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ing "death"tination 2화

Act. 1 화려하게 폈던 꽃

한 달 전, 도시의 서부에 있는 어느 한 조직이 해체당한 날. 죽지 않는 자가 여러 조직들을 헤집고 다닌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실제로 실종된 인물들 중에 각 조직의 간부급 인물들도 소수 있었고 해체된 조직도 분명 있었다.

허나 대부분 사람들은 그저 그러려니 넘어가며 일상을 지냈다.

[골목]의 조직원인 스미스 또한 마찬가지였다.

물론 조직이 하루 아침에 해체되는 건 놀라운 일이 분명하지만 간혹 정의감에 차오른 모험가나 용사지망생 등이 조직 한 두 개를 없애는 건 이 바닥에서 꽤나 흔한 일이었다.

[골목]도 두달에 걸쳐서 여러번 공격을 당했지만 한 달 전에 겁 없이 쳐들어온 용사 지망생이라는 녀석을 석화시켜 창고에 넣어버렸고 두 달 전에 쳐들어온 모험가 집단은 적당히 생포해서 노예상에게 팔아넘겼었다.

그렇기에 스미스는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골목]의 간부들 중에 4명이 실종되고 2명이 사지가 부러진 채 발견되고 자신이 따르던 간부가 방금 턱을 맞고 쓰러지기 전까지만 해도.

"으, 아아악!"

스미스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사방에 피가 튀고 살덩이와 내장이 산비하고 있었다.

물론 조직생활을 하면서 웬만한 산전수전을 다 겪은 스미스가 겨우 그런 것에 놀랄 짬은 아니지만 문제는 저 피와 살덩이와 내장이 단 한사람에게서만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날붙이를 쓰는 건 자신의 동료들 뿐이었고 그 날붙이에 맞아 죽어도 다시 일어나는 그가 쓰는 무기는 단지 두 주먹 뿐이었다. 물론 때때로 이빨로 깨물기도 하고 박치기라던가 발차기도 쓰지만 그게 싸움에 큰 영향을 준다고 말하기엔 민망할 정도다.

방금도 팔과 다리가 날아가고 복부에 칼을 맞아 쓰러졌던 그가 다시 일어나 자신을 죽였던 자의 멱살을 잡고 박치기를 하고있지 않는가.

환각인가? 분명 호구잡힌 환각술사가 있기에 할법한 의심이지만 환각술사의 마법은 그리 뛰어나지 않다는 사실은 직접 겪어봐서 알고 있었다.

환각이 아니라면 이것이 현실인가?

'그럴리가. 이런 비현실적인 광경이 현실일리가 없어!'

피냄새가 코를 찌르고 시끄러운 노래소리가 살을 가르는 소리와 비명 소리 사이에서 흘러들어오고 눈가에 피와 내장이 튀고 있었지만 믿기 싫었다. 이것이 현실일리가 없다. 그래선 안 된다.

"헉!"

퉁. 소리와 함께 등이 주점의 출입문에 닿은 걸 느꼈다.

"도망치는 건 나쁜 선택이 아니야."

"히익!"

죽지 않는 자가 스미스를 바라보며 목이 날아갔다.

그 목은 데굴 굴러 스미스 발에 닿았다.

"만약 지금 도망가지 않는다면 내가 너의 대가리에 주먹을 줄거야. 멋진 선물이겠지. 너 같은 쓰레기에겐 최고의 선물 일거야."

분명 떨어진 머리가 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는 팔다리가 잘리고 내장이 터지면서까지 스미스에게 말을 건 것 뿐이지만 스미스는 발에 닿은 머리가 입을 열어 말을 하는 것 같았다.

'그래. 도망치자. 남아있다간 결국 맞아 죽을거야!'

손이 천천히 문고리를 잡았다.

돌리기만 하면 나갈 수 있다. 도망갈 수 있다.

도망가서, 도망가고 도망가서.

알려야 해.

"아, 그래."

이 사실을 모든 조직에게 알려야해

"마, 맞아. 알려야 해. 죽지 않는 자가 실존하다는 걸."

조직이 망했다는 사실이

"[골목]이 망했다는 사실을!"

벌컥!

문이 열렸다. 스미스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어쩐지 뒤에서 배신자라는 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며 달아났다.

그리고 그는 외쳤다.

"[골목]이 죽지 않는 자에게 전멸당했다!!"

"파하...."

5번째 음악이 끝날 때쯤이 되어서야 주점은 조용해졌다.

아젝트는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끼며 주점 바닥에 쓰러져있었다.

