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부수지않아도동거할수있음을보여주겠다
대충 유씨 세계관을 덥크 어나더 스테이지 쯤으로 치환한 세계관 입니다
“애쉬. 이런 식으로는 곤란한데요, 정말로.”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까, 저 남자는.
그야말로 언제 봐도 한결같다, 라는 말 외에는 더 표현할 길이 없는 남자다. 애쉬 레드릭은 상체를 뒤로 쭉 젖힌 채 기대 앉아 있던 가죽 의자를, 단번에 빙그르 돌려 클레망과 시선을 마주해왔다. 그 낯을 지그시 들여다보던 클레망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뭇 오만하게 턱을 살짝 치켜올린 그 특유의 시그니처 포즈마저 일전에 만났던 때 그대로다. 당시 애쉬 레드릭의 직위는 사찰부 국장으로, 중추평의원에 비해서야 모자라다지만 그때도 그는 제 특권을 칼날처럼 휘둘러 대는 사내였다. 그때부터 좋지 않게 엮여봤자 썩 즐거운 일은 벌어지지 않으리라 직감했기 때문에 정말로 원만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 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중추평의원인 내가 평의회 직속 에이전트에게 임무를 내리는 게 명령계통상 무슨 문제라도?”
그야말로 정확히 이런 점이 한결같다는 거다. 거절에 돌아오는 대답이 설득도 타협도 아닌 대뜸 권위를 무기 삼아 휘두르기라는 것이.
“물론 직속상관인 고우라를 통해 달라고 요청한다면 얼마든지 그렇게 해줄 수는 있겠지만.”
미간을 좁힌 클레망이 금방이라도 일어날 듯 전신에 줬던 힘을 풀고, 쇼파에 푹 파묻혀 늘어졌다.
“…거절했다간 나이트폴에 사찰 4과가 들이닥칠 거라는 말을 그렇게 돌려서 하지 않으셔도.”
“설마, 그렇게 막무가내식 방법을 쓸까.”
애쉬 레드릭이 느슨하게 입가에 웃음을 걸쳤다. 그러나 말은 그렇게 할지언정, ‘밀리언 썬즈’의 가장 가까운 심복이라는 ‘프라가라흐’ 마리아 체스노코프가 사찰 4과에 남아 애쉬 레드릭의 손발처럼 여전히 사찰부를 휘둘러대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본부의 에이전트는 없다. 클레망 블레어는 한숨을 푹, 한 번 더 내쉬며 양손을 들어올렸다. 완전한 항복의 시그널이었다.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듯, 애쉬에 입가에 걸쳐졌던 미소가 조금 더 진해졌다.
뭐, 애초에 이러니저러니해도 그다지 반항기 철철 넘치는 성격도 아니다. 자신은.
“5년 전 있었던 ‘모이라이의 실’ 사건을 기억하나?”
“아, 그…미국지부의 에이전트 몇이 연루되었다던.”
기억을 되짚으며 중얼거리는 클레망의 눈앞에 툭, 갈색 서류철이 하나 던져졌다.
“해결된 사건 아니었나요?”
의아한 듯 반문하며 서류철을 뒤적거리는 클레망의 귓가로 애쉬의 설명이 이어서 다시 떨어진다. 요약된 서류철의 첫 번째 내용은 평범하다. 이변이 발생했고, 그것이 모이라이 세 여신들 때문임을 알아냈고, 에이전트 몇몇이 출동해 제압했으며, 그 과정에서 연루된 미국지부 모 에이전트의 딸이 각성해 UGN에서 활동 중. 별 문제 없는 보고서다. 그 다음을 팔락, 넘기는 순간 설명이 이어졌다.
“최근 니스 부근에서 ‘신탁’을 받았다는 ‘예언자’가 나타났다는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다.”
아, 불길해라. 클레망이 무언가 직감하고 우뚝 서류를 넘기던 손을 멈춘 순간이었다.
“프랑스 지부에서 조사한 결과 5년 전 해결했던 모이라이 여신들이 니스 지방에 물레를 두고 갔다고.”
왜 불길한 예감은 언제나 빗나가는 법이 없는지?
