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gar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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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미하게 짠내를 품은 바닷바람이 살랑이며 불어와 머리칼을 흔들었다. 테이블에 턱을 괴고 난간 너머 펼쳐진 말리부 비치를 바라보는 지루한 눈은 짙은 선글라스에 가려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 알렉스의 부탁으로 나온 자리였다. 제 친구의 아는 사람이 인스타그램에서 저를 보고선 딱 한 번만 만날 수 없겠냐 사정에 또 사정을 했단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알렉스의…… 뭐랬더라. 뭔가를 심사하는 사람들 중 하나랬던가. 알렉스가 친구 좋다는 게 뭐냐며, 친구 하나 살리는 셈치고 만나만 달랬다. 잘 웃고 잘 노는 케일럽 록하트는 절친(이라고 알려진) 친구의 부탁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었기에, 케일럽은 웃는 낯으로 그런 일 쯤이야 어려울 것 없다 승낙했다.
약속 장소에 나오고 보니 만나기로 한 사람은 저와는 열 살이 차이나는 서른 둘의 남자였다. 뭐, 겉으로 보기엔 열 살이라는 차이가 무색하게 번듯하게 잘생기고 앳되어 보이는 생김을 하고는 있었다만. 케일럽은 자신을 제임스라 소개하는 남자와 악수를 주고 받으며 속으로 알렉스를 어떻게 조져버리면 좋을지에 대해 잠시 고민해야 했다. 하지만 알렉스의 사기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는데, 만나야 할 사람이 또래라고 사기를 친 걸로도 모자라 남자와 자신이 알고 있는 만남의 목적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케일럽에게는 분명 그 어떤 추파도 없을 거라고, 식사만 한 번 해주면 될 거라고 했던 만남이 남자에게는 데이트였던 모양이었다. '얼굴이 너무 취향이라 꼭 한 번 만나고 싶었는데 승낙해줘서 고맙다'고 말하는 얼굴 가득 수줍음이 넘쳤다. 그래. 같은 성인끼리 얼굴이 너무 취향이면 열 살 차이가 나도 한 번쯤 이렇게 만날 수도 있지. 케일럽은 마음 속으로 식은 미소를 지었다.
사는 곳에 대한 이야기, 서핑 이야기 다음으로 지루한 직장 이야기가 줄줄이 이어지는 동안 나이프로 살구 콤포트가 올라간 바닐라 크림 타르트의 잔해를 쪼개던 케일럽의 손을 부드럽게 감싸며, 제 지루한 이야기가 너무 길었냐 젠틀하게 물어오는 그 태도란. 짓궂게 웃으며 그랬노라 대꾸할 수 있는 능청스러움이 없었다면 바로 손을 잡아 뺐을 것이다. 상대가 남자라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었지만 생각할수록 알렉스가 괘씸했다. 제 심사를 잘 받기 위해 친구를 팔아넘기다니. 물론 알렉스를 친구라고 하기엔 약간의 어폐가 있긴 했다. 친구라는 허울 아래 알렉스를 위시한 한나와 데이브는 자신을 좋은 봉 쯤으로 생각하고 있다는 걸 케일럽은 잘 알았다. 저 역시 친구라는 이름으로 그들을 다른 사람들의 접근을 막는 방패처럼 쓰고 있으니 사실 똑같다면 똑같았다. 그들에 제게서 얻어가는 모든 것들은 자신이 그들을 이용해먹는 데에 대한 대가인 셈이다. 하지만 역시 이번 일은 과했다. 심사따위 망치게 해주마. 케일럽은 남자를 향해 싱긋 웃었다.
"그런데 듣자하니 무슨 심사위원 같은 걸 한다면서요?"
"음. 그렇죠. 어떻게 알고 있어요?"
"별 건 아니고요. 친구 중 하나가 그 공모전에 나간 모양인데 절 보고 얼마나 이야길 잘 해달라고 그러는지…. 그냥 듣고 넘겨요. 이런 건 말하는 저도 불편하고 듣는 제임스 입장도 난처하잖아요. 그렇죠? 미안해요, 친구 때문에 이런 이야기나 꺼내고."
