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보청명] 龍虎風雲 1~3

구룡성채au. 야매의사 당보 x 형사 청명

자급자족 1 by 커피
75
0
0

“보야, 당보. 야 이 돌팔이 새끼야.”

퍽, 당보의 머리에 물컵 하나가 날아왔다. 익숙하게 고개를 왼쪽으로 꺾어 피한 당보가 이번에는 몸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형님. 형님이 개새끼인 건 진즉 알았지만 광견병 환자인 줄은 내 미처 몰랐소.”

“뭐 임마?”

다시 날아오는 화병에 당보가 참담한 심정으로 눈을 감았다. 저게 그러니까 청대에 어느 유명한 고관대작이 아끼던 화병이라고 했던가. 제법 값비싸게 주고 구해 그가 아끼던 자기였다.

쨍그랑!

명쾌한 소리를 내며 산산조각 난 화병이었던 것을 아무 말 없이 보고 있으니 눈 앞에 험악한 얼굴이 바짝 다가왔다.

“이 새끼가 사람 말을 개 짖는 소리로 듣네?”

“형님, 보쇼. 보통 구명지은의 은혜를 입고 나면 결초보은까진 아니더라도 그만한 은을 갚으려고 하는 게 도리 아닙니까?”

아까부터 난리를 치던 사내, 청명이 콧김을 흥 뿜었다.

“그 도리는 널 감빵에 처넣지 않는 걸로 충분히 하고 있잖냐.”

“지랄 말라니까? 내가 학교만 제대로 갔어도 저기 북경대를 갔을 인간이야.”

“그 약부터 끊고 지랄해라. 약쟁이 새끼야.”

인상을 구긴 청명이 방에 유일하게 나있는 창문을 열었다. 뿌옇게 찬 연기가 밖으로 빠져나가고 눅눅한 공기가 방에 맴돌았다. 이곳, 구룡에서는 익숙한 냄새였다. 도시 아래를 흐르는 하수도에는 오물, 쓰레기, 그 밖에 있으면 안 되는 무언가까지 흘렀으니 눅눅한 냄새만 나면 다행이었다. 오늘은 누가 하수구에 사람은 버리지 않은 모양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청명이 창가에 기댄 채 입에 담배를 물었다.

뭉게뭉게 올라가는 연기가 하늘로 올라갈수록 옅어지더니 이내 흩어지는 모습은 이 끔찍한 범죄도시의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지나치게 청명했다. 기껏 채운 연기가 죄 빠져나간 게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손을 달달 떨던 약쟁이가 다시 비어있는 주사기를 한 대 들었다. 라이터로 바늘을 지지는 게, 누가 봐도 약쟁이의 그것이라 청명은 신고 있던 슬리퍼를 다시 놈의 머리에 던져버렸다.

“아악!”

나이스. 제 자리를 찾아간 슬리퍼가 놈의 머리에 퍽 하고 떨어졌다. 얼마나 오래 신었는지 밑창이 다 눌어붙어 딱딱해진 판에 정수리를 맞으니 보통 고통이 아니었다. 당보가 머리를 부여잡고 데굴데굴 구르는 동안 청명은 바닥에 떨어진 주사기를 창문 밖으로 던져버렸다.

“이 새끼가 미쳐서 형사 앞에서 약을 하네. 응? 당장 감방이라도 들어가고 싶지?”

“이, 이 미친 민중의 곰팡, 아악!”

말을 채 뱉기도 전에 청명의 다리가 약쟁이의 배를 가격했다.

“그렇게 처맞으면 말을 좀 가릴 때도 되지 않았냐?”

“형님이 말이나 행동을 그따위로 하면 존나 꼴리는게 아주 그냥…….”

“이 미친 변태 새끼. 도대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너랑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

“흐흐, 이 아우랑 붙어먹고 사는 게 얼마나 좋으시면 그런 말까지 하시오?”

제가 틀렸다. 도대체 약쟁이랑 무슨 대화를 하겠다고 이러고 있는가. 돌려도 돌려도 제자리로 돌아오는 답에 한숨을 푹 내쉰 청명이 머리만 벅벅 긁었다. 따지고 보면 저놈은 정말 그의 생명의 은인이 맞았다. 마피아 새끼들 칼에 맞고 과다출혈로 숨 넘어가기 직전의 청명을 주워다가 너덜너덜한 몸을 기운 것도 당보였고 놈들이 더는 쫓지 못하게 숨을 곳을 내어준 이 또한 당보였다. 저 정신 나간 놈이 이 구역의 유일한 제대로 된 의사라는 게 주요하게 작용한 듯했다. 매일 같이 총을 쏘고 칼을 휘둘러대는 놈들이라도 제 목숨은 소중한 법이었으니, 오히려 밖의 세상보다도 의사의 말이 강했다.

하루는 도대체 왜 저런 약쟁이 새끼가 의사라고 설치고 다녀도 아무도 제지하지 않냐 물은 적이 있다.

‘다른 놈들은 의사랍시고 마취시켜 놓고 장기 한두 개는 빼다 팔거든요.’

‘그런 이유로 약쟁이한테 몸을 맡긴다고?’

지금도 꼴을 봐라. 약 할 시간 지났다고 손을 달달 떨면서 앓는 소리를 내는 놈에게 도대체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미친 새끼야, 말은 바로 해야지. 내가 언제 너랑 붙어먹었다고 그래.”

단언하건대 청명은 절대 저런 놈이 취향이 아니었다. 오히려 혐오하면 혐오했지.

“원래 손 맞고 배 맞고 정신 차리고 나면 아래도 맞추고…….”

날 적부터 평범한 삶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더럽게 꼬였다고 생각한 적 또한 없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제 인생이 잘못 꼬여도 단단히 잘못 꼬였음을 인정해야 했다.

‘넌 나 왜 살렸냐?’

‘형님 얼굴이 존나 취향이라서 따먹으려고 살렸는데요.’

그다음부터였다. 짐 싸서 당장 이 구룡을 떠나려는 청명에게 당보가 끈적하게 달라붙은 것이.

‘떨어져, 떨어지라고 이 거머리 새끼야!’

‘아! 갈 거면 한 번은 대주고 가던가!’

‘치료비 주겠다고 했잖아! 왜 굳이 몸인데!’

제가 이 안에서나 돈이 없고 쫓기는 알거지 신세지, 밖에서는 제법 날리는 경찰이었다. 목숨을 살려준 은혜는 저놈을 깜방에 처넣지 않고 돈 몇 푼 쥐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리라. 그렇게 만만하게 여긴 청명의 실책이었다.

‘돈은 형님보다 제가 많을 거라니까요! 이게 애새끼들 장기가 야들야들하니 비싸서, 아, 농담! 농담!’

‘시발. 너 그거 농담 아니면 그날로 나한테 뒈질 줄 알아라.’

그날도 약 한 사발 빨고 눈탱이가 맛이 가서 달라붙는 당보의 머리를 발로 퍽퍽 차다가 일어난 일이었다.

- 잠입 유지.

한 줄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지시가 상부에서 도착했다. 원래라면 뒈져버렸을 놈이 살아있으니 신기해서 더 부려 먹겠다는 건지, 아니면 정말 뭐 더 다른 이유가 있는지. 그건 청진이 알아낼 것이다. 무튼 결론은 청명이 이 빌어먹을 곳에 한동안은 더 붙어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당보에게는 희소식이었고 청명에게는 끔찍한 소식이었다.

‘야.’

‘넹.’

‘너 앞으로 나랑 같이 살면서 약하다 걸리면 뒈질 줄 알아라.’

‘네!’

그 답을 들은 지 불과 닷새, 약 28번째 투약 시도를 하다 걸린 당보의 머리채를 청명이 신명 나게 흔들었다.

“형님. 암만 욕구 불만이어도 무슨 씹질하듯이, 악, 아악!”

“오늘 그냥 너 죽고 나 죽자!”

틀렸다. 저런 새끼도 이곳에서 의사 선생님 소리를 듣는 현실이 좆같았다. 개 같은 상부, 개 같은 책상머리들. 현장에서 이렇게 개고생하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여기서 버티라는 말이나 보내고 아무 연락이 없는 핸드폰을 마구 흔드니 혈압만 더 올랐다.

“그냥 내가 뒈져야지. 응? 내가 콱 뒈져야지.”

