윙컷

ㄷㅋ

튀긴쥐 by h43m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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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광, 폭발, 이어서 들려오는 비명소리, 도사리는 위험. 30년을 향해 달려가는 김혁규의 인생은 대체로 이런 풍경이었다. 전쟁세대라는 것은 이러한 불행을 수반한다. 몰락을 향해 질주하는 비로소 절멸의 세계. 김혁규는 적극적으로 절망하지 않았다. 다만 절망을 수용하고 수긍했을 뿐이다. 시대를 연민하지도 않았다. 어차피 모두가 적응의 동물로 보였다. …그리고 그저 그렇게 살았을 뿐이다. 이 시대에 탄생한 인류 전원에게 낙인처럼 찍힌 생존본능을 오른손에 들고서, 오직 살아남기가 목적인 삶을.

1층 로비에 설치된 스크린에서 오늘 새벽 전투가 발생했던 현장이 생중계 되고 있었다. 전시상황을 체크하느라 밤을 꼬박 새운 김혁규가 고꾸라질 것 같은 걸음걸이로 상황실에서 나오자 로비에 상주하는 직원 몇 명이 인사를 건넸다. 끊어질 것 같은 이성 너머에서 정부의 승리를 보도하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로써 도시의 안보가 지켜진 셈입니다. 산뜻한 목소리에 비해 화면에서는 폐허가 된 현장만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 들어오는

“센티넬 케리아, 복귀합니다.”

나의 센티넬.

여기서 ‘나의’는 애틋하고 달콤한, 빌어먹을 소유격이 아닌. 뿌리칠 수 없는 그림자를 의미한다.

윙컷

김혁규 류민석

오늘 낮 영광스러운 승리와 함께 복부 출혈을 달고 나타난 류민석은 저녁이 되자 출전이 가능한 수준까지 회복했다. 가이딩 실에 반나절을 꼬박 처박혀 있던 결과였다. 그 반나절 동안 김혁규는 가이딩 실 앞 간이의자에 앉아 류민석을 기다렸다. 그 안에서 키스를 하든 뭘 하든 김혁규는 류민석과 함께 퇴근해야 했다. 이러나저러나 류민석의 이름 옆에는 언제나 <담당: 김혁규>라는 꼬리표가 붙었기 때문이다. 이미 30시간 째 무수면 상태인 김혁규는 점점 감기는 눈꺼풀을 통해 책임의 무게를 고스란히 체감했다. 이미 수십 번 정도 겪은 바 있는 순간이었다. 매번 류민석에게 김혁규가 할 수 있는 한탄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혹은 “나는 무슨 죄냐?” 같은 무의미한 생색이었고 “광형보다는 낫잖아, 거기는 가이딩 실에 같이 들어간다던데.”라며 류민석은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전부 대꾸했다. 이런 대화의 마무리는 대부분 김혁규의 “기어오르지?” 한 마디였다. 다만 오늘은 한 마디가 더 붙었는데, “걔들은 가이딩이 무슨 사우나인 줄 알아.”하는 김혁규의 농담 아닌 농담이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거의 기절하다시피 잠든 김혁규는 얼마 지나지 않아 굉음에 눈을 떠야 했다. 소리의 근원지를 찾기도 전에 류민석이 부엌 입구를 틀어막고 서 있는 게 보였다. “무슨 일인데?” 하고 묻자 불안에 떠는 눈이 김혁규를 올려다 봤다. 류민석은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어서 “형 힘들 텐데 더 자.” 하고 기특한 말을 하기까지 하는 정도에 이른다. 하지만 김혁규는 류민석을 모르지 않았고.

“야 빨리…….”

