장이 갈갈이 찢기는 느낌이었다. 도저히 고개를 위로 들 수 없었다. 그러나 뒤에서 나타난 유즈루의 모습에 한달음에 튀어나갔다. 유즈루도 곧바로 뛰어가 이타도리의 품에 안겼다. 그간 참아왔던 눈물이 이타도리의 어깨를 적셨다.

후시구로가 안도하는 얼굴로 둘을 훑다 슬쩍 둘 앞을 막았다. 고죠는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왜, 왜 학교로 갔어…"

"엄마…"

"왜, 응? 왜야…"

"미안해. 오늘 만들기 시간에 만든 거 꼭 엄마 주고 싶었단 말야…. 근데 집에 다 왔을 때쯤 두고 온 게 생각이 나서…"

이타도리는 유즈루를 거세게 껴안았다. 천지가 뒤집히는 줄 알았다. 영영 잃는 줄 알았다. 자신의 유일한 희망이 꺼져버리는 줄 알았다. 이타도리의 두 눈에서 눈물이 방울방울 떨어졌다.

"이지치, 기절한 아이들은 집에 데려다 줘. 대충 일어나면 꿈인 줄 알 거야."

"네에? 아니, 이타도리 군, 후시구로 군까지…"

"왜 4명만 기절시켰습니까."

어느새 다가온 이지치에게 인사조차 않고 후시구로가 대뜸 쏘아 붙였다. 아이들에게 끔찍한 경험이었을 텐데 어째서 유즈루를 제외한 다른 아이들에게만 손을 댔냐는 의미였다. 고죠는 안대를 훌쩍 내리며 제 눈밑을 툭툭 두드렸다.

"그야, 저 아이, 보이는 쪽이니까?"

아들을 껴안고 울던 이타도리가 고개를 불쑥 들었다. 심장이 터질 것 같이 빠르게 뛰었다. 남의 입에서 듣게된 사실이 이타도리를 지옥의 구렁텅이로 떠밀었다. 후시구로는 입술을 깨문 채 바닥만을 응시했다. 이타도리가 유즈루를 붙잡고 망연자실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유즈루, 보이면 이야기 하기로 했잖아."

"…보인 건 오늘이 처음이었어. 평소에는 그냥 조금 이상한 느낌이 들고 말았는데…"

"친구들을 지키려는 강한 마음이 눈을 트이게 만든 거지."

고죠의 목소리에 이타도리가 반사적으로 유즈루를 품에 가뒀다. 경계하는 기색이 짙었다. 후시구로도 망설임 없이 이타도리의 앞에 섰다. 고죠가 귀찮다는 듯이 뒷머리를 털었다. 이내 사납게 일갈했다.

"뭐하러 가려? 보면 몰라? 내 눈깔이 장식 같아?"

"…무슨 생각이신 줄은 압니다. 하지만…"

"알면 비켜."

이타도리가 손을 들어 아이의 귀를 막았다. 사정없이 떨려대는 이타도리의 두 눈과 손에 닿은 귀가 차가웠다. 유즈루는 그런 이타도리를 멍하니 응시하다 눈을 꾹 감았다. 어쩐지 그래야만 할 것 같았다.

"…선생님 아들 아냐."

"뭐? 하하…, 그래? 아니라고?"

"아니야. 정말로."

이타도리가 단호하게 말을 가로 막았다. 이내 유즈루를 안고 몸을 일으켰다. 후시구로에게 흘끗 시선을 보냈다. 다음에 이야기 하자는 듯했다. 이타도리가 몸을 돌린 채 입을 열었다.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오늘은 구해줘서 고마웠어. 선생님."

후시구로가 곧장 전투 태세로 자세를 바꿨다. 만일 고죠가 이타도리를 쫓아가면 무력으로라도 막을 셈이었다. 고죠는 아무말 없이 둘이 걸어가는 것을 바라봤다. 그러나 후시구로는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았다. 이 남자의 속내를 몰라 입이 바짝 말랐다. 불안감이 가득 피어올랐다. 

이타도리의 목에 팔을 두르고 안겨 있던 유즈루가 슬쩍 눈을 떴다. 검정색 아지랑이를 피우는 후시구로의 뒤로 이름 모를 백발의 남자가 유유히 웃고 있었다.

그리고선 가만히 자신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꼭 나중에 보자는 듯이.

-

고죠 사토루는 근래 들어 기분이 좋았다. 이지치가 분주히 눈치를 살피며 잔업을 물어와도 너그러운 마음으로 넘겨주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생각보다 기쁜 일이었다. 본래 교직 기숙사 외에도 안식처 정도는 몇 채 갖고 있었다. 개 중 한 곳을 골라 우편물 보관함을 멀끔히 치웠다. 산타할아버지의 선물을 기다리는 착한 아이라도 된 양 매일 보관함을 열어보곤 했다.

하얀색 봉투가 하나 놓여있었다. 


와! 여기서 끝이라고?!

왜냐면 저기서 끊고 새로 썼습니다ㅋㅋ 꽤 길죠?