정신이라도 놓은 줄 알았던 놈이 그 말을 듣고 또 슬금슬금 기어 온다.

“형님. 이왕 뒈질 거 몸은 저한테 주시면, 아악!”

오늘만 무려 열일곱 대의 매를 맞은 당보가 그대로 기절했다.

“하여간 저 새끼는 도움이 안 돼요.”

툭 뻗어있는 당보를 발로 쳐낸 청명이 집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방의 청소를 시작했다. 이걸 정말 사람에게 써도 되는 게 맞는지 의심스러운 약품과 주사기는 구석에 대충 밀어뒀다. 일전에 함부로 약품에 손댔다가 장장 열 시간 동안 놈의 징징거림을 들었기에 조심할 수밖에 없었다.

“야. 야. 아직도 퍼질러자냐? 일어나.”

삐걱거리는 창문을 열어 방 안에 가득 차 있는 연기를 빼내니 하수구의 퀴퀴한 냄새가 바로 올라왔다. 오늘 아침쯤 어떤 놈이 하수구에 사람 시체라도 버린 모양이었다. 이곳이 구룡만 아니었어도 저런 범죄자 새끼들은 평생 햇빛도 보지 못하고 살게 만들어줄 자신이 있는데.

빼곡한 건물 사이로 보이는 한 뼘짜리 하늘을 올려다보니 절로 눈물이 났다.

“하, 형. 내가 이러고 산다니까…….”

아마도 밖에서 청명을 빼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며 고생하고 있을 청문을 생각하니 입에서 쌍욕이 나왔다. 분명 구룡에 들어오겠다 자원했을 때만 해도 꿈과 희망이 넘쳤던 것 같은데. 어쩌다 저런 돌팔이 새끼랑 위험한 동거나 하고 있는지.

바닥이라도 대충 빗자루질을 하고 당보를 발로 툭툭 쳐서 다시 옆으로 밀어내니 놈이 꿈틀거렸다.

“야.”

“…….”

“셋 셀 동안 안 일어나면 버리고 온다. 셋.”

분명히 셋을 세기는 했다. 셋만 세서 문제였지.

“아 누가 숫자를 그렇게 셉니까!”

“내가. 내가 이 새끼야.”

아니나 다를까 벌떡 일어난 당보가 삿대질을 해댔다. 팔딱팔딱 일어나는 것을 보니 기운도 좋은게 분명 아까부터 깨어있었던 놈의 움직임이었다.

“언제 일어났냐?”

“형님이 제 장인어른을 찾을, 아아아악!”

그래봐야 정신 차린지 십 분도 안 됐을텐데, 다시 얼굴에 발이 박혀버린 당보가 훌쩍이면서 몸을 웅크렸다.

“이 미친 약쟁이 새끼가 뭐?”

“헤헤. 형님을 키워주신 분이라면서요. 그러면 당연히 제 장인어른이죠."

“누가 보면 너랑 내가 결혼이라도 한 줄 알겠다.”

“헉. 결혼해 주시려고요?”

“꿈 깨라.”

청명은 죽었다 깨어나도 저런 놈이랑 배를 맞출 생각이 절대 없었다. 결혼은 더더욱 아니고. 지금도 아프다고 징징대며 제 다리에 매달리다가 다시 한 대 차니 약이나 찾으러 가는 놈이었다.

“역시 제 삶의 낙은 이것뿐이요.”

“내려놔라?”

“형님이 깨먹은 약이 도대체 얼마치인지 아쇼? 정 그러면 돈이라도 내놓던지!”

“준다고 했는데 네놈이 싫다며!”

“몸으로 갚으라니까?!”

그냥 저놈부터 죽여버릴까. 시말서는 물론이고 잘해도 징계에 감봉이다. 최악의 경우에는 옷도 벗어야 하고. 그런 걸 각오하고 저놈 하나 죽일 수 있다면 제법 괜찮은 대가 아닐까. 당보가 치료하는 동안 방해된다며 빼앗은 제 총이 들어있는 서랍을 힐긋거리니 약쟁이 새끼가 두 팔을 들었다.

“타임, 타임. 우리 대화로 합시다.”

“오늘부터 얘의 이름이 대화다.”

청명이 오른쪽 주먹을 들면서 히죽거렸다. 단언컨대 그는 절대 폭력적인 성격이 아니었다. 그가 이렇게 된 건 모두 저놈 탓이다.

“아. 항복이라고.”

“말이 짧다?”

“따지고 보면 제가 형인데요?”

“제 나이도 모르는 놈이 뭐래?”

이 범죄자 소굴의 일원답다고 해야 할까. 당보는 본인의 나이를 몰랐다. 대충 키가 크는 걸 멈춘 해를 기준으로 17살을 세었다고 하니 야매도 이런 야매가 따로 없었다.

“아픈 곳을 이렇게 찌르십니까?”

“널 깜빵에 처넣지 않는 게 내 최대의 자비다, 새끼야.”

아픈 곳은 무슨. 청명이 저놈과 지내면서 본 범죄 행위만 해도 수십 가지가 넘었다. 그걸 알면서도 은팔찌를 채우지 못하는 까닭은 정말 단순하게, 사고 치지 말고 있으라는 청문의 명령 덕이었다.

“에이. 저 덕분에 구룡에서 지내도 눈치 안 받는 거 압니다.”

“…….”

아주 조금은 저놈 덕을 보고 있기도 했다.

빌어먹을 작은 사회. 도대체 왜 범죄자들 주제에 끈끈한 건지 이놈들은 앞집의 옆집의 아랫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다 알고 있었다. 고로 청명은 밖에서 거하게 사고치고 구룡으로 도망 와 당보에게 인생 저당 잡힌 놈으로 알려져 있었다. 한동안 청명의 허리와 엉덩이를 보며 입맛만 다시던 놈들이 왜 그랬는지 뒤늦게 알고 당보를 조지려다 가슴에 참을 인을 몇 개나 새겼던지.

“그러면 뭐 해? 수상한 놈에서 불쌍한 놈으로 바뀐 것뿐인데.”

시발. 덕분에 그가 어디를 가더라도 혹시나 밖으로 도망갈까 하는 눈초리나 받는 신세였다.

“그러니까 하나도 안 고맙다고, 새끼야.”

저 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한숨이 나왔다. 불쌍한 내 팔자야. 저놈이 아니었으면 죽었을 거라는 사실도 알지만, 왜 꼭 저런 놈이 제 인생을 구해야 했을까.

“넌 도대체 그때 왜 날 구했냐?”

“형님 따먹으려고요.”

“말을 말자. 그냥.”

따먹으려면 진작 따먹을 새끼였다. 물론 청명이 뒤지게 팬다면야 못 이길 놈은 아니겠으나 적어도 한동안 붕대 감고 골골거리는 동안에는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제가 아무리 야매여도 환자는 안 건드린다니까요.’

‘이상한 곳에서 히포크라테스 선서하냐?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애들 장기 매매는 안 찔리디?’

‘그건 본업이고. 이건 굳이 따지면 부업이라.’

하여간 이상한 새끼였다. 그래도 청명이 혐오하는 건 아는 모양인지 그와 함께 지내면서부터는 약을 제외하면 불법적인 일은 하지 않았기에 청명이 참고 지내는 것일지도 몰랐다. 이놈 집이 아니면 갈 곳이 없는 절망적인 상황이기도 하고.

아까 청명이 옆으로 살짝만 밀어둔 약품을 꼼꼼하게 살피는 놈의 모습은 제법 의사 같기도 했다. 그 약품의 정체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도 모르는 수상한 불법 약물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그런 약들은 어떻게 구하는 거냐?”

“이것도 다 루트가 있죠. 뭐, 솔직히 이 안에서 만들어지는 건 별로 없고 보통은 밖에서 옵니다.”

“밖? 설마 밖의 제약회사들?!”

“그런 곳이 아니면 이런 약물을 쉽게 못 구하죠.”

갈색의 앰플을 툭툭 치던 당보가 히죽 웃었다. 앰플에는 그 어느 것도 붙어있지 않았다. 그저 안에서 찰랑거리는 액체만 보일 뿐.

“보통은 폐기물인데 가끔 아직 공개 전의 이런저런 신약도 섞여오죠.”

“전자는 그렇다 쳐도 후자는 왜?”

“실험체가 널려있잖아요?”

