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세계

케일럽 관계로그

with. 유디트


1.

 

'어리다'는 것은 좋지 않다. 어리다는 것은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는 것이고, 어리다는 것은 어른이 없으면 안되는 게 많다는 뜻이었다. 케일럽은 그 사실을 다섯 살에 깨달아 가고 있었다. 또래에 비해 생각이 깊다면 깊은 편에 들었다. 케일럽은 많은 것을 따졌다. 이것은 어째서 이렇게 되었고, 왜 저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지. 그것은 왜 그런 이름으로 불려야 하는지. 케일럽의 질문에 대답해주는 것은 대부분 유모의 역할이었다. 케일럽은 질문이 많은 아이였고 유모는 케일럽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해주었지만 종종 대답을 잃는 경우가 있었다. 예컨대 자신의 웃는 얼굴을 보며 왜 사람들은 그렇게 이를 보여 주냐고 묻거나, 우는 동생을 내려다보며 얘는 왜 이렇게 시끄럽냐고 물을 때면 뭐라고 대답을 해주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케일럽은 즐겁거나 기쁠 때 나오는 것이 웃음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유모는 그런 다른 점을 가진 아이가 종종 무서웠다. 왜 감정을 모르는 것처럼 보이는 지 알 수 없었다.

 

마담 또한 케일럽이 또래의 아이와는 조금 다르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는데, 마담은 케일럽에게 '잘못 된 부분이 있어서' 다른 아이들과 다르다고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이 좀 더 많은 것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겪게해주면 아이는 자라며 남들과 같아질 거라고 믿었다.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받으면 보통 아이처럼 될 것이라고도 믿었다. 때문에 마담은 어린 케일럽을 많은 자리에 데리고 다녔다. 아이가 내켜하지 않는 때에도 달래고 얼러 함께 가곤 했다. 물론 케일럽은 그런 마담의 뜻을 알 수 없었으므로, 어머니가 대체 왜 가고 싶지 않은 자신을 항상 데리고 가는 것인지 그 이유 또한 알지 못했다. 그저 '귀찮다'는 것에 대해 일찍 알게 되었을 뿐이다. 매 주일마다 성당을 찾는 일 역시 그 '귀찮은' 일 가운데 하나였다. 케일럽은 어째서 기도를 올려야 하는 건지 이해하지 못했다.

 

어린 눈으로 보기에 기도를 올리고 신부님의 말씀을 듣는 것은 바보 같은 일이었다. 부모님이 무슨 기도를 그렇게 열심히 하는지는 몰라도, 그것이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었다. 그렇다는 건 기도를 드리는 것이 소용없는 일이란 뜻이 아닐까? 크리스마스면 나타나는 산타가 사실은 에그녹을 잔뜩 마신 할아버지인 것처럼, 기도를 들으신다는 분은 사실 없는 것일지도 몰랐다. 물론 그 말을 했다간 매주 열심히 기도를 올리는 부모님이 절 가만 두지 않을 것 같아 케일럽은 입을 다물고 얌전히 끌려올 뿐이었다. 봄 햇살이 따사로운 어느 아침에도 어김없이 타의에 의해 하얀 셔츠와 까만 서스펜더, 까만 반바지를 입은 채 성당으로 끌려온 케일럽은 미사가 끝날 때까지 어머니 옆에 꿔다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있었다.

 

길고 지루한 미사가 끝나고, 드디어 집으로 돌아가나 싶어 조금 안도했던 케일럽이 이내 뚱한 얼굴을 하고 가까운 화단으로 돌아섰다. 신부님과 마주한 부모님이 성당을 떠날 생각을 않는 것이다. 뭐가 오가는지 모를 어른들의 이야기가 빨리 끝나기만을 바라며 케일럽은 화단 앞에 쪼그려 앉아 두 손으로 턱을 괴었다. 희미하게 코끝을 스치는 꽃향기가 향기로웠다. 그 향기에 이끌린 것처럼 하얀 나비가 팔랑팔랑 다가와 노란 꽃 위에 앉았다. 노란 꽃잎이 유난히 도드라져 보였다. 케일럽은 꽃이 그대로 오므라들어 나비를 잡아먹는 모습을 상상한다. 나비는 아플까? 몸이 작아서 아프지 않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나비는 소리를 못 지르는걸. 꽃 위에 앉아 움직이지 않는 나비를 지켜보던 케일럽 위로 문득 그림자가 드리운다. 시선을 아래로 떨구니 하얀 구두 한 쌍이 다가와 있었다. 자신의 까만 구두와는 정반대의 색이다. 그 또렷한 대비를 머릿속으로 그리던 케일럽이 뒤늦게 고개를 들어 다가온 존재를 올려다보았다.

