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A crackling s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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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비가 뉴욕을 뒤덮은지 이 주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 케일럽은 머물 곳을 두 번 옮겼고, 쉘터 방위군이라는 것이 되었으며, 아무런 능력이 없는 일반인들을 구하기 위해 능력을 사용했다. 케일럽이 가진 인류애의 정도를 놓고 본다면 케일럽은 박애주의자라기 보다 개인주의자에 가까웠으므로 거창한 사명감이나 책임감에 의해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바라는 것이라곤 그저 상황이 빨리 정리되어 이 엉망진창의 뉴욕에서 벗어나는 것 뿐이었다. 좀비를 죽이는 일은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 행해야 할 부수적인 부분에 지나지 않았다. 어쩌다 그런 이야기를 꺼내면 열에 여덟은 케일럽이 부끄러움 때문에 솔직한 정의감을 감추는 것인 양 대했는데, 케일럽으로서는 그들의 오해가 더 부끄럽기 그지 없었다. 자신은 그렇게 정의감이 넘치는 사람이 아니다. 

 

혹시나 쉘터 밖에서 죽음에 직면한 불쌍한 사람이 있는지 찾기 위해 밖으로 나와 이리저리 배회하던 케일럽은 사람 대신 좀비를 두 번 마주쳤고, 둘 다 무리없이 죽였다. 그정도면 오늘은 잠잠한 날이었다. 종이 쓰레기와 유리조각 따위가 굴러다니는 도로를 걷던 케일럽이 5층짜리 나지막한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1층은 카페가, 그 위로는 주거용으로 사용하던 건물인것 같았다. 잠시 주변을 둘러본 케일럽은 건물 바깥으로 만들어진 비상계단을 하나하나 소리 죽여 걸어올랐다. 비상계단을 올라가며 들여다보이는 집안의 모습들은 흐트러짐이 없어, 마치 사람만 증발해버린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차라리 사람만 증발해버린 거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랬다면 좀비 따위에 마음 졸이지 않아도 됐을텐데. 

 

비상계단의 꼭대기 층에 도착한 케일럽이 허리를 숙여 유리창 너머 고요한 집안을 살폈다. 흐트러짐 없이 말끔한 것이, 빈 집이거나 아직 좀비가 되지 않은 사람이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 같았다. 똑똑, 유리창에 노크를 했다. 돌아오는 소식 없이 조용한 집안을 들여다보던 케일럽의 손이 창틀을 쥐고 조심스레 당겨올렸다. 잠겨있지 않았다. 뻑뻑하지도, 부드럽지도 않게 움직이는 유리창을 끝까지 당겨올린 케일럽이 창문 안으로 머리와 몸을 집어넣었다. 창 너머에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집안은 먼지냄새가 조금 날 지언정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집안의 인기척이 저 뿐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확인한 케일럽의 움직임이 조금 더 편해졌다. 집안의 이곳저곳을 구경하던 케일럽은 침대에 벌렁 드러누워 사치품이 주는 푹신함을 만끽했고 주방을 뒤적여 약간의 시리얼을 먹었다. 그리고는 소파에 앉아 그 옆에 놓인 라디오를 만지작거리다가, 티 테이블에 놓인 잡지를 뒤적거렸다. 한참의 여유를 즐기고서야 거실 창문을 통해 바깥을 살피던 케일럽이 문득 창문을 열고 한쪽 눈을 감은 채 손을 뻗었다.

따뜻한 해가 내리쬐는 거리를 좀비가 걷고 있었다. 손을 총 모양으로 만들어 거리를 배회중인 좀비에게 조준한다. 하나, 둘, 셋. 의미없는 숫자세기 후 공기를 쏘아내면 퍽 하는 소리와 함께 이마에 주먹만한 구멍이 뚫린 좀비가 뒤로 넘어갔다. 짧게 휘파람을 분 케일럽이 가까이서 어슬렁거리는 다른 좀비를 겨냥했다. 좀비를 쏘아 죽이는 데에는 역시 조금 높은 곳이 좋았다. 새로운 좀비의 머리를 향해 손가락을 조준하는 사이 머리 위로 까마귀의 울음이 날았다. 

 

뉴욕이 좀비 소굴이 된 이후 늘어난 것은 조준 실력뿐이다. 쓸만한 물건이나 식량을 건지러 나가는 일과 드물게 사람을 구하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으니 산 사람을 찾아 돌아다니는 좀비를 쏴죽일 밖에. 마치 과녁에 다트를 던지는 것과 같은 기분이었다. 상황이 상황인 탓인지, 사람의 형상을 한 것을 죽이는 데에 따른 죄책감은 빠른 속도로 희석되어갔다. 무미건조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이제 케일럽은 좀비를 쏘아 죽여도, 시커멓게 썩은 피와 살점이 튀어도 별다른 생각이 들지 않았다. 캘리포니아의 집에서도 친구들과 지루할때면 좀비를 쏴 죽이는 게임을 하곤 했다. 그때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총 대신 능력을 쓴다는 점이고 게임 속 픽셀이 아닌 진짜라는 점일 것이다. 실제였지만 게임과 다를 바가 없었다. 

 

좀비 소굴인 뉴욕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게 되면서 케일럽은 제 능력의 활용도가 좋음을 새삼 깨달았다. 쓸만한 것이 없을까 탐색을 나갔다 주웠지만 총탄이 없어 사용할 수 없는 산탄총보다 유용했다. 제 능력은 총탄이 필요하지도 않았고, 장전이 필요하지도 않았다. 거기 더해 좀비는 더 이상 살아있는 존재가 아니니 능력을 써도 돌아오는 반작용이 없었다. 마치 이런 세상에서 써먹으라고 떨어진 능력같아 그 사실을 처음 깨달았던 순간 케일럽은 헛웃음을 터트렸었다. 설마하니 능력이 생긴 이유가 이 날을 대비해서는 아니겠지. 스스로도 어이없는 생각에 고개를 절레절레 젓던 때였다. 

 

갑작스레 뒤에서 들려오는 치직거림에 케일럽의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한 박자 늦게 고개를 돌리자 조금 전 만지작댔던 라디오가 켜져 신호를 잡는 듯 치직거리는 소리를 내고 있었다. 단순한 라디오의 소음이라는 것을 알아차린 케일럽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가까이 다가갔다. 라디오를 잘 만지다 보면 바깥의 소식이든 뭐든 들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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