돌아가면 조져버릴 곳이 하나 더 늘었다. 청문에게 보낼 자료에 불법 약물 유통에 관한 건도 조용히 추가한 청명이 당보를 빤히 보았다. 사람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면서 아까보다 깨끗해진 방을 신나게 살핀다.

“너 말고도 의사가 있긴 하지?”

“의사만 있겠소? 약국도 있고, 약쟁이도 있고, 뜨내기 침술사도 있고. 누구나 있지.”

그래도 실력은 구룡에서 제가 제일이라며 의기양양하게 어깨를 펴는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매일 미친놈에 약쟁이, 범죄자라고 욕해도 정이 들기는 든 모양이었다. 역시 더 이상해지기 전에 이곳을 떠나는 게 상책이다 싶었다.

물론 이곳을 나가기 전에 저 웬수 새끼의 뒷목도 달랑 잡아 밖으로 끌고 나갈 생각이었다. 감방에서 몇 년 굴리면서 범죄의 때를 싹 빼고 나면 그런대로 사람 구실은 하면서 살 놈이었다. 알아버린 이상 손을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묻는데요. 혹시 다른 놈이랑 살림 차릴 계획입니까?”

“미쳤냐? 내 인생의 미친놈은 너 하나로도 족하다.”

“휴. 그럼 다행이고요.”

아주 끈덕지게 달라붙는 당보를 보니 기가 절로 빠졌다.

“두고 갈 생각 없으니 안심하라니까.”

“엥. 정말요?”

물론 나가는 순간 감옥에 들어갈 예정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밖에서 멀쩡하게 사는 게 이놈 노후에도 훨씬 좋을 거다. 형언할 수 없는 마음을 담아 머리만 박박 쓰다듬으니 놈의 눈이 가늘어졌다.

“이상한데. 정말 우리 형님 맞소?”

“뒈지고 싶냐?”

“이걸 보면 형님이 맞는데. 요상하기도 하지.”

수상한 건 느껴지는 모양인지 고개만 갸웃거리는 당보에 그의 등에 괜히 식은땀이 한 방울 흘렀다. 이상한 곳에서만 눈치 빠른 놈은 역시 곤란하다. 따지고 보면 평소에도 눈치가 빠른 편이기는 했지만. 그래서 야매 의술도 배운 건가.

사람을 죽이는 것과 살리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칼만 찌르고 버리면 언젠가 죽겠으나 살리는 건 그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인체의 구성과 원리를 알아야 하고 그걸 수습할 만한 의학적 지식도 필요하다. 어느 곳을 가도 의사는 제법 대접을 잘 받는 직업 중 하나였고 이곳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다. 매일 같이 사람이 죽어 나가는 곳이니 더욱 가치가 높다면 모를까.

“역시 이상한 생각 하죠?”

“너보다야 멀쩡할걸.”

“오십보백보라는 말도 모르세요?”

그날은 비가 쏟아졌고 배에는 칼까지 박혀있었으니 청명의 정신이 멀쩡할 리 만무했다. 하지만 그 흐린 기억에서도 선명하게 떠오르는 게 있다면 바로 저놈의 그 섬세하고 빠른 손놀림일 것이다. 눈을 다시 떴을 때 보인 게 볼을 붉히며 저를 빤히 보고 있던 변태 같은 얼굴이 아니었다면 그는 당보를 제대로 된 의사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제 생각을 뭘 그렇게 하시는데요?”

또 저 얼굴이다. 나사 빠져서 실실대기나 하는 얼굴.

딱 닷새. 성인 두 사람이 서로의 속을 터놓고 깊은 대화를 하면서 우정을 다지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그것도 형사와 무법지대의 범법자라면 더더욱. 그걸 감안하더라도 청명이 당보에 대해서 아는 건 정말 몇 개 되지 않았다. 이름과 사는 곳, 하는 일이 고작이었으니. 저 짜증 나는 형님 소리마저도 당보가 먼저 살갑게 불러댄 호칭이라 따지고 보면 저놈의 나이도 모르는 셈이었다.

“너 진짜 뭐 하는 놈이냐?”

“형님이 잘 아시지 않소. 야매 의사, 약쟁이, 사기꾼.”

“그거 말고는?”

“숨길 것도 없네요.”

양손을 들어 올리고 의기양양하게 웃는 당보의 행동에 한숨만 나왔다. 제가 뭘 기대한 건지. 맥이 쭉 빠졌다.

“아니! 제가 뭐 있어 보입니까?”

“없어 보이긴 하지.”

“그렇게 대놓고 말하면 그건 그것대로 상처고요.”

청명과 함께 있는 동안 약을 안 해서일까. 첫날 봤던 흐리멍텅한 눈의 약쟁이는 어디로 가고 지금 눈앞에 있는 건 젊은 청년이었다.

“없어 보이는 게 불쌍해서 밥이나 사준다고 하려고 했는데. 그것도 상처냐?”

“저 만두에 국수요. 아, 술도.”

지갑에 돈이 얼마나 남았더라.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고 청문이 품의 제일 깊은 곳에 두둑하게 넣어준 달러 뭉치가 이렇게 도움이 될 줄은 몰랐다.

“아주 거덜을 내라, 거덜을 내.”

“돈도 많으시면서! 제 입에 들어가는 음식이 그렇게 아까우쇼? 누구는 환자 살린다고 없는 형편에.”

“알았어. 알았다고. 먹고 싶은 거 다 시켜라, 이 돼지 새끼야.”

돈이라면 당보도 많았다. 오늘따라 거리가 조용해서 손님이 없는 것이었지, 일전 골목길에서 패싸움이 났을 때는 실려 오는 환자가 계단을 가득 채웠다. 그 뒤로 마스크를 쓴 수상한 놈 하나가 금괴가 가득 들어있는 가방을 주고 갔었고.

하지만 그 돈이 전부 어디로 가는지 그는 알지 못했다. 굳이 관심을 가지지 않은 게 반이었고 나머지 절반은 당보가 필사적으로 숨기기 때문이었다. 거실에 한가득 쌓인 돈도 자고 일어나면 사라지니 환장할 노릇이었다.

“맛있냐?”

“우움, 움. 음음.”

“맛있냐고, 새끼야.”

사람 속을 아는지 모르는 지, 양 볼 가득 국수를 밀어 넣고 우적우적 배를 채우는 모습은 참 상스러웠다. 이제는 왼손으로 닭다리인지 오리다리인지를 죽 찢어 입에 밀어 넣고 꾸역꾸역 씹으니 입술이 번들거렸다.

“웅, 네.”

“미친 새끼가 지랄 염병을 한다.”

굶고 사는 새끼도 아닌데 먹는 꼴을 보고 있노라면 보름은 굶은 놈이었다. 흔한 풍경은 아니었는지 식당 안에 앉아있는 놈들의 시선이 이쪽을 응시하는 게 느껴졌다. 아무렴 청명이라도 맞은 편에 앉은 놈이 앉아서 만두 세 접시, 국수 두 그릇, 닭인지 오리인지 한 마리를 먹어 치우면 신기해서 보기는 할 것이다. 소매로 입가를 쓱쓱 닦던 당보가 닭다리를 하나 청명에게 내밀었다.

“안 드십니까?”

“너 처먹는 꼴만 봐도 내 배가 부르다.”

“에이. 남들 다 듣는데 그런 말을 하면 제가 부끄럽소.”

시발. 미친 새끼. 정신 나간 새끼.

얼굴까지 붉히며 양손으로 볼을 가리는 모양새가 어디 여고생이라고 해도 믿겠으나-와중에 양 볼에는 닭기름이 묻어 번들거렸다. 단언컨대 이렇게까지 식욕이 떨어지는 장면도 없을 거다.-그 외관부터가 이미 이십 대 후반의 건장한 남성이라 별 효과는 없었다. 되려 청명의 단전에서부터 깊은 욕을 끌어왔다면 모를까.

“넌 진짜, 어우. 토할 거 같으니까 빨리 처먹기나 해.”

“여기 국수 한 그릇에 만두 한 판, 궁보계정 하나!”

“예!”

처먹으라고 한 게 청명이기는 하지만 이 정도로 처먹으라는 말은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신나서 음식을 주문하고 테이블 위에 있는 음식을 다시 입에 밀어 넣는다.

“도대체 먹는 건 왜 그렇게 처먹어?”