김혁규가 귀찮다는 듯 이마를 짚자 그제야 류민석은 몸을 슬쩍 비켰다. 류민석의 뒤로 전자레인지 내부에서 장렬하게 폭발한 계란이 보였다. 덜 익은 노른자와 흰자, 계란 껍데기가 전자레인지 사방에 달라붙어 존재감을 드러냈다. 아마 전자레인지로 계란을 익히려던 모양이었다. 아일랜드 테이블에는 두 명 분의 식빵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김혁규는 류민석의 말대로 더 쉬는 대신 전자레인지 청소를 선택했다. 생활 양면에 자신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류민석에게 뒷정리를 맡기는 게 더 불안했다. 김혁규가 행주로 계란 껍데기를 쓸어 모으고 전자레인지 내부를 닦는 동안 류민석은 약간 기가 죽은 채로 식사 준비를 계속했다. 그래도 분주한 움직임이었다. 몇 시간 전까지 제대로 걷지도 못하던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김혁규는 언제나 직접 출전하는 것, 그러니까 자기 손으로 반정부군 사살하는 데에는 약간의 거부감을 느꼈으므로 센티넬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센티넬의 유전적인 면, 회복력이나 체력에는 약간의 선망을 가지고 있었다. 30대가 목전이라 그런가. 하루 밤샘도 무리인 자신에 비해 쇼크 직전까지 피를 흘린 류민석에게는 사고 칠 힘까지 남아있는 건 좀 불합리한 것 같았다.

“이런 지능으로 센티넬은 어떻게 하는 거야.”

“형이 가르쳤잖아.”

“전자레인지에 계란 돌리면 터진다고 안 가르친 내가 죽일 놈이다.”

“너무 그러진 마…….”

그리고 나란히 앉아 밥을 먹었다. 방금 전의 사고 (…) 때문에 분위기가 약간 얼어있었지만 그것 말고는 평소대로의 둘이었다. 다만 입 속에서 부드럽게 뭉개지는 빵과 바나나의 맛이 진해질 수록 김혁규는 미궁에 빠졌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이 사이에 삶은 계란의 자리는 없을 것 같았다. 대체 뭘 만드려고 한 건지……. 김혁규가 씹는 둥 마는 둥 하자 류민석이 조심스러운 눈빛으로 물었다.

“별로야?”

“별로는 겨우 면했네.”

엥? 류민석의 되물음에 김혁규는 제대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내일은 나가서 먹을까”히고 이야기 했고 류민석은 별다른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몇 주만의 오프였다.

내일은 나가서 먹을까, 라는 말은 언뜻 듣기에 데이트 신청 같았지만 유감스럽게도 둘 중 의미부여가 습관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김혁규는 외식을 하자고 말했을 뿐이고 류민석은 그에 동의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외식을 하고 영화를 본 다음 카페에 갔던 수많은 전적이 있고 그건 통상적으로 데이트 코스지만,

김혁규의 의견은 이러하다. 밥 좀 먹을 수도 있지…….

센터에서 도보로 10분 가량 떨어진 브런치 카페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멋들어진 이탤릭 간판을 가진 가게는 김혁규만 두어 번 방문한 적이 있는데, 이 가게의 시그니처 토스트를 좋아하는 센터 소장의 영향이었다. 김혁규에게 토스트 얘기를 들은 류민석은 그곳에 데려가달라고 종종 졸랐다. 거긴 단둘이 가기엔 좀 그렇다는 대답이 곳곳에 백합 화분이 놓인 프로방스 풍의 매장이라는 뜻인 줄은 몰랐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김혁규와 류민석은 꽃들 사이에서 묵묵히 토스트를 먹었다.

“다 먹을 수 있어?”

반 쯤 남은 토스트를 썰던 김혁규가 비슷한 양이 남은 류민석의 접시를 보며 말했다. “아니…….” 입에 빵을 한가득 욱여넣은 류민석은 웅얼거리다가 조용히 포크를 내려놓았다.

“오고 싶다고 해서 기껏 데려왔더니만.”

“맛에 비해 너무 올려치기 된 거 아니야?”

“자릿세가 있잖아.”