손 끝이 떨리고 핏줄이 아픈 듯한 느낌이 드는 걸 보면 과도한 마나 사용으로 인한 부작용이 온 것 같았다.

'저질러 버렸다.'

아젝트는 방금까지 있었던 일을 복기했다.

백성현이 제일 앞에 있던 녀석의 멱살을 잡고 주먹질을 날릴 때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간부가 단숨에 당한 걸 본 조직원들의 표정을 보고 곧바로 돌려받은 가방에서 포션 하나를 꺼내 바닥에 흩뿌리고 마법을 이용해 포션의 향기로 주점을 가득 채웠다.

사용했던 포션의 본 용도는 마물을 흥분시켜 달려 들도록 하는 것으로 보통 함정에 유인할 때 자주 쓰던 포션이었다. 그런 포션에 약간의 마력을 담아 퍼트리자 훌륭한 환각마법으로 변모했다.

그렇게 만든 향기를 들이마쉰 조직원들은 가장 앞에서 싸우는 백성현에게 달려들었다.

결국 싸우는 건 백성현의 몫이지만 그는 이런 상황이 익숙한 듯 마법에 대한 세심한 컨트롤은 필요 없을 정도로 싸움판에 엉켜붙어 제 할 일을 충분히 해줬다.

다만 다인마법에 어설픈 탓인지 아니면 유독 저항력이 좋은 것인지 한 명이 제정신까지는 아니었지만 어느정도 이성을 붙잡고 도망치려고 했다.

문을 막는 마법 혹은 그와 비슷한 효과를 내는 마법들을 배운 적이 없었기에 이대로 도망가는 건 확신한 아젝트는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그때 백성현이 "도망치는 건 나쁜 선택이 아니야."라고 말했다.

직후에 날아가는 머리가 바닥에 떨어지자 번뜩 떠오르며 쓰고 있던 마법을 중단하고 온 마력을 집중해 나가려던 조직원에게 마법을 걸었다.

단순한 속삭임 마법이었지만 확실히 하기 위해 모든 마력을 쏟아부은 후에 말했다.

곧바로 마력부족으로 마법이 끊겼지만 그가 도망가면서 하는 말을 들어보아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 움직일 수 있을 정도지만 마력이 회복된 걸 느낀 아젝트는 다시 눈을 떴다.

팔다리가 꺾여있는 [골목]의 간부와 조직원들은 이미 밧줄에 묶여지고 있었다.

이런 일은 이미 여러번 했다는 듯 익숙하게 묶고 있언 백성현은 아젝트의 시선이 느껴지자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

"아젝트라고 했지? 사람들을 고양시켜 싸우게 하는 능력? 그거 꽤 괜찮은 능력인데? 전에 일산에서 행사 열렸을 때 난장판을 내던 빌런 녀석이 쓰던 능력과 비슷한데. 그때 사람들 안 다치게 하려고 고생 꽤나 했었어. 정작 이런 능력을 가진 애가 아군이 되니 싸우기 편하고 좋은걸? 도망가는 적도 적었으니."

"......"

"일단 좀 어려보이는 데 혹시 나이는 어떻게 돼? 난 최근에 생일이 지나서 22살이야. 이세계로 납치된 게 생일때였으니까. 아 진짜 하늘에 달이 3개나 떠 있는 거 보고 놀랐다니까. 진짜."

"...그래..."

"아하하. 그 표정 웃기네."

머리가 지끈거리는 걸 다시 느낀 아젝트는 천장을 보고 사방을 살폈다.

더 놀랄 게 있을까 싶었지만 잘려나갔던 백성현의 피와 살덩어리들이 어느 순간 사라져있었다. 그나마 남은 것들도 서서히 사라졌다.

'어떻게 되먹은 구조일까.'

꼴에 마법사라고 괜한 호기심이 생긴 아젝트였지만 이윽고 들린 소리에 상념이 끊겼다.

"살려주십쇼!!"

"살려주세요!!"

아까 음식을 먹겠냐는 점원과 아마도 점주가 동시에 무릎을 꿇고 빌고 있었다.

아젝트와 백성현은 서로를 동시에 쳐다봤다. 마치 서로 떠넘기려는 것처럼, 결국 입을 연 것은 백성현이었다.

아젝트는 애초에 이 도시에 온 지 하루도 지나지 않았기에 할 말도 없었다.

"그러면 본거지가 어딘지 알려주세요. 그리고 돈이나 보물 숨겼을 법한 장소도 알려주면 고맙겠고."

"무, 물론이죠. 저희가 그래도 이것저것 많이 들어서 대략적으로 압니다. 다만."

