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괴─는 창조─의 사이클로 이어진다. 때로는 삶도 그렇다.


 "...뭔가요, 그 다 크고 나서야 아이들이랑 친해지려고 애써 시도하는 듯한 어색한 아버지 같은 선물...?"

 "...시끄럽다!"

 손아귀에 새하얀 곰 인형을 쥐고 있던 카스가 쿄지가 꽥 소리를 질렀다. 

 "그건 아리스 몫인가요?"

 "흥! 여자애 방이 말이야. 삭막해 빠져가지곤. 이런 거라도 있으면 좀 낫지 않겠냐?"

 "구시대적 발상이네요." 

 떨떠름하게 대꾸한 히라데 시엔이 마저 저벅저벅 발걸음을 옮겼다. 타박을 한 번 듣고도 카스가 쿄지의 등짝은 사뭇 의기양양했다. 나름대로 상대가 마음에 들어할 만한 선물을 제법 잘 골랐다고 자신하는 태세였다. 한쪽 손아귀에 흰 곰인형을, 다른 쪽 손아귀에는 파와 달걀, 두부 따위가 들어있는 비닐봉지가 축 늘어져 만들어진 그림자가 보도블럭 위로 드리워졌다. 그 뒤를 쫓아 걸어가며 시엔은 저녁 식사 준비를 위한 재료들을 머릿속으로 가늠했다. 돼지고기, 냉동실에 얼려 뒀고. 감자, 깎아야겠군. 그 외의 조미료는...집에 있으니까 됐나? 

 "세간살이 하나 제대로 못 챙겨나왔으니까. 계속 징징거리고 있다고, 그 녀석."

 옆에서 카스가 쿄지가 투덜거린다. 그건 아마 제대로 챙겨오지 못하고 박살난 채 방치된 세간살이들에 정이 들고 아까워서가 아니라, UGN의 공격에 속속무책으로 당해버린 그 상황에 대한 분노에 의한 것...이리라고, 시엔은 어렴풋하게 짐작했으나 입 밖으로 내진 않았다. 그의 제자는 분노든 서운함이든 짜증이든 부정적 감정을 죄 성가신 징징거림으로만 드러내는 버릇이 있었고, 그 징징거림 밑에 묻혀 있는 진짜 감정이 무엇이기를 들여다보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건들을 다시 맞춰 주고 방을 채워 준다고 해결될 일이 아닐 텐데. 그의 제자가 과연 열 받았다는 이유로 복수를 하러 당장 UGN 지부로 쳐들어가지 않을 수 있을까? 그는 가능성을 낮게 점치며 중얼거렸다.

 "그러게 귀가하실 때는 UGN의 추적대를 잘 따돌리고 귀가하셨어야죠. 습격이 있더라도 집에서는 좀 멀리 떨어져서 교전하시고요. 제 집에 빈 방이 충분해서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에잇, 시끄러!"

 

 꽥 한 번 더 고함을 질러 잔소리를 끊어 놓은 카스가 쿄지 탓에 그는 차마 두 사람이 옹기종기 모여 같은 방을 쓸 뻔 했다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을 수 있었다. 내심 감사했다. 

 "아무튼 당분간 제 집에서 지내게 되셨으니까요."

 "또 잔소리를 할 셈이군."

 카스가 쿄지가 홱 고개를 돌리고 짜증스럽게 투덜거렸다.

 "예, 할 말은 할 거예요. 빨래하기 힘드니까 싸울 때는 당분간 흰 정장 입지 마세요. 아니면 피 튀겨 오지 마시고요.... 아, 양말 뒤집어 놓지 마시고. 아리스는 아직 사춘기니까 방에 들어갈 때 노크하는 거 잊지 마세요. 창문 많이 열고 지내니 하루에 한 번은 바닥 쓸어야 하고...."

 쭉 이어지는 잔소리를 들으며 카스가 쿄지는 진저리를 쳤다. 단조롭게 규칙을 읊던 히라데 시엔은 물끄러미 그 옆모습을 보다가 덧붙였다. 아리스한테도 똑같은 말 해둘 테니까요. 스무살보단 좀 더 세심하게 신경을 쓰실 수 있겠죠? 

 "하, 시끄러. 네놈은 이거나 들어라."

 휙, 대뜸 히라데 시엔의 가슴팍으로 새하얀 곰인형이 날아왔다. 퍽, 가슴팍을 맞고 떨어지는 곰인형을 오버드 특유의 민첩한 반사신경으로 능숙하게 받아낸다. 곰인형은 말랑했다. 그는 한 번 더 곱씹었다. 그러고 보니 아리스 방이 옷방으로 쓰던 곳을 비운 터라 아직 좀 삭막하기는 하지.... 청소도 곧잘 안 하고. 정리도 안 하고 방도 엉망진창으로 방치하는 것 같고. 좀 꾸며주면 정리라도 하려나. 그렇게 생각에 빠져든 채다. 곰인형을 몇 차례 뒤집어도 보고, 꾹꾹 눌러도 본 시엔이 그렇게 생각하며 곰인형을 옆구리에 끼웠다. 

 "쿄지 씨가 주는 선물이라고 할게요."

 "시끄러워!"

 한 번 더 꽥 소리가 돌아오는 앞의 등짝을 물끄러미 바라봤다가 시선을 돌리며, 다시금 발걸음을 옮긴다. 어쩐지 순탄하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저절로 스미는 동거 첫 주의 첫 주말이 시작되고 있었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