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야나

[아카야나/아카렌지] 초단편 2

반으로 갈라진 아이스크림 하드가 불쑥 목전에 다가왔다. 고개를 드니 아카야가 똑같은 것의 반쪽을 입에 물고서 흔들고 있었다.

"빨리 안 받으면 녹잖아요."

그 잠깐의 머뭇거림도 기다리지 못한다는 듯 재촉하기에 곧바로 받아들었다. 자주색에 가까운 분홍색은 대체 무슨 맛을 표현하려던 걸까. 아카야가 이따금 희한한 맛을 사 오는 날이 있었는데 오늘이 그날인 모양이었다. 차가워서 맛도 잘 느껴지지 않는 것을 앞니로 살살 긁어 본다. 옆에서 잘 먹는 것은 보기 좋았지만 스스로 느끼기엔 마냥 달고 상큼하다는 것 말고 달리 떠오르는 감상이 없었다.

"맛있나? 이거."

"신제품이라니까 궁금하잖이요. 나름 마음에 드는데요."

사과랑 파인애플이랑 리치? 랑… 아무튼 이것저것 섞였대요. 과연, 듣고 보면 그렇게 느껴지는 듯했다. 맛이란 향이 결정 짓는 것이고 인공 향이라는 건 다 받아들이기 나름인 법이니까.

"늘상 초코렛... 그거만 사 오더니?"

"가끔은 새로운 것도 도전해 보는 거죠 뭐."

자신은 이제 반이나 겨우 먹고 있는데, 아카야는 어느새 하드 막대를 쓰레기통으로 던져 넣으려고 손을 건들거리며 각을 보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아카야의 오른손이 앞뒤로 가볍게 흔들거린다. 바람은 무시 가능한 수준이고 공원 원통형 쓰레기통의 높이는 약 80센티미터. 거리는 소수점 아래 둘째자리부터는 버리고 대강 3.2미터쯤 될까. 손의 각도로 가늠해보건대 투사각은… 이런, 턱없이 높다. 계산하는 동안 막대는 이미 아카야의 손을 떠났다. 안타깝게도 막대 한 개 분은 모자란 길이다.

아카야, 하고 그를 불렀다. 대답이 돌아오기 전에 잽싸게 덧붙인다.

"주우러 가라."

말하기가 무섭게 막대가 쓰레기통 기둥에 튕겨 바닥에 떨어졌다. 아카야는 아쉽다며 투덜거리면서도 얌전히 막대를 주우러 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시간을 확인했다. 여름 아니랄까 아직 노을도 채 지지 않은 밝은 하늘인데도 저녁 때가 곧이었다. 아카야의 가방을 챙겨 일어났다. 가까이 가니 옆에서 조언해 주면 좀 좋냐고 불평을 해 대기에 머리를 잔뜩 헤집어 주었다.

"다음부턴 던지지 말겠다고 해야지."

아카야는 마음에도 없는 대답을 하며 가방을 받아갔다. 그 모습이 귀여운 한편 건방져서, "너 먹어라." 하고 반쯤 남은 하드를 아카야의 입에 물렸다. 의아한 표정으로 이쪽을 바라보면서도 조건 반사처럼 이로는 앙 무는 것이 볼 만 했다. 아카야가 내게 감상을 물었다. 이로는 착실히 하드를 베어 먹으면서.

"별로예요? 맛있는데."

"늘 사오던 게 더 좋아."

대답 하는 동안 막대에 남아 있던 아이스크림이 몽땅 아카야의 목으로 넘어갔다. 저렇게 빨리 먹으면 과연 맛을 생각하기나 하는 걸까? 마음에 드니까 얼른 먹어치우는 걸까, 아니면 얼핏 보고 괜찮으면 큰 뜻 없이 좋다고 하는 걸까. 깔끔해진 막대는 이번엔 얌전히 쓰레기통으로 들어간다.

"야나기 선배가 초코맛이 좋다고 할 줄은 몰랐네요."

"네가 계속 그것만 사 오니깐…"

질이 들었나 보지. 그렇게 답해주었다.

