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신성] 하루

쿠로&안나

“쿠로 씨! 어서오세요! 정말 반가워요. 오랜만이네요. 제 문자를 받고 이렇게 찾아오신 거죠? 제가 쿠로 씨의 연구에 도움이 될 만한 독초들이 잔뜩 모여있는 장소를 발견했어요. 쿠로 씨도 분명 마음에 드실 거예요.”

오랜만에 보는 친우의 얼굴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이게 얼마만이던가요. 혹여 절 놓칠까 세차게 손을 방방 흔들어봅니다. 세상을 재건하기 시작한 후로 꽤 많은 시간이 흘렀어요. 이제 세상도 차츰 안정되었고, 일등성이 된 우리는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빛을 내고 있답니다. 여기, 제 눈 앞에 있는 쿠로 씨도 계속해서 독을 연구하고 있을 거예요. 저도 여전히 하프를 연주한답니다.

“아무튼 오늘 하루는 저만 믿고 따라오시면 돼요!”

제 모습이 믿음직하게 보였을까 조금 걱정이 되네요. 그래도 군말없이 따라오는 걸 보면 걱정은 조금 덜어놔도 되려나요. 손을 이끌고 목적지로 향하다 보면 절로 콧노래마저 나옵니다. 흥겨워서 발걸음마저 가볍네요.

“… 얼마나 더 가야합니까? 한참이 지난 것 같은데.”

“이제 겨우 10분도 안 지났는데… 설마 벌써 지치신 건 아니시죠?”

“으음…? 안나 씨, 잠깐만…. 점점 오르막길로 가는 것 같은데요? 이게 맞습니까?”

“그냥 가벼운 경사로예요. 아주 조금만 올라가면 되니까, 힘내봐요!”

힘을 북돋아주기 위해 파이팅! 이라 외치며 생긋 웃어보입니다. 제 응원에 쿠로 씨도 힘이 났을까요?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술이 옴짝달싹했지만 이내 제 뒤를 묵묵히 따라옵니다.

“독초가 그렇게 많은 곳은 정말 처음 봤어요. 도착하면 쿠로 씨도 분명 엄청 좋아하실 거예요. 그 독초들을 잘 활용하면 오히려 약초가 될 수 있다는 사실 쿠로 씨도 알고 계시죠? 독이라는 건 정말 신기한 것 같아요. 이렇게 양면성을 지닐 수 있다니…. 이런 이야기 예전에도 한 것 같네요. 그때 뭐라고 했더라…? 아, 치명적인 점이 좋다고 하셨던가요? 저도 독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었는데, 쿠로 씨 덕분에 이것저것 찾아보게 된 것 같아요.”

주절주절 쉼 없이 말을 늘어놓습니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할 이야기가 없으면 어떡하지같은 고민은 기우였네요. 하고 싶은 말이 어찌나 많은지, 날을 꼬박 새도 모자랄 것 같아요. 그렇게 얼마나 더 떠들었을까요?

“이제 슬슬 도착할 때가 되지 않았습니까?”

“네, 이제 진짜 조금만 더 가면 돼요.”

이 대화 후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쿠로 씨가 절 빤히 쳐다봅니다. 설마 의심의 눈초리는 아니겠죠?

“도무지 도착할 기미가 안 보이는데요. 오늘 안에 도착하는 건 맞습니까?”

“정말로 거의 다 왔어요…! 믿어주세요, 쿠로 씨!”

왜인지 절 바라보는 시선이 따갑게 느껴지지만, 개의치 않고 나아갑니다. 그리고 정말 얼마 지나지 않아 산정상에 다다르고 맙니다. 이제 쿠로 씨도 기뻐하시겠죠? 활짝 웃을 모습을 상상하니 저도 절로 웃음이 새어나옵니다.

“짠! 도착했어요! 어때요? 제가 도감에서도 이름들을 열심히 찾아봤어요. 이건 동의나물, 이건 여로 그리고 이건…”

풀들을 하나하나 가리키며 그동안 열심히 공부했던 제 지식을 뽐냅니다. 쿠로 씨는 지금 풀들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네요.

“이것들은 정말…”

놀라운가요? 신기한가요? 어떻게 이런 장소를 발견했는지 마구마구 칭찬해주고 싶지 않나요? 잔뜩 기대를 품고서는 다음 말을 기다립니다.