김혁규와 류민석은 사이 좋게 토스트 반 쪽 씩을 남겼고 계산은 언제나처럼 김혁규의 몫이었다. 류민석이 먼저 카드를 내밀었지만 어린애가 무슨 돈이 있냐며 밀어냈다. 이상한 말이었다는 건 영수증을 건네받을 때 깨달았다. 돈은……. 있겠구나. 이질감을 곱씹으며 뒤돌자 류민석이 웃음을 참고 있었다.

그러니까 본인의 표현을 빌리자면 김혁규는 류민석을 돌보는 것으로 "업보를 치르고“ 있었다. 그런 것 같다고 김광희(가이딩이 사우나인 줄 아는 그 센티넬.)에게 말한 적이 있었다. 우스갯소리였지만 그 말을 하면서도 틀린 말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김혁규와 류민석의 첫만남은 연고없는 미성년 개성자를 모아둔 캠프였다. 어째서 류민석을 키우겠다고 말했었는지 김혁규는 기억하지 못한다. 언제나 김혁규에게는 ‘연구원으로서 높은 수준의 센티넬을 육성할 의무’라는 구실이 있었으니 대충 그런 이유일 거라고 짐작한다.

하지만 키운다, 라는 말의 무게에 대해 생각해본다면……. 어쩌면 그때부터, 김혁규는 자신의 인생에 혹처럼 따라붙을 류민석을 각오했던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각오는 먹이고 재우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미 센터에서 센티넬을 물심양면으로 지원했지만 사적인 정성도 들였다. 어디까지나 국가를 위해서라는 말은 김혁규의 단골 변명이었다. 다만 김광희가 “왜 그렇게 잘해줘요?” 라고 물었을 때 김혁규는 “걔 보면 그냥 안쓰러워…….”라고 대답했다. 안쓰럽다고요? 너도 걔 안쓰러워서 잘해주잖아. 그렇네요, 불쌍하긴 해. 비 맞은 강아지 같아서.

안쓰러워서 잘해줬더니 책임이 뒤따른다. 연민과 애정의 딜레마. 김혁규의 인생을 수직선으로 그린다면 류민석은 가장 중앙, 선분을 관통하는 점에 있다. 돌연 등장해서는 김혁규가 줄 수 있는 가장 좋은 것들을 양분으로 성장했다. 다르게 말하자면 중앙의 점에서부터 시작하는 선만큼의 시간 동안, 김혁규에 의해 구축됐다는 이야기였다. 마치 오랫동안 함께 음식을 먹고 후천적으로 닮게 된 연인이나 가족처럼.

“근데 광형이 얼마 전에 나한테 왤케 컸냐고 했어.”

“그건 걔가 널 자주 안 보니까 그렇지.”

“죄송한데 저 스물셋이거든요.”

“아직 애새끼네…….”

“광형이 키스해봤으면 어른이랬는데?”

“광희가 그런 말을 한다고? 못하는 말이 없네.”

“근데 난 해봤어.”

“뭐래. 가이딩이잖아.”

가게를 나오면서 시시한 대화가 오갔다. 류민석이 그게 그거라며 항변하자 김혁규는 거의 비웃었다. 대화 주제는 자연스럽게 김광희의 근황으로 넘어갔다. 김혁규는 덤덤한데 오히려 류민석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다. 광형 사표 낸 거 어떻게 된 줄 알아? 몰라 까였겠지. 그냥 계속 하기로 했대 뭔가 자기는 이게 제일 어울리는 거 같대.

“걔 그럴 줄 알았다.”

“그래도 사표까지 쓸 정도면.”

“넌 관둘 수 있으면 관둘 거야?”

“나? 에이, 절대 안 관두지. 그럼 안되지. 김혁규의 걸작인데, 센터 사람들이 뭐라고 하겠어…….”

생각보다 비장한 대답이 돌아왔다. 류민석은 눈을 내리깔고 있었다. 김혁규는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다가, “그런 생각은 어른들이나 하는 거야…….”하고 쥐어짜낸 목소리로 말했다. 류민석이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다가 네, 하고 말했다. 적절한 대답이었다. 부정도 긍정도 아닌.