진짜 굶어 뒈진 귀신이라도 붙었나. 생각해 보면 매끼마다 당보는 과할 정도로 먹어댔다. 음식이 넉넉하다는 청명의 말은 귓등으로 흘리고 막힌 가슴을 탁탁 두드려 가며 연신 물을 들이키는 모습은 정상적인 식탐이라고 하기 힘들 정도였다. 물론 청명도 어렵게 살았을 적에는 저놈처럼 입에 무작정 음식을 쑤셔 넣던 시절이 있었으니 그 심정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도 과거의 일일 뿐, 지금은 굶을 일도 없는 데 여전히 음식에 집착하는 건 아무리 채우려고 해도 채워지지 않는 욕구 탓인지.

“형님은 굶어본 적 없죠?”

양심은 있는지 국수를 청명 앞으로 쓱 밀어준 당보가 냅킨으로 손을 쓱쓱 닦고 젓가락을 들어 만두를 옮겨 담았다. 갓 쪄낸 만두는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고 있었다. 젓가락으로 피를 찢어 기름을 살짝 빼내며 속을 식히고는 한입에 넣은 채 곧장 삼킨다.

“굶어본 적은 없지. 어릴 때 먹는 걸 좋아하긴 했어도.”

청문에게 입양아닌 입양을 당하기 전까지는 항상 어려웠었다. 그래도 입에 풀칠만큼은 하고 살았으니 굶으며 자랐다, 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는 청명이었다. 그조차도 여섯 살 이전의 기억이니 이제는 슬슬 희미해지는 참이었다.

“그러면 제 심정을 절대 이해 못 할 겁니다. 음식만 보면 절로 입에 넣고 싶어진다니까요.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앗뜨뜨. 결국 입속에서 만두 하나가 터졌는지 새빨개진 혀를 내놓고 헥헥거리던 당보가 찬물을 연거푸 마셨다.

“지금은 아니잖아. 그런데도 그래?”

굶기는 무슨. 원한다면 온갖 산해진미도 먹을 수 있는 놈이 지금 앞에 있었다. 갈퀴로 모은 돈만 들고 이곳을 나가도 새 출발은 얼마든지 할 수 있을 텐데.

“습관입니다, 습관.”

“필요 없는 습관이네.”

청명이 숟가락을 들어 국수 국물을 한 입 떠먹었다. 닭으로 낸 육수는 닭 맛보다는 향신료 맛이 더 강하게 올라왔다. 자극적인 게 제법 입에 맞아 한 모금 더 떠먹고 본격적으로 국수 면을 흡입하니 당보가 흐뭇하게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형님도 나중에 굶어보면 알 거요. 이 아우가 하는 말이 다 뼈가 되고 살이 되는 법인 것을.”

“아서라. 예전이면 모를까 요즘은 그럴 일 없다.”

당장 지금만 해도 청문이 넣어준 지폐가 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다른 건 몰라도 청명이 밥 굶는다는 소리는 못 참는 청문이었으니 돈이 부족하다고 하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보내줄 터였다. 물론 술값으로 쓴다는 사실을 알면 한동안은 국물도 없겠지만.

어떨 때는 한 없이 어린 애 취급을 하다가도 이럴 때는 가차 없는 큰형을 생각하며 청명이 손을 번쩍 들었다. 그 제스처를 알아들은 사장이 냅다 달려왔다.

“뭐 필요한 거라도 있으십니까?”

“술. 이왕이면 맛있는 거로 한 잔 주쇼. 비싸도 상관없으니까.”

“에헤이. 이래서 형님이 어설프다니까.”

그렇게 말한 당보가 사장의 품에 지폐 한 장을 찔러넣었다.

“뭐해?”

음식값이라면 어차피 나중에 다 계산할 텐데, 굳이 저럴 필요까지 있나. 더군다나 아까 음식을 주문할 때는 하지 않았던 행동이다.

“밥이랑은 다르죠. 여기서 마시는 술이라고 해봐야 싸구려 술에 물과 알코올을 더 붓고 섞은 싸구려 음료수밖에 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쪽을 보는 눈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당보가 목소리를 낮추고 속삭였다.

“그런데? 이러면 뭐가 다르냐?”

그새 나온 술병을 가만히 보던 청명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들이 앉은 테이블이 아니어도 술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은 제법 되었다. 아무리 봐도 다른 테이블에 놓인 것과 차이점을 찾지 못한 청명이 당보의 허리께를 쿡쿡 찔렀다.

“다른 놈들이 마시는 것보다는 그래도 마실만한 술이 나오지요. 물론 형님 같은 초짜는 절대 구분 못 하고.”

청명의 허락도 없이 술잔에 술을 가득 채운 당보가 잔을 들었다.

“자, 형님의 무사 귀환을 위하여, 건배.”

“얼씨구. 못 가게 잡고 있는 놈이 말은 번지르르하다.”

항상 하는 말이지만 저놈만 아니었어도 진작 빠져나갔을 것이다. 고개만 절레절레 저은 그가 술을 쭉 들이켰다. 맛없다던 당보의 말이 틀린 게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듯 정말 맛이 없었다. 그대로 뱉어버릴 뻔한 걸 겨우겨우 삼키니 당보가 낄낄거렸다.

“그래도 제 덕에 이 정도입니다. 아시겠죠?”

킬킬거리면서 아예 병째로 들고 꼴꼴거리며 술을 마신다. 이상한 걸 약이랍시고 주워 먹을 때부터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역시 저놈의 미각은 이상한 게 분명했다.

“그래. 너나 다 처먹어라, 새끼야.”

제 팔자에 뭘 하겠다고. 국수나 한 그릇 깨끗하게 비우는 동안 기어코 그 맛대가리 없는 술을 다 마신 당보가 입맛을 다시면서 일어났다.

“형님 덕분에 오늘도 포식합니다.”

“나중에 네놈 감방에 처넣고 나면 전부 되돌려 받을 테니 고마워하지 않아도 된다.”

암암. 은혜는 두 배로, 원한은 열 배로. 저놈이 지금까지 청명의 돈을 파먹고 살았으니 열 배로 돌려줘야지. 이쑤시개로 이를 쑤시다가 트림까지 하는 상스러운 새끼의 정강이를 발로 찼다.

“악! 또 왜요! 이 민중의 곰팡이가 사람을 패네!”

“그 민중의 곰팡이한테 뒈지는 수가 있다니까.”

술 냄새를 풀풀 풍기며 식당 앞에서 싸우는 두 남자는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못했다. 아마 둘 중 하나가 상대를 찔러 죽인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은 그러려니 넘어갈 것이다. 이곳이 그런 장소라는 걸 새삼스럽게 깨달은 청명이 당보의 멱살을 꽉 쥐고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아이, 형님. 또 이리 격하게 나오면 아우가 흥분하지 않겠소? 우리 키스라도 할까요?”

이쯤 되면 이중인격인가. 아니면 그냥 성격이 글러 먹은 건가. 아까까지만 해도 제법 멀쩡한 놈처럼 굴던 새끼가 또 씹질에 환장한 놈처럼 구니 미쳐버릴 것 같기는 청명도 마찬가지였다.

“제발 부탁인데 하나만 해라.”

“뭘요?”

“너 말이야, 너. 나랑 오래 있고 싶다며?”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보는 청명을 제법 좋아했다. 그러니 피 줄줄 흘리던 청명을 데려다 살렸을 게 분명했다. 이곳을 벗어나려던 청명을 주저앉힌 것도 놈이었지만.

물론 그건 당보의 입장이었고 청명은 상부에서 그런 이상한 지시만 하지 않았어도 청명은 진작 저놈을 두고 어떻게든 탈출했을 것이다. 좋든 싫든 저놈과 잘 타협하면서 살아야 한다. 이 환장할 상황이 제가 처한 상황이란다. 망할!

“헤헤. 그건 맞는 말이죠.”

“난 나사 빠진 놈이랑 오래 못 살아.”

청명이 으르렁거렸다. 지금 이놈을 잡지 않으면 영영 놈에게 끌려다녀야 한다. 그건 절대 청명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이놈도 제대로 잡지 못하는데 이 최악의 범죄집단에 기거하는 놈들이 저를 뭐라고 생각하겠는가. 이를 바득바득 깨물던 그가 당보의 멱살을 잡아당겼다.

“똑바로 굴어. 나랑 뭐라도 하고 싶은 게 맞으면.”