“잡초투성이군요. 독이라곤 전혀 없는, 그렇다고 식용할 수 있는 것도 아닌 완전무결한 잡초들입니다.”

“…네? 서,설마요… 그럴리가… 여기 책과 생김새도 완전 똑같다고요…! 잡초일리가 없어요…!”

“… 여길 잘 보세요. 잎사귀 모양이 조금 틀리지 않습니까. 책에 있는 식물은 좀 더 뾰족뾰족하고 여기 난 풀은 좀 더 완만하네요. 이제 차이를 아시겠습니까? 이로서 새로운 연구는 물 건너갔군요. 그것보다 앉아서 좀 쉬는 건 어떻습니까? 여기까지 오느라 너무 힘든데요.”

책에 실린 이미지와 눈 앞에 있는 식물을 꼼꼼히 비교해봅니다. 아뿔싸. 자세히 보니 정말로 달라요. 여기 있는 풀 모두 책과는 전혀 다른 식물들이었어요. 실망을 금치 않을 수가 없네요. 좀 더 세밀하게 확인했어야했는데, 제 불찰입니다. 이런 실수를 하다니, 제 자신에게 화가 나기도 해요. 그렇지만 아직 실망은 금물입니다.

“이건… 정말로 다르네요. 으음… …. 그,그래도 정말 다행히!!! 선물이 하나 더 있어요~ 일단, 여기 앉아보세요.”

평평한 곳을 찾아 돗자리를 펼칩니다.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선물을 볼 수 있을 거예요. 이번에는 정말로 기대해도 좋아요. 절대 실패할 수 없는 선물이니까요. 그만큼 자신있어요! 이곳에 온지 시간이 꽤 흘렀던가요. 어느덧 선물을 개봉할 시간이 다가왔네요. 나란히 앉아 하늘을 쳐다봅니다. 산등성이를 따라 하늘이 점점 붉그스름 물들기 시작해요. 노을빛에 붉게 더 붉게 타오르듯 붉어지다가 저 언덕 너머로 넘어갑니다.

“이 풍경을 쿠로 씨께 꼭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요즘도 연구실에만 틀어박혀 계시지는 않을까 걱정도 되고… 가끔은 이렇게 멋진 풍경을 보면서 바람도 쐐면 좋잖아요.”

어스름이 지고 바람결에 살랑살랑 머릿결이 흔들립니다. 선선한 날씨네요. 쿠로 씨도 아름답다고 느꼈을까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슬쩍 얼굴을 올려다보면 이미 어둑어둑해져 표정이 잘 분간이 가지 않습니다. 그래도 분명 미소를 짓고 있으리라 믿어요"

“인생은 새옹지마라고 하죠. 태양도 지고 뜨고를 반복해요. 지금은 어두운 밤이 되었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아침이 밝아오겠죠. 항상 어둠만이 존재하지는 않아요. 마치 독이 양면성을 뛰는 것처럼요.”

잠시 하늘을 다시 멍하니 바라봅니다. 방금 전까지 환하게 반겨주었단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캄캄한 하늘입니다.

“이제 내려갈까요? 어두울 때 산행은 위험하니까, 저기 케이블카를 타고 내려가요.”

“…케이블카가 있었습니까?”

이런 제가 깜박하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고개를 살짝 끄덕여봅니다. 쿠로 씨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는 여전히 읽을 수 없네요.

“그래도 좋은 구경이었습니다. 내일은 시간이 비는군요. 오랜만에 한국까지 왔는데 바로 돌아가기도 그렇고… 이번에 한국에 새로운 놀이동산이 생겼다는데 아십니까? 거기 유령의 집이 그렇게 무섭다고 하더군요. 내일 하루는 저를 위해 한 번 더 시간을 내주셔야겠습니다.”

“그럼요, 당연하죠~! 쿠로 씨를 위해서라면 시간이야 얼마든지…. 자,잠깐만…. 지,지금 뭐라고 하셨어요? 유,유,유령의 집이요...???”

“왜요? 설마 무서우신 건 아니시죠?

“아,아니에요. 저,절대 무섭지 않아요. 유,유령 따위가 무서울 리가없잖아요 ...!”

“그럼 같이 가시는 겁니다. 내일은 정말 즐거운 하루가 되겠네요.”

어쩐지 내일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말투 고증 죄송합니다 싹싹 빌며… 대사 수정 요청 주심 수정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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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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