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자하면
김주황의 생일을 축하합니다.
한숨이 연기처럼 흩어진다. 새벽 내내 퍼붓던 빗소리가 잦아들고, 언제 그랬냐는 듯 맑아진 하늘을 한번 올려다본다. 장마가 아직 끝나질 않은 걸 티라도 내고 싶은지, 저 다리 너머의 하늘은 여전히 먹구름이 끼어있는데 여기 머리 위의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어서 내리쬐는 태양이 뜨겁다. 확실히 이제 여름이다.
"젠장."
까끌거리는 머리카락을 의미 없이 긁었다. 날씨가 좋던, 나쁘던 상관없이 뒤 구린 일을 해야 하는 자신의 처지는 변함이 없었다. 빚쟁이 노릇 따위 한 번도 원했던 적 없다. 이름만 용역회사지 늙은 놈 어린놈 상관없이 더러운 일에 쓰이기 위한 번지르르한 간판이었다.
김주황, 그 역시도 그렇게 모아둔 말 중의 하나였다.
빌어먹을 놈이 그래도 유일하게 남은 가족이라고,
동생이 망가지도록 내버려 둘 수 없는 것이 형이었으니까.
- 형, …도, 도와줘, 내가, 내가… 그, 그러려던 게 아니야! 아닌데, 분명 처음에는! 이게 아니었단 말이야! 그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분명 뭔가 한 게 분명해! 제발, 살려줘 형! 형, 나 진짜 이러다 죽어….
눈물 콧물 쏟아내며 자신의 앞에서 무너지던 동생 놈을 두고 피가 차갑게 식는 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그는 그때 알 수 있었다. 정신없이 떠드는 말은 하나도 정리된 것이 없었고, 결국 억지로 울음을 그치도록 한 뒤에 사정을 들은 순간 그는 이미 벗어날 수 없는 늪에 발을 빠졌다는 걸 깨달았다.
옛날부터 몸이 약했고, 마음도 여렸던 녀석이라 오냐오냐했던 것이 문제였을까.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를 제대로 가르쳐 주지 못한 부모와 자신의 잘못이다. 그래서 김주황은 그 녀석을 대신해 더러운 일에 직접 가담 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들은 겉으로라도 자비로웠으며, 사용할 말이 직접 들어온다는 것을 환영했다.
- 미안해, 형. 미안해….
- 됐어.
지친 낯으로 돌아온 자신에게 녀석은 늘 죄책감 어린 얼굴로 사과를 했다. 괜찮다고, 됐다고 아무리 말을 해도 그만둘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내심 자기가 한 잘못은 그래도 알고 있어서 다행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넘겨서는 안됐는데.
생명이 꺼져 차갑게 굳어버린 동생을 앞에 두고 김주황은 어떤 슬픔도 꺼낼 수 없었다.
그의 노트에는 온갖 죄책감과 부정적인 감정들이 빼곡히 채워져 있었다. 오랜 시간 쌓아진 그 감정들을 읽으며 김주황은 여전히 눈물조차 흘릴 수 없었다. 자신의 잘못이었다.
동생이 없어도 빚은 그대로였다. 법적인 절차를 다 밟았지만 그는 여전히 태흥용역에 서 있었다. 그에겐 돌아갈 곳이 없었다. 동생을 잃고 벌써 다시 여름이 찾아왔는데, 뒤가 구린 일에서 손을 뗄 수 없었다. 너무 많은 것을 알았고, 너무 많은 것을 겪었다.
"그래도…."
이번 겨울이 지나면, 다시 봄이 와 그 아이가 태어난 날을 지나면, … 그때가 되면 손을 씻자.
이 지긋지긋하고 더러운 일을 모두 놓고 자신만을 위한 살을… ….
김주황은 그렇게 생각하며 햇빛을 피해 그늘 아래 섰다. 여전히 푹푹 찌는 더위와 애매한 습기에 피부부터 끈적거렸지만 괜찮다. 장마란 원래 그런 거니까.
- 형, 생일 축하해.
저 멀리서 어렴풋이 무언가 들린 것 같다. 착각일까, 착각이겠지.
김주황은 걸음을 옮겼다. 더 이상 멈추지 않고 앞으로, 그렇게, 계속 걸어간다.
생일축하해, 김주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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