 

"너도 부모님한테 끌려왔니?"

 

하얀 원피스를 입고 옅은 노란빛의 양산을 든 사람이었다. 쪼그려 앉은 채 올려다보자니 까마득해 보여 케일럽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래도 저보다 머리 하나만큼 더 커서, 케일럽은 고개를 들어야 했다. 그제야 양산 아래 그늘진 얼굴이 제대로 보였다. 붉은 기가 도는 갈색의 곱슬머리와 녹색 눈을 가진 낯선 사람. 부모님처럼 큰 어른은 아니었고, 굳이 분류를 하자면 작은 어른이었다. 아가씨, 혹은 요조숙녀로 불리우는 작은 어른. 케일럽은 잠시 경계하듯 쳐다보다 입을 열었다.

 

“부모님이 미사를 빠지는 건 안 될 일이라고 했어요.”

“부모님이 죽으라면 죽을 것도 아니면서.”

 

톡 튀어 오르는 공처럼 돌아오는 말에 케일럽은 눈을 깜빡였다. 파란 공을 던졌는데 빨간 공이 되돌아 온 기분이었다. 갑자기 왜 죽는 이야기가 나오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죽는 건 싫었다. 부모님이 죽으라 한다 해도 그 말은 듣지 않을 것이다.

 

“그거야 그렇지만 부모님은 말 잘 듣는 아들을 원하시니까 죽은 척 할 거예요.”

“얘는, 어른들이 바본줄 아니? 진짜로 죽은 거랑 죽은 척도 구분 못하게.”

 

그것도 그랬다. 어른들은 똑똑하고 아는 것이 많으니 분명히 죽은 척을 한다는 걸 알아차릴 것 같았다. 어른이 되면 그럴 걸 구분할 수 있구나. 대답할 말을 잃은 케일럽이 콧등을 찌푸린 채 가만히 서있자, 양산을 든 예쁘고 작은 어른이 불쑥 사탕을 내밀었다. 사탕 먹을래? 케일럽은 작은 어른을 가만히 올려다보다 고개를 저었다.

 

"아무거나 먹는 거 아니라고 배웠어요."

"그렇긴 하지."

 

사탕은 작은 어른의 입으로 쏙 들어갔다. 케일럽이 고개를 갸웃했다. 뭔가가 달랐다. 이제껏 만나 본 다른 어른들은 한두 번쯤 더 권했는데, 눈앞의 이 작은 어른은 다시 묻지 않았다. 사실 다시 물었어도 케일럽의 대답은 달라지지 않았겠지만. 다시 묻지 않는 다는 것이 다섯 살 케일럽에게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때문에 케일럽은 자신을 찾는 어머니의 목소리에 부지런히 발을 놀리면서도 고개를 돌려 양산의 그늘 아래에서조차 하얗게 빛나는 얼굴을 기억에 담았다. 특이한 사람이었다.

 

2.

 

존재를 인식한 순간 타인은 완전한 남이 아니게 된다. 의도를 하였든 하지 않았든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것이다. 특이한 사람은 그 존재를 인식한 뒤부터 케일럽의 눈에 자주 띄었다. 그러니까, 매주 다가오는 주일 미사에서 말이다. 네댓 번의 미사를 지나보내며 케일럽은 그 작은 어른에 대해 깨달은 것이 있었는데, 자신과 마찬가지로 부모님께 이끌려 억지로 미사에 나오는 걸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 성당의 모두가 기도를 위해 고개를 숙였을 때 꼿꼿이 서서 두리번거리던 머리통은 단 둘 뿐이었으므로. 성당에 오고 싶어 했다면 고개를 들고 있지 않을 테니까. 케일럽은 작은 어른에게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얘. 넌 왜 항상 그런 얼굴이니?"

