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
누구도 아닌 남자
남자는 신문을 넘긴다. 세상은 이제 디지털로 넘어가다 못해 인쇄물이 점점 소외당하는 세상이 와도 그는 여전히 신문을 읽었다. 주머니에 들어갈 정도로 작은 기계 덩어리로도 편하게 기사를 확인 할 수 있다지만 그것도 익숙히 기계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야 편하다. 여전히 숫자 키패드가 달린 구형 휴대폰을 사용하는 남자에겐 그 행동 자체가 번거롭다.
1면을 크게 채운 기사를 넘기고, 작게 채워진 기사를 넘기고, 또 넘기다 보면 그의 시선에는 한 기사 제목이 눈에 들어온다.
'일요일부터 장마철 들어설 듯…25~27일 전국에 비'
장마.
남자는 마른 입술을 손으로 문질렀다.
벌써 그런 시기가 왔다. 어쩐지 공기가 습하다 했다. 곧 비가 내린다. 비가 내리고, 세상은 빗소리에 잠길 것이다. 그럴 때면 남자는 어김없이 과거로 돌아왔고, 그 시간 속에 잠기기도 했으며 한여름 밤의 꿈을 꾸기도 했다.
장마와 함께 태어난 남자의 삶은, 살아남았기 때문에 계속 장마와 함께였다.
과거를 모두 떠나보내고, 사람을 잃고, 또 직접 끊어내며 손을 더럽힌 남자는 그래, 아직도 살아있었다. 지긋지긋하고 더러운 여름. 바짝 깎은 손톱을 세워 입술을 뜯었다.
태어났지만 태어나지 않은 날로 취급하는 날엔 남자는 잃어버린 피붙이를 떠올리며 마른 눈물을 흘리고, 태어나지 않았지만 태어난 날로 이름 붙인 날엔 형사를 떠올렸다.
장판이 발바닥에 쩍 달라붙는다. 습한 습기는 해소되지 못하고 피부 위로도 닿는다. 퍼붓는 빗소리에 창문을 열 생각도 못 하고 결국 방바닥에 굴러다니던 에어컨 리모컨을 꺼내 제습을 튼다. 그래도 시원한 바람이 천천히 방안을 돈다.
이제 정은창의 생일을 축하해줄 사람은 없다. 누구도 아닌 남자의 생일이라고 불렀던 것도 축하해 줄 사람이 없다. 그를 머릿속에 넣고 있는 것은 단 한명밖에 남지 않았지만, 이미 손 닿을 수 없는 저 멀리에 있다. 그래서 남자는 여전히 낡은 장판 위에 서 있었다.
해는 23년, 박근태와 유상일의 추락이 일어나고도 벌써 해가 몇번이나 바뀌었나.
남자는 여전히 죽지 못해 살아있다.
더는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고, 문장에 마침표도 떨어지지 않았으니.
23년.
여전히 회색 도시 속에서 사람들 사이 뒤섞여 살아간다.
살아가는 그 삶 속, 누군가는 또 남자의 생일에 축하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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