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한잔

우석도윤 허우석 한도윤 날조의 베스타

: 개인적인 캐해석을 바탕으로 쓴 글임으로 읽는 분과 맞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짧게 단편을 적어보았습니다.

퇴고는 하지 않았고 맞춤법만 가볍게 돌려보았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오늘도 감사하고, 즐거운 하루 보내세요.

마스커레이드는 고등학교 친구들이 똘똘 뭉쳐서 만든 초보자 밴드였다. 악기라곤 리코더 밖에 연주 할 줄 몰랐던 이가 드럼을 잡고, 어설프게 통기타를 배웠던 녀석이 전자기타를 잡았다. 아무것도 없던 시절부터 함께한 그들 사이엔 외부인이 함부로 끼어들 수 없는 보이지 않는 벽이 있었다. 그 벽은 몹시도 견고하고 단단해서 허우석은 언제나 '외부인'일 수 밖에 없었다.

"그거 진짜 웃기지 않냐? 예전에도 그랬는데."

"아 맞아, 우석이는 없어서 모르는 이야기지? 전에…."

허우석이 알 지 못하는 과거의 이야기가 틈만 나면 화젯거리로 올라왔다. 자기들끼리만 공유하는 기억을 웃으며 그의 앞에서 떠들 때마다 올라오는 짜증을 눌러야 했다. 여기서 화를 내봤자 자신만 손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별것도 아닌데 예민하게 군다는 말은 이제 그만 들을 법도 했다. 그래도 짜증 났다.

허우석은 그저 한도윤이 만드는 노래들이 좋았다. 그렇게 시작한 밴드였다. 락 같은 거 취향도 아니었지만 우연히 보게 되었던 그의 노래가 허우석을 바꿨다.

'나라면 저것보다 더 잘 부를 텐데.'

베이스와 보컬을 같이 하느라 어느 한쪽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해 흔들리는 노래가 아쉬웠다. 한도윤의 목소리는 듣기 나쁘진 않았지만 그의 연주 뒤로 따라붙는 악기들의 수준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한도윤이 들고 있던 마이크를 빼앗아 무대 위로 올라왔고,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땀이 날 정도로 뜨거운 조명 아래에서 그렇게 한도윤이 만든 노래를 불렀다.

무대는 즐거웠다. 쉽지 않았지만 에너지를 모두 쏟아버릴 수 있는 노래는 즐거웠다. 어설픈 드럼도, 가끔 틀리는 기타의 박자도 괜찮았다. 한도윤의 베이스는 단단하게 이어졌으니 허우석은 그가 그려낸 악보만 믿고 지르면 됐다. 무대 위에서는.

내려오면 찬 밥 신세가 된다.

필요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같이 어울리는 외부인. 허우석은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 아래에 깔린 감정을 그렇게 읽었다. 아닐지도 모른다. 그저 그의 착각일지도 모르지만 중요한 건 허우석은 그렇게 느꼈다는 것이다. 마케팅의 '마'도 모르는 놈들의 등을 밀어내고 쪼그려서 페이터를 두드리던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고,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해도 은근하게 자신을 불편해하는 김주용도, 적당히 친하게 굴지만 자신이 모르는 이야기만 자꾸 꺼내는 유태희도, 리더라는 명찰 달아 놓고도 선을 긋는 황익선도 다 괜찮았다. 버틸 수 있었다. 한도윤이 있었으니까.

허우석의 앞에서 속과 겉이 같은 것은 한도윤 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밴드에 진심이 될 수 밖에 없었다.

한도윤이 밴드를 사랑하는 것이 보였으니까.

"아직도 안 자?"

허우석은 턱을 괴고 옆을 돌아봤다. 작은 조명이 책상을 비추고 작업물이 그 아래에 흩어졌다. 그가 한도윤의 집에서 자고 가는 건 가끔 있는 일이었다. 한도윤이 만든 노래의 가이드를 불러주기도 하고, 다음 무대의 일정을 잡기 위해 하루 자고 갔던 것이 흔한 일이 됐다. 한도윤은 악보 위를 유려하게 채워가던 손을 멈추고 고개를 돌렸다.

"아직 조금만 더 하고. 잊어버리면 안되니까."

"너 아침에 알바 나간다며? 그러다가 또 늦는다."

"깨워줄 거잖아. 괜찮아."

