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관 명령


 "니콜라예프 중령."

 "예."

 "코소보에서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마쳤더군."

 "유능한 대대원들의 탓이지요." 

 "그대는 늘 혓바닥이 매끄러워."

 그러나 공치사를 부정하진 않는군. 사단장이 물어 피운 궐련에서부터 두터운 연기가 피어올랐다. 픽 웃는 소리가 담배 연기 사이로 샜다. 바실리는 어딘가 심드렁함이 묻어나면서도 반복으로 몸에 체화된 각 잡힌 태도로 서 군모를 한 차례 고쳐 썼다. 어둠에 가득 잠긴 방 가운데로 흰 연기만 한참 피어올랐다. 팔락, 팔락. 한참을 고요한 방에 사단장이 보고서를 한 장 한 장 넘겨 읽는 종이의 마찰 소리만이 들려왔다. 

 "이른 진급을 거부했고."

 "지름길은 재미없다고 생각해서 말입니다."

 바실리가 조금, 웃었다.

 "권력욕이 없어. 니콜라예프 준장의 아들답지 않군."

 "아버지는 저와 꽤나 다른 인물이시죠."

 "그래, 그렇군...."

 그늘 속에 가려져 상관에게는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만 삐딱하게 입꼬리를 끌어올려 웃는 낯은 확실히, 웃는 법을 알기는 했을가 싶던 그의 아버지와 사뭇 다르다. 바실리는 가만히 뒷짐을 지고 선 채로 상관의 이어질 말을 기다렸다. 다시금 한 차례 침묵이 이어졌다.

 "그대는 신을 믿나?"

 불쑥, 이어지는 물음은 뜬금없는 종류다.

 "믿지 않습니다."

 대답은 매끄럽게, 한 치의 망설임도 두지 않고 흘러나왔다.

 "신의 존재조차 믿지 않는 이가 비인간적인 전장에서 이 정도의 성과를 낸다는 것은 믿기 힘들군." 

 "그야 자비도 사랑도 믿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린다면."

 바실리는 한 차례 뜸을 들였다.

 신도 구원도 이 빌어먹을 세상에서 인간들이 고작해 봐야 서로의 상처를 핥아주는 것이 전부인 그 정도의 위로를 위해 상상해낸 것이라고 말한다면 불경할까. 불경함을 단죄할 절대자라는게 존재하긴 한가? 바실리는 아주 가끔 그런 것들이 궁금했고 꽤나 자주 그래봤자 아무것도 달라지는 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삶을 구하는 것은 신이 아니라 총탄과 기름 먹인 천과 식량과 전차다. 그 점이 마음에 들어서 바실리는 전장이 좋았다. 한낱 몇 가지 요소들로 휘두르고 제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다는 점이 좋았다. 전장에 서면 모든 것이 쉬웠다. 사람을 죽이는 일도, 사람을 살리는 일도. 

 바실리는 그쯤 사단장이 독실한 정교회 신자라는 사실을 떠올려 냈다. 

 "건방집니까?"

 "꽤나."

 단박에 사단장으로부터 대답이 흘러나왔지만, 불쾌한 투는 아니었다. 

 군에 어째서 들어왔냐는 대답을, 꽤나 몇 차례 받았다. 자기가 생각하기에도 바실리 스스로는 군대에 어울리는 체질은 아니었다. 각 잡힌 빡빡한 집단 안에서 바실리의 자유로움은 실은 방종으로 비춰지는 일이 잦았다. 갑갑한 것도 싫고, 권위주의적인 것도 싫고. 애초부터 나기를 군에 잘 맞는 인간은 아니었다. 그런 주제에 아슬아슬하게 선 위에서 줄은 잘 타서, 제대로 미운털이 박히는 일은 드물어 곧잘 버텨왔을 뿐이다. 원래 적성과 흥미는 별개라고들 하는 법이지. 

 "그러나 자비도 사랑도 믿지 않는다는 대답만큼은 꽤나 군인다워."

 그것이야말로, 신자답지 않은 대답이다.

 라고 바실리는 언뜻 생각하고야 만다. 만족스러운 낯이 감도는 사단장의 얼굴을 지그시 바라보며. 

 "진급 대신 이번 성과에서 원하는 것이 있나?" 

 "예."

 "말해 보게."

 "알렉세이 니콜라예프 대위를 제 밑으로 배정해주십시오." 

 대답은 망설임 없이 물 흐르듯 흘러나왔다. 애초에 원하는 것이 없다는 청렴결백한 대답 따위 예상한 적도, 바란 적도 없었던 듯 사단장은 만족스럽게 웃는다. 

 "제 형제 챙겨주기인가?"

 굳이 변명을 덧붙여 보자면.

 그러나 이것은 최대한 정정당당한 방편이다. 사단장은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얼마든지 이런 방향을 취하지 않을 수도 있었으나, 나름의 즐거움과 공정함을 추구하기 위한. 

 "지름길은 싫어하는 편이지만요."

 뭐라고 생각해도 좋다. 바실리는 더 대답하지 않았다. 

 알렉세이가 유일하게 부대 내를 도피처이자 안식처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던 것은 갓 아버지의 사후, 군으로 복귀했을 무렵의 일이다. 알아차리기란 애초에 어렵지 않았다. 친애하는 그의 형제는 표정이 정직하게 죄 얼굴에 그대로 드러나는 타입이었고 (그 점이 유쾌하긴 했으나) 스스로 다시 곱씹어 보더라도 성격 나빴다고 표현할 법한 악질적인 요구 이후로는 더더욱 표정을 읽기 쉬웠다. 한 달에 단 한 번. 약속된 날마다 본가로 돌아올 때면 표정 없이 죽은 낯을 하고 있는 주제에 스쳐 지나가듯 부대에서 언뜻 마주치면 그나마 생기라는 것이 있어 보이는 것이 가끔은 재밌었고 가끔은 불쾌했다. 그저 때로는. 

 그 유일한 안식처를 빼앗아 보면 무슨 표정을 지을까?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최대한 가까이 있을 수 있는 보직이 좋겠지. 중령이 대대장으로 있는 대대의 작전장교 정도면 되겠나?" 

 제 손아귀 밖을 벗어날 때만 살 것 같다는 얼굴을 하는 것이. 그렇게까지 불쾌할 것은 아니었으나, 가끔씩 스미는 궁금증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럼 유일하게 피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듯 하는 부대 안까지 틀어쥐면 무슨 얼굴을 할지. 화를 낼지, 아니면 그마저도 하지 않고 꾹 입을 다물어 혼자 삭여 버릴지. 또는.

 "다음달 내로 보직이동이 있게 지시해 두겠네."

그제서야, 완전히 체념한 얼굴을 할지.

 "예."

 그는 단정하게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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