사고 치지 말라던 청문의 말만 아니었어도, - 사실 그 말이 아니었어도 청명은 나름 얌전하게 지냈을 터다. 이제는 슬슬 인정할 때였다. - 진작 깨버렸을 당보의 머리통을 쓱쓱 쓰다듬었다. 그 덕에 멱살을 잡은 채 머리를 쓰다듬는 이상한 모양이 연출되긴 했지만 당보는 나름대로 만족한 듯 보였다.

“똑바로 굴면 가망은 있고요?”

녹안, 녹안. 그 녹안이다. 숲의 푸르름을 머금은 녹빛이 아닌, 어느 독성 물질의 깊은 녹색을 머금은 눈이 분노로 청명을 보았다.

“어.”

“왜요?”

“이게 물어놓고 왜 지가 물어봐?”

꼬인 놈이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이정도로 꼬였을 줄은 몰랐다. 진짜 그날 그곳에 엎어져 있던 게 잘못이었지. 저놈 눈에 들었으면 그곳에서 죽었을 것이라는 사실은 깜박 잊은 채 당보 얼굴만 빤히 보던 청명이 놈을 툭 놓았다.

“그 잘난 머리로 알아서 생각해 보든지.”

“헉. 답해주면 형님 저랑,”

탕, 하는 짧은 총성이 났다. 당연히 쏜 사람은 청명이었고 맞을뻔한 사람은 당보였다. 총구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났다. 마찬가지로, 총알이 박힌 곳에서도 연기가 났다.

“혀, 형님…….”

“그리고 한 번만 더 내 앞에서 씹질 소리 꺼내면 다시는 못하는 몸으로 만들어 버릴 줄 알아, 이 발정 난 개새끼야.”

다리 사이에서 모락모락 연기가 났다. 바짝 언 당보가 어기적어기적 걸어와 눈치를 보다 청명의 옆에 찰싹 붙는 동안 그는 이 정적을 즐겼다. 놈이 처맞아서 기절하지 않는 이상 누릴 수 없는 평온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당보는 조용했다. 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

하루, 이틀, 사흘, 나흘.

꽤 오랜 날 동안 당보는 제법 멀쩡한 놈처럼 굴었다. 약도 하지 않고, 담배도 줄였으며 밥도 세 끼를 제때 챙겨 먹기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그날 청명의 말이 어떤 울림을 가져오긴 했던 건지, 그런대로 멀쩡하게 생활하는 당보가 얄미워 그 대가리를 다시 후렸다.

“아, 왜요!”

“얄미워서 그런다. 얄미워서.”

저렇게 멀쩡하게 살 줄 알았던 놈이 왜 그꼬라지로 살았는지.

“에이. 그냥 이러고 사는 게 더 좋다고 하면 덧나요?”

딱히 성적인 의미를 내포하지 않고 허리를 감아오는 손은 썩 나쁘지 않았다. 예전 같으면 날 선 말부터 내뱉었을 텐데 쳐내지 않는 청명을 신기하게 보던 당보가 아예 그를 안았다.

“거 신기하네. 제가 무슨 말만 해도 으르렁거리던 미친개가 맞나?”

청명의 눈가가 움찔했다. 딱 한 대만 때릴까. 당보가 얌전했다는 말인즉슨, 청명이 당보를 그만치 덜 때렸다는 말이었다. 슬슬 손이 근질근질하긴 했지. 다만 이래서야 정말 그가 폭력적인 놈이라는 말을 증명하는 꼴 밖에 더 되나 싶어 애써 참고 있었다.

“그러면 얄밉지 않을 짓 하나 해볼까요. 형님한테 점수도 딸 겸.”

느물거리며 웃은 놈이 양팔을 활짝 벌렸다. 그 자태만큼은 어디 고급 파티를 초대하는 오너쯤으로 보인다는 사실이 웃겼다.

“얄밉지 않은 짓? 뭔데?”

“저 담배 한 대만 허락해 주면 말해드릴게요.”

“냄새나. 안 돼.”

“이거 좀 큰 건데. 싫으쇼?”

손가락 사이로 담배를 빙글빙글 돌리던 당보가 히죽 웃었다.

“그래봤자 구멍가게 범죄겠지.”

“에이. 그랬으면 제가 말도 안 꺼냈죠.”

당보가 입에 담배를 물었다. 불을 아직 붙이지 않은 채였다.

“형님 여기 온 게 그 망할 삼합회 뿌리 뽑으려고 개고생 중인 거잖아요?”

“어. 근데?”

“오늘 밤쯤 그놈들 끄나풀이랑 만나기로 했거든요.”

“뭐?!”

아. 이건 노다지다. 그런데 이제 먹으면 죽는 노다지. 죽더라도 먹고 죽어야 한다. 여즉 연락 하나 없는 청문을 생각하니 눈앞에 있는 과실이 더 달아 보였다.

“어때요. 크죠?”

놈이 턱짓했다. 왜 그러는지, 모르고 싶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에라이, 시발.

품을 뒤적여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니 당보 놈이 히죽 웃었다. 방 안은 금세 연기로 가득 찼다. 의사라는 놈이 폐 썩는 건 걱정도 안 되는지 독한 것만 피는 새끼였다.

“크. 역시 남이 붙여주는 담배가 제일 맛있다니까요.”

“아주 그냥 폐가 썩어서 뒈져버려라.”

“에헤이. 또 악담하신다. 말은 들으셔야죠.”

그렇게 세 모금쯤 더 빨았을까. 몽롱한 눈으로 청명을 보던 그가 의자에 털썩 주저앉아 다리를 꼬았다.

“아무리 삼합회라고 해도, 표면적으로는 애들한테 손을 안 댑니다.”

“뭔 소리야?”

당장 저쪽 골목만 가도 아직 성인도 안 된 애들이 홍등가의 불을 밝히고 있었다. 그 위에 삼합회가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삼합회, 영문명 차이니즈 마피아.

홍콩을 본거지로 하면서 상해와 마카오를 점령하고 이제는 타 대륙까지도 넘보고 있는 세계 삼대 범죄조직.

그 단어를 떠올리는 것으로 이미 머리가 지끈거렸다.

“물론 윗선이야 당이랑 연결되어 있지만,”

당보가 연기를 후, 하고 뱉었다.

“당 간부라고 해도 열다섯도 안 된 애들이 죽어 나가는 꼴을 덮고 방치할 수는 없거든요.”

“그런 애들 처리는 너한테 맡긴다. 그런 말이야?”

“정확하십니다.”

담배 하나를 더 입에 문 당보가 청명을 슬쩍 보았다.

“애들 장기가 성인 장기보다 더 비싸거든요.”

“장기 매매는 안 한다며, 새끼야.”

지난번에 분명 청명 보고 장기 빼가는 짓은 안 한다고 했던 놈이었다. 설마 그 말도 개구라였나? 진실을 가늠하기 위해 눈을 가늘게 뜨고 노려보니 놈이 헤헤하면서 웃었다.

“치료 중에는 안 빼는 거죠.”

“아, 시발.”

실시간으로 귀가 썩었다.

생각해 보니 그런 말을 했던 것도 같다. 뒤늦게 올라오는 후회에 소리도 내지 못하고 머리를 쥐어뜯으니 금방 당보가 말려왔다.

“그래서 지금 애새끼들 장기나 빼러 갈 건데 옆에서 보고나 있어라?”

“에이. 그랬으면 그냥 형님한테 말도 안 하고 갈걸요.”

“뭔데 그럼?”

“그조차도 핑계입니다.”

이 망할 범죄자 새끼들.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복잡한 수수께끼의 이중, 삼중 구조를 풀어나가는 기분이었다. 그 끝에 있는 게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뛰어드는 놈은 불나방인가, 아니면 정의감에 찬 형사인가.

“그럼 그게 무슨 핑계인데?”

“저도 모르죠. 그래서 알아보러 가려고요.”

“이거 순 뻥쟁이 아니야!”

“아, 궁금하시잖아요!”

당연한 말이었다. 범죄자라니. 위대한 현자이신 청문의 말에 따라 죄다 불 질러버려도 싼 놈이 범죄자였다. 법의 위에서 노는 놈들을 보면 현대의 법이 이토록 아쉬운 적이 없었다. 한 백 년 전이기만 했어도 그 목을 전부 따서 젓갈로 만들어 버릴 텐데.

“가실 거죠?”

