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케일럽 미션로그

M02


어떠한 일들이 어떠한 흐름에 따라 순차적으로 일어나고 있었다. 마치 한껏 감아두었던 태엽을 놓은 오르골처럼. 뉴욕은 원래 이렇게 무수히 많은 일들이 쉬지 않고 일어나는 곳인가? 뉴욕이 바쁘게 돌아가는 도시라는 것은 알고 있다. 그것이 좋지 못한 사건들에도 적용되는 말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을 뿐이다. 케일럽은 신문 상단에 크게 쓰인 <상처받은 코람데오>, 그 한 줄을 두어 번 반복해서 읽었다. 상처받은 코람데오. 누가 뽑은 헤드라인인지는 몰라도 퍽 자극적이고 직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케일럽은 유쾌하고 활달하던 목소리의 케빈 그린우드를 떠올렸다. 물론 그 이름을 알게 된 것은 대서특필된 신문을 본 다음이었다. 추모는 짧았다. 케빈 그린우드가 금발에 녹안을 가진 사람이었던가, 적발을 가진 사람이었던가. 지금에 와서는 그 어느 것도 중요하지 않겠지만. 

 

시신은 처참한 상태였다고 했다. 다리를 으깨놓는 것으로도 모자라 얼굴 가죽을 벗겨내 천사 상의 품에 안겨놓는 짓은 아무리 감정을 느끼는 데 있어 약간의 어려움을 겪는 케일럽이라 해도 눈살을 찌푸릴 만큼 고약한 짓이었다. 사람의 신체를 그 정도로 훼손한다는 것은 도의적인 시선에서 보았을 때 적의를 넘어선 악의가 담긴 행위였다. 코람데오를 향해 이렇게까지 선명한 악의를 드러내야 할 이유는 어디에 있으며 드러내고 있는 것은 과연 누구일까. 케일럽은 약간의 궁금증이 뱀처럼 머리를 쳐드는 것을 느꼈다. 사건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신원 불명의 잘린 손이 코람데오로 보내기까지 했다. 동일한 사람, 혹은 단체의 짓일까. 그것이 아니라면 코람데오의 적이 하나 이상이라는 의미일까. 안젤리카 테일러가 공식 성명을 발표하며 선포한 경고가 정체 모를 적에게 도발로 읽힌 것은 틀림없어 보였다. 

 

"형?"

노크 후 들려오는 목소리에 케일럽이 문가로 시선을 주었다. 열린 문 사이로 반쯤 몸을 집어넣은 엘리엇이 조금쯤 불안한 눈으로 케일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일말의 불안함 아래에서 허락을 구하는 기색이 보여 들어오라는 듯 손짓한 케일럽이 신문을 테이블 한구석으로 밀었다. 닫히는 문 너머로 검은 정장을 입은 건장한 몸이 짧은 순간 스쳤다. 케일럽은 맞은편 소파에 앉는 제 첫째 동생을 쳐다보았다. 할 말이 있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무슨 일이야."

"형. 코람데오에는 돈을 기부하기만 한 게 아니었어? 저 시커먼 사람들은 뭐야?"

"코람데오에서 보호를 명목으로 파견한 경호원이지."

"어머니가 집에 낯선 사람들이 계속 있을 거라고 불편해 하셔."

"마담께는 내가 따로 말씀드릴게. 신경 쓰지 마."

허리를 곧게 편 채 소파에 앉아있던 케일럽이 다리를 꼬며 한 손을 들어 턱을 만지작거렸다. 이 집안의 사람들은 케일럽 자신이 그저 코람데오에 기부를 하는 것만으로 뜻을 같이 하고 있다고 알고 있었다. 엘리엇에게만은 사실을 말해두어야 할까. 짧은 고민에 빠져 말을 않는 케일럽을 엘리엇이 조금 의아한 눈으로 마주하고 있었다. 엘리엇은 가볍게 굴지만 입이 무거웠고, 경중을 구분할 줄 아는 빠른 눈치를 갖고 있었다. 이 집안의 한 사람 정도는 사실을 알고 있어도 괜찮으리라. 

"저 경호원들은 코람데오에서 대행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파견한 사람들이야."

"…그럼 왜 이 집에 있지?"

"코람데오의 대행자들이 위협을 받고 있으니까."

"그렇다는 건 형도 대행자라는 소리인데."

케일럽은 침묵으로 긍정을 대신했다. 잠시 얼빠진 표정을 짓던 엘리엇이 불현듯 제 이마를 짚었다. 케일럽의 것보다 짙은 색의 눈이 잠시간 흔들렸다. 몇 없는 어린 기억의 조각에서도 엘리엇은 이해가 빨랐다. 때문에 케일럽은 그 광경을 그저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시간을 주면 알아서 이해할 것이고, 그럼에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알아서 물어올 것이다. 

