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한잔

커피

민주영님 생일 축하드립니다. 2023년도 축하글

"수요일을 여는 아침. 안녕하세요, 여러분들의 민주영입니다."

상냥한 목소리가 라디오 너머로 들려온다.

"다들 출근길은 괜찮으셨나요? 아무리 장마라곤 하지만 신발을 적시는 비는 정말 곤란한 것 같아요."

라디오 채널을 변경하던 이는 들려오는 그 소리에 손을 멈추고 자신도 모르게 귀를 기울인다. 차창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그녀의 목소리를 더 또렷하게 만들었다. 맑고 다정한 음성은 사연을 읽고, 그에 공감을 하며 또 다른 공감을 만들어냈다.

"벌써 오늘의 마지막 곡이네요. 38XX님이 신청해주신 비러브드의 레인보우를 끝으로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다들 다정한 수요일 되세요."

웃음어린 목소리로 그녀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다음 주, 또 이시간에 만나요.' 그는 무심코 시간을 확인했다. 10시. 다음 주 수요일의 열 시에 그는 이 방송을 또 찾아 들게 될 거란 그런 짐작이 들었다. 꺼지지 않은 라디오에선 낯선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흘려듣던 그는 노래 부르는 목소리들 사이에 그 잠깐 사이 낯익게 된 소리를 잡는다. 홀린 듯 노래 제목을 검색하면, 그의 플레이리스트에 새로운 노래들이 하나씩 추가된다. 그렇게 유튜브에도 한물간 옛날 서바이벌 프로그램 영상이 하나씩 알고리즘으로 떠오르고, 민주영이라는 사람에게 젖어 드는 순간이었다. 

"주영씨, 오늘도 수고 많았어요. 어떻게 오늘 마지막 곡이 비러브드래, 되게 기분 좋겠다."

라디오 부스에서 나온 민주영이 숨기지 못한 미소를 보였다.

"저도 좋아하는 노래인데, 기억해주시니까 기쁘더라고요."

"마무리하는데 너무 환하게 웃어서 끝난 게 그렇게 좋냐고 누가 보면 그러겠더라니까."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흐른다. '아 맞다.' 하는 목소리가 자리를 떠나려던 민주영을 잡았다.

"주영씨 오늘 생일이잖아. 별건 아니고 아까 사 온 거야. 큰 건 아니니까 받아요."

작은 케이크 박스를 품에 받아 든 민주영은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결국 다시 고개를 꾸벅 숙여 보였다. 품 안에 다정함이 가득 차올랐다. 다정한 사람들, 다정한 반응, 그것들이 민주영을 채워 들어 그 역시도 다정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상냥한 사람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느긋했다. 빠르게 바뀌는 창문 너머를 바라보면 민주영의 시야에 전광판이 하나 걸렸다. 때 마침 광고가 바뀌곤 낯익은 얼굴이 나왔다. 지난 달에 찍은 광고영상이었다. 누구보다 반짝이는 얼굴로 웃으며 지나가는 영상을 홀린 듯 바라보다 그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편한 옷으로 갈아입은 그는 곧 커피를 내렸다. 선물 받은 케이크는 접시에 옮겨 담고 은은한 커피 향이 올라오면 커피잔을 나란히 두어 다시 카메라에 담는다. 의자에 걸터앉아 케이크를 작게 잘라 입에 넣는다.

"맛있다."

달달한 생크림 향이 커피와도 잘 어울렸다. SNS에 아까 봤던 전광판도, 커피와 케이크도 올린 후에야 그는 밀린 연락을 열어보았다.

[ 언니! 언니!!!!!! ]

[ 이거 봐. ]

[ 사진 ] am 11:21 

"어머."

사진을 클릭 한 민주영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지하철역에 걸린 자신의 생일 축하 광고 영상과 함께 셀카 찍은 오인하의 모습이 담겨있었다. 이어진 카톡 내용도 소소했다.

지하철 타는데, 어디서 빛이 계속 나서 눈이 부신 거야. 근데 언니더라고. 냅다 뛰어가서 찍었지. 하며 개구쟁이 같은 이모티콘도 잊지 않고 보낸 모습에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 보내줘서 고마워. 어디 역이야? 나도 나중에 가봐야겠다. ]

카톡을 보내놓고 다른 연락을 살폈다. 자정 일찍부터 연락이 왔었던 터라 많이 밀린 것은 없었다. 대신 SNS 알림이 계속 울렸다. 대부분 하트가 한가득한 알림창을 보며 가슴이 따듯해졌다. 이런 호감들을 다시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온전히 믿지 못했다. 다시 베스타 시즌5에 참여하면서도, 지난 시즌에 미처 하지 못했고, 보여주지 못한 것들을 거리낌 없이 보여주자는 것만 생각했다. 불안과 짐으로만 여기지 않고 후회 없이 떳떳하게 카메라 앞에 서고 싶었다.

그것이 우승이라는 무거운 트로피로 품에 안으며 그는 휘청거리려는 다리를 꼿꼿이 폈다. 진심으로 음악을 사랑했고, 노래가 즐거웠으며, 무대 위에 있으며 살아있음을 느낀 민주영은 이 삶이 참 행복했다. 진심으로, 행복했다.

포기하지 않길 잘했다.

아직 온기를 품은 커피를 한 모금 넘기며 그렇게 생각했다.

매일같이 커피를 내리고, 불안에 떨던 과거도 괜찮았다. 그런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자신이 있었으니까 여전히 이 커피를 사랑한다. 민주영은 케이크 위 장식으로 얹어진 딸기를 콕 찔렀다.

생일 축하해, 민주영.

이제까지 고생했고, 잘해왔고, 앞으로도 잘 할 수 있을거야. 이것이 내가 사랑하는 길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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