해 질 녘에도 열기가 통 가라앉지를 않던 시점부터 아카야는 하굣길에 종종 아이스크림을 샀다. 처음 사흘에는 제 몫만을 사 오더니 나흘 째부터는 막대가 두 개 달린, 반으로 쪼개 둘이서 나눠 먹는 것을 사 왔다. 함께 돌아가는 동안 혼자만 먹는 걸 신경쓰고 있던 모양이었다. 괜찮다고 하는데도 한사코 그렇게 했다.

물론 나 역시 아카야가 보이는 호의가 못내 좋았다. 똑같은 포장지 틈에서 제일 시원한 것을 찾겠답시고 슈퍼 냉동고를 뒤적이는 모습이 기특해서 내버려 둔 것도 사실이다. 왜 많은 종류 중에서 그걸 골랐느냐고 물으니 답하는 게 이랬다.

"아니 그냥, 선배 너무 단 거 안 좋아하잖아요. 나눠 먹으면 양도 딱 맞고 저도 이거 좋아하고."

그날 이후로 아카야는 자주 아이스크림을 샀고 반쪽은 내게 건넸다.

계절이 계절인지라 금방 녹아버리기에 갈수록 먹는 데에도 속도가 붙었다. 가끔은 채 반도 못 먹고 단 맛에 물려버릴 때가 있기도 했지만 대개는 다 먹었고, 영 내키지 않는 날이면 오늘처럼 아카야의 입에 물려버렸다. 그럴 때면 아카야는, 기껏 사준 것을 남기면 싫은 티를 낼 법도 한데 군말 없이 내 것까지 먹고는 했다. 먹던 걸 처리한다고 불평한 적 없었고 제 몫이 늘어났다고 신나 하지도 않았다. 아냐. 돌이켜 보면 세 번에 한 번 꼴로 내심 좋아라 하고 받아 먹던 때가 있었다. 반 쪽짜리 하드로는 양이 부족해서 감질나는 날이었으리라.

그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 옆에서 걷고 있는 아카야는... 날이 더워서인지 조용하기만 했다. 축 늘어진 곱슬머리를 구경하다가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네가..."

침묵이 지루했는지 아카야는 내 목소리에 냉큼 고개를 돌렸다. 내 말을 기다리는 모양새였지만, 하려던 말이 막상 입 밖에 내자니 멋쩍은 것이라 쉬이 나오지 않았다. 참을성 없는 녀석은 3초도 채 안 지났건만 옆에서 제가 뭐, 라며 대꾸했다. 망설임이나 머뭇거리는 티가 나지 않게 최대한 담담하게 말했다.

"네가 마음에 든다고 말하는 기준을 통 모르겠다."

"응?"

"아이스크림 말이야."

하려던 말을 그대로 전했는데 어쩐지 둘러댄 듯한 기분이 드는 것은 왜일까. 아카야는 한 손으로 하관을 가린 채 웅얼거리다가 이내 제 나름의 기준을 설명해주었다. 깊게 생각해 본 적 없다는 투였다.

"보통 생각하기에 맛있다 싶으면 저도 좋은 것 같은데."

"객관적으로 맛있는 거면 좋다?"

"뭐 그렇죠."

아카야는 대수롭지 않게 답했지만 아이스크림이라는 게 보통 대중이 좋아할 만한 맛으로 나오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개인적으로는 아카야에게 나름의 확고한 기호가 있었으면 했다. 좋고 싫음이라는 게 너무 쉽게 바뀌어 버리면 곤란한 법이니까. 누가, 왜 곤란하냐고 묻는다면... 이 야나기 렌지가 어째서인지 그렇다고 밖에는 답할 길이 없지만.

"역시 오늘 산 거 맛 없었어요?"

"그런 건 아니야."

그쯤 대화를 나누고 있자니 아카야의 집 앞이어서, 내일 보자는 형식적인 인사를 끝으로 헤어졌다. 그 외의 행위는 일절 없다. 엉성한 고백을 받은 날로부터 벌써 27일째. 고작 아이스크림 맛 가지고 사색에 빠졌던 것치고는 건조한 관계이다.