"괜찮아요. 그건 케일럽이 미안해 할 일이 아니죠. 친구가 자신이 없는 모양인데, 공모전은 실력으로만 겨뤄야죠. 친구 이름이?"
"알렉스 클로렌이요."
"더 공정하게 볼게요. 약속해요."
가슴에 손을 얹고 진지하게 말하는 올리브 빛 눈을 바라보며 케일럽은 다시 한번 입술을 휘어보였다. 그의 청렴함에 매력을 느낀 것처럼 적당히. 반은 꾸며낸 미소였지만 반은 진심이기도 했다. 괘씸한 알렉스때문에 시작된 만남이긴 했지만 그와는 별개로 남자는 오래 대화를 나눠볼수록 생각만큼 나쁘지 않았는데, 매너가 좋았고 눈치가 빨랐으며 위트가 있었다. 열 살이나 어린 남자에게 얼굴이 너무 취향이다 따위의 말을 하며 들이대는 건 감점이지만 케일럽은 제임스라는 시시한 이름의 남자에게 어쨌든 비교적 후한 점수를 매겼다. 휴일이면 개와 조깅을 하거나 서핑을 한다는 게 거짓은 아닌지, 옷 위로 드러나는 몸 역시 잘 만들어진 근육을 갖고 있었다. 남자가 화장실을 간다고 자리를 비운 사이 케일럽은 고민에 빠졌다. 식사를 한 끼 해주었으니 이쯤에서 헤어질지, 그와 좀 더 시간을 보낼지.
고민은 길지 않았다. 케일럽은 남자와 함께 음식점을 나섰다. 두 사람이 모두 차를 가져온 탓에 케일럽은 좋은 곳이 있다는 남자의 차 뒤꽁무니를 졸졸 따라가야했다. 그리고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케일럽은 헛웃음을 터트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남자가 저를 이끌고 온 곳이 그의 집이었기 때문이다. 어쩐지 자꾸 주택들이 모여있는 길로만 들어가더라니. 차고로 들어간 남자의 차를 가로 막으며 앞에 주차한 케일럽은 차에서 내려서며 물었다.
"좋은 곳이 당신 집일 거라곤 정말 상상도 못 했네요."
"Home sweet home이라잖아요."
"그거 그렇게 쓰는 말이 아니지 않나요?"
"아무려면 어때요. 들어와요."
차고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문 앞에서 남자가 열쇠를 찾는 사이, 성큼성큼 걸어 그 뒤로 다가간 케일럽이 열리는 문을 부드럽게 밀어 닫았다. 남자는 작게 숨을 들이켰을 뿐 아무런 행동도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어디선가 이른 밤벌레가 작게 울었다. 케일럽은 문에 등을 기대며 돌아서는 남자의 올리브 빛 눈을 마주했다.
"집에 들어가면 우린 뭘 했을까요?"
"섹스 온 더 비치를 한 잔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그리고?"
"섹스하려고 꼬셨을 거예요."
"양심이 없네요, 제임스."
"원하는 걸 가지려면 때론 양심도 버려야 하는 법이죠."
"그래서, 버리시겠다?"
그런 셈이죠. 대답하는 남자의 목소리가 낮게 잠겼다. 케일럽은 웃었고 남자는 팔을 뻗어 케일럽의 목을 감싸안았다. 두 몸이 좀 더 가깝게 붙는 것과 입술이 닿는 것은 동시였다. 케일럽은 남자가 아랫입술을 부드럽게 머금어 오는 것을 내버려 두었다. 얇은 셔츠 위로도 또렷하게 드러나는 등골을 손끝으로 쓸어내리며 케일럽이 고개를 조금 숙였다. 입술과 입술이 좀 더 깊게 맞닿았다. 케일럽은 입술을 가르고 들어오는 남자의 혀에 혀를 부비듯 움직였다. 서로의 체온을 고스란히 품은 살덩이가 부벼지고 얽히며 타액이 뒤섞인다. 손을 뻗은 케일럽이 문을 짚으며 남자의 몸을 문으로 은근하게 밀어붙였다. 남자의 다리가 케일럽의 허벅지를 쓰다듬었다. 입술이 떨어진 좁은 틈으로 케일럽의 속삭임이 흘렀다. 차고에서 해본 적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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