그렇다면 역시 우리는……. 김혁규는 자신에게 뿌리를 둔 것 같은 6살 연하의 담담 센티넬을 바라봤다. 류민석의 이름 앞에 김혁규의 이름이 붙듯이, 김혁규의 이름 뒤에는 류민석이 붙을 것이다. 죽을 때까지, 어쩌면 무덤까지도. 뿌리칠 수 없는 책임의 고리였다. 우리는 가족일까. 그 형식적인 데이트 코스에 주변인 중 그 누구도 의심을 가지지 않는 것은 우리가 가족이기 때문일까. 걸작이라는 단어의 무게감이 여실히 느껴졌다. 자식이 철들지 않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불현듯 이해했다.

하지만 가이딩 실 앞에 앉아 문 너머에서 가이드와 한창 혀를 섞고 있을 자식의 모습을 상상하는 부모라면……. 자격 박탈 같았다.

김혁규는 오랜만에 A가 나오는 꿈을 꿨다.

바야흐로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름 석 자 앞에 반드시 유망주라는 이명이 붙었던, 김혁규의 새끼 연구원 시절로. 우연찮게도, 국가를 떠들썩하게 한 연쇄 센티넬 폭주 사건은 김혁규의 입사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하지만 공공의 책임은 어쩔 수 없는 도리였으므로, 이제 막 입사했을 뿐인 김혁규에게도 죄책감의 일부가 몫으로 주어진다. 처음 목격한 폭주에 벌벌 떨며 울었던 김혁규를 호출한 것은 소장도 윗 기수의 선배도 아닌 센티넬 A였다. 아무리 유망주라 할지라도 당시의 김혁규는 누군가를 ‘키울’ 깜냥은 되지 못했으므로, 당연히 A의 인생에도 깊게 관여된 바 없다. 훈련 중 인사를 몇 번 주고받았던 A는 자신보다 한참 작은 김혁규를 내려다 보며 이렇게 말한다. 성찰과 후회를 구분할 것, 성찰은 공리적이지만 후회는 유리하게 쓰일 덕목이 아니니까. 얼마 지나지 않아 A의 이름도 차트에서 지워지게 되었다. 다른 센티넬의 폭주에 휘말린 것이 원인이었다. 다행히, (다행히?) 김혁규는 배울 줄 아는 사람이었다. 눈물은 조금 흘렸을지언정 후회는 하지 않았다.

후회 대신 성찰을 하라기에 그 뒤로 센티넬 훈련에 힘썼다. 노력이 가닿지 않는 곳도 분명 존재했다. 몇 번의 폭주를 지켜봤고 수많은 폭주를 막아냈다. 도시는 나날이 황폐해졌지만 어느날부터는 울지 않게 되었다. 그러 최초의 기억은 도무지 무시할 수 없어서, 언제나 같은 꿈을 꿨다. 트라우마의 재연보다는 주마등에 가까웠다. A의 마지막 순간에는 김혁규가 있었다.

최근 잇따른 센티넬 폭주 사건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오늘 새벽 4시경 또 다른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센티넬 연구 센터에서 일어난 테러 진압 도중 예기치 못한 폭주로 인해 S급 센티넬 두 명을 포함한 네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이에 당국은 깊은 애도의 뜻을 표하며, 사고 원인 조사에 박차를 가할 예정입니다. 일각에서는 계획된 폭주라는 의혹이 제기되어…….

화염계 센티넬이 폭주한 자리에서 불기둥이 솟구쳤다. 윗 기수 연구원들은 개중에 가장 어렸던 김혁규를 보호하기 위해 자신의 등 뒤로 숨겼다. 인파 사이로 불길이 차례차례 솟아오르는 모습이 보였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녹여버리겠다는 기세였다. 눈앞이 자꾸만 일그러졌다. 다만 A가 불길을 질주하는 모습은 똑바로 보았다. 그제야 열기때문에 세상이 일그러지는 게 아니라 A가 염력을 최대치로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무언가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그리고 A가 지른 단말마 같은 마지막 말도,

놓치면 안돼!