"몸 숨길 곳이 필요한 거죠? 알려줄게요."

점주와 점원 두 사람의 표정이 밝아진 것을 보아 이게 정답이었듯 싶다.

아젝트는 속으로 감탄했다. 싸우는 방식은 길거리 양아치 수준같은 몸놀림같았지만 그런 와중에 팔다리만큼은 반드시 하나 이상 부러트리는 노련함, 그 후로 포박하는 솜씨, 주변인들이 원하는 답이 바로바로 나오는 걸 보면 하루이틀 이러고 다닌 건 아닌 듯 했다.

'대체 뭐하던 놈이야?'

일단 죽지 않는 몸을 사리진 않고 살았던 것 같다. 고통은 느끼던 거 같은데.

아젝트가 백성현을 이상한 눈으로 보든 말든 사람 좋은 얼굴로 점주랑 점원을 달래준 그는 벌떡 일어났다.

성큼성큼 걸어서 아젝트 앞에 선 백성현은 아직 아젝트의 손에 있던 네모난 물체를 회수하고 주머니에서 호루라기를 꺼내며 말했다.

"그럼. 가볼까?"

"....어딜...?"

"어디긴 튀어야지. 이제."

튄다고? 갑자기?

그런 의문이 들긴 했지만 금방 이유를 알아차렸다.

구석에 묶여 있는 간부는 어디까지나 간부에 불과하다 [골목]의 두목은 아직 살아 있을 것이고 아젝트가 내보낸 조직원이 퍼트리는 소문을 듣는다면 바로 이곳으로 행차하시겠지.

아젝트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났다. 어느새 점주와 점원이 한보따리 메고 나와있었다.

"그러면 아젝트는 날 따라오고 둘은 제가 알려준 곳으로 가보세요. 혹시나 배신해서 제가 알려준 비밀장소를 누설해도 상관없어요. 저희는 그쪽으로 안 갈거니까."

"아, 아니 배신이라뇨. 그럴 일은 없습니다. 이렇게 살려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거늘..."

백성현은 점주의 말에 굳이 답하지 않고 방긋 웃으면서 문 밖을 나섰다.

문 밖으로 나가자마자 호루라기를 불었는데 소리가 나지 않았다.

"고장난 거야?"

아젝트가 따라와 묻자 백성현은 고개를 저었다.

주점 옆에 있는 담장으로 올라간 그는 별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잘은 모르지만 뭔가 공명을 해서 소리를 전달하는 방식인 거 같아. 저번에 몇몇 조직을 박살내고 나서 누가 주더라고."

담장 위에서 호루라기를 주머니에 넣은 백성현은 다른 방향으로 떠나는 두 사람을 배웅하며 말을 이었다.

"목걸이를 차고 있는 걸 보아서 모험가 길드 측 사람같았는데 아마 직접 처리하기 어려웠던 녀석들을 내가 대신 처리하니까 그 뒷정리라도 도와주려고 하는 것 같더라고."

그의 말이 끝나자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무언가를 기억하듯 아쉬운 표정을 짓던 백성현이 멋쩍은 웃음을 짓자 아젝트는 살짝 눈쌀을 찌푸렸다.

"너무 거리낌없이 말하지 않아? 우린 만난지 하루도 안 됐어."

"정확히는 6시간 조금 안 되었지만, 너도 날 도와줬잖아."

그리 말하며 담장 너머로 넘어갔고 아젝트 역시 담장을 올라타 넘어가니 예상한 듯한 얼굴의 백성현이 기다리고 있었다.

곧바로 발을 움직였다.

어디로 가는 지는 모르겠지만 골목 사이사이를 누비면서 가는 그를 쫓았다.

아무리 갈림길이 많아도 백성현은 마치 이 곳이 자신의 고향이라는 듯 망설임없이 걸어갔다.

주점 뒤편에 있는 골목들은 추적을 하기 위해서 들어갔던 골목과 달리 건조했으나 갖가지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라있었다.

마치 이 골목은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다는 표시같았지만 곳곳에 잘려져있거나 밟혀있는 흔적이 남아있었다.

골목을 만들어내는 벽들도 사람의 손이 타지않아 넝쿨이 걸려있는 경우가 있으면 또 누군가 손을 집었는지 싶은 흔적들 역시 가득했다.

'이쪽인가.'

골목을 누비다보니 이전에 살던 곳에서의 기억이 떠올라 저도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뒤에 마법사가 따라오는 중이라는 걸 점점 잊고서 속도를 높여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카테고리
#기타

댓글 0



추천 포스트