느물거리면서 답을 독촉한다. 물론 정답도 정해져 있었다.

“어. 당연하지.”

“여기 맞아?”

“감쪽같죠?”

청명이 두리번거렸다. 오른쪽으로 한 번, 왼쪽으로 한 번.

고개를 흔들흔들. 눈앞이 흔들렸다. 그가 고개를 흔들 때면 어째서인지 앞에 있는 당보 대가리도 같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 아니, 흔들리는 것 같은 게 아니라 실제로 흔들리고 있었다.

청명이 오른쪽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면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갸웃거리면 왼쪽으로.

“뭐하냐?”

“형님 얼굴 보는데요?”

꿍.

“악!”

기어코 꿀밤 한 대를 벌어버린 당보가 머리를 잡고 뒹구는 동안-아이, 형님. 이왕이면 형님이랑 같이 뒹굴고 싶은데 안 돼요? 물론 평상시처럼 무시했다.-청명이 다시 겨우 앞 건물을 찬찬히 살펴보았다.

낡았다. 툭 치면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고 오수 처리 시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는지 건물 옆 하수구에서는 썩은 내 나는 물이 졸졸 흘러나오고 있었다. 한 마디로, 구룡의 흔해빠진 건물이었다. 먼지 자욱하게 낀 유리창 너머로 새는 희끄무레한 불빛만이 안에 사람이 있음을 증명했다. 청명이 건물은 찬찬히 살피는 동안 당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속을 알 수 없는 놈은 종종 이렇게 행동했다.

꼭 청명이 어떠한 반응을 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당보는 언제나 청명이 이 공간을 혐오하고, 저 밖에 사는 이들과 다르지 않게 침을 뱉어주기를 원했다. 저 망할 놈의 속을 그가 뻔히 꿰뚫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꼭 그렇게 굴어댔다. 그게 어찌나 짜증이 나는지.

청명은 절대 당보가 원하는 반응을 내보이지 않을 것이다. 저놈을 위해서, 그리고 자신을 위해서라도.

“빨리 앞장서기나 해.”

당보의 귀를 쭉 잡아당겼다. 다시 작은 비명과 들렸다.-아야야! 형님, 아우 귀 떨어져요!-물론 고작 그런 거로 찔릴 청명의 양심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는 어깨만 한 번 으쓱 했다.

“어떻습니까?”

“가관이네. 이 미친놈들.”

연기가 자욱한 실내에서는 수십 명의 사람들이 만두를 빚고 있었다. 아니, 단순히 만두뿐이었다면 청명도 욕지거리까지 내뱉지는 않았을 것이다.

조금의 간격도 허용하지 않게 배치된 빽빽한 의자와 작업대. 자리마다 놓여있는 상자에는 하얀 가루가 들어간 봉투가 수북하게 쌓여있었다. 저 하얀 가루의 정체가 마약이라는 사실은 세 살배기 애라고 해도 알 것이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약을 포장했으면 이제는 눈을 감고 포장하는지 움직이는 손에는 막힘이 없었…….

“어, 저놈 잔다.”

“어디요?”

“저어기. 구석에서 네 번째.”

슉.

청명이 구석에 한 놈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것과 동시에 당보의 품에서 작은 짱돌 하나가 날아갔다. 분명히 품에서 돌을 꺼내던지는 순간이 있었을 터인데 그게 눈에 보이지 않는 이유는 분명 저놈의 날쌘 손 때문이리라.

“역시 형님도 이쪽에서 아주 선호하는 인재라니까요.”

벽 쪽에 서서 감시하던 놈들이 졸던 사람을 끌어내니, 그 자리는 금세 다른 사람으로 채워졌다. 아직 일에 익숙하지 않은 자인 듯 머뭇거리는 손놀림이 다른 이들과 확연하게 차이 났다. 그마저도 대가리에 총구가 들이밀어지니 금방 재빨라졌지만.

“너도 똑같은 새끼야, 이놈아.”

절대 고의가 아니었으나 반쯤은 고의가 맞았던 일의 결과를 보고 찝찝해진 청명이 당보의 대가리를 쳤다. 애초에 여기 모인 놈들이 약팔이 아닌가. 놈들 사이에서 서로 패고 죽이는 건 그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물론 저 약들이 민간인 사이에서 퍼져나가는 것은 제법 큰일이었지만 어벙한 놈이 일하면 적어도 그 양은 줄겠지. 이렇게 고민하고 저렇게 고민해도 온통 골때리는 놈뿐이다. 물론 그중에 제일인 이놈이고.

옆에서 생글생글 웃는 놈을 보니 절로 분통이 터졌다. 애초에 여기 온 것도 저 망할 자칭 아우 새끼가 꼬셔서라고 생각하니 더욱 그랬다. 애초에 제가 왜 여기서 약 만들다 조는 놈에게 안쓰러움이라는 감정을 느껴야 하는가.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아! 이러다 진짜 아우 대가리에 구멍 납니다!”

“지랄한다. 그 정도로 뚫릴 대가리였으면 내가 진작 네 머리통을 곱게 박제했지.”

“제 얼굴이 그렇게 취향이라고요?”

미친놈. 도대체 사고가 왜 저런 방향으로 튀는지 모르겠으나 저걸 본인 칭찬으로 받아들인 놈의 얼굴이 화사하게 폈다.

“하긴. 이래 보여도 얼굴로 치면 이 도시에서 열 손가락 안에는 꼽을 얼굴이긴 하죠.”

“미치기로는 제일일 거 같은데?”

잘생기면 뭐 하나. 그 안에 든 내용물이 개미친 또라이가 따로 없는데. 저놈이 얼굴로 들이대면서 아무리 꼬셔도 한 시간만 있으면 알맹이를 보고 다들 학을 떼며 도망갈 것이 분명했다. 당장 청명만 하더라도 당보 놈과의 미친 동거생활에 이골이 나서 몰래 튀려다 걸린 횟수만 여러 번 아닌가. 구멍 한 번 대주기 전에는 못 간다고 바짓가랑이까지 잡고 매달리는 미친놈을……. 시발. 역시 저놈을 만난 건 청명 인생 최대의 불행이 맞았다.

“미치다뇨. 형님.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대충은 알겠지만 전 지극히 정상이라니까.”

“말이 짧다?”

“개꼰대 언제 뒤지쇼?”

“너 죽이고 뒤지련다. 너 죽이고!”

저놈 때문에 제가 제명에 못 죽지. 도대체 몇 번째인지 모를 다짐을 다시 하면서 가슴을 탕탕 치던 청명이 고개를 홱 들었다.

“가만 보자. 내가 왜 여기까지 왔냐?”

“저 따라서요?”

당보가 눈만 끔벅거린다. 아주 천연덕스럽게. 누가 보면 그냥 소풍이라도 나온 것 같은 반응이다.

“그러니까 내가 왜 널 따라서 여기까지 오냐고.”

물론 청명 스스로 오겠다고 말했었던 사실은 기억 저편으로 날린 뒤였다. 게다가 애초에 그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건 바로 저놈이었다. 저놈이 옆에서 깐족거리지만 않았어도 이런 범죄자소굴까지 들어올 일은 없었을 텐데!

- 청명아, 제발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 얌전히…… 얌전히…….

청문의 당부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망둥이 경력이 도대체 몇 년 차던가. 만약 오늘 여기 온 일을 청문에게 걸리면 어떻게 될지 눈에 선해 정신이 아득해졌다. 청문의 그 편집증적인 성격이면 일이 아무리 바쁜 와중이라고 할지라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보고서로 써오라고 할 것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를 대신해 청명을 성심성의껏 키워준 청문이었으나 일의 영역에서는 얄짤 없었다.

“아니, 형님도 옳다구나 왔잖아요!”

“애초에 네놈이 아니었으면 올 일이 없었다니까?”

아니라면 진작 구룡에서 탈출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당보 놈이 만 악의 근원이었다.