약 4주 전의 아카야를 떠올리면 속절없이 웃음이 나왔다. 입으로 뱉은 말과 충혈된 눈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으니까. 당시 내가 판단키로 아카야는 긴장하고 있었다. 피 쏠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동안, 입은 앙물었다가 벌리며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그런 표정을 한 사람에게 사랑 고백을 받으리라고 그 누가 생각할까? 혹시 다른 선배들이 시킨 벌칙 같은 것이냐고 물었더니 아카야는 잔뜩 성을 냈다. 진지한 분위기를 해치고 싶지 않았던 건지 그 화도 얼마 못 가 잦아들었다.

"진심으로 하는 말이냐?"

"그... 아니다. 그냥 못 들은 셈 쳐요."

"아니. 기분 나빠서 그러는 게 아냐."

"그럼요?"

기꺼이 그 마음을 받아준 것은, 나를 바라보는 얼굴에 드러난 간절함 때문만은 아니었다. 당연히 그 마음이 싫지 않아서 그랬다. 그러고 3주 하고 6일. 우리 사이는 방과후에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난 정도의 변화가 있었다. 그것 말고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고 어쩌다가 손이나 한 번 잡아 보는 게 다였다. 중학생끼리 사귀는 일에 조급할 게 뭔가. 단지 조금 불안했던 모양이라고 혼자 생각할 따름이었다.

"여보세요."

"야나기 선배, 지금 뭐해요?"

"저녁 먹고 쉬는 중이다만."

휴대전화를 어깻죽지에 끼우고 책을 덮었다. 수화기 너머로 아카야가 머뭇거렸다. 의자에서 일어나 침대 등받이에 걸터 앉을 즈음에나 아카야가 말했다. 있잖아요. 아까 선배가 말한 거 계속 생각해 봤는데요...

"내 무슨 말?"

"그 왜, 헤어지기 전 쯤에... 선배가 막, 그. 아 왜 있잖아요 그거."

아카야의 생각쯤이야 훤히 들여다 보이는데 그걸 어찌 모를까. 일부러 시치미를 떼니 아카야는 설명 만으로도 쩔쩔 맸다. 이러니 자꾸 놀리고 싶어지는 걸 어쩌면 좋을지. 네가 하려는 말이 뭔지 안다고 판을 깔아주니 아카야는 잠시 앓는 소리를 내다가 '그거 말인데요.' 하고 운을 뗐다. 탁한 음질 한 구석에서 느껴지는 결연함이 마음에 들었다.

"아니 밥 먹는데 누나가 그거 돌려 말하는 거래서... 근데 그래서 전화한 건 아니고 걍 선배랑 통화하려고 한 건데... 아니 근데 사람이 어떻게 맨날 똑같은 거만 먹어요? 가끔 다른 거도 좀 하고 막... 그러는 거지. 다른 거 어쩌다 한 번 먹는다고 제가 거기에만 올인한다는 게 아니고... 그리고 애초에 먹는 거랑 그거랑 같냐고요! 어쨌든 제가 하려는 말은 저 진짜 완전 일편단심 뭐 그런 거라고...! 아, 아이씨... (아이씨?) 아니! 야나기 선배한테 한 말이 아니라...! 아무튼 무슨 말인지 대충 알죠? 근데 저 눈치 별로 없으니깐 돌려 말하지 좀 말면 안 돼요? 아 이건 됐고 아무튼...

어쨌든, 그러니깐, 저 그렇게 뺀질이는 아니라고..."

"알아, 나도 그렇게 깊은 뜻으로 한 말은 아니니 너무 담아두지 마."

참으려고 노력했지만 좀처럼 웃음을 숨길 수 없었다. 필사적이지만 영 어설픈 해명이 마냥 귀여워서, 넋을 놓으면 계속 들어주고 있게 될 것 같아 먼저 말을 끊었다. 한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화제는 마음이 놓여서인지 흥미가 떨어져 버렸다. 이 얘기는 그만할까 싶어 저녁은 뭘 먹었냐고 물었더니 아카야는 금세 천진하게 저녁 메뉴를 읊어 왔다. 오늘 집에서 전골 했는데요, 누나가 버섯 넣자고 극성이잖아요. 저도 버섯 뭐, 싫진 않은데 표고는 향이 너무 세지 않아요? 야나기 선배는 버섯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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