얼씨구? 허우석이 눈썹을 들썩였다. 말을 끝맺자마자 다시 악보를 향해 고개를 돌린 한도윤을 보며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깨워준다고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는데 당연하다는 듯 내뱉는 말이 얄밉지는 않다. 그의 신뢰는 기분이 좋다. 이런 사소한 일이여도.

"다음 곡이야?"

이미 악보를 채우는 일에 빠진 한도윤의 귀엔 그의 목소리가 닿지 않는다. 익숙하게 한도윤의 뒤로 걸음을 옮긴 그는 시대와 다르게 여전히 손으로 빼곡하게 채워지고 있는 오선지를 내려다봤다. 머릿속으로 음을 그려 나가다 옆에 있던 태블릿 화면을 켰다. 어플을 하나 켜서 피아노 건반을 띄운 채 그가 그려놓은 음계를 짚으며 하나씩 음을 그린다.

"아, 이게 아니야."

가만 손을 멈추고 허우석이 누르는 소리를 듣던 한도윤이 지우개를 집어 앞쪽의 음계를 지웠다.

"하나만 높여봐."

허우석은 얌전히 한자리 높은 음의 건반을 눌렀다.

"너무 높다. 반음 낮춰봐."

다시 내려가는 음을 다시 흥얼거리던 한도윤은 이내 반음 올린 자리에 음계를 다시 그린다. 그리곤 다시 마저 누르라는 듯 허우석을 올려다보는 시선은 초롱초롱한 개새끼와 다름이 없어서 허우석은 저도 모르게 웃고 말았다.

"왜?"

의아한 표정을 짓는 한도윤에게 고개를 저었다. 아무것도. 그렇게 대답한 허우석은 그의 곁에 앉아 마저 건반을 눌렀다. 까다롭게 요구하는 우리 작곡가님에게 어울려주며 그렇게 새벽은 저물었다. 그렇게 허우석은 한도윤이라는 사람에게 조금씩 스며들었다.

시작은 가볍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밴드에 진심이 된 자신을 보며 허우석은 한숨을 쉬었다. 페이터의 홍보도 이제 거의 그의 담당이었다. 간만에 잡힌 공연 일정을 적어 전송 버튼을 누르며 애꿎은 액정만 툭 툭 쳤다. 이렇게 진심이 되려던 건 아니었는데.

"얘, 우석아. 듣고 있니?"

"어? 어, 듣고 있어."

"얘가, 안 하던 밴드를 한다더니 아주 푹 빠졌나 보네."

"아, 엄마."

어머니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화면을 끄고 일어난 허우석은 어머니의 옆에 섰다. 원룸의 부엌은 넓지도 않은데 어찌나 바리바리 반찬을 싸 들고 오셨는지, 냉장고에 전부 넣기 위해 정리하는 것도 일이었다.

"아 그리고 보니, 네 삼촌 친구도 음악 쪽으로 일을 한다고 했는데."

"삼촌이라면, 그 막냇삼촌?"

"그래, 꽤 잘 나간다고 지난번에 이야기하더라고. 막 음반도 내주고 하더라나? 너 요새 그런 거 알아보고 있다며."

음반.

반찬통 뚜껑을 닫던 허우석이 움찔했다. 지나가다 들은 목소리가 떠오른 것 때문은 아니었다.

'언젠가, 만든 곡으로 음반을 낼 수 있으면 좋겠지.'

아니, 그 때문이 맞는 것 같다. 하아아…. 허우석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길게 내뱉었다.

"어머, 얘가 갑자기 왜 그런데."

"엄마, 혹시 막내 삼촌 연락처 있어?"

열한자리의 번호를 누르고,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를 향해 허우석은 본론부터 이야기했다. 또 다른 열한자리의 번호가 문자로 왔고,

[ 락? 너무 비주류인데. ]

"그래도 어떻게 좀 안 될까요? 한 번 들어주는 것만이라도 해주셔도 돼요."

[ 아, 이거 참…. ]

곤란해하는 목소리에도 허우석은 몸을 굽히고 사정했다. 따로 녹음했던 밴드 무대 영상과 녹음본을 보내주고 또 부탁했다. 일주일 채 지나지 않아 결국 OK라는 답장을 들고 허우석은 입꼬리를 씩 올렸다.

"야, 한도윤 내가 뭘 물어왔는지 아냐?"