저 뒤로는, 플롯으로만 있습니다. (그것도 성의없는 플롯ㅋㅋ)

보실 분들은… 봐주시기


집에 돌아온 고죠. 

기다렸던 우편물 찾아냄

친자 99% 일치. 

큭큭, 뭐 이런 거 없었어도 알았지만

4명이라 느껴진 이유, 한 명이 너무 자신과 기척이 비슷해서 그냥 몰랐던 거다.

아이를 돌려보내기 전에 유즈루에게 칭찬하는 척 머리를 쓰담으며 머리카락 탈취

주력을 담아 위치추적기로 만듦.

갓 주력에 눈 뜬 아이의 기척은 숨길 줄을 몰라서 강하거든.

곧 보자 유지.

유지는 아이를 타이르거나 하지 않음. 

술식을 어느정도까지 사용하는지는 후시구로가 봐줌

고죠 선생님보다 살짝 느리지만… 나오고 있다.

“이사갈 준비를 해야겠어.”

“도와줄까?”

“아니. 괜찮아.”

자는 아이를 쓰다듬으며 골몰하는 유지

누군가 문을 두드림. 옆집 아주머니겠거니. 왜냐면 유즈루 안 돌아온 날 자기 달래줬거든

무심코 문을 열었음. 고죠임 

“조심헤야지. 야밤에 문을 열면 못 써.”

“선, 선생님…”

“차라도 대접해줘. 오랜만이잖아.”

선생님 아들 아니라고 할 준비 중

친자 확인서. (당황함)

술식 안정화 안 되면 크게 앓을 거고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어 (구라)

…그치만 보내고 싶지 않아.

누가 보내래? 내가 여기 있을 거야. 알려줄 거야.

?? 싫어. 

유지. 고집부릴 때가 아니잖아. 유즈루가 저번처럼 위험한 상황에 처하면 누군가 구해준다는 보장이 없어

어디로 이사가든 말이야. 이미 보이기 시작한 순간 늦었어.

그 뒤로 기묘한 동거

이사가면서 이웃집 아주머니께 인사.

비싼차에서 내린 남자를 보자마자 아들과 번갈아 봄. 하고 싶으신 말을 머뭇거리며 안 함.

유즈루는 전학간 학교에서 잘 적응.  

고죠가 종종 데리고 가고 데려다 줌. 바쁜데도

아저씨이, 이거 어떻게 읽어? 하면 천천히 읽어줌. 무하한도 끔.

둘이 저녁 먹고 목욕하고… 안정된 생활

생활고에 찌달리지도 않고…

학교 방문 가정통신문. 이땐 일 하는데 어쩌지… 입술 깨물고 있는데

내가 갈게. 하는 사토루. 

그, 그럴 필요는… 

유지는 뒤늦게 갔음. 그랬더니 고죠가 애 가방 메고 애 끌어안아 올려서 선생님이랑 대화 중

너무 붕어빵이라 착잡하면서도 자신이 가장 꿈꿔왔던 장면이긴 함.

“엄마 나 놀다 들어갈래.”

“그래.”

아저씨가 다 사줘서 부짝 아저씨랑만 있을라 함.

바로 백화점 가서 가면라이더 봄. 놀고 잠든 아이를 안아서 데려감.

저녁 밤 거리.

“내가 안을까? 무겁지.” 

“하나도. 여기서 유지까지 안을 수 있어.”

말없이 걸어가며 하늘을 봄. 유즈루를 임신 했을 땐 도망가던 하늘과 비슷

“나 말야, 입덧이 너무 심해서 많이 울었어.”

덤덤히 과거를 얘기함. 눈물이 볼을 적시고 있었음. 그래도 자기 핏덩이고 자긴 혼자니까 이겨내야 했음

“유지.”

조금씩 걸어가며 이야기하다가 멈추어 섬.

어쩌지 이제 혼자이고 싶지 않아. 하지만 몇 날이면 별수도 없이 잊을 거야. 한동안은 널 잊고 살게

“그거 가지 말라는 말로 들려”

머리 벅벅 긁은 고죠. 후시구로에게 전화. [잠깐 유즈루 좀 맡아줘.]

둘이 몸 맞춤. 울었고, 감정을 토해냈고, ~생략~

유즈루 냄새나. 그야 가족인데… 유지품에 안긴 고죠

후시구로한테 그간 사정을 들었다. 

“후시구로가 말했어?”

“아니 내가 협박했어.”

“다 큰 어른이 그러면 못 써.”

“원래 아들 있는 가정은 아들이 2명이 된대.”

“고죠 선생님 그런 거 치고 너무 아빠 같았…”

“아빠인 거 인정하는 거야?”

“이제와서 물어? 고죠 선생님이 봐도 너무 판박이잖아.”

“그건 그래”

“애한테 너무 사주지마.”

“갖고 싶다잖아. 돈 신경쓰고 살지마.”

“그간 힘들었잖아.”

“그래도 애 교육에 좀…”

“나도 돈 걱정 없이 살았는데 이렇게 컸잖아.”

“그러니까 안 된다니까.”

“지금 나 잘못 컸다는 거?

와르르 웃으며 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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