A가 붙잡은 반정부군의 일원은 폭주로 일궈낸 불구덩이 사이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A도 마찬가지였다. 자폭이었다. 그러나 오판은 아니었다. 목숨을 불사질러서라도 방어에 성공한 것에 모두가 의미를 두었다. 1순위는 언제나 공동의 승리. 그 과정에서 소모되는 개인은……. 매뉴얼에 적혀 있지 않다. 김혁규는 여전히 A는 성찰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성찰했기 때문에 죽었다고 생각한다.

김혁규는 자신의 눈가를 쓰다듬는 손길에 눈을 떴다. 불타는 8차선 도로가 아닌 익숙한 침실이 눈에 들어왔다. “뭐해.” 김혁규가 잠에서 덜 깬 목소리로 나지막히 묻자 당황한 표정의 류민석이 서둘러 손을 거뒀다.

“형 울어.”

“네가 만지고 싶어서 만진 거잖아…….”

“아, 아 진짜 아닌데.”

“상습범이야, 넌.”

그 뒤로 아무런 대답도 들리지 않은 것은, 자신이 상습범이라는 데에 류민석이 동의했기 때문이 아니라 김혁규가 덮고 있던 이불을 류민석의 머리 끝까지 끌어올린 탓이었다. “아 진짜!” 류민석이 소리쳤다. 김혁규는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어린 강아지를 재울 때처럼 이불 위를 가만 토닥였다. “제발 잠 좀 자자…….” 김혁규의 말에 이불 밑에서 불만 섞인 꿍얼거림이 새어나왔다. 다시 눈을 감을 때에는, 무슨 꿈을 꾸었었는지 완전히 잊은 채였다.

사실 류민석은

‘공동의 승리’라는 말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위화감은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류민석은 과열된 전장의 한복판에서 그 사실을 마주했다. ‘그러니까, 누가 공동인데?’ 공중을 가르고 궤도를 질주할 때 왜 승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샘솟았다. 현재 센티넬 케리아의 임무는 반정부군 전원 사살. 하지만 이렇게 쉽게 등돌려버리는 존재가 공동이라면, 국가라면…….

센티넬은 국가와 시민을 위해 존재한다. 절대다수의 행복을 위해. 그러나 국가는 센티넬을 위해 존재하지 않다. 개인의 안보를 위해 충성하는 것은 일차원적인 의무인가? 그러나 충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사살 당해야 한다면. 애초에 이 전쟁의 끝에 어느 누구의 행복이 있는지, 류민석은 알 수 없었다. 그러는동안 반정부 군용차가 류민석에게 돌진했다. 훈련에 의해 반사적으로 발동된 염력이 군용차를 밀쳐냈다. 날아가며 가속도가 붙은 군용차가 전신주에 큰 소리를 내며 부딪혔다. 그 뒤로 이 의문은 판도라의 상자처럼, 류민석의 오래된 기억 속으로 묻히게 된다.

그럼에도 류민석이 무의미한 의무에 충실한 것은 김혁규를 배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류민석은 여전히 김혁규와의 첫만남을 기억했다. 정확히 하자면 잊을 수 없다. 자신을 키우겠다고 말하는 그 눈동자가, 순간이, 각인 되어버려서. 김혁규는 업보라고 말했지만 류민석은 전부 헌신이었다고 대답하고 싶었다. 그러니 센티넬이 국가의 도구라고 한다 해도 아무래도 좋았다. 처음부터 류민석이 지키고 싶은 것은 김혁규가 놓을 수 없는 세계였으므로.

정적이 흘렀다. 소리가 멈춰서는 안 되는 상황실에서 침묵이 흐를 수 있는 상황은 단 하나. 더이상 할 수 있는 말이 없을 때였다. 모두가 형언할 수 없는 표정으로, 일제히 스크린을 바라봤다. 전장은 센터 앞의 8차선 도로. 모든 연구원들은 10년 전 두 명의 센티넬을 잃었던 테러를 떠올렸다. 단체적인 트라우마였다.