베이스를 조율하던 녀석을 툭 치며 허우석은 뿌듯하게 어깨를 쭉 폈다. 귀하디 귀한 기회였다. 메이저로 나아갈 수 있는, 그가 바라는 음반을 낼 수 있는 기회. 한도윤이 눈이 왕방울만 하게 커졌다. 이야기를 들은 다른 녀석들도 우르르 몰렸다. 진짜야? 진짜? 기대가 담긴 목소리들을 들으며 그는 가장 기대하던 한도윤의 반응을 살폈다.

"진짜?"

"그래, 진짜. 내가 이런 걸 거짓말 하겠…."

한도윤은 아무 말 없이 허우석을 끌어안았다. 잠깐의 포옹이었다. 바로 떨어진 한도윤은 악보를 들었다. 어서 연습 시작하자. 평소처럼 담담해지려고 하지만 이미 들뜬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높게 올려 묶은 그의 긴 머리카락이 살랑살랑 흔들렸다.

허우석의 가슴이 욱신거린다.

"미쳤나…."

가까이에서 맡은 향이, 생각보다 좋았다. 그 생각을 한 자신에게 당황스러워 급히 마이크를 잡았다.

이상하다. 뭔가 이상하다.

… … 일이 정말 이상하게 돌아간다.

"왜 안된다는 건데?"

허우석이 신경질적으로 머리카락을 쓸어 넘겼다. 언제나처럼 '일부'가 삐그덕거렸지만 리허설 자체는 나쁘지 않았다. 회사 관계자들의 표정도 나쁘지 않았고, 결과도 괜찮았다. '일부'를 제외하고 '장르'를 좀 더 메이저하게 바꾼다는 조건이 붙긴 했지만 그들의 가능성을 엔터테인먼트에서 본 것이었다. 좋은 일이었다. 그런데도 왜, 한도윤이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에 저런 감정이 담겨있나.

"뭐야, 너 왜 그런 눈으로 날 봐."

"될 리가 없잖아. 태희와 주용이를 방출한다니!"

한도윤의 언성이 높아졌다. 어이가 없었디.

"메이저로 갈 수 있는 기회라고! 너, 지금 네가 뭘 걷어차려는 건지 모르겠어?"

머리뚜껑이 열리다 못해 뇌가 뒤집어지는 기분이었다. 언쟁은 쉽게 끝나지 않았고 연습실은 싸늘한 분위기에 잠겨 허우적거렸다. 무심코 고개를 돌린 허우석은 다른 사람들과 시선이 마주치고 얼굴이 와작 구겨졌다.

불신과, 또 저 시선. 자신을 외부인으로 보는 저 시선.

지긋지긋하고, 짜증 나는, 저 눈들.

"됐어. 집어치워."

연습실을 박차고 나온 그는 찬 바람을 쐬면서도 진정되지 않는 머리에 화가 쌓였다. 아무도 쫓아오는 사람은 없었다. 자신은 혼자였다. 그 사실이 참 비참했다. 의미 없이 연습실 주변을 빙빙 돌다가 비상구 계단에 쪼그리고 앉았다. 보컬을 시작하며 끊었던 담배가 이토록 그리운 날은 없었다.

허우석은 초인종을 눌렀다. 늦은 밤, 인터폰으로 바깥을 확인한 상대방은 문을 열었다. 이미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한도윤이 그를 바라봤다.

"무슨 일이야."

"우리 이야기 아직 덜 했어."

"낮의 이야기라면…."

"아니, 아직 더 해야 해."

허우석은 한도윤을 밀고 자기 집처럼 익숙하게 들어왔다. 담이 작은 한도윤은 불청객을 내쫓지도 못하고 그 뒤를 따라 들어왔다. 작은 원룸에 멀리 앉을 공간도 없었다. 마주 보고 앉은 두사람은 잠시 말이 없었다.

"한도윤, 너 만약 회사에서 나를 빼라고 했어도 거절 했을 거야?"

"… 그럴 리가."

"내 눈 똑바로 보고 이야기 해."

두 눈이 마주친다. 그러나 오래가지 않고 먼저 떨어진 것은 한도윤의 시선이었다.

"왜 그런 걸 물어."

"내가 확신이 안 가서 그래. 너는 내가 적어도 이 밴드를 위해 얼마나 애쓰는 지 알잖아. 노력하고 있는 거, 몰라?"