“본부는 해당 보고를 취합, 사건이 ‘유산’과 관계되었다고 판단. ‘나이트폴’ 에이전트 하나를 파견해 현지 협력자와 함께 사건을 해결할 것을 결정했다. 클레망 블레어, 외가 쪽이라지만 본가가 니스에 있다지.”
“…애쉬.”
느슨하게 입가에 걸쳐 있던 애쉬 레드릭의 미소가 돌연 팽팽해졌다. 클레망은 눈을 질끈 감았다. 아, 정말이지 이런 식으로는 니스에 다시 가고 싶지 않았다. 정말로, 이런 식으로는.
“휴가인 셈 치고 보내주는 거니, 감사해도 좋아.”
그에게는 그곳을 떠나온 이유가 따로 있다.
“그러고 보니 영어는 어디서 배웠어요? 되게 잘하네.”
“어렸을 적부터 영국을 자주 드나들어서요.”
“그럴 줄 알았어요, 어쩐지 재수 없는 악센트더라.”
딱딱거리는 어조로 휙 방을 이리저리 둘러본 세피아 윌리엄스가 거대한 캐리어를 방 한가운데 놓았다. 그 옆에서 클레망은 그저 머쓱한 낯으로 한두 번 웃을 따름이었다. 악센트를 바꾸라면 못 바꿀 것은 없었으나, 휙 저렇게 가벼운 어조로 종알종알 나온 말에 대뜸 미국식으로 싹싹 악센트를 갈아치우는 쪽이 더 이상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클레망은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 창틀을 손으로 한 번 쓸었다. 집을 내내 비운 사이에도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거대한 본가의 저택은 고용된 사용인들에 의해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단 하나의 방만 제외하면. 클레망의 방 바로 옆에, 벽에 자리한 문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방이다. 아마도 십 년째 자욱하게 쌓인 먼지가 부옇게 공중을 부유하고 있을.
애초에 그 방의 문을 열지 않은지도 십 년이 흘렀다. 외면하듯 니스를 떠난지도 십 년이었고. 이런 식으로 애쉬가 등떠밀지만 않았어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떠밀릴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라면 미국 지부에서 온 ‘파트너’ 에이전트가 옆에 붙었다는 점이고.
‘세피아 윌리엄스예요.’
‘클레망 블레어입니다. 아, 정샛별이라는 이름을 쓰기도 하고요…낯서시겠지만.’
미국지부에서 활동하다가 왔다는 그 에이전트는 대번에 어린 티가 나는 낯을 하고 있었다. 나이가 정말로 어리다기보단 아직 아이처럼 앳된 티가 났다. 휙휙, 빠르게 악수를 건네 오던 세피아는 말이 빨랐고 또 많았기 때문에 생각을 깊게 하고 싶지 않을 때 함께 움직이기엔 최고의 파트너라고 해도 좋았다. 거대한 캐리어를 질질 끌고 니스 공항에 나타난 파트너 에이전트에게—대체 미국지부에서는 왜 디멘션 게이트 하나를 제대로 마련하지 못해 대서양을 건너는 비행기 티켓을 제공해야 했는지는 조금 의문이었으나—클레망이 숙소를 구하지 못했을 테니 저택으로 가자는 제안을 건넨 것도, 반쯤은 호의였으나 반쯤은 그러한 의도였다. 햇살이 비스듬히 지는 도시, 사람들이 느릿느릿 움직이는 바다를 낀 휴양지의 이 도시에서 그는 정말로, 정말로 내내 혼자 있고 싶지는 않았다.
하필 게다가 계절마저 별로 좋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혼자 있을 때면 환청—과연 환청일까?—을 들었다.
“복도 끝까지 직진해서 나오는 방이 제 방이에요, 그 옆 방은 잠겨 있고. 나머지 방은 아무데나 들어가거나 써도 좋아요.”
“방이 뭐 이렇게 많아요?”
“외가가 쓰던 저택이라.”
이제 직계는 자신밖에 남지 않았다. 세피아의 말마따나 혼자 쓰기엔 지나치게 큰 저택이었지만 그래도 파트너가 있으니 잘 된 셈이다.
“아, 악기는…피아노는 마음대로 건드려도 괜찮아요. 피아노 말고는 제가 주인이 아니라서, 이왕이면 손대지 않는 쪽이 낫겠어요. 서재의 책들은 다 봐도 좋고요. 그리고 주방은…혹시 요리 잘 해요?”