김혁규는 가끔씩 트라우마에 의한 악몽을 꿨고 성찰이라는 명목 하에 그날을 종종 떠올리기도 했다. 하지만 이렇게 불쑥 꺼내진 기억에는 당해낼 도리가 없었다. 차라리 곁에 공동의 트라우마를 공유할 사람이라도 있었다면 좋았을까. 하지만 그는 상황실이 아닌 8차선 도로에 있었다. 언제나처럼 류민석과 함께 출근하고 있었다.

순식간에 센터 일대가 초토화됐다. 예기치 못한 습격에 연락을 받은 센티넬들이 하나 둘 씩 출전했으나 이미 무방비 상태로 반정부군을 수비하고 있던 류민석은 한계였다. 기관포의 탄환이 비처럼 내리고 있었다. 상황적으로나 배경으로나 10년 전의 테러와 비슷했다. 반정부군은 시민과 정부군을 구분하지 않고 사살했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시민들의 비명소리가 박격포 소리에 파묻혀 드문드문 들리고 있었다. 폭주의 전조 증상으로 코피가 터졌다. 류민석은 개의치 않는 듯이 왼쪽 소매로 코피를 닦았다. 그리고 피범벅이 된 얼굴로 적진의 가운데로 달려들어갔다. 상황실에서는 탄식이 터졌지만 출근 중이었던 센티넬에게 상황실의 전략을 전달 받을 수 있는 무전기가 있을 리 만무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염력에 의해 반사된 포탄이 반정부군의 바리케이드에 낙하하며 굉음이 들렸다. 하지만 아무리 S급 센티넬이라 할지라도 쇄도하는 공격을 전부 수비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라이플의 총탄이 류민석을 관통해 총상을 입었지만 멈추지 않았다. 뒤늦게 투입된 센티넬들이 류민석을 보조하는 형태로 서서히 상황을 전복시키기 시작했다. 다만 너무 오래 홀로 반정부군과 대치한 류민석은 이미 이성이 거의 휘발된 상태였다. 남은 한쪽에서도 마저 코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류민석의 몸이 온통 붉었다. 불바다가 된 도로보다 더.

김혁규는 안 된다고 외쳤던 것 같다. 역시 제정신은 아니었다. 그렇게 외친다고 해서 류민석에 가닿을 리 없었다. 하지만 김혁규는 피범벅이 된 류민석의 얼굴을 봤고, 까맣게 가라앉은 눈동자를 봤다. 폭주를 막아야 했다. 막고 싶었다. 그러나 김혁규의 목소리가 닿기도 전에 류민석이 쓰러졌다. 폭주였다. 순간 주변의 공기압이 낮아지며 귀가 먹먹해지는 게 느껴졌다. 한순간이었다. 아지랑이처럼 공기 중에 파장이 일기 시작했다. 이내 모든 게 폭발했다. 류민석과 가까이에 있던 적군부터, 차례로, 부풀어 올랐다가 터졌다. 몇 초도 되지 않는 시간 만에 사람과 무기, 그 일대를 이루는 모든 것들이 파편이 되어서 휘날렸다.

“…….”

김혁규는 찢긴 살점과 선혈들 사이를 질주했다.

잠시 혼수상태에 빠졌던 류민석은 일주일 뒤 의식을 되찾았다. 지속적인 가이딩과 의료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이 내려왔다. 센터는 출전 불능이 된 S급 센티넬에게 약간의 통감을 표했고, 그뿐이었다. 특별히 김혁규에게 시간이 주어지지는 않았다. 김혁규는 자신의 의무대로 낮에는 출근을 했고 퇴근 후에는 류민석이 있는 병실에 갔다. 크게 슬프거나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슬픈 상태로는 살 수 없으니까. 대신 조금 무감해졌다고 느꼈다.