"… 알아, 모를 리가."

"근데 어떻게 나한테 그렇게 대해?"

… … 한도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솔직한 말로, 너는 그럴 리가 없다고 하지만 난 확신이 안 든다. 만약 회사에서 나를 빼면 데뷔시켜준다고 했을 때 아무도 거절 안 했을 것 같아. 오히려 잘 됐다 싶겠지."

"그게 무슨…."

"한도윤, 너한테 나는 뭐야?"

허공에서 시선이 다시 마주쳤다. 한도윤은 끝내 그의 말을 제대로 부정하지도, 또 긍정하지도 못했다. 허우석은 허탈함이 몰려왔다.

"… …됐다. 대답은 그걸로 다 한 것 같네."

"우석아."

"내가 멍청했지."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한도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난 간다."

한도윤은 끝까지 그를 붙잡지도 않고, 아니라는 대답도 하지 않는다. 진절머리 날 정도로 어중간한 녀석의 태도에 늘 상처 받는 것은 허우석이다. 그에게 너무 정을 줘버린 허우석의 잘못이었다.

밴드는 그 뒤로도 흘러갔다. 허우석도 더는 데뷔에 대해선 입을 잘 열지 않았고 작곡에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톡 방에서도 말 수가 줄어들고 관리하는 페이터 계정도 뜨문뜨문 이어졌다. 그저 정해진 시간에 연습실에 들어오고, 정해진 공연에 무대 위로 올라간다. 무대 위에선 건성으로 하지 않고 언제나 진심으로 노래를 불렀지만, 무대가 끝나자마자 떠나는 그 뒷모습을 한도윤은 지켜만 봐야 했다.

뭔가 잘못 됐다.

시간이 흐를 수록 잘못 된 일은 계속 꼬이고, 또 꼬여만 갔다. 붙잡을 수 없이 커지는 사건들 사이에서 한도윤은 허우석을 붙잡을 기회를 완전히 놓쳐버리고 그의 이름 뒤엔 배신자라는 이름표가 붙었다. 건물이 무너져도 그는 여전히 배신자였다.

"안 뒈졌네."

후유증이 남들보다 오래 남은 한도윤만이 퇴원하지 못하고 병실에 남았다. 다른 밴드 사람들도, 얼굴 안면 있는 사람들도 한 번씩은 병문안을 다녀오고도 한참 뒤, 허우석이 그를 찾아왔다. 한도윤은 꽤 놀랐다. 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아무 말 없이 찾아와서 대꾸조차 못하고 허우석을 바라봤다.

"뭐하냐. 턱 빠진다."

허우석은 예의상 들고 온 음료수를 침대 옆 서랍에 올려놓으며 의자에 걸터앉았다.

"넌 대체 언제 퇴원하냐?"

"나?"

"그럼 너 이야기지. 뭐 옆 병실 사람 퇴원을 내가 물어보겠어?"

어이없다는 듯 내뱉은 허우석의 말에 한도윤은 괜히 움찔했다.

"우리 이야기 아직 덜 끝난 거 알지."

허우석은 여전히 놓지 못했던 끈을 결국 다시 쥔다. 한도윤은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할 이야기가… 많겠네."

"너희 집에서 기다릴 테니까 빨리 일어나라."

그런 이야기 뿐이었다. 허우석은 갈기갈기 찢기고 버려진 조각들을 다시 주워 붙였다. 어쩔 수 없었다. 한도윤과 허우석의 관계에서 언제나 갑은 그였고, 자신은 을이었다. 먼저 굽히고 들어가지 않으면 이 멍청하고 고고한 배신자님께서 끝까지 연락하지 않을 테고. 어쩌겠나. 반한 사람이 져줘야지.

"연락해. 도망치지 말고."

퇴원을 하지 않았길래 걱정했다. 무섭고 걱정돼서 찾아가지 못한 병문안을 미루고 미룬 끝에야 겨우 발걸음하고, 멀쩡한 그의 꼴을 보며 안도한다. 살아있으면 됐다.

"너, 음악 계속할 거지?"

병실을 나가려던 허우석이 문득 걸음을 멈추고 그에게 묻는다.

한도윤은 허우석의 시선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인다.

"응."

"그럼 됐어."

병실 문이 닫힌다. 허우석은 주머니에 있는 한도윤의 집 열쇠를 쥐었다. 갈 길이 너무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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