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천재가 아니다.
쿠키런 킹덤 2차 창작
“안녕하세요, 라떼 교수님!”
“그래, 안녕~”
실로 오랜만에 맞는 제대로 된 출근. 학생보다도 높은 지각 횟수를 자랑하는 라떼맛은 웬일로 오늘 일찍 눈이 떠진 참이었다. 매번 서두르느라 미처 깊이 신경 쓰지 못했던 따스한 라떼를 한 잔 들고, 가는 길목에 얻은 말동무(다른 말로는 수강생이라고도 한다)를 끼고. 참으로 여유로운 출근이었다. 호록, 짙고 부드러운 우유와 커피의 풍미가 마음까지 물들여 퍼져 나갔다.
“교수님, 저 요즘 커피 마법을 공부하고 있어요!”
“어머, 그래? 좋은 생각이야~ 라떼 마법은 커피 마법에 기반을 두니까. 기초가 탄탄하면 무엇이든 잘 되기 마련이거든~ 어려운 거 있으면 말만 해~ 선생님이 다 알려줄 테니까!”
이래봬도 커피 마법 만든 쿠키랑 오래도록 동고동락한 사이라구. 그렇게 덧붙이고 라떼를 또 한 번 머금은 순간, 뒤에서 그림자가 드리웠다. 동시에 사락, 감겨오는 미미한 커피 향. 차분하고 깔끔한 그 향은, 결코 라떼맛이 들고 있는 라떼에서 나는 향은 아니었다.
“저 없을 때 이런 얘기를 퍼트리고 다니십니까? 할 일도 없으시군요.”
“아, 에스! 놀랐잖아~”
“어엇, 안녕하세요, 에스프레소 교수님!”
수강생에게 짧은 인사를 건네고는 곧바로 바쁘다며 다시 척척 걸어가 버리는 모양새가 성격을 짐작케 했다. 시간 엄수가 확실한, 지독한 완벽주의자. 한순간 머물다 간 희미한 향을 쫓으려 괜히 고개를 살짝 들었다. 그러나 허공엔 손에 든 라떼향만이 가득했다. 에스프레소맛 쿠키는 늘 그랬다. 다녀간 자리는 깔끔했으며, 미비하게 남아도는 두루뭉술한 끝맛이란 없는 쿠키.
“토핑 떨어지는 줄 알았네요, 갑자기 저렇게 나타나실 줄은…”
“워낙 기척도 없고 말이지~ 나도 방심했네! 아, 에스 온 김에 네가 커피 마법 공부 중이라는 얘기도 해 줄 걸 그랬나? 좀 봐주면 좋을 텐데~”
“아, 아니에요, 괜찮아요!”
손사래를 치는 수강생이 퍽 귀여웠다. 라떼맛은 부러 진지한 모양새로 말했다.
“선생님이 왜 있는 거라고 생각하니? 이럴 때 마음껏 조언을 구하라고 있는 거야. 모르는 건 물어봐야지. 좋은 자세에서 좋은 배움을 가질 수 있는 거야.”
“네, 네에…”
시무룩해진 목소리에 그만 푸흡, 웃음을 터트렸다. 라떼맛은 원체 분위기 잡는 건 못 했다. 우러나오는 여유와 편안함을 숨길 수 없는 것도 있지만, 본래 그 자신도 웃음을 잘 참지 못했다. 수강생의 머리를 마구 헤집으며 라떼맛은 꺄르르, 웃었다.
“어려운 거, 막히는 거, 궁금한 거 있으면 연락하기야~ 약속!”
“너무 많으면 어쩌죠…?”
“그럼 어때~ 처음부터 잘하는 쿠키가 어디 있니? 다 알려줄 테니까 말만 해!”
수강생은 한숨을 폭 내쉬더니 말을 이었다.
“정말, …에스프레소 교수님은 천재이신 것 같아요.”
“응? 왜 그렇게 생각해?”
“그야, 이런 복잡하고 어려운, 고난도의 마법을 홀로 개척해 내셨잖아요.”
“천재, 천재라…”
그 말을 들으니 생각나는 게 있네. 라떼맛은 빙글빙글 웃으며 라떼를 머금었다. 한바탕 대화를 하느라 알맞게 식은 온도가 입술을 덮었다. 언젠가의 기억, 커피 향이 답지 않게 진하게 묻어나는, 어느 예전의 기억. 라떼맛은 잠시 진한 커피 향에 빠져들었다.