 

케일럽에게 동질감을 안겨주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면 작은 어른의 부모님 역시 미사가 끝난 후 제 부모님처럼 바쁜 사람들이란 점이었다. 홀로 남겨진 아이들은 서로를 알아보게 마련이다. 부모님을 기다리며 성당 벽에 기대선 케일럽 곁으로 익숙하게 다가온 작은 어른은 양산을 한쪽 팔에 걸어둔 채였다. 케일럽은 문득 그 모습이 그림책에서 보았던 우아한 귀부인과 닮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얼굴이 어떤데요?"

"뚱한 것 같기도 하고…."

"뚱하다고요?"

"아니, 사실 그렇게 뚱해보이진 않는 것 같기도 하고…."

 

진짜 뚱해 보이려면 이렇게 해야지. 그리고는 얼굴을 잔뜩 구겨 보인다. 그것을 올려다보는 케일럽의 표정이 무어라 말할 수 없는 애매한 빛으로 물들었다. 귀부인과 닮았다는 것은 아무래도 취소해야 할 것 같았다. 귀부인은 저런 얼굴을 하지 않는다. 사실 케일럽은 뚱하다는 게 어떤 건지 몰랐다. 저런 걸 뚱하다고 하는 건가?

 

"못생겼어요."

"이 정도는 되어야 불만을 나타낼 수 있는 거야."

 

못생겼다는 말에는 끄덕도 없이 으쓱이듯 턱을 살짝 들어 보이는 모습을 보며 케일럽이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 다였다. 하지만 그렇게 불만을 나타내는 것은 별로 하고 싶지 않았다. 저런 얼굴로 불만을 나타내야만 한다면 그냥 불만을 나타내지 않아야겠다 생각했을 뿐이다.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간 케일럽은 잘 준비를 도와주는 유모에게 자신이 뚱한지에 대해 물었다. 유모는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케일럽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런 말은 어디서 들었어요?"

"오늘 성당에서 만난 특이하고 이상한 사람이."

 

다정히 물어봐오는 유모에게 낮의 일을 조곤조곤 말한 케일럽이 뚱한 건 이런 거라며 얼굴을 구겨보였다. 드물게 케일럽을 향해 웃음을 보이는 유모의 입매가 곡선을 그리며 휘었다. 때문에 케일럽은 더 알 수 없어졌다. 분명 불만을 나타내는 얼굴이라고 했는데, 유모는 왜 웃음이란 걸 보이는 걸까. 그 이상한 사람이 거짓말을 한 걸까?

 

3.

 

케일럽이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꼬박꼬박 성당을 나가는 동안 특이하고 이상한, 작은 어른은 종종 사라졌다 나타나길 반복했다. 몇 차례의 반복을 거치며 케일럽은 그가 모습을 보이지 않는 날이면 짧고 달콤한 자유를 만끽하고 있음을 자연스레 알았다. 어른이 미사에 와 있는데, 따라오지 않은 아이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겠는가. 케일럽은 그것이 마치 그 나이가 되어야만 누릴 수 있는 특권처럼 느껴졌다. 작은 어른이 부러웠다. 저보다는 어른에 가깝지만, 사실은 진짜 어른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그럼에도 그 나이를 맞이하면 믿음을 강요하는 귀찮은 자리에서 달아날 수 있는 꾀를 짜내는 것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언제부턴가 케일럽은 성당에 들어서면 자리에 앉은 사람들과, 속속들이 들어오는 사람들을 살폈다. 성당의 의자는 지정석이 아니었지만 사람들은 대체로 늘 앉는 자리에 앉곤 했으므로 케일럽은 그의 가족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오늘은 보이는 익숙한 얼굴에 케일럽이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쁨을 느끼는 사이 성당의 문이 느릿하게 닫혔다. 케일럽의 부모님은 케일럽이 조용하게 앉아있기만 하면 기도를 위해 눈을 감지 않아도, 기도문을 따라 읊지 않아도 별 말 없이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미사가 시작되고 나면 케일럽은 차가운 돌로 세워진 교회를 웅웅 울리는 신부님의 목소리를 들었다. 돌 벽에 부딪혀 뭉개진 소리는 무슨 단어를 말한 것인지 알아듣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가끔은 그것이 동화책에서 보았던 마녀의 주문소리 같다 생각했다.

