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훌라바바
미국의 봄은 낯설다. 케일럽이 가진 봄에 대한 기억은 10살까지의 흐릿한 기억과 지난 미국 순회공연 때 2번 정도 맞이했던 기억뿐이었다. 다 똑같은 봄일 텐데 낯설 것이 뭐냐고 한다면 그도 그렇다 고갤 끄덕이고 말겠지만. 사실 낯선 것은 봄뿐만이 아니었다. 마치 외국에 여행을 나온 듯 조국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것이 낯설었다. 자신을 마중 나온 포드에 몸을
파리는 많은 예술가들이 천국으로 여기고 찬양하던 도시였다. 각종 예술이 술과 담배, 낭만 아래 한데 뒤섞여 녹아내리는 그런. 그 가운데에서도 파리에 번성한 재즈는 파리를 천국으로 여기고 건너온 미국의 뮤지션들이 일으킨 파리의 여러 기둥들 중 하나였다. 파리에 있을 때에도 재즈클럽은 동료들과 자주 다녔다.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재즈는 영감을 불러일으키기에
파리에서의 답장이 이제야 도착했다. 케일럽은 어쩔 수 없이 휴가를 승인한다는 티가 잔뜩 나는 답신을 내려다보고 원래대로 접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자신의 서재로 쓰이게끔 만들어진 방은 아직도 어색했다. 케일럽이 뉴욕에서 한동안 머물겠다 결정한 이후, 저택에는 새롭게 방이 마련되었다. 케일럽은 자신이 처음 묵었던 손님방을 계속 쓰는 것으로도 괜찮다고 생각
1825 아이의 세상은 잔잔했다. 주변에서 어떤 격랑이 몰아쳐도 아이의 세상에 들어오면 그것은 작은 파도가 되었다. 2555 환한 햇살 아래 어느 날 아이는 동생을 밀쳤다. 자신의 공을 동생이 가져간 뒤 흠집이 생겼다는 이유였다. 도련님, 아무리 화가 나도 아직 어리고 약한 동생을 그렇게 밀치면 안 돼요. 유모가 말했다. 무릎이 까진 동생을 보듬는
예술의 어원은 기술을 의미하던 말이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처음으로 '기술'을 필요에 의한 것과 기분 전환 및 쾌락을 위한 것으로 이분했다. 그렇게 전자가 기술이 되고 후자는 예술이 되었다. 예술은 단순히 미美만을 내포하지 않는다. 희로애락을 포함하여 예술에는 한 손에 꼽을 수 없으리만치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다. 예술은 언제나 사람들을 향해 많은
고래古來에 인간은 꾸준하게, 무언가를 두고 나누는 것을 참 좋아했다. 세상의 것들을 멋대로 나누어 분류하고 묶다가, 그네들 스스로도 다양한 기준으로 분류했다. 사람 간의 계급을 나누고, 특징으로 종을 분류한다. 사람만 해도 개인에게 따라붙는 꼬리표의 개수는 적어도 하나 이상이다. 나누는 잣대의 기준은 다양했다. 성별, 가진 부의 크기, 피부의 색, 타고
어떠한 일들이 어떠한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마치 한껏 감아두었던 태엽을 놓은 오르골처럼. 뉴욕은 원래 이렇게 무수히 많은 일들이 쉬지 않고 일어나는 곳인가? 뉴욕이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것이 좋지 못한 사건들에도 적용되는 말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다. 케일럽은 신문 상단에 크게 쓰인 <상처받은 코람데오
호흡마다 눅눅하고 차가운 습기가 폐부를 가득 채웠다. 젖은 풀의 냄새가 코끝을 스치고 바스락거리는 풀잎 흔들리는 소리가 귓가를 쓰다듬는다. 케일럽은 눈을 내리깐 채 고요하게 숨을 내뱉었다. 한 쪽 무릎을 바닥에 대고 앉은 채 키가 큰 풀 사이에서 몸을 감추고 있는 중이었다. 제 옆에서는 외조부가 숨을 죽인 채 날카로운 눈으로 풀 너머를 꿰뚫듯 쳐다보고 있
1. '어리다'는 것은 좋지 않다. 어리다는 것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고, 어리다는 것은 어른이 없으면 안되는 게 많다는 뜻이었다. 케일럽은 그 사실을 다섯 살에 깨달아 가고 있었다. 또래에 비해 생각이 깊다면 깊은 편에 들었다. 케일럽은 많은 것을 따졌다. 이것은 어째서 이렇게 되었고, 왜 저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지. 그것은 왜 그
"그게 문제가 되나요? 마담." 아침부터 무거운 정적만이 티 룸을 감싸고 돌았다. 캘리포니아에서 여전히 돌아오지 않은 집안의 가장을 제외한 모든 가족이 티 룸에 모여 앉은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하늘빛 위로 갈색 얼룩이 진 눈동자가 티 없이 푸른 눈을 마주했다. 흔들리는 마담의 시선이 찻잔 위로 떨어져 내린다. 뒤를 잇는 깊은 한숨에 고운 빛깔의
언어는 사람이 자신의 뜻과 느낌을 표현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방법이다. 그 외에도 언어를 설명할 수 있는 말은 무수히 많았다. 언어는 또한 도구였다. 아이에게 언어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한 도구에 가깝다면 어른에게 언어는 자신의 교양과 지식 따위를 드러내기 위한 도구에 가깝다고 볼 수 있었다. 옛부터 과시하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언어는 중요하
갑작스레 시작되었던 살육의 밤은 시작만큼이나 갑작스레 끝났다. 실 끊어진 인형처럼 움직이기를 멈춘 시체들 사이에서 케일럽은 유일하게 서 있는 존재였다. 시체로 그득한 호텔 로비를 한 바퀴 훑어보았다. 바닥에 흥건한 피, 리셥션 데스크 위를 물들이는 피, 벽에 수놓아진 피. 피. 피. 온 사방이 시체와 피였다. 방금 전까지 뺨에 새롭게 튀었던 피를 닦으려던
희미하게 짠내를 품은 바닷바람이 살랑이며 불어와 머리칼을 흔들었다. 테이블에 턱을 괴고 난간 너머 펼쳐진 말리부 비치를 바라보는 지루한 눈은 짙은 선글라스에 가려 드러나 보이지 않았다. 알렉스의 부탁으로 나온 자리였다. 제 친구의 아는 사람이 인스타그램에서 저를 보고선 딱 한 번만 만날 수 없겠냐 사정에 또 사정을 했단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사람이 알
좀비가 뉴욕을 뒤덮은지 이 주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그 사이 케일럽은 머물 곳을 두 번 옮겼고, 쉘터 방위군이라는 것이 되었으며, 아무런 능력이 없는 일반인들을 구하기 위해 능력을 사용했다. 케일럽이 가진 인류애의 정도를 놓고 본다면 케일럽은 박애주의자라기 보다 개인주의자에 가까웠으므로 거창한 사명감이나 책임감에 의해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바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