“…기본은 하죠?”
“요리사 고용할게요.”
그 순간 세피아의 얼굴이 확 일그러지는 것이 클레망의 낯에도 보였다. 이 자식 돈지랄 하네 재수없어, 의 의미인지 날 못 믿는 거야?! 의 의미인지는 분간하기 힘들었으나…아무튼 오해를 없애기 위해 클레망은 한 마디를 더 덧붙이기로 했다. 농담조였다.
“미국인들 요리는 짜고 영양가 없잖아요.”
“뭐라고요?”
“…악몽을, 좀 꿔서.”
층계 난간을 붙잡고 숨을 몰아쉬는 클레망을 본 세피아의 눈이 커졌다. 창백한 낯짝, 이마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 제멋대로 헝클어진 은발, 난간을 꽉 쥐어 도드라진 손등뼈까지. 누가 봐도 전혀 괜찮지 않은 사람의 모양새였다. 급하게 우당탕, 잠옷 차림으로 클레망의 앞까지 달려온 세피아가 까치발을 들어 이마를 짚었다. 바짝, 이마를 짚는 손에 긴장한 듯 힘이 들어간 것도 같았으나 두 사람 모두 그것을 신경 쓸 여유는 없었기 때문에 아무도 눈치채지는 못했으리라.
“…이 집에 있으면 악몽을 좀 꿔요, 가끔, 아니, 이 계절이면….”
하기야, 숨기는 것이 많은 사람이다.
라고, 세피아 윌리엄스는 클레망 블레어를 평가한다.
좋은 사람이다. 다정한 낯을 하고, 언제나 무르게 구는 데다, 세심하고 속이 깊다. 조금 예민한 구석이 있는 듯 하나 이것은 세피아 윌리엄스도 몇 달간 ‘파트너’라고 붙어 있으며 간신히 알아차린 사항일 뿐, 보통은 티를 내지는 않는다. 겉으로 표출되는 외양은 매사에 덤덤한 태도뿐이다. 그러나 확실하게.
그는 자신에 대한 것을 쉽사리 먼저 꺼내놓지 않는다. 세피아 윌리엄스가 으레 그렇게 살아왔던 것과 다르게. 묻는다면 말해주겠지. 딱히 거짓말에 도가 튼 사람도 아니어 보이는 데다, 남이 물어오는 것까지 일부러 숨기려 드는 인종은 아니니까. 그러나 결코 묻지 않았는데도 먼저 줄줄 꺼내놓는 법이 없는 이 남자에 대해서, 세피아 윌리엄스는 불현듯. 얄팍한 은판을 마주한 것 같은, 속이 비쳐 보이는 듯 내부가 비쳐 보이지 않는 벽과 마주한 기분이 드는 것이다.
물어야 할까.
고민은 짧았고, 애초에 세피아는 그렇게 깊게 고뇌하는 타입의 인간도 아니었다.
“집을 옮겨요.”
팔짱을 낀 세피아가 뾰쪽한 어조로 조언했다. 클레망이 씁쓸하게 웃는다.
“파리에도 플랫이 있긴 한데….”
“그럼 거기 가서 살면 되겠네.”
“이 계절에 혼자 있으면 늘 듣는 환청이랑 악몽 같은 거라서. 지방은 크게 상관이 없더라고. 뭐, 니스는 좀 더 불편한 게 맞긴 하지만…파리라고 괜찮진 않았어. 정말로 계절성이라.”
아 기력 후달려
중간생략 많이 함
대충 파트너로 만나서 니스에서 같이 문제 해결하느라 동거 -> 클레망 형이슈 도짐 -> 집 옮겨여 ㅇㅇ -> 지역이슈 아니고 혼자 살면 이러더라고 -> 그럼 같이살죠? 하게 되는 흐름일 것 같음 대충 세피아는 프랑스로 발령받은 김에 프랑스-미국지부간 연락책을 맡게 되어서 어차피 계속 오며가며 머물러야 한다는 설정…으로 이렇게 된거 그럼 파리에서 같이 살아주죠 ㅇㅇ 님 괜찮아질 때만? 하다가 걍 같이살아보게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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