 

성당의 모두가 기도를 위해 눈을 감을 때, 케일럽은 제단 뒤 높게 매달린 십자가를 보는 중이었다. 케일럽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이유를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부모님에게 장황한 설명을 들었으나 다섯 살의 머리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십자가에 못 박히면서 다른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짊어졌다는 것 정도가 다였다.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한다는 개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걸까. 곰곰이 생각에 잠겨 십자가를 올려다보던 케일럽이 문득 고개를 돌렸다. 모두가 앞을 보고 눈을 감은 가운데 하얀 얼굴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익숙한 얼굴이다. 기도 중 눈을 감지 않는 것은 이 성당에 두 사람 뿐이다. 케일럽이 빤히 쳐다봐오는 시선에 고개를 갸웃할 때였다. 작은 어른이 얼굴을 와작 구겨보였다. 지난번의 그 못생긴 얼굴. 하지만 케일럽은 별 다른 표정의 변화 없이 그 얼굴을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얘. 너 왜 안 웃었니? 아니, 이름은 뭐야?"

"이름은 왜요?"

"계속 얘, 얘 거릴 순 없잖아."

 

미사가 끝난 후 늘 그래왔듯 혼자 남은 케일럽에게 다가온 작은 어른이 벤치에 나란히 앉았다. 이름을 가르쳐줘도 괜찮을지, 케일럽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계속 얘 하고 부를 수 없다는 그의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케일럽은 중얼거리듯 제 이름을 이야기했다.

 

"좋아, 케일럽. 나는 유디트야. 아깐 왜 안 웃었어?"

"안 웃겼는데요."

"왜 안 웃겨?"

"안 웃기니까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의 유디트를 보며 케일럽은 눈을 깜빡였다. 안 웃긴 것을 보고 웃을 수는 없지 않은가. 케일럽은 자신이 유디트의 그 얼굴에 웃을 수 있었다면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도 웃을 수 있었을 거라 생각했다. 케일럽이 보는 세상에는 웃긴 일이 없었다.

 

"웃어볼래?"

"어떻게 웃어요?"

"웃을 줄 몰라?"

"알아요."

"웃어봐."

 

왜 웃어야 하는 거지? 웃기지 않은데 웃어야 하는 상황에 케일럽은 잠시 혼란을 느꼈다. 케일럽에게 있어서 웃는 일은 어려운 일 가운데 하나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케일럽은 웃을 줄 몰랐다. 세 살짜리 아기인 동생도 방긋방긋 잘 웃는데, 형인 자신은 웃는 일이 어려웠다. 입모양을 휘는 것이 웃음을 뜻한다는 것 또한 알게 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케일럽은 궁금함을 가득 담은 유디트의 녹안을 마주하다 입을 좌우로 길게 만들어보였다.

 

"그건 그냥 이―하고 입 벌린 거잖아."

 

케일럽은 하얀 손이 얼굴로 불쑥 다가오는 것을 보았지만 피하지 않았다. 그러자 다가온 손은 케일럽의 한쪽 입꼬리를 위로 끌어올렸다. 이렇게 웃어야지. 입꼬리가 위로 당겨진 채 케일럽이 수긍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웃는 법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알려주는 방법을 진지하게 들을 수밖에. 유디트의 손이 떨어져나간 뒤에, 케일럽은 유디트가 알려준 대로 한쪽 입꼬리를 위로 끌어올려보였다. 이어서 유디트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고, 케일럽은 역시 앞으로도 웃는 법은 몰라야겠다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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