 

"나는 왜 형이 정말 단순한 기부자라고만 생각했지?"

"내가 뉴욕에서 지내기 위해 장기 휴가를 썼다고만 했으니까."

"…대행자라고. 하, 대행자. 대행자라."

같은 말을 중얼거리던 엘리엇은 얼마 지나지 않아 진정한 듯 고개를 들고 눈을 마주쳤다. 이런 사실을 말하지 않은 것에 대한 원망은 티끌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형제는 그런 관계였다. 속일 수 없는 형제였으나, 타인만큼 먼 시간의 틈을 가진. 그나마 어색하지 않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십 년이 넘는 시간 동안 편지를 주고받았기 때문일 터였다. 이후 케일럽은 엘리엇이 물어오는 몇 가지의 질문에 비교적 성실하게 답해주었다. 질문이라고 해 봐야 케일럽이 가진 능력에 대한 것들이 대부분이어서, 케일럽은 긴 말 없이 엘리엇을 한 번에 이해시키기 위해 능력을 사용해보이기까지 했다. 

"다른 가족들에겐 계속 알리지 않을 생각인 거지?"

"굳이 알려야 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런 거라면 저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머니께 내가 잘 말씀드릴게."

케일럽은 엘리엇의 제안에 대해 고려했다. 처해있는 상황을 구구절절 길게 말하고 싶지 않은 자신과 달리 말주변이 좋은 엘리엇이라면 마담의 쏟아질 질문에도 유연하게 잘 대처할 것이다. 굳이 세세하게 부탁하지 않아도 적당한 진실과 적당한 거짓을 섞어 매끄럽게 잘 가장할 것 같았다. 케일럽은 자신이 대행자임을 덮어 가릴 수 있는 적당한 구실이 필요했고 엘리엇은 그것을 만들어 낼 능력이 충분했다. 케일럽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엘리엇을 내세우는 것이 자신에게도, 마담에게도 편한 일이리라. 

"그럼 네가 잘 말씀드리도록 해. 나는 좀 나가야겠어."

"위험하다면서 어디 가게?"

"마담이 불편해하니 내가 나가있으려고. 경호원도 있으니 별일 없을 거야."

"그래도 조심해." 

 

케일럽은 걱정 말라는 듯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제게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다. 몸을 지킬 줄 모르는 것도 아니고, 코람데오에서 붙여준 경호원도 딸려있으니. 케일럽은 엘리엇이 어머니를 봬야겠다며 먼저 방을 나간 다음 외출 채비를 끝내고 방 밖으로 나섰다. 케일럽의 요청에 따라 방안까지 들어오는 대신 문 앞을 지키던 두 명의 경호원이 동시에 케일럽을 쳐다보았다. 무기질적인 눈빛을 두 쌍을 마주하며 케일럽은 먼저 걸음을 뗐다. 

 

"외출을 좀 할까 하는데요." 

"네, 알겠습니다." 

 

집안 구석구석에 때아닌 서리처럼 내린 경계심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케일럽은 이 경호가 끝날 때까지는 자신이 외출을 자주, 오래 하는 것이 집안의 모두에게 도움이 되리라는 것을 잘 알았다. 어차피 객처럼 지내고 있을 뿐이니 잦은 외출이 이 집안에서 문제가 될 이유는 없었다. 케일럽은 적절한 거리를 유지한 채 뒤따르는 경호원들에게 신경을 거두고 저택을 나섰다. 애초에 뚜렷한 목적을 가진 외출이 아닌지라, 케일럽은 사람들이 많은 거리에 적당히 내려선 뒤 마음대로 걸었고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으며 길가의 가게에 들렀다. 좁거나 복잡한 가게에 들어갈 때는 그들을 바깥에 세워두었다. 그러나 케일럽은 차에서 내린 이후 그들이 유지하는 거리가 보다 가까워져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거리를 걷는 동안 흘긋거리는 사람들의 시선이 피부로 느껴졌다. 케일럽은 시선의 이유를 충분히 이해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커먼 정장을 입은 건장한 남성 두 명을 뒤에 달고 다니는데, 눈에 안 띄길 바라는 것이 우스운 일이었다. 이래서야 경호를 한다는 건지 여기 있다고 광고를 하는 건지 모를 노릇이었다. 케일럽은 저 역시 대행자이고 납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은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두려운 일이 되어야 하는지를 묻는다면 쉬이 가늠할 수 없었다. 제게는 그저 일상에 흔히 있는 일처럼 적당히 무감하고 적당히 느껴지는 게 다였으므로. 케일럽은 파도조차 치지않는 잔잔한 마음으로 실제 납치라도 당하면 그제야 뭔가 느끼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복작거리는 인파 속에 흘려보냈다. 겉으로 보기에 뉴욕은, 오늘도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평화롭고 바쁘게 흘러가는 듯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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