센티넬 케리아의 선택은 과감했지만 최선이었다는 것이 센터의 의견. 류민석의 폭주로 인해 발생한 에너지로 더이상의 인력을 소모하지 않고 게릴라전을 승리로 이끌어냈다. 센터와 교류는 되지 않았지만 폭주가 류민석이 계획한 전략일 가능성도 배제하지 말라는 공문이 내려왔다. ‘…가성비 좋게 이겼다는 뜻인가?’ 김혁규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A의 말을 떠올렸다. 후회하지 말라는.

“…왜 그렇게 했어?”

“형이 처음 가르친 거잖아. 절대 놓지 말라고.”

그러나, A의 가르침이 언제나 김혁규의 삶을 관통하는 것은 아니어서. 몸 반 쪽이 날아간 채 가이딩 실에 실려 들어가는 자기 담당의 센티넬을 본 연구원이 대체 어떤 배움을 얻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김혁규는 약간 붕괴했다. 인간병기에 대해서는 생각해본 적 없었다. 전쟁에 대해서는, 무고하게 사살 당하는 민간인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해서는 안 됐다.

“…….”

하지만 생각하지 않았다는 부정은 곧 오직 그 생각에 골몰했다는 반증.

“토할 것 같아…….”

“…….”

“그래도 좋아해…….”

류민석이 김혁규의 눈물을 대신 훔쳤기 때문에 그제야 자신이 울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상황에서도 김혁규와 눈이 마주친 류민석은 하필 미소 지어서……. 잠시 아득해진 순간 김혁규는 자신을 덮치는 난제에 압도당한다. 이 환멸감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조차 모르겠다. 출처가 있다면 도의일까 부성애일까? 가르치지 말 걸, 하는 후회 역시 함께였다.

하지만 개개인의 붕괴따위는 알아봐주지 않는 시대. 어쨌거나 세계는 돌아간다. 기지를 발휘해 몇 달만에 출전이 가능한 상태까지 회복한 류민석은 센터에 복귀했다. 그동안 김혁규는……. 평범하게 센터에 출근했다. 자신의 붕괴가 그 어떤 변화도 이끌어낼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에. 후회하지 말라는 A의 충고는 구부러져야 꺾이지 않는다는 요령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이 대목에서 김혁규는 약간 비통해졌다.

무전기 너머에서 콜사인이 들렸다. 케리아, 전투 준비해주세요. 류민석은 몇 달만의 출전에 긴장한 얼굴이었다. “손 잡아줄까?” 김혁규가 무미건조하게 물었다. 류민석은 대답하는 대신 김혁규의 손을 꽉 붙잡았다.

“혁규 형.”

“왜.”

“하고 싶으면, 형 데리고 도망쳐줄게.”

“뭔 소리야. 니가 뭘 안다고.”

“많이 알아.”

하지만 김혁규에게 그런 게 가능할 리 없었으므로.

돌아오지 않는 대답에 류민석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류민석은 조금 축축해진 눈빛으로 웃었다.

“거 봐.”

많이 알잖아……. 이 말은 속으로 삼켰다. 류민석은 김혁규를 붙잡은 손에 몇 초 간 아주 세게 힘을 주었다가 먼저 놓았다. 다녀오겠습니다 혁규 형 이번 임무를 잘 끝내면,

키스해주면 좋겠어.

속삭임을 끝으로 류민석은 전투 헬기에 올라탔다. 김혁규는 자신의 센티넬이 탄 전투 헬기가 아예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상황실로 돌아가지 않았다. 나의 센티넬. 여기서 ‘나의’는 애틋하지도 달콤하지도 않았다. 그러나 그 눈동자를 보면 어딘가 시큰거려서 뿌리칠 수 없게 하는, 아마 김혁규를 영원히 아프게 할 빌어먹을 수식어. 눈을 감았다. 김혁규는 난제를 잠시 미뤄두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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