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

[쿠잔근별] 젤리빈즈러브

말랑말랑

* 대지각이긴 한데, 친구의 생일축전 겸으로. 늦게나마 생일 축하한다!!!

* 트친의 드림컾을 전력으로 응원함. 행복해라ㅏㅏ!!!!!!

* 시계열은 온고잉 어드메를 섞은 쿠잔근별시공이겠지요

* 너무 호로롭 썼다보니, 때때로 가필수정이 있을 수 있음.


뱃일하는 사람은 거칠기 마련이다. 그건 해군이건 해적이건 하물며 어촌에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정의를 떼어놓고, 배를 타서 먹고사는 일이란 몸을 쓰는 노동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하다. 정의를 내걸고 올바른 편이라는 뻣뻣하게 다린 흰 군복을 입은 해군조차 저희끼리 있으면(다시 말해, 정의를 부딪칠 자리가 아니라면) 그냥 힘깨나 쓰는 바닷사람일 뿐이다. 여군도 예외는 없다. 그네들도 엄격하게 훈련받아 손과 발에 굳은살 잔뜩 배긴 이들이고. 해적 측은 말할 것도 없다. 대놓고 흰 군복과 대척점을 선언하는(요즘에 와선, 그 영역 밖의 모든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그들은 가지각색의 모양을 하고선 왁자하고 거칠었다. 재차 말하건대 생김새의 멀끔함이 아니다. 몸에 새겨진 굳은살이며 흉터 따위의, 거친 파도를 맞이하며 사는 그것을 말하는 거다.

왜 이야기가 이렇게 흘렀느냐고 하면, 쿠잔은 지금 절찬리에 폭풍 속에 내던져진 조각배같이 혼란해서다. 스스로 생각이 잔뜩 엉켜 딴생각마저 하고 있음을 잘 안다.

‘이거, 그, 너무 말랑한 거 아닌가…?’

아주 오랜만에 제 사랑스런 별님을 보러 슬그머니 찾아온 것도 좋고, 나름대로 깜짝 방문이라 근별의 휘둥그레진 붉은 눈동자에서 환하게 반가움이 번지는 걸 본 것도 좋았다. 달라붙어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다 보니 자연스레 뺨을 맞대게 됐는데…. 제 아가씨의 너무나도 말랑하고 보드라운 뺨에 심장 한쪽이 눌러앉았다고 착각할 만큼 놀라고 당황한 거다. 몸을 맞대고 있던 터라 찰나 몸을 움찔한 것을 남을 잘 살피는 버릇이 있는 이 아가씨는 당연하게도 눈치챘고, 곧 붉은 가넷에 물안개처럼 걱정과 불안이 차오르는 게 보였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쿠잔?”

“어어?”

행복하게 웃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직접 택해 걷는 어둡고 사나운 해구에 지쳐서 찾아온 거였지 근심에 차 검푸르게 가라앉는 표정을 짓게 하려는 건 아니었다. 드물게 말문이 막혔던 쿠잔은 당혹스러움과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 탓에 속에만 고여있던 말을 곧바로 고스란히 뱉고 말았다.

“아아니, 그, 아가씨가 너무 말랑해서 말야―, 잘못 건드리면 망가질 것 같았달까―.”

“네?”

예상치 못했던 말인 탓일까. 한번 흐려졌던 길잡이별은 금방 빛을 되찾고 오히려 의문으로 깜빡이다가, 이내 장난스러운 빛을 머금고 둥글게 휘어졌다. 병아리는 잘못 쥐었다간 터뜨릴 것 같아서 무섭다던 모 씨의 말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쿠잔 진짜 귀엽지. 신세계 바다 어디에서도 누구에게도 절대 얕보이지 않을 사람이 제 앞에서 이런 맥아리 없는 언행을 보인다는 건 때때로 묘한 우월감 따위를 불어넣곤 한다. 한때는 해군의 한 축으로 지금은 무시무시한 검수로, 혹은 그 모든 이름을 제하고서도 자연재해와 동일한 자연계 능력자인 그가 제게는 이토록 무해하고 얼빠지게 구는 거다. 사랑스러움이 가슴뼈를 뻐근하게 밀어 채우며 부풀어 오른다. 넘쳐난 애정을 가둬두지 않아도 된다고, 흐름에 몸을 맡기는 것도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여유라고 알려준 그에게 마음을 따라 꽤 버석해진 뺨에다 쪽 소리 나게 입술을 갖다 붙였다.

그래서 쿠잔은 어떤 반응을 보였는가 하면, 처음 몇 초는 아무 반응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딴 데 정신이 팔린 것 같았달까. 아까 말을 반추하면, 아마도 대체 이 조막만 한 아가씨의 어디를 붙들어야 안 터뜨려 먹을 수 있을까-따위의 말도 안 되는 거나 골몰하는가 싶다. 잘못하면 네가 위험해지니 깊은 말은 피한다고 했지만, 종종 흘리듯 언급했던 것을 조합해보면 뻔했다. 지금 그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라곤 해군장병보다 훨씬 거칠고 험한 남정네들이 아니던가. 거기에 오래도록 눌러앉아 익숙해진 스스로 아귀힘이 가늠이 썩 안 가는 듯했다.

그리고 다시 삼 초. 반쯤 넋이 나갔음에도 세운 날이 결단코 무뎌지지 않는 바다 사나이는 뒤늦게나마 제 감각에 걸렸던 것을 반추한다. 하도 근처에 있어 선글라스 아래로도 비치는 눈동자가 서서히 경악으로 커지는 것이 선명하다. 그 밀리초마다의 변화를 근별은 가장 가까운 1열에서 즐겁게 관람했다. 곧이어 쿠잔이 무언가 말하려다 멈칫하는 식으로 입술을 달싹이고 제게 얹지 않았던 한쪽 손을 허공에 두어 번 휘적이다가 결국은 자기 이마를 짚으며 얼굴을 쓸어내렸다.

“아가씨…. 이거 완전 반칙이잖아….”

뒤늦게 뽀뽀당한 것을 자각한 그의 반응은 키나 덩치나 위명에 비하면 참으로 아기자기하다. 쿠잔이 지상에 곱게 지침指針으로 삼은 길잡이별은 바다 위에 쏟아지는 뙤약볕과 해수면이 반사한 햇빛에 이중으로 그슬린 까무잡잡한 뺨이며 귓바퀴가 은은한 빛으로 발갛게 달아오른 걸 보며 까르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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