고작 하급 요원 주제에 무슨 범죄자 본거지를 털겠다고. 생각해 보면 청명이 구룡에 뚝 떨어지게 된 것도 분수에도 맞지 않는 범죄자 놈들을 쫓다가였는데. 일을 수습하기는커녕 여기서 더 키우고 있으니 생각해 보니 미친 짓이었다. 제아무리 날고 기는 청명이라고 하더라도 범죄자 놈들이 떼로 몰려오는 와중에 버틸 재간이 있을 리 만무했고 그래서 청문도 청명더러 얌전하게 상황이나 보고 있으라고 했던 것 아닌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당장 이 미친 공간을 벗어나서 그냥 당보 새끼의 집에 박혀있는 편이 낫겠다, 싶어 건물을 나가려는 순간.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까부터 그 난리를 쳐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윗놈이 부르는 건 우연이라고 믿기로 했다. 옆에서 생글거리는 놈이 무슨 수작질을 부렸다고 의심하기에는 지치기도 했고.

“기다렸다는 놈이 이제 나와?”

“하하. 워낙 사이가 좋아 보이셔서 끼어들기 힘들었다고 하면 봐주시겠습니까?”

“이게 사이가 좋아 보이는 거면 일은 때려치우는 게 어떠냐.”

놈을 향해 제법 매섭게 쏟아지는 말을 당보는 막지 않았다. 이게 일종의 안전 시그널이라는 사실을 청명은 모르지 않았고 애꿎은 안내인은 조금 늦게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청명에게 한참을 갈궈져야 했다.

“그쯤 하세요. 죄도 없는 사람 그만 괴롭히고.”

그 시간이 10분을 넘어갈 때가 되어서 당보는 청명을 진정시켰다. 지랄. 죄 없는 사람은 무슨. 저 새끼는 청명이 길 가는 사람을 이유 없이 한 대 쳐도 재밌다고 손뼉 칠 놈이었다. 하여튼 글러 먹은 새끼, 인성 없는 새끼, 대가리에 쓸데없는 것만 잔뜩 든 새끼 같으니. 백 년 묵은 뱀을 데려와도 저놈보다는 속이 하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청명은 남자를 따라 더 안으로 들어갔다.

그 아래층은 도박장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인간들을 바로바로 끌고 오나 했더니 이렇게 환상적인 인력수급소가 있을 줄이야! 심지어 청명이 공간을 가로지르는 와중에도 사람 두엇이 끌려 나가고 있었다.

“왜요? 형님도 한 판 해보시려고?”

청명이 도박판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는지 당보가 대뜸 물었다.

“손님께서도 흥미가 있으십니까? 원하신다면 제가 자리라도…….”

이 약쟁이 새끼들. 가만 보니 쿵짝이 잘 맞는다. 애초에 여기 온 목적이 절 도박판에 앉히려는 것으로 보일 지경이었으니 청명의 황당함은 말할 것도 없었다.

“아, 됐거든! 도박은 무슨 도박이야. 도, 아니. 아무튼 안 해.”

십년감수한 그가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당보의 귓불을 쭉 잡아당겼다.

“빨리빨리 하자. 응? 이 형님 지루해서 돌아가시겠다, 아우야.”

다음번엔 저 쓸데없는 주둥이에 총구라도 박아버릴까보다. 아니지. 왜 다음번에 해야 하지? 지금도 능히 하라고 하면 할 수 있는데. 여기서 인신매매범들을 만나는 것 보다 저놈을 잡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생각을…… 어떻게 알았는지 당보 새끼가 양팔로 가슴을 가렸다.

“꺅, 형님! 또 이 아우를 가지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요!”

“지랄한다, 진짜.”

“헤헤. 저희는 언제나 손님을 환영하니 혹시 마음이 바뀌시면 언제든지 말해주십쇼.”

양손을 싹싹 비비면서 말하는 게 흡사 어느 무너진 왕조의 간신배가 따로 없었다. 아니면 내시거나. 어쩌면 둘 다일 수도 있고. 눈이 절로 남성의 중심부로 향했다. 청명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아챈 모양인지 남자가 몸을 홱 돌렸다.

“지체할 시간 없습니다. 바로 가시죠.”

“인제 와서?”

아주 수상하기 그지없다. 못 이기는 척 걸어가 제일 안쪽 문까지 여니 공기 중에 훅 퍼지는 것은.

“피 냄새?”

“어찌나 말을 안 듣는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사람 팼다는 소리를 저렇게 당당하게 하는가. 물론 청명은 제 안에 내재 된 폭력성에 대해 인지하고 있는 편이었다. 수틀리는 일이 생기면 말보다 손이 먼저 나갔으며 경찰임에도 불구하고 법보다 폭력이 가깝다는 생각으로 사는 게 그 아니었던가.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죄가 있는 범죄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말이었지 이렇게 끌려온 피해자들을 향한 게 아니었다.

“상처가 나는 것은 곤란해. 알지 않나.”

시발.

청명이 욕을 줄이지 못하는 이유의 절반은 그의 성질머리 탓이고 나머지 절반은 저놈 탓이다. 범죄자라는 걸 숨길 생각도 없이 농지거리나 하는 놈들을 보고 있자니 속에서 신물이 절로 나왔다. 이가 바득바득 갈리고 당장이라도 놈들의 마빡을 갈기고 싶은데 그러지 않는 건 그에게 남은 최소한의 이성이었다.

“어차피 내다 파는 건 장기라면서. 겉에 난 상처도 중요하냐?”

참자. 참자. 참아야 한다.

“에이. 형님이 뭘 모르시네. 겉도 제법 비싸게 팔립니다.”

아니 근데 시발 저 새끼가 먼저.

인간을 아주 조각조각 내서 알뜰하게 팔아먹는다는 소리를 듣고 도대체 어떤 경찰이 제정신을 유지하겠나. 이가 바득 갈렸다. 오기 전 미리 들었던 말이 아니었다면 정말 놈을 죽어라 팼을 것이다. 또다시 우는 주먹을 애써 진정시키니 이번에야말로 정말 안이 보였다. 예컨대 여기도 저기도 전부 애였다는 말이다. 우는 것도 포기하고 축 늘어진 채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는 게 희망도 바닥에 처박아 버린 얼굴이었다. 누가 들어와도 도와달라고 하는 법도 없이, 별 기대도 없이.

당보의 표정이 굳었다. 언제나 정신 나간 듯이 구는 놈이고, 범죄자 새끼인 건 분명하지만 그래도 정도는 지키는 놈이었다. 그러지 않고서야 죽기 직전의 그를 데려와 굳이 살릴 이유도…….

- 형님, 저랑 섹스해 주시면 안 됩니까?

- 형님! 한 번만 대주세요!

- 아 한 번만 하자고!

세상에 범죄자 새끼치고 멀쩡한 놈은 역시 없다. 아니. 그래도 저놈이 어린애를 밝히는 건 아니니 괜찮지 않나. 강간은 취향이 아니라며 상호 합의하에 하는 게 아니면 별 관심도 없다고 당당한 표정으로 말하던 놈의 얼굴이 겹쳤다. 그래도 최후의 양심은 있는 놈이니 괜찮을 거다. 그게 아니고서야 굳이 청명을 여기 데려오지도 않았을 테고. 그렇게 생각하니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이것들을 어쩌면 된다고?”

표정이 지나치게 굳었다. 이럴 때는 차라리 당보에게 맡기는 편이 나았다. 물론 저놈도 평소에 느물거리던 것에 비교하면 어색하긴 마찬가지였으나 적어도 청명보다는 자연스러웠다.

“조용히 옮겨주시기만 하면 됩니다. 도시 외곽으로.”

“이들을 전부? 내가 무슨 수로.”

방 안에 묶인 애들은 너덧 명 정도였다. 한둘만 해도 쉽지 않을 텐데, 사람 보는 눈이 우글우글한 이 썩어빠진 도시에서 누구의 눈에도 걸리지 않고 조용히 사람을 나르라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다. 당장 청명과 당보가 오늘 이곳에 왔다는 사실도 이미 퍼질 대로 퍼졌을 텐데.

“애초에 일개 의사에게 무슨 부탁을 하는지 모르겠군.”

“의사니까 이런 부탁도 드리는 거죠. 이 도시를 자유롭게 활보할 수 있는 사람이 흔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이건 또 몰랐다. 항상 여기저기 쏘다니는 놈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매일 거울 보며 능력 좋고 얼굴 좋은 의사라고 자화자찬하는 미친놈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에이. 무슨 소리를 또 그렇게 하나. 가고 싶으면 가는 거지.”

“갈라먹기 좋아하는 윗분들이 이 코딱지만 한 도시마저도 나눠 먹는 중이라는 걸 바보 천치까지 다 압니다.”

나는 몰랐는데.

