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한잔

누구도 아닌 사람에게 축하하다.

#좋은_날이_되고싶어 #좋은_날이_되었어 

“넌 생일이 언제냐?” 녀석이 물어봤다. 

“6월….” 무심코 대답을 하다 말을 멈춘다. 

자연스럽게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냈다. 

“30일.” 2로 시작하지도 않고 적당히 생각나는 날짜를 입 밖으로 꺼낸다. 그렇게 남자가 태어난 날은 6월 30일이 된다. 말장난 같은 짓이었다. 

남자에게 있어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숫자 ‘30’에 결국 의미가 붙는다. 여전히 여름은 뜨겁고, 더운 열기가 도시를 뒤덮는다. 도로 위로 피어오르는 아지랑이, 그늘 아래에서도 그 열기를 피하지 못하니 그 끝에서 담배 연기를 뱉어냈다. 여전히 유월의 끝자락이었다. 

그 뒤로 몇번의 여름을 견디고, 또 버텼는지 알 수 없다. 해가 지날때마다 뉴스와 라디오에서는 끊임없이 사상 최고의 더위라고 떠들어대니, 늘 똑같은 날처럼 느껴진다. 찌는 듯한 더위, 갑갑한 공기. 피부까지 끈적거리는 것 같은 기분. 

그렇게 남자는 여름을 견디고, 다른 계절들을 지나 다시 여름을 맞이한다. 시리도록 차갑던 겨울이 저물고 괴로웠던 기억들 마저도 희미해지기 시작하는 것은 인간인란 망각의 동물 인 탓이다. 

좋은 사람이 될수 있을거라며 숨이 꺼져가던 순간마저도 손을 잡아왔던 이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는다. 그 대신 아무것도 아닌 날에 축하를 받는다. 

아무것도 아니기에 이제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축하할 일이 없는 날.

의미 없이 고기 불판 앞에 앉는다.

익어가는 고기들은 접시 위로 쌓여가고 형사의 의미 없는 푸념을 들으며 술잔을 기울였다. 배신하고 살길을 찾아 떠났던 놈이 기껏 먹고 마신다는 게 싸구려 뒷고기와 소주다. 형사의 현실에 웃음도 나오지 않았다. 

구질구질하고 한심하다. 

이런 삶을 위해 그를 배신하고, 또 그 사람을 배신하고, 그리하여 떳떳하였나. 단단한 목은 얼마든지 힘만 가한다면 부러트릴 수 있을 것 같았고, 그것이 아니더라도 충분히 찌를 수 있는 곳을 옷 위로 그린다. 

빌어먹을 정도로 치밀한 새끼는 고기 처먹는 오늘도 옷 아래 두터운 보호구를 걸치고 왔으니 그려놓은 것들을 모두 지우고 소주잔을 꺾었다. 즐겨먹지 않던 술은 이제 습관이다. 익다 못해 바짝 타들어가는 고기를 우겨넣는다. 맛을 느끼기 위해서 씹나. 그냥 씹는다.

“얌마, 형님이 이야기하는데. 오늘 내가 쏜다는 건 알고 있냐? 어? 얻어먹는 놈의 태도가…” 

우스운 소리다. 형님이라는 호칭이든 뭐든. 그러한 삶 끝에 드는 것은 연민이다. 제대로 신분 조차 없는 새끼가 아니라면 곁에 둔 사람이 없어서 그놈 붙잡고 신세한탄 하는 꼴이. 

“누가 사달라고 했냐.”

이새끼저새끼. 형사는 괜히 신경질적으로 잔을 내려놓으며 성질을 낸다. 남자는 이 또한 감흥 없이 술잔을 기울인다. 기울이고, 또 기울어진 술잔은 그의 삶이다. 

형사는 죽는 순간이 오기 전까지 끝까지 모를 것이다. 그가 그렇게 만들 것이고, 이번에야말로 허무한 죽음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닌 그를 직접 꺾어버릴 사람이 될 것이다. 지난 날의 후회, 새로 짜놓은 판과 무대. 배우에서 내려온 이는 다시 그 위로 올라가는 날을 그린다. 

남자가 태어남과 동시에 ‘정은창’이 저물었다. 

그래서 남자는 축하 대신 어리석었던 놈에게 애도의 술잔을 올린다.

“생일 축하한다. 정은창.”

■■■,  너는 여름이 시작 될 무렵에 다시 태어나 여름 열병을 앓다 그렇게 시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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