"저는 천재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라떼맛은 피곤한 눈을 비비며 에스프레소맛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에 약간의 놀라움이 담겨있는 이유는, 방금 라떼맛이 에스프레소맛에게 쓴 단어가 등장했기 때문이리라. 습관처럼, 관용 표현으로 천재다! 라고 한 말을, 에스프레소맛은 저렇게 받아쳤다. 의미를 모르는 까닭에 라떼맛은 고개를 기울였다.
"왜? 안 좋은 기억이라도 있어? 곤란한 말이었다면 미안ㅎ,"
"당신이 하는 말은 괜찮습니다."
이건 또 무슨 소리람. 라떼맛은 더더욱 영문을 몰랐다. 가뜩이나 둘이 날밤을 지새우며 들러붙은 문제가 안 풀리던 와중에. 드디어 실마리가 하나 잡힌 와중에. 라떼맛은 또다시 고개를 모로 기울였다. 그러고 있자니 에스프레소맛이 이윽고 종이에 시선을 둔 채 입을 열었다.
"쿠키들이란 으레 그렇죠. 천재란 말을 칭찬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칭찬으로 통용되고 있다는 것을 저 또한 모르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천재라는 건,"
에스프레소맛은 가리켰다.
"이런 짓을 하지 않아도,"
바닥을 온통 뒤덮은, 새까만, 마치 개미 같은.
"정상에 설 수 있는 쿠키를 말하는 겁니다."
그러나 원래는 하얀색이었던 종이들.
"천재는 그렇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재능. 썩 제게 어울리는 칭호는 아니군요. 전 제 노력이 지워지고 폄하받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노력만큼 정직한 건 없거든요. 한 만큼 결과가 따라오죠. 실패만큼 정확한 표지판도 없고, 성공만큼 착실한 보상도 없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천재라는 말을 싫어합니다."
라떼맛은 아, 하고 탄식하면서도 기울였던 고개를 다시금 반대로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그야, 아직 궁금한 게 하나 더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제일 설명받아 마땅한 부분이기도 했다.
"그럼 내가 네게 하는 말은 괜찮은 이유가 뭔데?"
에스프레소맛은 종이에 뒀던 시선을 올려 라떼맛을 보았다. 마주치는 시선이 고요했으며, 흔들림 없었고, …커피 향이 났다. 허공을 방랑하는 커피 향. 도무지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이 순간의 커피 향.
"당신은 알고 있으니까요."
안경 너머 가늘게 뜬 눈. 그에 비치는 책상의 스탠드 빛. 창문에 스미는 밤공기. 부유하는 향기들. 숨죽인 적막.
"함께 하지 않았습니까. 노력.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얼마나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는지. 다 알고 있잖습니까, 당신은."
라떼맛은 눈을 깜박였다. 동의의 표시.
"그래서 괜찮습니다. 알고 얘기하는 것과 모르고 얘기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라떼맛은 그제야 고개를 원위치할 수 있었다.
"궁금증이 풀렸다면 계속 이어가죠. 쉬는 시간은 끝입니다."
"에엑, 이거 쉬는 시간이었어? 너무해~ 라떼라도 한 잔 타 올 걸~"
"비효율적입니다. 차라리 눈 감고 앉아있는 게 낫죠."
"라떼는 체력을 충전해주거든~ 너도 한잔해! 내가 특별히 타 줄게!"
"잠깐, 어디 가십니까. 이 문제는 시급히 해결해야,"
"금강산도 식후경이야, 에스~"
"교수님? 교수님? 학교 다 왔어요!"
과거의 향에서 깨어난 라떼맛은 눈만 끔벅였다. 참, 그때랑 지금이랑 어째 다를 게 없지? 오랜만에 꺼내든 기억은 반갑고도 풋풋했다. 그래, 그런 일도 있었더랬지. 천재라는 단어 하나에. 라떼맛은 혼자 후후, 웃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그때 이후로 에스프레소맛에게 천재라는 말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다. 유일하게 당신만은 괜찮노라 허락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는데. 말해 준 이유가 신경 쓰였을까? 자신도 모르게 또 고개를 갸웃거리는 라떼맛이었다.
손에 든 라떼는 식은 지가 오래지만, 마지막 남은 한 모금을 시원하게 해치우고는 라떼맛은 강의실로 향했다. 강의실에 들어가기 전, 라떼맛은 수강생을 돌아보았다. 그리고는 말했다.
"내가 생각해봤는데, 역시 에스프레소는 천재가 아니야. 에스는, …"
그냥, 에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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