여기 사람이 하나 더 서 있다는 걸 잊은 모양인지 열심히 논쟁하던 두 사람은 이제 급기야 목소리까지 높였다.

“원하는 조건은 뭐든 들어드리겠습니다. 운송에 필요한 차와 도구도 저희가 전부 준비할 테니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뭐라고 거들고 싶어도 돌아가는 상황을 알 수가 없으니 거들 수가 없다.

“대신 조건이 있네.”

“예, 예! 말씀만 하십시오!”

화색이 도는 관리인의 얼굴에 당보가 이쪽을 보며 한 번 씨익 웃더니 무언가 말을 속닥거리기 시작한다. 아무리 봐도 좋은 말을 하는 모양새는 아닌지라 눈이 절로 구겨지려는 것을 애써 참았다. 이윽고, 언제 싸웠냐는 듯 어깨동무까지 하고 의기양양하게 이쪽으로 걸어오는 두 사람을 보고 있자니 그의 골이 울렸다. 분명 저놈 저거, 사고 치기 직전의 얼굴이다.

“형님!”

“안 돼.”

“너무 그러지 마시고요. 모든 문제는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네놈들이 제일 못미더워. 미친, 형. 저 이러다가 인신매매범들 따라서 운반책도 하게 생겼소. 이러다 감방 가면 변호사는 써주시려나. 궁시렁궁시렁.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처음부터 못 간다고 어깃장을 놓을 걸 그랬다. 호기심이 사람을 잡는다더니, 딱 그짝인데. 푹푹 나오는 한숨을 숨길 생각도 없이 앞을 멀거니 보고 있으니 그의 침묵을 긍정으로 해석한 것인지 두 범죄자 새끼가 낄낄거린다. 저딴 약쟁이를 잠시나마 믿은 제가 잘못이지, 누굴 탓할까.

한참을 더 놈과 쑥덕거리던 당보는 개운한 표정으로 청명의 허리에 팔을 둘렀다.

“어디다 대고 수작질이야. 안 치워?”

“아우 기특하다 칭찬은 못 해줄망정 이렇게 매몰차게 구십니까.”

“기특할 일이 있어야 기특하다고 하지.”

시발. 역시 이놈이건 저놈이건 대가리 하나는 날려버리고 싶다. 어차피 범죄자 새끼인데 그냥 바다에 던지면 안 되는 걸까. 나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으니 놈이 또 어떻게 알았는지 팔을 냉큼 치웠다.

“가서 설명 드릴게요. 가서.”

우리의 승리를 기원한다며-사실 청명은 여기에도 할 말이 많았다. 이득을 본다고 해도 저놈의 승리지, 왜 우리의 승리가 되는가. 이제는 살다살다 범죄자랑 같은 취급도 받는다.- 응원하는 못생긴 놈을 무시하고 밖으로 나오니 실내보다는 맑은 공기가 폐부를 채웠다. 저 수로로 흐르는 오물 냄새가 차라리 반갑게 느껴지는 이 상황이 끔찍해 고개를 휘휘 저으니 신난 당보가 청명을 잡아끌었다.

청명의 고개가 옆으로 돌아갔다.

“그래서.”

“네! 이거 생각보다 엄청난 일입니다!”

“야 이 새끼야.”

짧은 단말마와 함께 당보의 몸이 벽에 박혔다. 비명이 들린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새끼손가락으로 귓구멍을 벅벅 긁던 손가락을 빼내 후, 하고 바람을 분 청명이 짜게 식은 눈으로 당보를 보았다. 하여간 범죄자 새끼한테 기대한 제 잘못이다.

“방금 했던 말 다시 해봐.”

한결같이 좆같기도 하지, 우리 아우.

청명이 턱을 까딱하는 순간 벌떡 일어나 싱글벙글하며 외치는 당보 놈은 솔직히 말해서 정말, 좀 많이 멍청해 보였다.

“이게 루트가 내륙에서 홍콩, 마카오를 거쳐서 해외로 간답니다!”

“우리는 홍콩 안에서 운반하면 되고?”

“쉽죠?”

미친놈인가. 당장 구룡 안에서 일어나는 일 하나 알아내겠다고 홍콩에 깔린 세계 첩보부대가 몇 개던가. 그런데 그 모든 감시를 뚫고 사람을 실어 날라라? 그게 됐다면 청명은 진작 이 망할 도시에서 탈출부터 했을 것이다. 대가리에 섹스만 가득 찬 저 새끼를 피해서.

“존나 쉽네. 쉬워서 눈물이 다 나려고 한다.”

“흐흐흐. 저도 형님이 그렇게 말할 줄 알았습니다.”

“겠냐? 겠어?”

좋단다. 단순한 새끼. 청명이 당보의 대가리를 다시 내려쳤다.

“아 왜요!”

제발 그만 좀 때리십쇼. 형님한테 하도 처맞아서 이러다가 대가리에 빵꾸 나게 생겼단 말입니다. 궁시렁거리면서 머리를 잡고 비척비척 일어나는 놈의 주둥이가 쭉 나와 있었다.

“당보.”

“또 왜요.”

급기야 흥, 하는 콧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려버리는 놈의 행동은 온몸으로 나 삐졌다는 티를 내고 있었다. 저 망할 새끼를 아주 그냥 콱.

“하나만 묻자. 넌 이게 정말 성공할 거라고 생각하냐?”

놈의 입꼬리가 씩 올라갔다. 하여간 성격 더러운 새끼. 저놈을 만나고 수도 없이 읊었을 말을 속으로 또 되뇌었다.

“형님.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또 왜. 뭐가 문제야.”

“당연히 우리 마음먹기에 달린 거죠. 막말로 형님이랑 저랑 둘이 작정하고 일 치면 막을 놈이 있다고 보쇼?”

아. 맞는 말이라 열받는다. 물론 당보의 말은 틀린 게 없었다. 만약 그와 당보가 작정하고 사고를 친다면 막을 수 있는 놈은 최소한 청문 급은 되어야 했으니까.

아주 기분 좋다는 듯 의기양양하게 배를 쭉 내미는 놈의 기저에 깔린 건 자신감이었다.

“시끄러워. 우리가 언제부터 알았다고 친한 척이야?”

“붙어있던 시간이 있잖아요.”

“지랄한다.”

웃는 꼴을 보고 있자니 괜히 안심됐다. 저놈은 분명히 놈들의 계획이 성공하게 두지 않을 것이다. 그놈들은 도대체 어쩌다가 저런 놈이랑 척을 지게 됐는지. 그 사실도 모르고 아주 계획을 통째로 저놈에게 가져다 바치는 꼴이라니. 놈들의 멍청함에 묵념도 잠시, 청명의 눈에 장난기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그래서 계획은?”

“없는데요?”

“야.”

“무계획이 계획이다! 크. 세상에 이렇게 좋은 말이 있다니. 너무 맞는 말이지 않소?”

청명의 주먹이 부들부들 떨었다. 사람이 한결같은 건 분명 좋은 일인데, 왜 이렇게 화가 날까. 저놈은 마구니가 분명했다. 천사 같은 그의 인내심을 시험하라고 하늘에서 내려온 마구니. 악귀 새끼. 어쩌면 악마.

“보야.”

“넹.”

“난 사람이 한결같은 건 좋다고 생각해.”

“제가 좀 한결같은 남자입니다. 그러니까 형님에 대한 구애도…….”

저 저 망할 새끼. 지 칭찬인 줄 알고 히죽거리며 슬슬 다가오는 모양새가 수상쩍다.

“근데 사람이 꼭 한결같다고 좋지는 않더라.”

꽝!

그날 청명의 마지막 주먹이 당보 머리 위로 떨어졌다.

하늘에 대고 맹세하건대, 청명은 정말로 폭력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중이었다. 이것도 수양이라면 수양이니 수양을 방해하는 마구니는 엄벌로 다스리는 게 맞지 않을까? 청문이 알면 뒷목 잡을 생각을 아무렇지 않게 하면서 기절한(척하는) 당보를 발로 툭툭 차던 청명이 그 위에 걸터앉았다.

“하여간 매를 벌어요, 매를. 야. 안 일어나?”

미동도 없다. 하여간 사내자식이 엄살 하나는 끝내주네.

“셋 센다. 안 일어나면 네 주사기는,”

“아 진짜! 저 안 패면 죽는 병이라도 있어요?!”

카테고리
#2차창작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