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ㅈㅎㅇㄱ] 八福
* ㅍㅅㅌㅇ에 올린 글 그대로 백업했습니다
* 조선의붕괴 장면 이후 한정훈의 독백
* 극 중 이완 암살이 1940년이라는 설정
김옥균 선생님. 그간 평안하셨습니까?
정말 오랜만에 선생님의 안부를 묻습니다.
선생이 떠나신 지 벌써 수십여 해가 지났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여전히 어둡기 그지 없습니다. 이 땅의 학교에서는 이제 더 이상 조선사(史)를 가르치지 않습니다. 조선어는 선택 과목이 되었으며, 대신 황국신민서사를 읊게하고 있습니다. 조선의 국민들이 일본식으로 이름을 바뀌어 불리는 것은 이제 일상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농민들의 농기구는 죄 무기를 만들기 위해 수탈당하고, 우리 땅에서 나는 쌀 또한 일본군의 배를 불려주기 위해 빼앗기고 있는 현실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조선의 어린 학생들까지 학도병으로 끌고가는 일마저 허다하니, 이 어찌 참담하다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몇 달 만에 소식을 전하는 저에게 부디 선생의 노여움이 크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선생을 떠올리지 못하는 지난 몇 달 간, 저와 동지들은 실로 설명 할 수 없을만큼 바쁜 나날을 보냈습니다. 충칭에서는 김구 선생을 필두로 한 임시정부가 활발하게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리고 상해와 만주에서 활동중인 세 당이 결합하여 한국 독립당이 결성되었으며, 이에 따라 광복군이 창설되었습니다. 또한 화북지대로 이동한 조선의용대는 조만간 중국 쪽과 연합할 것이라는 소식이 간간이 들려오지만, 아직 정확한 사실은 알 수 없는 상황입니다.
한편 경성 쪽의 저를 비롯한 동지들은 어학당의 설립과 함께, 오래전부터 숙원해오던 이완 암살을 최우선 목표로 움직여 왔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계획을 막 실행한 차입니다. 이완의 심장을 정확하게 꿰뚫은 것을 분명히 확인했으니, 작전은 성공한 듯 합니다.
선생께서 지금의 저를 본다면 아마 웃음을 터뜨리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게 사람이냐, 아니면 넝마짝이냐! 라고 말하며 놀리실 것도 같습니다. 어쩌면 저를 걱정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부디 그러지는 말아주십시오. 저조차도 저의 꼬라지가 우스우니까요. 어찌 우습지 않을 수 있습니까. 총알 수십 발을 맞고도 질긴 명줄이 끊어지질 않아 총독부 지하실에 처박힌 꼴이.
오른 손은 떨어져 나간 듯 하고, 허벅다리에 총 두 발을 맞았습니다. 마찬가지로 총을 맞은 양 쪽 정강이와 무릎은 이곳으로 끌려오던 중에 부러진 듯 합니다. 숨쉬기가 이리 어려운 걸 보니 아마 갈비뼈도 두어개 으스러진 것 같습니다. 왼 눈은 떠지질 않고, 간신히 떠지는 오른쪽마저도 눈 앞이 어둡습니다. 이곳이 어두운건지, 눈에 문제가 생긴건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복부와 가슴에서 올라오는 고통이 극심하여 다른 부위의 아픔들은 그저 미미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의식이 흐린 와중에 간신히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왼 팔과 손 뿐인데, 그마저도 쇄골을 다친 듯하여 쉽지 않은 상태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하늘이 주신 기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놈들이 저의 겉옷 안 쪽에, 채 다 쏘지 못한 총 한 구가 있다는 걸 미처 확인하지 못한 듯 합니다. 아마도 제가 죽은 줄 알고 그랬을 테지요. 팔 한쪽만 겨우 움직일 수 있는 놈에게 총을 남겨주시다니, 어쩌면 정말로 하늘님이라는 존재는 계시는 걸지도 모르겠습니다.
김옥균 선생님. 지금 저는 몹시 두렵습니다. 그 날 갑판 위에서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며 눈을 감으셨습니까. 두렵지는 않으셨습니까? 혹, 제가 원망스럽지는 않으셨습니까? 수 십 년 동안을 궁금해 해왔는데, 막상 정말 끝이 눈 앞에 있으니 생각나는 것이라곤 온통 선생님 뿐입니다. 결사대의 여러 동지들이 이를 알았다면 매우 서운해 할 듯 싶습니다. 정작 선생님께서는 저를 생각하지 않으셨을테니.
일전에 저와 함께 서학(西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던 날을 기억하십니까? 저에게 어깨 너머로 들으셨다던 구절을 그저 몇 마디 알려주시고선, 바로 대화를 중단하셨지요. 우리의 임금께서 서학(西學)을 반기지 않으신다는 이유로 말입니다. 수천 만 리 일본에서도 전하를 먼저 생각하던 당신이 그땐 그저 야속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八福이라는 구절들을 일러주시던 선생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는 것 같은데 말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이 이야기를 하다보니 떠오르는 이름이 있습니다. 서간도 연변 용정 쪽에 윤동주라는 이름의 친구가 있는데, 선생님께서도 만나신다면 크게 마음에 들어하실 인물입니다. 대단히 올곧고 지조있으며, 놀라우리만큼 학식이 뛰어나고 현명한 자입니다. 어쩌면 그곳에서도 이미 소식을 접하셨을지 모르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늘 저보다 한 발 앞서 모든 것을 알고 계셨으니까요.
선생님. 저는 아직도 이따금씩 생각하곤 합니다. 만약 당신이 만난 이가 제가 아니라 그런 사람이었더라면, 지금의 조선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어쩌면 선생께서도 그렇게 떠나실 일은 없지 않았을까요. 저는 이러한 후회조차도 그저 한없이 죄스러울 뿐입니다.
평생을 후회로 점철된 삶을 살아온 저는 지금의 선택이 올바른지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명 선생님이었다면 어떻게든 살아남으라고 하셨겠지요. 하지만 저는 두렵습니다. 제가 고통에 굴복할까 두렵고, 혹여나 동지들에 대해 발설하게 될까 겁이 납니다. 그러니 이다지도 겁이 많고 나약한 저는 고작 이런 방법밖에는 떠올리지 못합니다. 선생께서 부디 어리석은 저를 용서해주시기만을 바랄 뿐입니다.
마지막으로, 선생께 말씀드리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오래 전 그 날, 선생께서 말씀해주셨던 서학(西學)의 구절은 매우 인상깊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온전하게 그 문장들의 끝을 완성하지 못할 것만 같습니다. 일평생 신을 믿은 적이 없는 저같은 놈은, 천국이니 윤회니 하는 것들은 아무것도 모릅니다. 다만 이리도 슬픈 땅에 사는 우리들이 배부르고 위로 받아봤자 의미가 없다는 것만은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저는 사무치게 애달픈 이 곳에서, 당신과 함께 영원히 슬퍼하려 합니다. 언젠가 다시 꽃이 피고 새들이 나는 그 날까지. 당신이 그러했듯 누군가는 가야만 하기에.
이 나라의 빛을 위해서, 우리들은 마땅히 슬퍼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슬퍼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영원히, 슬플 것이오.
" 곧 다시 만납시다. 선생님. "
짧은 총성이 총독부의 지하실을 울렸다.
* 윤동주 _ 팔복(八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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